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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유를 통한 하나님 나라 가르침 ⑨

[ 2022-11-15 10:39:22]

 
김영한 박사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9) 하나님 나라는 변혁적 정의를 가르친다:  하늘나라의 경영방식은 세상 경영방식과 다르다.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 불의한 청지기는 자기가 해고될 것을 알고서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다가 빚을 경감해 주였다. 그런데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의 일을 지혜로운 경영이라고 칭찬하였다. 이러한 경영은 세상적인 경영에서는 정말 미련한 짓이며, 영구히 퇴출될 경영방식이다. 
 
그런데 하늘나라의 경영은 세상 방식과 다르다. 하늘나라 경영은 채무자들의 빚을 경감해주는 경영이다. 청지기는 채무자들의 빚을 경감해주었다. 불의한 청지기는 해고된 후의 대비로서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을가 생각하여 빚을 감해주는 이기적인 선을 행했다. 예수의 눈으로 볼 때 그 청지기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자신의 상황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그의 단호한 행동은 모범적이다. 이 일로 인하여 주인은 채무자로부터 자비하고 관대한 분으로 평가를 받게 되었음으로 주인은 청지기가 지혜롭게 행하였다고 칭찬하였다(8절). 
 
주인은 하늘나라의 경영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그만 선행을 크게 보시고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이를 사용하신다. 조엘 그린은 이 비유를 가리켜 “하나님 나라의 경제학” (Kingdom Economics)이라고 붙이고 있다. “하나님에 대한 충성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호의의 확장에서 증명된다.” 청지기의 채무자 탕감 목적도 주인의 유익보다는 빚진 자들로부터의 호의를 입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다. 이웃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이다. “불의한 재물에 충성한 자에게 참된 것을 맡긴다”(눅 16:11)는 의미는 부도덕한 청지기가 가난한 자들과 재물을 나눔으로써 재물을 바르게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불의한 청지기의 정의(正義)는 이기적 정의였다. 하지만 주인은 불의한 청지가의 정의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포상해준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변혁적 정의(transforming justice)를 말한다.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주인은 사랑과 자비의 분이시며 우리의 자그만 이기적 정의 자체도 높혀서 차원 높은 진정한 이타적 정의로 만드시는 분이다. 이기적 정의를 이타적 정의로 높이는 것이 변혁적 정의다. 하나님 나라에는 죄인에도 불구하고 더 큰 은혜로 허물을 덮어시는 초풍성의 은혜 법칙(a law of grace of superabundance)이  지배한다. 
 
하나님 나라의 정의는 분배적 정의가 아니라 변혁적 정의다.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란 나의 행한 대로 그 행위만큼 나의 몫을 보상 받는 정의다. 이것은 세상의 율법적 정의다. 이에 반해서 변혁적 정의(transforming justice)는 하늘나라의 정의로서 세상의 정의보다 질적으로 차원 높은 정의다. 전혀 자격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가난한 자들에게 재물을 나누어 주었고, 그래서 주인이 관대하고 선한 분이라는 칭찬을 받게 했다는 비의도적 결과만을 가지고 의를 삼아 주시는 하나님의 정의가 바로 변혁적 정의다.  이 하나님의 변혁적 정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안에서 결정적으로 나타났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듣는 자들로 하여금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에 직면하여 세상의 불의한 재물을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거주를 위하여 사용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2) 불의한 재판관 비유(눅 18:1-8) 
 
(1) 간청하는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는 불의한 재판관 
 
예수는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불의한 재판관(the Unjust Judge) 비유로 가르치신다: 
“어떤 시(市)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2-8). 
 
불의한 재판관(the Unjust Judge) 비유에서 한 불의한 재판관이 자기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는 과부의 지속적인 간청을 무시하다가 번거롭게 함을 인하여 들어 준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눅 18:1). 비유는 불의한 재판관이 할지라도 과부의 지속적 간청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선하신 하늘 아버지는 그가 택하신 자들의 모든 간구를 넉넉히 들어주신다고 교훈하고 있다.
 
(2) 하나님은 밤낮 간구하는 택한 자들의 간구를 들어주신다.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간청을 무시하다가 그녀가 끈질기게 간청하니 번거로움을 인하여 그녀의 원한을 풀어줄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눅 18:4b-5).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6-7). 
예수는 무정하고 불의한 재판관도 번거로워서 과부의 간청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선하신 하늘의 아버지께서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성도들의 간구를 들어 주실 것을 가르치신다. 
 
