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아이디/비밀번호 찾기
2020년 12월 5일
회사신문보기총회교계 기관교육 선교신학 신앙논단 기획 | 오피니언
 
회사소개 한국교회문제 협력상담소 상담게시판 공지사항

세미나
신학강좌
교회법과헌법해설
Home > 신학신앙 > 신학강좌
청교도 복음주의 신학자 제임스 패커가 남긴 신학적 유산 ③

[ 2020-11-03 09:23:15]

 
김영한 박사 (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상임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V.
칭의 교리의 수호
 

패커의 저서
'칭의의 여러 얼굴'( Here We Stand: Justification by Faith Today, Oak Hill College, 1986; 김형원 역, 이레서원, 2016)에서 전통적 칭의론에 대한 영국 성공회 신학자들의 견해를 정리한 책이다. 칭의 교리에 대한 개신교적 입장을 다양한 시각으로 요약한 내용인데 동방정교회나 로마가톨릭의 칭의론도 다뤄 입체적 비교가 가능토록 했다.
책의 원본은 1986년 출간됐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다. 마치 칭의론과 관련된 오늘의 논쟁을 예측이나 한 것처럼 이와 관련된 구절들이 등장한다. 유럽 교회나 영국 성공회 내부에서도 이미 칭의론에 대한 신() 해석이 출현했었다는 방증이다.
책은 칭의의 기원과 정의, 근거, 성화, 전가, 최후 행위 심판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패커는 '행위에 따른 심판과 구원을 강조한다고 해서 함부로 전통적 구원관을 포기하고 행위구원론을 가르치는 것으로 매도해서는 안 된다''동시에 오직 믿음과 은혜의 구원을 설교한다고 해서 이를 값싼 구원론으로 매도해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패커는 이 편집서 서문에서 칭의론을 '기독교 교리의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귀하고 생기있는 성경적 교리'라고 본다. '이는 오직 겸손한 사람만이 붙잡을 수 있는 진리'이다. 패커는 칭의론을 신론적이며, 인간론적이며, 성령론적이며, 교회론적이며, 종말론적이며, 복음적이고, 목회적이고, 예전적이라고 특징지운다. 칭의론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의 사역을 선포한다는 의미에서 신론적'이다. 칭의론은 인간인 '우리가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점에서 인간론적'이다. 칭의론은 '성육신과 구속에 기초한다는 점에서 기독론적'이다. 칭의론은 '예수와 믿음으로 연합하는 일이 성령사역에 근거한다는 점에서 성령론적'이다. 칭의론은 '교회의 정의와 건강함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교회론적'이다. 칭의론은 '신자를 향한 하나님의 최종적인 판결을 지금 여기에서 선포한다는 의미에서 종말론적'이다. 칭의론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영혼한 화평으로 초청한다는 의미에서 복음적'이다. 칭의론은 '용서받은 죄인이라는 정체성이 성도 간 교제의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목회적'이다. 칭의론은 '성례를 해석하고 성례 예식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이라는 의미에서 예전적'이다.
 
바울에 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 학파에 속한 학자들은 종교개혁 칭의론을 거부하고 수정주의적 주장을 천명하였다. 새 관점 학파의 대표 주자 영국 성공회 신학자 톰 라이트(Thomas Wright)'첫 칭의는 예수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지만 최후 심판 때의 마지막 칭의는 전 생애를 통해 성령의 인도 아래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유럽 교회나 영국 성공회 내부에서도 이미 칭의론에 대한 신() 해석이 출현했었다는 방증이다.
 
패커는 이에 대하여 무게있는 논평을 제시했다. 톰 라이트(N. T. Wright)에 대해 패커는 '라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는 매우 강한 신학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대속에 대해서는 큰 약점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전문적인 수준으로 새로운 관심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현대교회가 이 문제를 완전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다'고 피력한다.
 
