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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엽 목사의 찬송학 (20)

[ 2019-08-30 16:17:18]

 
조영엽 박사
전 국제기독교연합회(I.C.C.C. Dr. Carl McIntire. 19487월 설립) 본부선교사

 
영국에서의 새로운 종류의 찬송들(A New Kind of Hymns in England)

 
4. 1800년대 이후의 영국 찬송들

영국교회에서는 찬송을 부르는 것을 더 이상 불법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1819년에 셰필드(Sheffield) 교구의 목사 토마스 코테릴(Thomas Cotterill)은 찬송가집을 편집하여 사용함으로써 교회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그 사건이 영국교회에서는 찬송을 법적으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었다. 코테릴의 찬송가집에는 제임스 몽고메리의 찬송들도 포함되어 있다.

1) 제임스 몽고메리(James Montgomery, 1771-1854) : 영국 찬송 작사가

몽고메리는 1771114일 스코틀랜드 얼바인(Irvine)에서 모라비안 교도의 아들로 태어났고, 부모는 몽고메리가 어렸을 때 모라비안 선교사로 인도 바바도스 섬에서 순교했다. 몽고메리는 요크셔 주 풀네크(Fulneck, Yorkshire) 학교에 입학했으나 14세 때 성적 불량으로 중도 퇴학당하고 상점에 취직한 후 시를 썼고 학교 재학시절에도 학과보다 시를 쓰는 데 더 열중했다. 그는 1792년 영국 셰필드에 있는 인쇄소에 직원으로 취직하고 후에는 그 신문사 사장이 되었다. 그는 많은 감독이 찬송 부르는 것을 반대하는 그때에 영국교회가 찬송 부르는 것을 받아들이도록 복음주의 사람들과 함께 노력했다. 그 결과 1819년에 그의 친구 목사요 찬송 작시자인 토마스 코테릴(Thomas Cotterill)과 함께 편집한 찬송곡을 회중이 부를 수 있도록 요크(York)의 대주교로부터 승낙을 받아냈다. 그는 그 시대에 가장 훌륭한 찬송 작시자로서 400편 정도의 찬송가를 썼으며 그의 시가집은 10여 편에 달했다. 그는 왓츠, 웨슬리, 히버, 보날 등과 함께 영국의 5대 찬송 작시자이다. 그는 1854430일 소천했다.
 
그의 대표적 찬송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천지 주재 우리 주'(통일 10)
'영광 나라 천사들아 땅 끝까지 날면서'(118)
'새 예루살렘 복된 집 내 이름 높도다'(통일 225)
'시험받을 때에 나를 도우사'(343)
'이 곤한 인생이 쉴 곳은 없는가'(통일 536)
'겟세마네 동산의 주를 생각할 때에'(457)
등이다.
 
2) 레지날드 히버(Reginald Heber, 1783-1826) : 영국교회 감독, 찬송 작사가
 
히버는 1783421일 영국 체셔 주 말파스(Malpas, Cheshire)에서 영국풍의 교양 있는 가정에서 태어나 유쾌하게 자랐다. 그는 19세기 낭만주의 운동을 통해 찬송가의 수준을 높인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찰스 웨슬리 이래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찬송 작시자이었다. 그는 1827년에 찬송집을 출간했는데 그 찬송집에는 자신이 작시한 찬송 57편도 포함되어 있다. 이 찬송집이 출판됨으로써 찬송이 영국교회에 더 확산되었다.
히버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180724세 때 자신의 출생지인 호드넷(Hodnet)에서 안수받았으며 선교 사명이 강하여 39세에 선교사로서 인도 칼카타로 갔다. 칼카타의 주교로서 4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쉴새 없이 일하다가 과로로 쓰러져 42세에 소천했다. 사람들은 히버를 '현대 교회 찬송가의 창시자'(The Creator of the Modern Church Hymnbook)라고 일컫는다.
 
히버의 대표적 찬송 작곡들은,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여'(8)
'저 북방 얼음산과 저 대양 산호섬'(507)
'실로암 샘물가에 핀'(225)
'주 예수 우리 구하려'(346)
등이다.
 
3) 존 메이슨 닐(John Mason Neale, 1818-1866) : 청교도 사학자
 
닐은 초기와 중세기의 많은 찬송을 영어로 번역하여 사용했다. 또한 캐럴(Carols, 기쁜 노래)도 썼다. 닐은 영국에서 태어나 취리히와 레이든에서 공부하고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에 있는 회중교회의 부교역자가 되었다가 곧이어 담임목사가 되었다. 그는 퓨리턴의 역사를 저술한 사학자이다. 그의 책은 18-19세기 회중교회 신도들에게 새로운 감각의 일체성을 불러 일으켰다.
닐은 클루니(Cluny) 수도원의 수도사요 시인이었던 버나드(Bernard, 12세기)1145년에 쓴 세상의 악을 개탄하는 풍자시 '세상의 조롱에 관하여'라는 긴 시의 한 부분을 발췌하여 '예루살렘 금성아 복 가득하도다'(통일 538)를 찬송으로 작시했다. 그는 자신이 노래들을 작시하기도 했다.
 
