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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岩의 성역 70년 회고록을 바로 알아야
海岩을 海巖으로 취하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 2018-07-23 15:38:35]

 

< 해암 김만규 목사의 회고록>

회고록의 내용은 합동교단의 비사다

지난 419일 강남순복음교회 5층 연회장에서 해암 김만규 목사의 성역 70년을 회고하는 회고록 출판 감사예배가 드려졌다.
<회고록>은 지난 일을 돌이켜 생각하여 적은 기록물이지 결코 <평전>이 아니다.
평전은 일정한 집약물인 글을 평가하는 글이기에 해암의 회고록과는 다르다.
그런데 장로신문 제3887면에 <회고록><평전>을 소개하면서 제13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총무 최우식 목사가 본 김만규 목사에 대한 평에서 집필자의 아호 으로 교정하려 한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海岩의 성역 70년 회고록에는 단 한번도 海巖이라고 칭한 적이 없었다.
원래 해암이라는 아호에는 이런 뒷이야기가 있다. 경북노회 시절(60~70년대)에 여러 번 목사직을 면직당할 뻔한 위기 상황에 놓인 적이 있다. 그 일에 대하여 그때그때마다 당당히 시련을 모면하고 오히려 수세에서 공세로 사건을 대전환시키게 되자 당시 경북에서 가장 유명한 부흥사였던 서동걸 목사(총신 제57)'김만규 목사는 海岩이야. 그 수많은 시험에도 끄떡없이 견뎌내는 바다 속에 깊이 뿌리 둔 바위야.'라고 하여 얻어진 것이 海岩 곧 바다 속에 뿌리 둔 바위였다.

그런데 2018. 4. 19일 회고록 404쪽에 최우식 총무가 나름 식견을 펼치며 海岩海巖을 설명하였는데 이는 한 개인사에 대한 깊은 이해가 모자란 데서 오는 오해에 따른 것이기에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海岩은 그 수많은 핍박과 시험 속에도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을 그대로 한다는 것이기에 오해 없기를 바라며 이차에 해암 김만규의 성역 70년의 회고록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회고록 책머리에서 '필자는 이 책에서 제35회 총회에서 제102회 총회까지의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의 뒤안길에 나타난 명암을 조명하고자 한다. 특별히 필자가 알아보고 듣고 체험했으며 또 글로써 표현했던 것들을 모아 성역 70년을 돌아보는 회고담을 엮어보기로 했다.
이 책의 기록은 어디까지나 필자의 개인적 견문이며, 적시한 내용이 절대적이라든가 정사(正史)가 아님을 밝혀둔다. 그러므로 혹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독자들의 양해를 구하며, 달리 꾸짖어 주시기 바란다.
되돌아보면 까마득한 70년 역사를 압축한 짧지만 긴 회고담을 한정판에 담아 출판한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고 했다.
해암의 70년 회고록 내용을 목차를 통해 간략하게 알아보면,
 
1부 소년병의 6.25참전기

1)
죽음의 일곱 사닥다리 (막을 수 있었던 전쟁)
2) M1 소총보다 겨우 10cm 더 컸던 꼬마
3) 첫 번째 죽음의 사닥다리 (포항여중 전투에서 '아이쿠 하나님')
4) 두 번째 죽음의 사닥다리 (포로가 되다 '대한민국 만세')
5) 세 번째 죽음의 사닥다리 (해방동무 임시수용소에서 허기와 부상으로 초죽음 상태에)
6) 네 번째 죽음의 사닥다리 (사형집행장에서 '하나님 한번만 살려주이소')
7) 다섯 번째 죽음의 사닥다리 (필사의 대탈출 '죽을 놈만 죽더라! 36계가 최고야')
8) 여섯 번째 죽음의 사닥다리 (다시 총살 위기에 처하다 '이것들은 어디서 잡은 포로들이야')
9) 일곱 번째 죽음의 사닥다리 (전폭기의 폭격에서 살아나다 ', 포항아!')
10) 세 개의 군번, 세 개의 생일
11) ~아 대한민국 만세, 내가 조국에 남긴 흔적이 있었다