패커는 '개신교 신학에서의 칭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끊임없이 이신칭의에 대한 오해가 있고 반대하는 의견이 있으며 형태가 왜곡되는 것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자신의 죄인 됨에 대해 무엇인가를 아는 자들에게는 이 교리가 진실로 생명줄이자 송영이며, 찬양의 외침이자 승리의 노래다.' 그럼으로써 패커는 전통적인 복음주의권이 새 관점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평가할 것인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패커는 칭의론과 관련해 '개혁주의 교리의 기초는 타락한 인간의 전적 무능력에 대한 믿음, 그리고 부르심에 나타난 하나님의 주권적인 자비하심이며 이것은 다른 어떤 방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VI. 개혁적 성공회 신자: 성공회 신자로서 성공회를 보다 성경적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
 
패커는 계속해서 성공회 안에 있으면서 성공회(the Church of England)를 성경적으로 변화시키기 원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는 영국 교회 안에서 영국 교회를 변화시키기 원했던 역사적인 비분리주의 청교도 선조들을 아주 닮았다.
그는 기본적으로 성공회 교회인(Churchman)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패커는 1926722일 글로쳐스터셔(Gloucestershire) 북부에 있는 (우리에게는 차로 유명한) 트위닝(Twyning)에서 보잘 것 없는 영국 하위 중산층 가정(lower-middle-class family)에서 태어났다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부친은 큰 서부 철도회사의 서기(a clerk for the Great Western Railway), 어머니는 학교 교사 출신이었다. 교사로서의 패커의 자질은 모친으로부터, 꼼꼼히 글쓰고 정리하는 자질은 서기인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았다 할 수 있다. 장자로 태어난 그는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그의 부모를 따라 14살에 견신례도 받았지만, 이 때도 참된 회개나 구원에 이르는 신앙을 가진 것을 아니었다.
 
패커는 1944년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하여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였고, 후에 신학으로 편입하였다. 대학 진학 후 패커는 재즈 밴드의 클라리넷 연주자와 옥스퍼드 기독학생연합(Oxford Inter-Collegiate Christian Union: OICCU)의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패커의 회심은 그가 18세 되던 해인 1944년 옥스포드 대학교의 그리스도의 몸 대학(Corpus Christi College)에 고전(classics) 전공 학생으로 입학했을 때 이루어진다.
1944년 가을학기에 개강한지 3주가 지난 1022일에 패커는 세인트 알데이트 교회(St. Aldate Church)의 저녁 예배에 참석했다. 나이 많은 목사의 설교가 지루하다고 느꼈지만 그 후반부에 그 설교자 목사가 소년일 때 성경 캠프에서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가에 대한 도전 받았다는 신앙 간증이 학생 패커의 내면에 영적 사건을 일으켰다. 패커는 자신을 그 목사와 동일시하면서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에게 드리기로 결단했다. 그리하여 패커는 영국 성공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따르는 청교도 신자가 된 것이다.
 
패커는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고전을 전공하여 1948년 문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런던에 있는 선교사들을 위한 학교인 옥크힐 신학교(Oak Hill Theological College)에서 1948-1949년 교사(instructor, tutor)로서 희랍어와 라틴어를 가르쳤다. 패커는 1949년 영국 성공회 사제를 훈련시키는 기관의 하나인 옥스포드의 위클리프 홈(Wycliffe Hall)에 입학하여 본격적인 신학 공부를 하고, 1952년에 부제(deacon)가 되고, 1953년에 버밍험 대성당에서 성공회 사제(priest)로 임직한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버밍험의 하본 히스(Harborne Heath)에 있는 센인트 존스 교회에서 부목사직 assistant curate)을 수행하면서, 옥스포드에서 리처드 백스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D. Phil., 1954). 논문을 썼다. 죠오지 너트올(Geoffrey Fillingham Nuttall, 1911 2007)의 지도 하에서 그가 쓴 논문은 리처드 백스터 사상에서의 인간의 구속과 회복이라는 400페이지 넘는 논문이었다.
 
신학교수로서 패커 생애의 전반부는 영국 브리스톨 그리고 옥스포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55년에 그는 가족과 함께 브리스톨로 가서 1961년까지 틴대일 홀(Tyndale Hall)에서 가르쳤다. 1961년 옥스포드로 돌아와서 1961-1962년 옥스포드 라티머관 도서관의 사서(Librarian of Latimer House in Oxford), 1962-1969년 존 스토트와 함께 설립한 복음주의 연구센터의 관장(Warden)으로 봉직했다. 1970년 복음주의 계간지의 편집인이 된다.
 
