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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를 통한 하나님 나라 가르침 ⑩

[ 2023-01-27 10:39:47]

 
김영한 박사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2) 하나님 나라는 겸손한 자들의 것이다: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겸손한 자는 높아진다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에 자기 자신의 업적을 내세운다.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한 것에 대한 비애(悲哀) 때문에 그리고 회개와 속죄를 수행하는 관습에 따라서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하였다. 이들의 경건성은 하나님보다는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에 정위되었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구에 서서 기도하였다'(마 6:5). 

이들은 자선할 때에 '사람들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나팔을 불었다(마 6:2). 이들의 경건은 하나님의 영광과 죄인에 대한 긍휼에 근거하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고하는 위선(僞善)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만(自慢) 속에서 자신들이 내면적으로 처한 결핍과 곤경을 전혀 알지 못했다. 이들의 외형적 기도나 금식 같은 행위는 심령의 결핍을 채워 줄 수 없었다. 이들은 동료 인간, 세리나 죄인들 등에 대하여 우월감을 가졌다. 이들이 동료 인간에 대하여 눈이 멀은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진 불손한 태도에 상응한다. 하나님은 자만과 위선으로 경건을 치장한 바리새인들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이러한 교만한 종교인들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신다.

이와는 반대로 세리들은 직업상 저지르는 행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에 대해 기본적으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b)라는 태도를 가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리를 의롭다 하셨다. 다윗은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번제를 즐겨하지 아니하시고 상하고 통회하는 심령의 제사를 즐겨하신다고 고백하였다(시 51:16-17). 

하나님의 나라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것이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는 자의 것이며, 온유한 자의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회개하고 자기의 죄 때문에 애통하고, 주변의 악과 불의로 인하여 슬퍼하는 자들의 것이다. 이러한 자들의 마음은 항상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 속에 있기 때문에,  온유하고 겸손하고,  항상 자기 의로움이 아니라 이웃과 하나님의 뜻에 정위되어 있다.

5. 부유한 자 비유

1) 부자와 나사로 비유(눅 16:19-31) 
   
(1) 가난한 자에 대한 축복과 부한 자에 대한 저주

부자와 나사로(The Rich Man and Lazarus) 비유에서 예수는 두 부류의 인간 형(型)과 관련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들려준다.

부자는 호의 호식하는 세상적으로 부유한 자들의 대표요 나사로는 부자들이 식탁에서 내던진 빵 부수러기 조차도 주워 먹을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의 대표다. 부자는 호화롭고 즐기고 방탕(放蕩)한 삶을 사는 자를 상징하며, 나사로는 세상에서 가난하나 경건한 삶을 사는 자를 상징한다. 가난한 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한다. 이에 반해 하나님을 깔보고 하나님을 비웃는 이들은 지상에서 성공을 거듭하면서 복이란 복은 다 누린다. 호의 호식하는 부자들은 마음이 공허한 사람들이고, 자기 안에 있는 공허함을 억누르는 자들이나 가난한 자들은 비록 무화과 나무의 소출은 적으나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자들이다. 

이 비유는 누가복음에 보도된 예수께서 평지에서 행하신 축복과 저주 선언에 대한 일종의 예증이라고 할 수 있다(눅 6:20-26).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는 세상적인 부자에 대한 경고 내지 저주 선언과 세상적인 가난한 자에 대한 위로와 축복 선언이 동반되어 있다. 나사로는 모든 가난한 사람을 대표한다. 

가난한 사람이란 경건성의 의미에서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도움을 기대하는 사람들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나사로는 죽은 후 영원한 생명의 잔치에서 아브라함 품에 안기는 은총과 영광을 차지한다(마 8:11). 

부자는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죽어서 화려한 장례식을 마친 후에 '죽은 자들의 나라'인 음부(陰府)에 들어간다. 음부(hell은 희랍어 Haid s, 희브리어 Sheol이나 Gehenna의 번역)는 선한 자나 악한 자를 막론하고 죽은 자들의 거처이다. 나중에 거의 배타적으로 죽은 악인들의 처소로 사용되어졌다. 음부는 지옥, 즉 악인들을 위한 형벌 장소다(눅 13:28b).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 20:13-14). 

예수는 유신론적 사후세계의 관점에서 천국과 지옥을 언급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현세에서 끝나지 않고 내세에서는 현세의 삶에 대한 판결로서 믿음의 선한 삶을 산 자들은 천국에서 복락과 안식의 삶을 살게되고, 세상의 열락과 악한 삶을 산 자들은 불못으로 불리워지는 지옥에서 보응과 고통의 삶을 살게 된다.  

6. 슬기로운 종 비유 

1). 슬기로운 청지기와 미련한 청지기 비유(마 24:45-51; 눅 12:42-46)

(1) 슬기로운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

예수는 슬기로운 종과 미련한 종(the Wise Steward & Stupid One) 비유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말하신다(마 24:45-51). 

예수는 하나님 나라는 충성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소유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그 집 사람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자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항상 깨어 있어 작은 일조차도 성실히 이행한다. 그러면 주인이 와서 그에게 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길 것이다. 그러나 미련한 청지기는 주인의 귀가(歸家)가 지체된다고 생각하고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면서 맡은 임무를 게을리 한다. 악한 자는 전혀 예기치 못하는 날 주인이 와서 동료를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을 받게 된다.
 
슬기로운 청지기와 미련한 청지기(the Wise Steward & Stupid One)  비유는 종말론적 심판의 때를 지시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그 자체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와서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심판의 시각을 향하여 나아간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청지기다. 선한 청지기는 주인의 뜻대로 자기의 맡은 일을 충실히 이행하는 자다. 그는 때를 알고 경건한 삶을 살고 주인의 오시는 때를 기다린다. 이에 반해 미련한 청지기는 동료들과 싸우고 술 취하고 방탕한 삶을 산다. 그런데 그가 예기하지 않을 때 주인이 와서 그를 심판한다. 역사의 종말에 인류는 두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선한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나 악한 자들은 지옥으로 내쫓김을 당한다. 

(2) 주인은 종의 행한 일에 따라서 보상을 주실 것이다. 

주인은 우리가 생각치 못하는 시각에 온다. 주인이 오면 착한 종이 행한 일을 보고서는 그를 칭찬하고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길 것이다. 그러나 게으른 종의 일그러진 삶에 대하여 주인은 심판할 것이다. 게으른 종의 일그러진 삶과 부실한 성과에 대하여 주인은 문책하여 그를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 24: 51).

비유는 직분을 맡은 자가 가져야할 기본적 에토스(ethos)에 대하여 지침을 주고 있다. 청지기는 주인이 오시는 날(결산)에 대비하여 항상 깨어서 자기 맡은 일을 잘 수행해야 한다. 누가복음에 기록된 비유는 마태복음의 비유와 같다. 그런데 누가복음 비유에는 마태복음에는 없는 예수의 어록이 첨가되어 있다(눅 12:47-48). 누가는 비유 도입부분에 다음같이 베드로의 질문을 삽입한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저자 주: ‘그리스도 오심을 기다림’)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눅 12:41). 그럼으로써 누가는 자기 시대 복음 전도자들의 특별한 책임을 일깨우고 있다. 수제자 베드로도 그가 생전에 듣고 배운 예수의 비유에 상응하는 교훈을 그의 서신에서 다음같이 하고 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벧전 5:2-4).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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