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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갱신해야 한다

[ 2020-06-26 16:37:15]

 

갱신은 먼저 그 조직이 어떤 사명을 부여받았는가를 확인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의 갱신의 방향과 방법을 연구하기 위해서 우선 교회가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사명과 임무부터 밝힐 필요가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거룩한 인류 구원사업을 이 땅에서 보필하는 데 있다. 사실 교회는 그 자체로 인간을 구원하는 기관은 아니다.

더욱이 교회의 조직이 어떤 권위를 상징하며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 역사를 되돌아보면 불행히도 교회가 제도적인 사고에 머물러 날로 새로워지는 역사와 사고의 변화에 무관심했거니와 무기력하여 교회의 권위를 배급하여 주는 정도로 제도화된 종교적 기득권을 행사한 것이다.

또한 정치적 지배권과 제도적 우월감은 교회의 본연의 사명을 상실하게 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교회는 사회의 병리현상에서 소외당한 자들, 가난하고 고통을 당하는 이들에 대하여 무관심했고 불의에 항거하는 정의감도 보여주지 못하고 타협과 묵인으로 인해 오히려 부한 자들과 사회적 권세가 있는 자들과 사회와 교회 안팎에서 일정한 수준에 있는 사람들과 고급 성직자들의 기득권 유지 및 위치 강화의 도구로 전락한 감이 없지 않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기본 자세부터 갱신할 필요가 있다.

가장 근본적인 곳에서부터 비복음적인 요소가 있다는 사실은 한국교회가 아직도 그만큼 비그리스도적인 요소, 더욱더 정확히 표현하면 교회 내에 세상적인 요소들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비복음적인 요소가 교회 내에 도사리고 있는 한 그것은 교회가 인류 구원의 대역사적인 임무 수행에 방해 요소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교회가 지닌 비복음적이며 비그리스도적인 요소, 또는 세상적인 요소들을 찾아내어 극복하고 갱신하게 위하여 대안을 수립하고 진행하려면 전 교회와 성직자, 신도들의 진실된 협동과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

많은 단체가 있으나 한국교회의 갱신과 건전 교회상을 수립하고 대안을 세우기 위한 협동회의라든지, 행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이제 한국교회는 협동하여 연구하고 공개토론을 거쳐 갱신을 위한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것을 밝혀서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막중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스스로 갱신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 남았을 뿐이다.

 

기독교 문화형성을 위한 갱신

 

과연 한국교회가 역사를 움직이는 하나의 동력 역할을 했는가? 아니면 역사의 변화에 따라 교회가 변화하는 단순한 상호작용 하는 것의 일부분인가?

교회 역할의 긍정적 평가를 할 수 있는 평가기준은 교회가 존재하고 활동하고부터 그 집단이나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총체적인 문화가 얼마나 기독교적으로 변화되었는가를 통해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생활양식과 정신기준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의미를 찾고 의미 따라 행동하며 바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존재하는 사회와 단체에는 기독교적 문화가 형성되어 생활양식과 사고방식, 행동양식의 전체가 형성이 되어야 마땅하다.

기독교적 문화가 형성됐을 때 그 사회는 복음적 인간성이 향상된 인간관계가 정립되며 비기독교적인 문화는 퇴조해 가고 아울러 역사의 변천에 따라 생겨나는 비인간적인 요소들의 침투를 저지하여 정신 풍토를 개선할 수 있는 사회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를 평가하는 일반 대중들의 모습은 󰡒대부분의 교회들이 본래의 뜻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질문에 67.2%'그렇게 본다.'라고 대답을 했다.

또한 '교회가 진리나 참된 것을 추구하기보다 교세 확장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는 질문에 71%'그렇다.'라고 대답을 했다.

더욱이 '현대교회는 진정한 삶의 의지를 찾으려는 사람에게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 50%나 된다.

이런 상황들은 한국교회가 대중에게 예수님을 닮은 겸허하고 정직하며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생활의 이원화, 상업적 교회운영, 비기독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배타적인 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가 교회를 바라볼 때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고사하고 교인수, 교회당 크기, 헌금액수, 신도의 숫자라는 양적개념이 갱신과 변화, 성실이라는 질적 개념보다 훨씬 앞질러 가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더욱이 목회성공의 척도를 신도의 숫적 대소를 가지고 평가하며 사례비의 액수, 고급승용차, 사택보유 등의 물질적 척도에 의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고 안식년이라는 성경에 근거를 찾기 어려운 제도를 누리며 해외여행을 많이 하는 것이 성공의 사례로 인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교회의 사고로 말미암아 일반인들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신앙', '상식이 통하지 않는 교회'로 인식하게끔 변질된 것이다.