예수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다.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실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가지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관계에서 나온다. 하나님은 무속 신이 아니다.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헌신의 삶 없는 재물 헌납은 무속 신에게 드리는 것으로 인격적 신에 대한 진실한 관계에서 드리는 것이 아니다. 무속 신은 재물에 관심을 가지고 윤리성에 대한 관심은 없다. 무속 신 제사자들은 단지 무서워하여 진노를 달래기 위하여 신에게 뇌물을 드리는 것과 같다. 
 
사울 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면서 드린 제물에 대하여 예언자 사무엘은 다음같이 비판한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순종과 인격적 헌납 없는 사울의 제사를 하나님은 받지 아니하셨다. 하나님에 대한 인격적 관계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몸을 지니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기름이나 물질은 그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다. 하나님은 물질에 깃든 제사자의 마음, 순종을 향하신다. 사울은 이러한 하나님을 알지 못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린 것이 되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은사는 방편이나 은혜는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은사는 그칠 수 있으나 은혜는 언약관계로 지속한다. 
 
(3)  인자가 올 때는 믿음을 보기 어려운 시대
 
예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b). 
인자가 재림할 때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익으며 믿음을 보기 어려운 시대가 될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는 말세에 관한 예수의 예언적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0-12). 
 
역사적으로 각 시대마다 큰 환란이 있었다. 476년 만족(蠻族, 게르만 족)의 침입에 의한 서로마의 멸망, 중세의 페스트로 인한 많은 인명 손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세계대전, 1989년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 무너짐과 1991년 소비에트 연방 해체, 2001년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미국 맨허턴 공격과 함께 이슬람 근본주의 알카에다 집단 출현, 2014년 IS(이슬람 수니파 근본주의 그룹이 세운 이슬람국가)로 인한 지하드 전쟁과 반대자들 집단 처형, 중동지역민들의 난민생활과 유럽 주요도시의 테러, 문화적으로 성(性)자유화 물결 속에서 간통을 개인의 성적 결정권으로 인정, 서구사회에서는 성매매 허용, 동성애 인정과 차별금지법 제정 등으로 21세기 지구촌 사회는 새로운 성적 문화충돌로 고통을 받고 있다. 
 
오늘날 전통적으로 기독교 국가였던 영국, 화란, 미국 등의 교회가 동성애를 받아들이고 동성애 성직자들을 안수하기에 이르고 있다. 자유주의 신학의 부산물로 예수 외에 다른 종교의 구원자를 인정하는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가 세력을 가지면서 주류 기독교를 점차 장악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때를 예시하면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셨다. 
과학기술의 고도발전과 첨단 기술이 인간 평균수명을 연장하여 100세 시대를 열면서 종교적 신앙이 쇠퇴하는 가운데 전통 기독교 신앙도 세속주의에 물들어 편의주의적으로 변질되고 있다. 20세기 세계교회사 유래없는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도 교회성장의 동력이 된 성수주일, 주일저녁, 수요예배와 새벽기도 및 기도원 운동의 영성이 약화되고 있다. 오늘날 세계와 한국기독교는 다시 한번 선조들이 가졌던 청교도 신앙, 말씀 묵상과 공부, 예배의 회복, 기도와 전도에 힘씀과 성령의 충만, 거룩한 삶의 회복이 요청된다. 
 
 
3) 세리와 바리새인 비유(눅 18:9-14)
 
(1) 두 부류의 인간: 스스로 의롭다 생각하는 부류와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하는 부류.
 
예수는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 대하여 “세리와 바리새인�(the Tax-Collector and the Pharisee) 비유로 교훈하신다(눅 18:10-14)
세리와 바리새인 비유에서 바리새인은 기도할 때에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기도드린다. 이에 반해서 세리는 성전 앞에 나아오지 못하고 멀리서서 하늘을 쳐다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기도드린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두 부류의 사람 중 바리새인이 아니라 세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았다. 바리새인들이 세리들보다는 더 많은 좋은 일을 행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일에 대한 자만과 자기 행위의 의(義)를 자랑하였다. 이에 반하여 세리는 자기 백성의 세금을 포탈하는 나쁜 짓을 많이 하였다. 그러나 하나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자기의 의(義)를 하나님 앞에 자랑했으나 세리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용서를 빌었다. 하나님은 전자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않고 후자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들을 받아주신다.   (계속)
 
(김명혁, “신앙의 선배님들이 지녔던 복음의 영성,”
기독교학술원 영성아카데미영성학 수사과정 
2016년 9월 22일 가을학기 강의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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