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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⑤

[ 2020-02-07 14:40:57]

 

(2) 성경은 영혼 불멸을 가르치는가

 

그러나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제기해야 한다. 성경은 '영혼 불멸'이라는 표현을 과연 사용하는가? 성경은 인간의 영혼이 불멸한다고 가르치는가?

영어 성경에서는 '아타나시아''아프타르시아'라는 두 헬라어 단어가 일반적으로 '불멸'로 번역된다. '아타나시아'는 신약에서 세 번밖에 발견되지 않는데 한번은 디모데전서 616절에서, 두 번은 고린도전서 1553-54절에서 발견된다. 디모데전서 616절에서 이 단어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하나님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여기서 불멸성은 명백히 단순한 끝없는 존재 이상을 의미한다. 그것은 부여받은 불멸성과는 구별되는 원래적인 불멸성을 뜻한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다른 모든 불멸성의 원천이라고 가르친다. 이런 의미에서는 하나님에게만 불멸성이 있다. 다른 존재들은 오직 하나님께 의존해서만 불멸성을 얻으며 소유한다. 하나님은 자신 안에 생명이 있으신 것처럼(5:26) 자신 안에 불멸성이 있다.

'아타나시아'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다른 두 곳은 서로 연이어 등장한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다'(고전 16:53-54).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52절을 보라). 앞에서 인용한 말씀은 그리스도가 재림하실 때 아직 살아 있는 신자들의 변화와 그때 발생할 죽은 자들의 부활 둘 다에 적용된다. 바울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썩는 것은 썩지 않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기 때문에(50) 이런 종류의 변화는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이제 이 구절이 말하고 있는 불멸성에 관한 다음 세 가지 점을 주목해보라. (1) 여기서 말하는 불멸성은 오직 신자들에게만 해당된다. 바울은 이 구절에서 불신자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2) 이 불멸성은 우리가 미래에 받게 될 선물이다. 여기서 말하는 그런 종류의 불멸성은 모든 사람, 심지어 모든 신자의 현재적 소유가 아니라 재림 때 발생할 증여물이다. (3) 이 구절에서 묘사하는 불멸성은 영혼만의 특징이 아니라 전인의 특징이다. 어딘가에 강조점이 있다면 그 강조점은 몸에 있다. 이 본문은 몸의 부활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영혼 불멸의 개념에 대한 어떤 암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불멸'로 번역되는 또 다른 단어인 '아프타르시아'는 신약에 일곱 번 등장한다. 이 단어는 로마서 27절에서는 참된 신자들이 추구하는 목표, 디모데후서 11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밝히 드러내신 것을 지칭하는데 사용된다. 또 이 단어는 바울 서신의 부활에 관한 위대한 장인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네 번 사용된다. 50절에서 이 단어는 썩거나 부패할 수 있는 것이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것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42절에서 이 단어는 몸이 썩을 것으로 심겨지지만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사실을 전달하는데 사용된다. 53절과 54절에서 이 단어는 여기서 썩을 것이라고 불리는 현재의 몸이 부활 때 덧입어야 할 부패하지 않는 불멸성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이 단어는 이런 본문들 가운데 어느 본문에서도 '영혼'에 대해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형용사인 '아프타르토스'도 신약에서 일곱 번 사용된다. 이 단어는 하나님(1:23; 딤전 1:17), 부활한 몸('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고전 15:52), 바울이 얻으려 애쓰는 면류관(고전 9:25),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않을 보석(벧전 3:4), 우리가 그로부터 거듭나게 된 썩지 않을 씨(벧전 1:23), 우리를 위해 하늘에 간직된 썩지 아니할 유업(벧전 1:4) 등을 묘사하는데 사용된다. 어느 경우에도 이 단어는 '영혼'을 묘사하는 데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서는 '영혼의 불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이런 질문이 제기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성경은 어떤 식으로든 인간의 영혼이 불멸한다고 가르치지 않는가?

 

(3) 영혼 불멸에 대한 개혁신학자들 간의 불일치한 해석

 

일부 개혁신학자들은 '영혼의 불멸'이라는 표현을 성경의 가르침과 상충되지 않는 하나의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하고 변호해 왔다. 예컨대 칼빈은 아담에게는 불멸하는 영혼이 있었다고 가르치며 영혼의 불멸성을 받아들일 만한 교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칼빈은 불멸성은 영혼의 본성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혼에 나누어 주신 것임을 인정한다.

아치볼드 알렉산더 하지는 1878년에 처음 출판된 한 책에서 영혼의 불멸성 교리를 변호하는 여러 논증을 제시한다. 월리엄 셰드는 1889년에 처음 출판된 한 저작에서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혼의 불멸성과 죽은 뒤에 몸에서 분리된 영혼의 존재에 대한 믿음은 신약의 경륜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구약의 경륜의 특징이기도 했다.' 이와 비슷하게 루이스 벌코프도 이렇게 말한다. '이 영혼 불멸의 개념은 성경이 인간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 나아가 벌코프는 이 개념을 뒷받침하기 위해 일반 계시와 성경을 근거로 여러 가지 논증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점에 대한 헤르만 바빙크의 입장은 휠씬 더 신중하다. 바빙크는 영혼 불멸 교리를 그 진실성이 계시보다는 이성으로 입증되는 '혼합된 신조'(articulus mixtus)라고 부르면서 이에 덧붙여 신학이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서 성경보다도 영혼의 불멸성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고 논평한다. 바빙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성경은 결코 영혼의 불멸성을 그렇게 많은 말로 언급하지 않는다. 성경은 결코 이 개념을 신적 계시로 선포하지 않으며 어디서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이 개념의 진위를 논하거나 논적에 맞서 이 개념을 주장하려는 시도는 더더욱 하지 않는다.'

