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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인 대한예수교장로회의 비사 ③

[ 2021-08-31 11:02:03]

 
나용화 교수 (개신대학원대학교)


4절 제64회 총회

 

1979년 제64회 총회(대구동부교회당에서 소지됨)의 비극적 분열에 대해서는 당시 비주류측이었던 정규오 목사가 보는 시각과 주류측이었던 총신90년사의 저자 김요나 목사의 시각과 비주류측에 가까운 역사신학특강의 저자 박현 목사와 한국교회 교단형성사를 저술한 김덕환 목사의 시각이 있었다. 필자는 이같은 여러 시각들을 비교하고, 필자 자신이 직접 보고 안 것을 참고하며, 2005년 합동 교단으로 일부 개혁교단 교회들이 환원한 사실에 비추어 1979년 제64회 총회 분열을 기록하였다.

64회 총회 분열을 목격한 박현 목사의 촌평에 의하면, 주류측의 총회는 불법적이었고 비주류측의 총회는 무법적이었다. 이 분열을 시간이 흐른 후 되짚어 볼 때 이같은 촌평이 사실이었다. 불법적인 총회는 다소간에 진통이 있었어도 더욱 견고하게 하나 되어 성장 발전했으나, 무법적인 총회는 그 이듬해부터 곧바로 핵분열을 거듭하였고, 마침내는 총회 분열의 책임 당사자와 추종 세력들이 그 불법적 총회에 백기를 들고 2005년에 합류함으로 스스로 무법성을 시인한 것이 되었다.

64회 총회 분열의 진상을 밝히려면 그 당시 비주류측의 주장과 주류측의 주장을 분석적으로 비교해 보아야 한다. 우선 먼저 비주류측의 대표적인 정규오 목사의 신학적 입장에서 본 한국장로교회사(광주: 한국복음문서협회, 1994)에서 주장된 것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정규오 목사에 의하면, 64회 총회 분열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주류측의 실세인 이영수 목사였다. 이영수 목사는 박형룡 박사의 불명예스러운 학장직 사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박 박사의 추종 세력이 다수였던 이사회원 전원을 사퇴시키고, 자파 세력의 이사회를 구성하여 김희보 목사를 학장으로 취임하게 하였다. 이같은 일은 정규오 목사의 입장에서 볼 때 용납할 수 없었다. 정 목사의 생각대로라면, 박형룡 박사의 사퇴를 이사회가 반려했어야 했고, 그러지 않을 경우 박 박사를 1947년부터 51인 동지회 회장으로서 줄곧 섬겨 오면서 그의 신학에 가장 충실한 정 목사 자신이 학장이 되어야 했다.

그런 까닭에, 이영수가 하는 일은 모두가 불법이요, 박형룡 박사 이외의 모든 총신 교수들(박 박사의 아들 박아론 교수만 예외됨)은 신학적으로 좌경화된 자들로서, 김희보 학장은 문서설자요, 김의환 교수는 신복음주의자요, 차영배 교수는 바르트주의자로 간주되었다. 이영수 목사는 독재 권력의 화신이었다. 그래서 정규오 목사는 줄기차게 사활을 걸고 총회신학대학의 신학을 변질된 좌경화 신학으로 비난하고, 총회의 불법을 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19781020일에 조직된 총회정화위원회(회장 백동섭 목사)는 주류측의 횡포와 불법, 부조리와 비리를 폭로하는 데 힘썼다. 그리고 총회 정화를 명분으로 내세우고서 연합노회(서울, 충남, 평서노회) 총회를 19781025일 박형룡 박사가 별세하자 그분의 신학과 신앙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총회신학교를 복구하여 19793월에 곧바로 개교하였다. 이렇듯 비주류측의 정규오 목사는 총회 분열을 기정사살화했다. 그러면서도 외형상으로 총회의 분열을 결사반대한다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정규오 목사의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서의 내용에 의하면, 신앙과 신학이 같을 때는 절대로 분열해서는 안 되는데 총회의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동일하므로 총회의 분열을 결사반대한다고 했다.

정 목사의 성명서대로라면 이질적 신앙과 신학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총회신학교를 미리 복구하고 연합노회 총회를 만들게 하고 마침내는 총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대다수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서 있어서는 안 될 범죄였다.

한편, 정 목사의 주장과는 달리, 대다수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총회신학대학과 교수회 뿐 아니라 총회를 계속적으로 지지하고 하나되어 오히려 더 견고하게 성장 발전하였다.

