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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학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 ③

[ 2020-01-03 14:17:54]

 
김남식 박사(한국장로교사학회장)

2. 죽음학의 태동
 
죽음학(Thanatology)이란 철학종교학의학생물학사회학심리학인류학문학예술 등 여러 학문들이 다학제적인 방식으로 죽음과 관련된 주제를 종합적으로 다루는 학문 분야를 의미한다. 이러한 죽음학이 바람을 불러일으키게 된 것은 1951년 미국에서 헤르만 파이펠(H. Feifel)죽음의 의미(The Meaning of Death)를 통해 죽음 현상을 탐구해야 한다고 천명하면서부터다. 이후 1963년 로버트 풀턴(R. Fulton) 교수가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죽음을 주제로 한 최초의 정규 강좌를 개설하면서 죽음학이 발전하는 기틀이 마련되었다. 파이펠과 풀턴의 강좌에 이어 여러 학자들-칼리시, 카스텐바움, 레비톤, 슈나이드만, 와이즈만 등-이 대학을 중심으로 죽음 관련 교과목을 개설하면서 죽음학은 하나의 정규 과정이 되었다. 또한 풀턴이죽음과 정체성(Death and Identity), 글레이저와 스트라우스가 죽어감의 자각(Awareness of Dying), 코어가죽음, 비관, 애도(Death, Grief and Mourning)를 각각 출판했는데, 이 세 권의 책은 죽음교육(death deucation 죽음에 대한 준비 교육)의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3. 죽음학생사학의 지향점: 존엄한 삶과 존엄한 죽음
 
죽음학생사학의 지향점은 존엄한 삶과 존엄한 죽음, 쉽게 말하자면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삶(well-living)과 인간답고 행복하게 죽는 죽음(well-dying)이다. 혹자는 죽음에 대한 준비 교육이라 하면 당장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준비 교육의 진정한 의미는 예고 없이 불현 듯 찾아올 수 있는 죽음을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행복하고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평소에 마음의 준비를 잘 해두라는 것이다. 또한 건강할 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지금 자신이 삶을 살아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즉 죽음 준비를 통해 삶을 더욱 유의미하게 변환시킴으로써, 죽음 준비는 곧 삶을 준비하라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 미리 죽음을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차이는 확연히 벌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은 제대로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인간의 평균 수명은 의학과 생명공학이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편승하여 현대인들은 삶의 진정한 의미와 내적인 가치를 추구하기보다는 단순히 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만 집착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오락과 안락, 향락과 쾌락을 즐기는 현대인들은 일반적으로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할지라도 죽음이라는 현실을 변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어서 인간의 힘을 변경할 수 없는 죽음을 미리 생각하면서 불필요한 슬픔에 빠질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린다. 즉 죽음에 대한 성찰은 삶의 기쁨과 의욕을 손상할 뿐 현실의 삶에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인들은 당장 해결해야 할 보다 중요한 문제는 죽음이 아닌 삶의 문제라고 말하면서 삶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죽음의 문제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생각도 이런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진지한 사고를 꺼리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점차 눈에 보이는 삶의 현실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세속적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일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안에는 '사는 데까지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다' 하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그러나 비록 현대인들이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하기를 거부한다고 할지라도, 인간은 그 누구도 예외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부인하거나 변경할 수 없다. 사람들은 평소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를 회피하다가도 불현 듯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가공할 만한 공포감을 느끼는 가운데 외롭고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많은 사람이 죽음에 맞닥뜨릴 때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가는 것을 직간접으로 경험하게 된다. 죽어가는 사람은 이 세상의 사랑하는 모든 것들과 영원히 이별해야 한다는 생각과 아울러 평소에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사후세계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인생의 여정에서 어려운 일에 봉착하게 되면 다양한 종류의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는 등 많은 노력을 하지만, 정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죽음의 순간에는 두렵고 외로우며 불행한, 곧 준비 안 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냥 간과하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죽음에 직면한 사람으로 하여금 전혀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두려움과 외로움, 당혹스러움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참으로 비인간적인 일이라 아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화자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본 한 의사의 말은 우리가 왜 죽음에 앞서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지 잘 일깨워준다.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인 셔윈 눌랜드(S. B. Nuland)50여 년간 각종 질병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환자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이들이 반()가사 상태나 완전한 혼수상태에서 '무의식적이면서도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고 말한다. 또한 운이 좋은 사람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또렷한 의식 속에서도 평온한 모습으로 숨을 거두었고, 수천의 사람들이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즉사하거나, 치명적 외상을 입어 마지막 공포에서 해방된 채 편안히 눈을 감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감안한다고 해도 다섯 명 중 한 사람보다도 적은, 훨씬 적은 수만이 축복 속에 눈을 감을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행운을 가진 사람들조차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순간에만 평온함을 느낄 수 있을 뿐, '죽음의 순간에 도달하기까지는 며칠 혹은 몇 주씩 정신적 고뇌와 육체적 고통으로 몸부림을 친다'고 토로한다.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바쁜 세상에서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는지 의아심을 품는 사람들도 많지만 죽음이 언제 찾아올지 모른다는 말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죽음이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결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평소에 미리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그런데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이 너무 뒤늦게, 실제로 죽음이 임박해서야 비로소 지나간 삶을 후회하면서 매우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물질적 부와 사회적 성공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들은 끊임없이 앞만 보고 나아가다가 죽음의 준비를 전혀 못 한 채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다. 행복한 죽음, 평화롭고 아름다운 죽음은 물질적 부와 사회적 성공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소망하는 것이지만, 그런 죽음은 좀처럼 맞이하기 어려운 행운이 되어 버렸다. 누구나 존엄하고 행복하고 평온한 죽음을 희망하지만 대다수 사람은 존엄하지도 행복하지도 평온하지도 못한 모습으로 후회와 슬픔을 가슴에 품고 한 많은 생애를 마감한다.
 
모든 사람이 존엄하고 행복한 죽음을 소망하건만 왜 세상에는 존엄하지 못하고 불행한 죽음만 넘쳐나는 것일까? 존엄하고 행복한 삶이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주어지지 않듯이 존엄하고 행복한 삶이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주어지지 않듯이 존엄하고 행복한 죽음 역시 저절로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학생사학 전문가들은 죽음이 우리의 삶을 성숙시키는 '마지막 선물'이자 '최후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일련의 사람들은 죽음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품'으로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존재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우리가 죽음의 불가피성을 항상 유념하면서 살아간다면, 무의미한 활동에서 벗어나 유의미한 일로 삶의 시간을 채우면서 현재의 삶을 더욱 충실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노력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의미한 삶, 충실하고 아름다운 삶의 끝자락에서 맞이하는 죽음은 존엄하고 행복한 죽음, 평화롭고 아름다운 죽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존엄하고 행복한 죽음이란 생전의 삶을 유의미하고 충실하게 보내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는 존엄하고 행복한 삶과 직결되는 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김남식 박사(한국장로교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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