4) 존 키블(John Keble, 1792-1866) : 영국교회 목사, 옥스퍼드 운동의 지도자, 시인
 
키블은 1792425일 영국교회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하여 우수한 성적으로(1810년에 학사, 1813년에 석사 학위) 졸업했다. 1815년에 영국교회 목사로 안수를 받고 허슬리(Hursley) 교구에서 목회하면서 옥스퍼드 운동을 시작했다. 옥스퍼드 운동은 1833714일 존 키블 목사의 설교로 시작되었다. 옥스퍼드 운동은 당시 영국 국교가 점점 부패해지자 젊은 목사들이 반기를 들고 초대교회의 엄숙하고 경건한 신앙을 갈망하며 일어선 개혁운동이다. 이 운동은 영국교회와 사회를 크게 개혁했다. 옥스퍼드에는 키블을 기념하는 키블대학이 설립되었다.
키블은 자유주의의 팽창 속에서 신앙을 보수하기 위하여 신앙적 전투에 직접 개입한 보수주의자였다. 키블은 1827년에 그의 명작 그리스도인의 해(The Christian Year)를 발표했는데 이 찬송 시집은 1867년까지 100만 부 이상이 발행되었다. 이 시집은 원래 표현의 단순성, 경건한 정신, 조용한 믿음의 기록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이 책으로 인하여 1831년에는 옥스퍼드 대학교 시문학 교수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의 찬송 작시들 중에는
'영혼의 햇빛 예수님'(60)
'마음 청결한 자는' 등이 오늘날까지도 애창되고 있다.
그는 1866329일 소천했다.
 
5) 존 헨리 뉴맨(John Henry Newman, 1801-1890) : 추기경, 옥스퍼드 운동 지도자
 
뉴맨 추기경은 옥스퍼드 운동의 또 다른 지도자였다. 그는 1801221일 영국 런던에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서 1820년에는 옥스퍼드에 있는 트리니티(Trinity) 대학을 졸업한 후 오리엘(Oriel)의 부제가 되었고, 1824년에는 안수를 받고 성 마리아 교회에서 시무했으며, 1828년부터 1843년까지는 대학교회에서 시무했다. 그때 옥스퍼드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그는 합리주의와 자유주의를 반대하고 초대교회 옛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많은 개신교회들이 교회의 사명을 감당치 못하고 문제들을 안고 있으므로, 특히 자신이 몸담고 있는 영국교회의 타락으로 인하여 1845년에는 영국 국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했고 1877년에는 추기경이 되었으며 1890811일 에드그바스턴 기도원에서 소천했다.
그의 유명한 찬송 작시는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빛 되신 주'(379)이고, 이 찬송시는 찬송가 작가로 유명한 다이크 박사(John B. Dykes)가 작곡했다.
 
6) 호레이시우스 보날(Horatius Bonar, 1808-1889) : 영국 목사, 찬송 작사가
 
호레이시우스는 18081219일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태어났다. 그는 에딘버그 대학에서 예술과 신학을 공부하고 18371130일 켈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켈소에 있는 북교회(North Church)에 부임했다. 그곳에서 그는 1866년 에딘버그에 있는 찰머 기념교회(Chalmers Memorial Church)로 초빙받아 갈 때까지 시무했다. 그 당시 영국의 북교회는 자유교회(Free Church) 운동이 크게 일고 있던 때로 18435월 스코틀랜드 교회가 성별하여 독립할 때 그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찬송 작시자로서 풍부한 상상력과 우아한 표현으로 찬송시를 썼으며 영력이 있는 설교자로 알려졌다. 그의 이름은 미국 전역에도 널리 알려졌다. 무디 부흥회의 찬송 인도자인 생키(Sankey)도 보날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그는 몇 권의 찬송집을 발행했다. 그는 1889731일 소천했다.
 
그의 대표적 찬송 작시들은,
'성부의 어린 양이'(82)
'기뻐 찬송하세 주님 부활했네'(159)
'나 행한 것으로 구원 못 얻고'(통일 203)
'오 나의 주님 친히 뵈오니'(228)
'양 떼를 떠나서'(277)
'내게로 와서 쉬어라 너 곤한 이들아'(통일 467)
등이다.
 
7) 프레드릭 윌리엄 페이버(Frederick William Faber, 1814-1863) : 영국교회 목사, 후에 천주교로 개종, 찬송 작사가
 
페이버는 1814628일 영국 요크셔 주 칼버리(Calverley, Yorkshire)에서 철저한 칼빈주의 신앙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발리올(Balliol) 대학에서 교육받고, 1836년에 옥스퍼드 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1839년에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1838영국교회의 옛것들이라는 제목하에 로마 천주교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인 책을 출판했다. 그는 옥스퍼드에서 공부할 때 대학교회의 교목이던 뉴맨(Newman) 목사를 매우 존경하고 추종했다.
그는 1837년에 부제, 1839년에 사제, 1842년에 교구 목사가 되었다가, 1845년에는 천주교로 전향했다. 과거에 천주교에 부정적 태도를 취했던 그가 전향한 것이다. 페이버는 적어도 150편 이상의 찬송시를 썼으며 그의 대표적 찬송시는
'환란과 핍박 중에도'(336)이다. 그는 1863926일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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