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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고고학』 100호 발간

[ 2019-06-28 12:49:09]

 

< 원용국 박사>

원용국 박사 신구약 주석 완역도 함께 기념하다

 지난 617일 오전11시에 종로에 위치한 여전도회회관에서는 한국의 기독교 고고학회를 설립하고 동시에 성경과 고고학지를 발간한 원용국 박사의 성경과 고고학100호지와 신구약성경 주석 완역을 축하하는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다음은 계간 성경과 고고학 100호의 특집에 실린 내용이다.

한국성서고고학의 역사
(계간)성경과 고고학 100호 특집

한국 교회 안에 성서고고학에 대한 관심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19183월 평양신학교 교수였던 어도만(Erdman Warter C. 1877-1948) 박사가 '예루살넴', '여리고성' 등 고고학적 발굴에 근거한 글들을 신학지남(神學指南)에 싣기 시작한 것이 한국 교회 성도들이 성서고고학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가 되었다.
어도만 선교사는 1906년 조선에 선교사로 와서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군위, 의성, 선산 지방을 중심으로 전도하고 교회들을 개척하였다. 9,10대 경상노회장(1914-15)을 역임했고 1916년부터는 평양 장로회신학교 성서학 교수로 강의를 시작했다. 1918신학지남이 창간되었을 때 성서고고학에 대한 다수의 학술논문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의 논문은 고고학적인 발굴 자료와 결과를 소개함으로써 성경의 내용을 더욱 사실로 증명해 보려는 취지로 작성된 것이 많았다.
이후 신학지남 편집부는 갈대아 우르에서 다니엘 5장의 사실을 증명하는 유물을 발견하였다는 기사를 싣기도 하였고 성서고고학에 대한 논문들을 실으면서 그에 대한 관심을 표출하였다. 예를 들면, 이성휘의 '성서고고학(Acchaeology and Bible)'(19323142), 라부열의 '히브리인의 주택과 가구에 대한 일고'(19379195, 193711201), 구예인의 '팔네스틘에서의 고고학상 발견에 대한 최근의 몇 가지'(19391월 제211) 등을 들 수 있다.
평양장로교신학교 뿐만 아니라 감리교신학교에서도 학술지인 신학세계를 발행했는데 여기에도 하리명의 󰡒고대의 홍수󰡓(19292), 기아부의 '고고학상으로 신구약전서'(192911) 등 성서고고학적인 내용을 담은 논문들이 소개되기 시작했다.
이런 성서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가운데 1938년 어도만 박사가 성서고고학개론을 출판했는데 이것은 국내에서 성서고고학이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기독교 박해가 극심해지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평양장로교신학교 마저 폐교되면서 그 책은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해방 이후 1948년 남산에 장로회신학교가 다시 개교되면서 다시 성서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살아났다. 신학지남에 곽안전의 '성서고고학'이 연재되었고, 1946년 발견된 사해사본에 대한 논문들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성서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하지만 1970년대까지 발표된 성서고고학에 관련된 논문들을 보면 체계적이고 전문적 연구라고 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선교사들이나 성서고고학이 아닌 다른 분야의 국내 신학자들에 의해서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사항들에 대해서 외국의 연구 논문들을 소개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국내 성서고고학 전문가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분이 바로 한국성서고고학회의 설립자요 성경과 고고학을 창간한 원용국 박사이다.

원용국 박사는 1960년대부터 국내 최초의 성서고고학자를 자처하면서 외로이 국내 성서고고학의 토대를 닦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성서고고학에 대한 글이나 저서들은 비전문적인 관심에 근거한 단편적인 번역물들이 고작이었던 한국 신학계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원용국 박사는 성서고고학 이론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서 국내 여러 신학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성서고고학에 관한 전문적인 연구 결과물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국내에서도 성서고고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로 국내에서도 1970년대부터 연구를 목적으로 직접 성지를 방문하고 발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문희석 교수의 '벧산 발굴'이었다. 문희석 교수는 벧산 발굴에 대한 연구 성과를 2차례에 걸쳐 1974신학사상에 기고했다.

원용국 박사도 1980년대에는 직접 성지 현장 연구와 발굴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 로마, 그리스, 아테네, 이집트, 이스라엘 등 성경과 관련된 지역들을 연구 목적으로 방문하였고, 1987년에는 단독으로 이스라엘 '라기스 발굴'에 참여했다. 그러면서도 국내 성서고고학 저변 확대와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서 성서고고학 사전 발간을 준비했다. 그 결실이 1984년에 이루어졌는데 양장본으로 1,000쪽이 넘는 성서고고학사전을 생명의말씀사를 통해서 출판했다. 이것은 한국 성서고고학의 발전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역사적인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1991, 원용국 박사는 허성균, 김진희 교수와 함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목사, 장로, 권사, 집사, 안양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30명의 단원을 인솔하고 이스라엘 북부에 있는 '이스르엘 골짜기 유적지 발굴'에 참여했다. 이것은 성서고고학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던 당시의 국내 상황으로 볼 때 엄청난 성과였다. 1993년 원용국 박사의 인솔로 15명이 '2차 이스르엘 유적지 발굴'을 했고 발굴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국성서고고학회'를 발족했다.

한국성서고고학회는 한국교회 안에 성서고고학을 알리고 저변을 확대하기 위해 출범과 함게 19939성경과 고고학[Tel]을 창간해 발행했다. 이 창간호는 A4 용지보다 1cm 더 큰 판형으로 4쪽 짜리 임시 간행물로 발간되었다. 여기에는 '성서고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원용국 박사의 성서고고학에 대한 소개글을 실었다. 또 당시 성서고고학회에서 참여해서 발굴하고 있던 '이스르엘 유적지'에 대한 역사적인 소개와 발굴에 참여한 성서고고학회 회원들의 활동 현황을 알리는 글을 실었다. 뿐만 아니라 이스르엘 유적지 발굴에 직접 참여했던 대신대학교(, 안양대학교) 학생들의 생동감 넘치는 기행문을 함께 실음으로써 성경과 고고학[Tel]독자들이 간접적으로 발굴 현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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