비주류측 교회의 목회자들이 조직적으로 총회 분열을 기정 사실화하고서 제64회 총회를 방해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주류측의 교회와 총회 임원들은 총회 장소(대구 동부교회당)에 총대들을 선별적으로 총회 개회시간보다 4시간 앞서 오후2시경 입장시키고 이후 교회당 입장을 봉쇄하였다. 이로써 사실상 비주류측 교회와 목회자들은 쫓겨난 셈이 되었다. 이것을 명분으로 삼아, '칼빈주의 원리에 신학과 신앙이 다르면 갈라질 수밖에 없고 다수의 횡포에 의해 쫓겨날 때는 할 수가 없으니 총회를 조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고서 합동 보수총회를 조지갛여 1979116일 서울 청암교회당에서 총회장에 김일남 목사를 선출하였다. 그리고 총회신학교 이사장에 이환수 목사, 재단이사장에 정규오 목사, 그리고 교장에 박아론 박사를 각각 공식적으로 선임하여 새로운 총회와 총회신학교가 탄생하였다.

정규오 목사의 주장에 대하여 이영수 목사는 1979721일자 <기독신보>'총회분열 3단계 공작'을 발표하였다. 이영수 목사에 의하면, 비주류측의 교회와 목회자들은 총회의 분열을 원하지 않는다고 구호를 외치지만 사실인즉 <총회뉴스> <신학교보>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회보> 등을 발행하고 <3노회 연합총회>를 조직하여 강도사 고시와 목사안수를 단행하였으며, 총회정화위원회 이름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를 세우고 신학생을 모집하였고, 200여 명의 타교단 목회자들도 학생으로 받아들였으며, 여름성경학교 교본도 발행하는 등 또 하나의 총회를 이미 조직하여 활동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영수 목사측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정규오 목사 중심의 비주류측은 제64회 총회 장소인 대구 동부교회당으로부터 불과 1km 떨어진 대동교회당에 당일 오후2시에 집결하여 서울의 총회신학교와 광주의 광주신학교의 신학생 등 400여 명의 총회분열 돌격대를 준비시켰다. 이 돌격대가 총회 개회 전에 총회 장소를 미리 점령하거나 총회 개회를 물리적으로 저지하려 들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에 총회 임원회는 총대들의 명찰을 노회별로 작성하여 오후 2시부터 총대들을 선별적으로 입장시키고 비주류측의 총대들의 입장을 저지하였다. 이때 경찰들이 출동하여 총회 장소를 보호했다. 이에 비주류측 목회자들은 2시간 동안 대치하다가 대동교회당으로 되돌아갔으나 그 교회의 당회가 장소 사용을 허락하지 않으므로 부득이 개척교회인 은일교회(방배동 총회신학교 신학생 김인화 강도사가 개척한 상가 230평 정도의 교회)로 옮겨 총회 임원을 선출하고 정회하였다. 그후 1개월 반이 지난 116일 서울 청암교회당에서 총회를 속개하였던 것이다.

64회 총회 준비위원장 역할을 스스로 맡은 김만규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64회 총회 당일 낮 1시경에 덩치가 큰 두 남자가 예배당 구경을 좀 하자고 청하여 함께 동부교회 2층 예배당에 올라갔으니 그 덩치 큰 장정이 '여보세요, 여기 김만규 목사가 누구시지요?'라고 물어 ', 내가 김만규입니다.'고 답하자 그 덩치 큰 자 중에 한 사람이 'UDT출신인데 몸조심해야 합니다.'라고 협박을 해왔다.


이에 김 목사는
'뭐라 UDT출신이라고, 나는 학도병 정규 1기 출신이요 포항전투를 한 학도병이란 말이요 학도병은 UDT를 겁내지 않습니다. 어디 덤벼보시지요.'라고 답하자 얼른 물러가버렸다.

알고 보니 그 덩치는 후에 개혁측의 총회장까지 맡았던 김 모씨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아침에 들어온 정보에 오늘 광주로부터 500명의 불량배들이 이곳 총회에 쳐들어온다는 정보와 그들이 지금쯤 대구 화원유원지 쯤 휴게소까지 왔을 것이라는 정보에 64총회를 지키기 위해 긴급히 대신대학교 신학생 50명을 동원하여 동부교회 앞문과 뒷문에 배치하여 낮 3시부터 출입을 통제하고 총대만 출입시켰으며, 비상사태를 생각하여 경찰의 협조를 받도록 조치를 한 후에 불량배 500(입에서 술냄새를 풍기는 자들이 많았고 처음부터 쌍소리를 하면서 돌팔매질과 나무뭉치를 휘둘렀다), 소위 총회 점거 목적의 500명 돌격대가 대동교회로부터 몰려와 강제로 총회 장소를 점거하려다 제지당하므로 갖은 욕설과 돌팔매질을 하고 교회 담벽을 넘으려 했으나 경찰의 제지로 실패하자, 대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앞 여관에서 비주류측 총회 임원을 구성함으로써 소위 합동보수 총회가 되었다.

한편 대구 동부교회당에서는 총대 470명 가운데 328명이 참석하여 임원을 선출하였고, 다음날에는 100명 가량의 총대들이 합석하여 400여 명이 모여 김희보 목사의 학장 연임을 인준하였다. 결과적으로 주류측 총회는 크게 동요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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