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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이 멈춰버린 한국교회 진단

[ 2020-02-25 09:02:44]

 
 

한국교회 성장 이후 방향에 대한 위기

 

 

박노진 박사

(대구온세상교회, 교육학 박사)

 

본고는 지난 114일 한국코메니우스연구소가 주최한 제1회 한국교회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강의된 내용 중 일부분임을 알려드린다.

 

(1) 준비가 부족했던 신학

 

1960년대부터 성장 일변도로 나간 한국교회는 끝없이 부흥할 것이라고만 판단했는지 양적 성장이 멈출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한 듯하다. 뿐만 아니라 양적 성장에 고무된 나머지 상대적으로 질적 성장에 대한 준비는 부족했다. 이것은 장차 한국교회가 든든히 세워져 가는데 기초가 부족했다는 의미가 된다.

각 신학교에서는 한국교회의 급성장에 대처하는 목회자 수급에만 급급했는데, 신학적 소양과 인격적 자질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목회자들을 대량 배출하는 일에만 급급하였다. 이런 임시방편적인 수급에 바빠 신학교에서는 7년의 수업 대신 2-3년의 단기수업으로 목회자 후보생을 양성하였으며, 졸업 이후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현장에 투입되었다.

이런 일들은 목회자들의 신학적 소양과 인성적 자질의 부족을 피할 수가 없었던 일로 지적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초신자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고 확신시키기에 부족했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마치 313년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기독교가 숫자적 부흥의 결과, 믿음 없는 그리스도인을 양산하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과잉 생산된 목회자들의 난립은 스스로 질을 추락시키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생존경쟁과 같은 곳에서 살아남으려는 습성은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되었다. 목회의 방법이 성경적이라기보다 경영학적이 되었고, 경영학적이라기보다 살아남기 위한 생존경쟁적 방법을 터득하게 한 것이다. 신학교의 난립과 졸업생의 대량 배출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니라 각 교단의 대형 교단화를 향한 열망이 신학생을 대량 모집하게 하는 인간적인 경쟁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은 신학적 뿌리가 약하여 신학 부재의 상태에서 목회현장으로 나가게 되니 성경이 말하는 것보다 문제 해결의 방법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란 적어도 마태복음 16장의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고, 주님이 교회의 머리라는 것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또 초대 예루살렘교회나 안디옥교회에 대한 기록에는 외형적인 크기나 구조에 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주님을 수장으로 하는 신앙고백을 한 성도들의 유기적 공동체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성도의 숫자나 재정의 규모나 건물의 크고 작음으로 판단하여 성경과는 동떨어진 조직적 상태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래서 토마스 홉스는 '교회는 건물이나 장소로서 집이라기보다 삶을 유기적으로 공유하는 가족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유기적 인격체이다. 즉 한 명의 주권자 그리스도에 의해 통일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다. 그리스도의 명령이 있으면 모이고, 그리스도의 허가가 없으면 모여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렇게 보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권자로 하여 그리스도께서 명령, 판결, 사면, 단죄 등의 행위를 하고 기독교인들은 그 주권에 순복하는 정치적 조직체(common wealth)와 동일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상황은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3직에 대한 안수시 위임받은 이후 각 교회에서 제사장직, 선지자직, 왕직을 장악한다. 담임목사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자리에서 주권을 휘두르는 계승자로서의 사역을 감당한다. 이것은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입법, 사법, 행정과 재정을 장악한 것과 같다. 목회자들은 하나님 행세 그만하고 빨리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교회의 머리 곧 교회의 주권자는 목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성경적 뿌리가 약한 신학수업은 교회의 성장을 성경적 성장이 아니라 경영적이며, 사업적인 방법으로 모색하게 했다. 따라서 교회의 성장은 외적성장, 양적성장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경쟁하며, 목적이 분명치 않은 수단과 방법을 선택하게 하였다. 이에 한국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상식에도 못 미치는 도덕, 윤리의식을 교회 안에 남기게 되었다.

