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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 최재화 목사와 독립운동 (4)

[ 2019-05-10 15:20:32]

 
김남식 박사 (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3.
부산에서의 사역

최재화는 목회의 황금기를 대구제일교회에서 보냈다. 자치파 파동으로 어려움을 겪은 교회는 새 힘을 모아 예배당을 건축하고 다시 한 번 일어서는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1930년대가 저물어 갈 때에 일본의 군국주의 통치는 신사참배를 통해 한국민족을 통제하고, 기독교인들을 박해하였다. 여기에 대구제일교회나 최재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장로교 총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등 공교회가 수난을 당하였고, 신사참배에 항거하여 순교하는 성도들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재화는 새로운 사역지 부산으로 가게 되었다. 19311020일에 대구제일교회에 부임하여 19421231일에 사임하였으니 근 11년간 시무한 셈이다. 부산진교회로 부임한 최재화는 여기서도 교회당 신축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일본의 강압적 통치가 강화되어 교회당 통폐합을 강행하는 형편이어서 새로운 예배당을 건축하기란 불가능하였다. 특히 최재화는 독립운동으로 11년의 징역을 받은 바 있는 요시찰 인물이기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의 대상이었다.
19458.15해방을 맞아 그는 부산진교회 목사로서 또 부산지방 교계 지도자로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최재화는 특히 교회당 신축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는 부산에 진주한 미군들로부터 시멘트 등 건축 자재를 도움받아 오늘의 부산진교회당을 건축하였다. (계속)

김남식 박사 (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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