조용하고 은밀한 것보다 대중집회를 선호하고, 모든 행사와 집회에 목적과 이념을 중시하기보다 자신의 이름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에 따라 협조하게 되며, 조용히 섬기고 봉사하기보다 이 땅에서 가장 훌륭한 미사여구가 동원되어야 봉사하고, 자신의 목회업적을 보여주기 위해 교회당을 신축하고 아까운 헌금을 낭비하는 것들은 마땅히 비복음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즉 한국교회가 복음적이며 기독교적인 문화를 형성하여 국가와 민족에게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사회의 변동과 역사의 흐름 속에 영향을 받아서 교회가 세속화된 것이다.

세상은 결코 세속화된 기독교를 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논한 한국교회의 무능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다음 종교이동 상태를 보면 알 수가 있다.

'이전에 종교를 가진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현재 비종교인에게) 63.9%'나는 과거 교회에 나갔었다.'고 대답을 했다.

현재 무종교자 중에 24.1%가 과거에 불교에 나갔었던 적이 있고, 16.4%는 천주교회에 나갔었던 적이 있음을 볼 때 현재 사회에 있는 비종교인의 63.9%가 교회에 다녔던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이들은 한결같이 '교회는 부패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또한 일반인들이(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구분하지 않고) '종교인의 사랑과 자선의 실천 정도에 대한 평가''매우 헌신적이며 열심히 선을 행한다'로 보고 있는 상황을 종교별로 구별하여 보면 1위가 천주교인들로 22.7%, 2위가 불교신자로 16.1%, 3위가 기독교인으로 15.1%이며 4위가 비종교인들로 12%이다.

이 통계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얼마나 사회에 영향을 주며 기독교적 문화형성은 고사하고 비능률과 부덕과 무능으로 지내왔는가를 명백하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매우 부끄러운 것으로 기독교회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하락시킨 것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에밀 뒤르켕(Emile Durkheim)의 지적대로 '한 사회의 성원들이 서로 연결시켜 주는 공동의 신념과 유대가 약해지거나 없어질 때 사람들이 제각기 흩어지게 되어 사회는 존속할 수 없게 된다.'는 현상이 바로 한국교회에 이루어지고 있다.

어떤 경우에는 교회가 사회보다도 먼저 세속화되고 저질문화를 전파한 면도 없지 않다.

이 모든 것들은 기독교 문화가 형성되고 정착하지 못한 결과요, 과오에 대한 공정한 역사의 심판이라고 본다.

일찍이 한국교회가 성경적인 문화형성을 하고 정착시켰더라면 이 민족은 가장 성숙되고 아름다운 민족과 역사를 창조하여 지금과 같은 비민주적이고 비평화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역사의 오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 문화형성의 장애요인이며 공동체 의식을 파괴시키고 유대관계를 단절시킨 요인은 무엇일까?

 

1. 신학정립의 갈등이 기독교 문화 형성을 저해

 

신도들의 생활양식의 총체는 성경을 통한 신학의 정립으로부터 확실한 시작이 된다.

성경은 신도들에게 있어서 역사적 사실이요, 하나님의 계시로 신도들의 영적 진로에 대한 길이요 참된 지혜이다.

신도들은 성경을 통해 내면적 사고 속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함과 동시에 확신하게 되며 그 하나님과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

이런 내면적 사고가 외적 행동 양식이 되고 삶의 표준이 생활로 보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기독교 문화가 점차로 형성이 될 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며 기독교인의 생활양식과 사고행태의 당위성이 인정받게 되어 점점 기독교인의 생활양식이 그가 속한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상태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이상적인 방법이며 역사에 공헌하며 창조에 이바지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과거 성경에 대한 확고한 신학정립이 되어지기 전에 서로간의 갈등과 좁은 식견과 아집이 한국교회를 대화단절과 대립, 활동의 차이 등으로 발전해 기독교 문화 속에 있으면서도 비문화적인 과오를 여과시키지 못한 채 진행해 왔다.

모두 성경을 형식적으로 듣고 말하지 말고 성경 속에 들어가서 말해야 하고, 울타리를 넓혀야 한다.

인간의 의식과 지식이 제한되어 있고 성경의 진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무한대임을 깨닫고 서로간의 지체됨을 상기하여 모든 신도가 공감할 수 있고 가장 성경적이며 구속사적인 신학을 정립해야 한다.

지금 만연되고 있는 비신학적인 모습들인 모든 것들은 신학의 정립이 되지 않아서 이루어진 현상들이다.

잘못 벌어들인 재산은 축복이 아니다. 기복적인 신앙은 성경의 진수가 아니다.

스스로 높인 명예는 축복이 아니고 능력이 결코 아니다.

어떻든 많이 모아야만 성장했다고 하는 사상은 세상의 상업주의적인 사고와 업적 지향적 사고에서 온 것일 뿐이다.