이렇듯 한국교회의 성장 후유증과 바람직하지 못한 신앙생활은 개교회주의를 낳았으며, 교파 분열을 촉진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에 376개가 넘는 교파로 분열하게 되었고, 300여 개 이상의 신학교가 설립되었지만 이 중 87%는 교육부로부터 인가를 받지 못한 신학교들이다. 이것은 형식만 갖추면 성직자 면허를 허락하여 샐러리맨 성직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런 부적격 목회자의 대량 배출은 교회의 성장을 후퇴시켰고, 신앙의 질을 추락시켰으며, 교회를 떠난 일명 '가나안'(뒤집어 읽으면 '안나가'가 됨) 교인들을 증가시켰다. 또 세상 사람들은 교회를 멸시하고 반기독교 색채를 나타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이제 세월이 지나 목회자들의 신학 부재는 목회에 대한 목적 부재에서 나타났고, 목회의 목표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것은 교회의 목표 혹은 표어에서 교회의 크기와 관련된 방면으로 성행하여 숫자적 성장에만 몰두했다는 증거가 되었다. 이렇게 목회자의 삶에서 도덕적 부패, 교회의 재정적 비행, 목회자들의 불법적 세습과 비상식적 교회 운영, 교회의 빈익빈 부익부는 목회자들의 빈부격차 등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가 오히려 세상 사람들로부터 지탄을 받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신학생들의 대량 배출과 신학의 부재 그리고 인격 수양의 부족은 목회현장에서 역기능적인 현상으로 나타났는데, 개교회주의로 교회 간의 무한 경쟁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교회 간의 경쟁은 이웃 교회와 성도 유치 전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또한 목회자 간의 빈부의 격차는 심각한 한국교회의 문제점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한 목회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은 자로만 생각하였고, 반면 가난한 목회자들에 대해서는 사랑의 대상자요, 섬겨야 할 동역자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성경을 들고 진리를 가르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은 듣지도 못했던 것일까? 불신자들이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반목질시가 이웃 교회들 사이에 있게 된 것이다.

 

(2) 목표를 잃은 목회

 

목회는 이 땅 위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의 삶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갑작스런 양적 성장은 목회자들로 하여금 성도들의 구원의 생활보다는 교회의 경영 및 교인 관리에 집중하게 했다. 목회의 관심이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세상 나라에 두고 있으며, 천국이 아니라 지상에 관심이 많고, 신앙보다 물질을 앞세우는 듯하다.

기독교 교계 신문에 담임목사 청빙 조건에 신학대학 졸업자보다 일반대학 졸업자를 선호하며, 석사 혹은 박사 학위소지자, 외국에서 공부한 자를 우선하는 일도 있었다. 이런 것은 목회의 본질을 추구하기보다는 양적으로 부흥한 교회의 상황에 잘 대처하는 자를 찾은 것으로 이해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목회자는 본질적인 사역보다는 현 상황에 대처하는 일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목회의 목적을 수정하게 하는데, 목적지가 분명치 않은 항해는 표류할 수밖에 없듯이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역하기보다 주인의 자리에서 사역을 하는 듯하다. 종은 주인의 결정을 기다리고 그 결정에 순종하는 자이다. 목사는 대행자(minister)로서 주님의 일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자이다. 따라서 목사는 교회의 대행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의 대행자이다. 교회의 결정권은 머리 되신 주님이 가지고 계시는데, 지금은 주님보다 담임목사나 당회가 주님이 가지고 계신 교회의 주권적인 일을 행하고 있는 듯하다.

성도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게 하며, 하나님 나라의 즐거움을 누리게 하는 것이 목회자의 사명인데, 오히려 행정적인 일이나 재정적인 일에 더 심취하게 하였다. 이런 일은 행 6:1-6에 나오는 말씀과 어긋난다.

목회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며, 교회의 이 땅 위에서 경험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따라서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팔방미인 목회자, 전지전능한 목회자를 요구하였고, 목회자들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목회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보다 눈에 보이는 조직적 교회 운영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나아갈 방향은 언제까지 흔들릴 것인가? 이것이 한국교회의 위기라고 생각된다.

