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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④

[ 2020-01-11 15:24:49]

 
 . 영혼 불멸에 관한 논의

 
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이나 신학자들은 인간의 죽음은 죄의 결과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일부 신학자들은 전통적 견해와 다른 교훈을 하고 있지만 성경은 죽음이란 죄의 결과임을 강조하고 있다. 창세기 2:16-17에서 이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죄의 결과인 죽음은 인간이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이 죽음은 극복되어야 하며, 또 극복되는 것이며, 또 장차 완전히 극복될 수 있다. 바울은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신자들의 죽음의 극복을 교훈하고 있다. 또 마지막 원수인 죽음의 권세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정복되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 아버지께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역사를 모두 이룬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전 15:24-26).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죽음을 해석하는 문제보다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문제이다. 어떻게 죽음을 극복할 것이며, 죽음의 권세에서 어떻게 해방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비해야 한다. 또 다른 문제는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느냐? 라는 점이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우리들이 어떤 대답을 하여야 할지를 논의코자 한다.
우리는 인간의 죽음 뒤에 오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영혼불멸론과 중간상태에 대해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이들은 영혼불멸 사상이 기독교 신앙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특히 18세기의 계몽주의 시대의 활기띤 사상이다.
그러나 몸이 죽은 후에도 영혼은 인간의 비물질적 측면은 계속 존재한다는 영혼불멸 사상은 기독교에만 나타나는 고유 개념이 아니다. 이 사상은 고대 종교와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 발견되고 있는데, 이것에 철학적 특성이 가미되어 더욱 널리 퍼지게 되었다.
개혁주의 신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일치하지 못하는 경향을 나타낸다. 예를 들면 칼빈은 아담이 불멸의 영혼을 가졌다고 가르치면서 영혼불멸론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교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영혼의 불멸설은 영혼의 본질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것이라고 했다. 아키발트 A. 핫지(Archibald A. Hodge)는 그의 저서에 영혼불멸론의 논의들을 소개하였고 월리암 쉐드(William G. T. Shedd)도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
이에 반해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는 영혼불멸의 교리를 articulus mixtus라고 부르는데, 즉 이 교리의 진리성은 계시(啓示)에 의해서라기보다 이성(理性)에 의해서 더 많이 논증되어질 성질이라는 것이다. 벌카우워(G.C. Berkouwer)도 바빙크의 이론에 동조하고 있다.
성경이 인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내용과 영혼불멸론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있느냐에 대하여 안토니 후크마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성경은 '영혼불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 '불멸'이란 단어는 하나님께 대하여, 부활시의 인간의 완전한 존재 상태에 대하여, 썩지 아니할 면류관에 대하여, 말씀의 씨앗 등에 대하여 사용된 단어이지 결코 인간의 영혼에 대하여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다.
 
성경은 영혼이 본래적으로 파괴될 수 없는 본체이기에 영혼의 계속적 존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성경에 의하면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며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야만 존재를 영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 속에는 어떠한 종류의 본래적인 것이 있지 않고, 혹시 인간을 불멸의 존재처럼 보이게 하는 측면 속에서도 본래적인 것은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성경은 죽음 후에 단순히 계속되는 존재가 가장 바람직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과의 교제의 삶이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선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삶이란 죽음이며, 하나님과의 교제와 친교만이 진정한 삶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참된 삶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향유하고 있는 것이다(3:36; 5:24; 17:3).
 
중심적 메시지는 육체의 부활이다. 이 점에서 기독교 인간관과 헬라 철학 특히 플라톤의 인간관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혼과 육체의 전체성으로 창조하셨고, 육체를 성령의 전이라고 하였다. 부활은 신자들이 영광 속으로 이전된다는 뜻이며, 그 영광 속에서 우리의 몸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될 것이다(3:21).
 
안토니 후쿠마의 이론을 보다 상세히 고찰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종종 영혼 불멸의 개념은 기독교 신앙의 일부라고 말해 왔다. 이 말은 계몽주의와 계몽주의의 종교적 파트너인 이신론의 세기인 18세기에는 특별히 사실이었다. 계몽주의에 따르면 모든 진리의 원천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닌 이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성이 발견할 수 있는 '자연신학'의 세 가지 위대한 진리는 하나님의 존재, 미덕의 중요성, 영혼불멸이라고 일컬어졌다. 영혼 불멸의 개념은 임마누엘 칸트(1724-1804)가 이런 논증들을 파괴적인 비판에 굴복시키기 전까지는 이성으로 입증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칸트조차도 여전히 이 개념을 이른바 실천 이성의 선결 조건으로 고수했다.

(1) 타 종교와 철학에서의 영혼 불멸의 개념

우리는 먼저 영혼 불멸의 개념(몸이 죽은 뒤에도 영혼 내지 인간의 비물질적인 측면은 계속해서 존재한다는 개념)은 기독교에만 있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바벨론, 페르시아, 이집트, 고대 그리스 등을 포함한 수많은 민족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영혼 불멸을 믿었다. 사실 18세기에 계몽주의의 지도자들이 강력하게 변호한 영혼 불멸의 개념은 기독교 특유의 교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 교리를 일부로 삼아 형성된 '자연 종교'를 기독교와는 구별되고 기독교보다 우월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영혼의 불멸성 개념은 고대 그리스의 신비 종교에서 발전되었고 플라톤(주전 427-347)의 저작에서 철학적으로 표현되었다. 여러 대화록들 중에 특히파이돈에서 플라톤은 몸과 영혼은 별개의 두 실체로 생각해야 한다는 견해를 개진한다. 사유하는 영혼은 신적인 반면 물질-열등한 실체-로 구성된 몸은 영혼보다 가치가 열등하다. 이성적인 영혼, '누스''하늘'에서 내려온 인간의 불멸하는 부분이며 하늘에서 영혼은 더없이 행복한 선재(先在)를 향유했다. 영혼은 이 선재 상태에서 그 날개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몸속에 들어와 머릿속에 머물렀다. 죽을 때 몸은 단지 분해될 뿐이지만 '누스', 즉 이성적인 영혼은 그 행동 방침이 올바르고 고결했다면 하늘로 돌아간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은 다시 또 다른 인간이나 동물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나 영혼 그 자체는 파괴될 수 없다.
플라톤의 견해에 따르면 영혼의 불멸성은 합리주의적 형이상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합리적인 것은 실재하는 것이며 비합리적인 것은 무엇이든 열등한 종류의 실체를 갖는다. 그러므로 영혼은 본래부터 파괴될 수 없고 따라서 불멸하는 우월한 실체로 간주되는 반면 몸은 죽을 수밖에 없고 완전히 파괴될 운명에 처한 열등한 실체이다. 따라서 몸은 영혼의 무덤으로 여겨지고 영혼은 몸이 없는 편이 실제로 더 낫다. 그러므로 이런 사고 체계에서는 몸의 부활 교리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김남식 박사(한국장로교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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