G. C. 베르카우어도 바빙크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영혼불멸의 개년이 기독교 특유의 교리임을 부정하며 이렇게 단언한다. '성경은 어떤 상황에서도 죽음에 저항하고 죽음에도 살아남으며 우리가 인간과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관계와 상관없이 고찰할 수 있는 인간의 한 일부의 불멸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와 같은 불멸성에 대한 독립적인 관심과도 결코 관련이 없다.'

 

(4) 영혼 불멸에 대한 성경적 결론

 

개혁신학자들의 이와 같이 명백히 상충되는 반응들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우리는 성경이 인간에 대해 가르치는 내용과 영혼 불멸의 개념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는 데 동의하는가? 이 질문과 관련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영혼 불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다. '불멸'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과 부활 때의 인간의 전 존재, 썩지 않을 면류관이나 썩지 않을 말씀의 씨 같은 것에는 적용되지만 인간의 영혼에는 결코 적용되지 않는다.

 

성경은 영혼의 본래적인 파괴 불가능성으로 인해 영혼이 지속적으로 존재한다고-이는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주된 철학적 논증 가운데 하나다-가르치지 않는다. 이 논증은 특정한 형이상학적 인간관과 관련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컨대 플라톤 철학에서 영혼은 몸보다 더 고상한 형이상학적 실재에 참여하기 때문에 파괴될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영혼은 창조되지 않은 영원한 실체이며 따라서 신적인 실체로 여겨진다. 그러나 성경은 영혼에 대한 그와 같은 관점을 결코 가르치지 않는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며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계속해서 하나님께 의존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이나 인간의 어떤 측면에 있어서 인간을 파괴될 수 없는 존재로 만드는 어떤 본질적인 성질도 지적할 수 없다.

 

성경은 단순히 죽음 이후에도 지속되는 존재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이 인간의 가장 큰 선이라고 주장한다. 그와 같은 영혼 불멸의 개념은 죽음 이후의 삶의 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런 개념은 단지 영혼은 계속해서 존재한다고 단언할 뿐이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강조하는 바가 아니다. 성경이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과 동떨어져 사는 것이 곧 죽음이며 하나님과의 교제와 친교가 곧 참된 삶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그와 같은 참된 삶을 이미 누리고 있다(3:36; 5:24; 17:3). 바울이 빌립보서 121-25절과 고린도후서 58절에서 가르쳐 주듯이 신자들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죽음 이후에도 계속해서 누릴 것이다. 성경이 우리 앞에 가장 바람직한 상태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죽음 이후의 실존이다. 성경은 또한 이 참된 영적 생명이 없는 이들도 죽은 뒤에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지속되는 그들의 존재는 행복한 존재가 아니라 고통과 고뇌로 가득한 존재일 것이다(벧후 2:9; 16:23,25도 보라).

그러므로 성경은 미래의 삶에 대한 우리의 사고에 새로운 차원을 도입한다. 성경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영혼이 계속해서 존재할 것이라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그 존재의 질이다. 성경은 사람들에게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로 나오고 그로 인해 다가올 진노에서 피하라고 촉구한다.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 안에 빠지는 것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발한다. 성경은 또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심각성을 가리거나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 대한 영원한 형벌의 진리를 부정할 만한 '영혼 불멸'에 대한 어떤 개념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인간의 미래에 대한 성경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몸의 부활에 대한 메시지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기독교적인 인간관과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에서 일반적인 인간과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본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리스인들은 몸의 부활에 대해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몸은 영혼의 무덤으로 간주되었고 죽음은 같힌 상태에서의 해방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성경의 가르침과 매우 다르다. 성경에 따르면 몸은 영혼 못지않게 실재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총체적으로, 몸과 영혼으로 창조하셨다. 몸은 영혼에 비해 열등하지 않으며 인간의 참된 실존에 있어서 비본질적인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삼위 하나님의 두 번째 위격은 참된 인간의 몸을 지닌 참된 인간 본성을 결코 취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성경적 사고에 따르면 몸은 영혼의 무덤이 아니라 성령의 전이다. 인간은 몸을 떠나서는 완전하지 않다. 그러므로 신자가 미래에 누릴 복은 단순히 영혼의 지속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가장 부요한 측면으로 몸의 부활을 포함한다. 그러한 부활은 신자에게는 영광에 이르는 변화가 될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이다(3:21).

우리는 영혼 불멸의 개념이 기독교 특유의 교리가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오히려 성경적 종말론에서 핵심적인 것은 몸의 부활 교리이다. '불멸성'이라는 단어를 인간과 관련해서 사용하고 싶다면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인간이 불멸한다고 말하도록 하자. 그러나 인간이 그런 불멸성을 완전하게 누릴 수 있으려면 그전에 인간의 몸이 부활을 통한 변화를 겪어야 한다.

 

김남식 박사(한국장로교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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