지금의 교회들은 이런 변질된, 정립되지 못한 신학으로 인한 신도들의 방황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말할만한 힘도 없고(지금까지 신학자들은 자신의 위치와 소속을 변명하고 유리한 신학을 말했을 뿐이다) 또한 말을 한다고 해서 귀담아 들을 신도들도 없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신학은 정립되어야 한다.

정립이 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가장 능력을 갖게 되고 권능이 발휘되며 모든 신도들과 교회에 내적 사고와 외적 생활에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 교회지도자들의 변질이 기독교 문화 형성에 장애적 요소

 

앞에서 논했지만 교회와 지도자의 권위를 스스로 만들어 자신의 위상 확립과 권위 조성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변질된 지도자들은 변화해야 한다.

그러면 성경에 근거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상은 어떤 것인가?

오히려 교회의 세속화와 신도들의 방황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편익을 갖고 비종교적인 모순을 즐기지나 않았는가?

이런 문제에 간접적으로 대답을 주고 있는 현상이 바로 '이단 집단의 출현과 활동'이다.

이단집단의 출현은 매우 불안한 것으로 사회와 교회의 질병의 징후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것이다.

또한 이단집단들은 이구동성으로 기성교회와 지도자들의 부패성을 지적하며 도전하고 있다.

이는 실로 거룩하고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지도자들이 생각해 봐야 할 과제이다.

이단집단들이 도전하며 지적하는 사항들이 교리적인 문제가 아니고 단순히 지도자들의 비윤리성과 비합리성이고 보면 지도자들의 변화를 촉구할 때라고 본다.

지금까지 한국교회 내 70~80여 개의 총회가 분열되어 있는데 그중에 하나라도 '우리는 이것을 위하며 이것을 사수하기 위하여 분열될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지도자는 없을 것이다.

정치성 분열, 지방색 분규, 재산분규, 명예적 분규, 개인주의적 독선, 영웅주의적 분규, 개인우상화 등을 기초해서 분열이 되고 말았다.

280여 개나 되는 신학교, 가짜 신학박사학위, 목회자들의 사치생활, 사명을 빙자한 집회 모두가 병적인 모습들이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행실들이다.

이러한 지도자들의 변질이 수치스럽고 상식을 벗어난 교회역사를 만들어내서 마치 길거리 긴벽에 어지럽게 써붙인 낙서처럼 온 세상에 추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이 얼굴을 돌리고 모욕적인 말을 하고 있다.

어느 시대에 교회지도자들이 이렇게 하여 역사를 움직였고 영향력을 준 적이 있는가?

그러나 소경된 지도자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세계선교, 공산권 선교, 교회부흥, 성령충만이라는 것에 도취되어 자신들의 위치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만약에 지도자들이 성경적 인격형성을 했다면, 지도자로서 변화가 됐더라면, 외로운 신도, 가난한 신도, 삶의 진정한 대답을 요구하는 신도들과 함께하며 그들에게 참다운 동행자가 되어줄 것이다.

억압하는 자가 아니라 봉사하는 지도자가 됐을 것이다.

지금과 같이 사회정치 앞에서 무기력하고 무능력하여 이용당하고 무시당하는 들러리 교회지도자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교회지도자는 자신의 존재 타당성을 찾는 길은 권위나 능력이나 소유, 신도의 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가 사람 앞에 선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삶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지도자가 자신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업적지향적 사고에서나 스스로 만들고 확신하는 사명감으로 인해서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거룩한 삶으로 변화를 했는가 그리스도의 삶을 보여주어 덕스러움을 나타냈는가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이제 교회지도자들은 스스로 이 모든 모순을 극복하는 경험을 해야 한다.

성경의 도전 속에서 자신을 극복하고, 세상의 도전 속에 자신을 초월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체험해야 한다.

교회지도자는 마지막으로, 고백의 제의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 신비를 가지고 전한다고 해서 자기 망각의 경험을 계속해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이 성령의 능력이라는 명제하에 진행되고 있는 '자기 망각의 경험과 행동'이 계속된다면 지도자는 가장 중요한 내적 도전과 갱신의 기회를 잃고 말 것이고 사회는 그들을 서서히 외면해 버릴 것이다.

이제 지도자들은 갱신을 위하여서는 서로간의 신실한 대화를 통한 단결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갱신을 위하여 구체적인 방법 구상과 실천이 뒤따라야함은 물론이다.

모두가 한목소로리로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은 갱신되어야 한다.'고 기대하고 있다. 또 필연적이라고 하고 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교회의 근본사명인 구속사역과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갱신할 의지가 있느냐일 뿐이다.

끝으로, 현재 우리에게 닥쳐오는 시대적 역사적 징후들과 하나님의 권유와 기회를 절대적으로 놓치지 말고 선용을 하여 스스로를 깨끗게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민정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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