그 이후 패커는 계속해서 영국 성공회 목사들을 훈련하는 기관에서 가르쳐 왔고, 옥스포드 학부 때부터의 가장 가까운 친구인 지질학자 제임스 휴스턴(James Houston)의 초청에 따라 1979년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리전트 컬리지 신학 교수로 갔을 때도 캐나다 성공회에 속한 밴쿠버에 있는 세인트 존스 성공회(St. John󰡑s Vancouver Anglican Church)에 속해 있었다. 그는 어찌하든지 성공회가 점점 더 성경적인 방향으로 가도록 노력하였고, 성공회에 속한 복음주의 전통을 대변하는 인물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면에서 좀 더 성경적 방향으로 성공회를 이끌려고 노력하였다. 예를 들어 직제에 있어서는 상당히 오래된 직제를 유지하고 있어 성도들 중에 선출되어 임직한 장로 제도가 없는 것에 대해 안타깝게 여기면서, 목회자와 함께 치리를 감당한 직분을 찾아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공회는 계속해서 직제에 있어 낡은 관습을 고집하였고, 전반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고 더 폭넓은 방향으로 나갔다. 그리하여 패커와 그의 동조자들의 노력은 결국 무색해졌다.
 
이때 패커는 오래 전인 196610월에 마틴 로이드-존스가 '복음주의자들의 전국 회의(the National Assembly of Evangelicals)'에서 영국 모든 복음주의자들이 모여 한 교단을 형성하는 것에 대해 제안했던 바를 다시 생각했을 수도 있었다. 그때 로이드-존스는 성공회 같이 교리적으로 혼합된 교회들로부터 나와서 독립적인 복음주의 교회들의 연합체를 형성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 회의 의장 역할을 하던 존 스토트는 로이드 존스를 공개적으로 반박하면서 영국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의 심각한 균열이 있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 이때 패커는 20년간 함께 청교도 콘퍼런스를 개최한 로이드 존스와 함께 하지 않고 존 스토트의 입장에 섰다. 그리하여 패커는 동료요 선배인 로이드 존스로부터 결별을 당했다. 이는 교회의 연합이 중요하다는 패커의 공교회에 대한 신념에 입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08년 패커가 속해 있는 교회인 캐나다 성공회에서 가장 큰 회중인 세인트 존스 교회(St. John's Church)가 캐나다 성공회에서 분리해 보다 복음주의적인 아르헨티나 교구와 하나가 되려고 하였다. 패커에게 다음 두 가지 죄목이 뒤집어 씌웠다: 캐나다 성공회의 교리와 치리를 공적으로 거부한다 캐나다 성공회 밖의 다른 종교적 단체와 하나됨을 추구했다. 패커로는 영국 성공회가 임직 때에 부여 했던 말씀과 성찬을 섬기는 목사의 권한을 박탈한다(revoked)는 결정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패커는 영국 성공회로부터 공식적으로 거부되었다. 그러자 세인트 존스 교회는 캐나다 성공회 네트워크(the Anglican Network in Canada=ANiC)에 속하였고, 이곳은 다시 2009년 북미 성공회(the Anglican Church in North America)에 속하였다. 패커 자신은 영국에 있을 때나 캐나다에서나 계속해서 성공회 안에 있으면서 이를 좀 더 복음주의적 방향으로 변화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결국 성공회 자체가 일종의 분열을 한 셈이 되었다. (계속)
 
ⓒ 기독신보 (http://www.ikidok.org)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인기기사
S교회 무엇이 문제였나?..
제103회 총회 둘째 날 ..
이단감별사의 거짓증언은..
교회법과헌법해설
포토뉴스
사진으로 보는 제480회 총회
공지사항
시스템 점검
인터넷 기독신보 드디어 오픈합..
기독신보사 ∥ 등록번호: 서울,아 01362 ∥ 등록(발행)일: 2010.09.29. ∥ 인터넷기독신보 ∥ 발행인 및 편집인: 김만규
청소년 보호정책이메일 무단수집 거부개인정보취급방침 ∥ 개인정보 및 청소년보호책임자: 김만규
서울시 구로구 오리로 1197, 118-406 (오류동, 금강수목원@) ∥ 메일주소: ikidok@naver.com ∥ 전화번호:(02)2684-1736 ∥ 팩스:(02) 2684-1737
Copyright ⓒ 기독신보. All rights reserve. 기독신보의 기사 등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