 

(3) 한국교회 목회적 위기

 

한국교회 양적 성장의 문제점을 살펴보았는데, 또 하나의 문제점은 신학교에서 준비가 부족한 목회자들을 많이 배출한 것이 그중의 하나이다. 198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기독교의 증가와 개척교회의 폭발적인 증가는 목회자 수급을 요구했고, 이에 따라 신학교가 우후죽순처럼 설립되었고 동시에 입학생 수도 증가되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전국 교회 목회자 수급은 교회 숫자를 넘어섰으며, 1990년을 교차점으로 하여 기독교인 숫자와 교회 숫자의 증가는 점점 둔화되어 갔으나 신학교 입학생과 졸업생의 숫자는 2010년까지 지속적인 증가 추세에서 멈추지 않았다.

각 교단 신학교에서는 교단 성도들의 질적인 성장보다 양적 규모를 생각하여 신학교 입학생들을 확대 모집하였으며, 376여개 교단에서는 무인가 신학교를 막무가내로 설립하였다. 여기에서 양산되는 신학생들의 증가 비율은 성도와 교회의 증가의 비율을 또한 능가하였다.

1980년대 성도와 교회의 숫자가 증가할 때는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지만, 성장이 멈춘 지금 시기에는 수요가 공급을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1995년 중반 이후로 신학교를 졸업하였지만 사역지가 없는 무임목회자들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것은 신학교의 난립과 대량의 입학생 확충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목회의 수요와 공급에 균형을 잃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현재도 각 신학교의 정원은 줄어들지 않아서 똑같은 숫자의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다. 장로교단의 모 신학교에서는 1년에 500여 명의 목회자가 배출되어 나오는데, 교단 내에서 필요한 목회자의 숫자는 대략 300여 명으로 본다. 그러면 한 교단에서만 1년에 200여 명의 목회자가 남아도는 것이다.

또한 대량 배출한 신학교 졸업생들에게 목회할 사역지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영원히 성장할 줄 생각했던 것 같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 교회의 성장은 멈추었는데, 신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의 수적 증가는 멈추지 않았다. 한국교회의 성장의 둔화가 이렇게 빠르게 닥칠거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한 듯하다.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에 비해 전국에 교회 숫자가 부족하여 신학교를 졸업한 목회자들이 갈 곳이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것은 졸업생과 사역지의 수급불균형을 자아낸 것이다.

이렇게 신학교 입학생의 조절은 성실한 신학교육과 한국교회의 지속적이고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서 긴급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신학교 입학생 감축은 입학금 수입으로 인한 학교 운영과 교단의 성장 정체 해결에 도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에 쉽게 해결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목회자들의 사역지 부족은 서울과 지방 간에 다소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목회 초년생들이 수도권이나 대도시의 대형교회에만 기웃거린다. 그것은 개인적인 스펙과 생활의 편리함과 자녀교육 등의 이유에서이다. 반면에 지방은 생활의 불편함과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자녀교육 등을 내세워 지방교회에서의 사역을 기피하는 경향이 많다. 이러한 현상은 신학교에서 감당해야 할 사명감 함양과 인격 교육이 부족했을 것으로 추측되며, 대량으로 모집된 입학생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신된 학생들이 아니며 인격적으로 성숙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왜 신학을 해야 하는지 목적의식도 갖추지 못하고 학교를 졸업하기 위해서 수업에 참가한다. 이런 식으로 신학교 과정을 마치는 것은 직업인을 양성하고, 목사라고 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도구밖에 되지 않는다.

목회자가 되는 것이 사명에 충실한 인격을 갖춘 사역자들이 아니라 형식만 갖춘 직업인을 양성하는 셈이 된 것이다. 철저한 신학에 정립되어야 철저한 목회자로 사역해 나갈 것인데, 신학 부재의 사역자가 목회현장에서 어떤 일을 일으키리라는 것과 후일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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