2부 한국 최대교단의 명암 현장의 이야기

1)
폭력과 흉기까지 동원된 총회 현장
2) 꿀꿀이 죽 먹고, 삼각산 건들바위를 밀어붙이다
3) 'UDT출신이오'라는 선발대가 다녀간 뒤 총회가 갈라지다
4) 모든 노회원이 ''라고 할 때, 단 한 사람이 '아니오' 하니 '부결되었습니다'라고 선언하다
5) 신학자와 성자도 돈 앞에서는 별것 아니었다
6) 큰형님이 당하면 안 되지
7) 개잡고, 후지자전거 경품 걸고 장로회 태동하다
8) '계엄군이 옵니다. 제발 성명서를 내세요'
9) 삼신론의 시조는 총신 교수, 그 교수는 '형님 와이랍니까'라고 외쳤다
10) '총신대 교수들이 이단자를 특별강사로 세워 크게 손해를 보았지요'
11) 이단 감별사들, 합동교단만 표적 삼는다
12) '성속(聖俗)이 다르면 하나님이 버리십니다'
13) 3천 원과 5천 원으로 5만 원을 대항할 수 없었다
14) '()가야 신()자야 잘 있었나…'
15) 국제회의에는 반드시 WCC의 함정이 있다
16) '형님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그후 그는 죽었다
17) '공짜가 아닙니다'
18) 지상 고발자(여행 잔류자)와 여행자는 달랐다
19) '현금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으니 반을 내세요'
20) '대구가 문제인가? 총회가 문제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21) 배신 아무나 하나요, 총회장급이 하는 것이 배신이지요
22) 부곡온천에서 쿠데타하고 총회에서 싹쓸이했다
23) '십계명 연상기억법'을 아시나요
24) 이탈자와 버린자의 차이는 정치력에 있었다
25) 설교 잘 하면 이단 될 수 있습니다
26) 총회원로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힘을 모았다. 그러나 현재는?
27) 왜 윤○○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지 못했는지 아십니까?
28) 특수절도에 공산당 앞잡이라 해놓고 돈을 주고 사죄 공고까지 내었다
29) 81회 총회 결의의 진실과 곡해를 바로잡자
30) 처음 한기총 대표회장직은 '잃었다가 싸워서 찾은 것입니다'
31) 총신 발전책으로 의과대학을 설립해야 합니다
32) '임 총회장 사퇴하라' 전국여성단체의 농성
33) 재단이사장은 총신대학교 법인과장 하라고
34) '내가 보니까 이상하네요. 그것은 아닌데요.'
35) '이단이라고 해놓고 사례받고 뇌물받는 것은 부당하지요!!'
36) 이단사이비대책에도 이단보다 더한 자가 있었다
37) 기독신보 안에 들어갈 수 있다면 좋겠는데요
38) 판도라의 상자가 과연 열릴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 <김 총장, 김 총회장, 전 총회장(후보)의 만남 이야기>
3부 이단감별사들신문들과의 투쟁

1) 10
년간 50번 형사소송 결과 사필귀정이더라
2) 이단 감별사 모함은 금물이다
3) 현대종교의 탁명환 씨와 교회와 ○○」의 최○○목사 사이의 전화문
4) 이단을 연구하는 사람들
5) 개 같은 소리를 치고 피를 토하고 죽으라 했다
6) 이단을 연구하는 사람과 교회 교적 문제
7) 이단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민낯
8) 신문지상의 공방전 1 (전화도청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9) 신문지상의 공방전 2 (전화도청 없는 세상에서 살기를 바랍니다)
10) 진실(眞實)과 사실(事實)을 공개합니다
11) 국제종교문제연구소장 탁명환 씨에 대한 공개질의서
12) 탁명환 씨에게 진실한 해답을 구한다
13) 김영삼 대통령에게 드리는 지상탄원문
14) 신문들과의 전쟁 <1> 중앙일보 3면 기사 관련
15) 신문들과의 전쟁 <2> 월간 신동아 19944월호 관련
16) 신문들과의 전쟁 <3> 한국일보 1994222()자 기사 관련
17) 신문들과의 전쟁 <4> 가주신문(California of Los Angeles Journal) 1994. 5. 20. 260
18) 신문들과의 전쟁 <5> 교회연합신문 1994. 4. 9. 117
19) 신문들과의 전쟁 <6> 교회연합신문 1994. 4. 16. 118
20) 신문들과의 전쟁 <7> 주간경향 창간 16돌 특대호
21) 총신대학 소요사태는 이렇습니다 1 멸망의 가증한 자를 거룩한 곳에 세우다니!!
22) 총신대학 소요사태는 이렇습니다 2 총신 현안 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
23) 총신대학 소요사태는 이렇습니다 3 ○○○씨 당신이 이겼습니다

4부 내가 아는 김만규 목사

강춘오, 권영만, 김도빈, 김동권, 김진수, 박병진, 박정하, 석병규, 소재열, 손상률, 원용국, 이윤근, 이윤희, 임은하, 정정숙, 정학, 조영엽, 최성달, 최성용, 최우식 - 가나다 순

[해암이 걸어온 길]

출생과 신앙의 출발
 
해암(海岩) 김만규 목사는 193541(음력 213) 경북 대구시 중구 덕산동 38번지 농상공인(農商工人)인 아버지 김용태 씨와 어머니 문명년 씨의 41녀 중 3남으로 태어나, 1944년 대구봉산교회(당시 최종철 목사 담임) 최진영 장로의 인도로 유년주일학교 학생이 되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학력

1) 1951
820일 미5공군 군종학교(5空軍軍宗學校)에서 군종간부후보생(軍宗幹部候補生) 교육을 수료하였고
2) 1959314일 대신대학교(大神大學校) 본과(本科)를 제5회로 졸업하였으며
3) 196133일 총신대학교 신학원(總神大學校 神學院)을 제54회로 졸업하였습니다.

군경력 - 1950726, 15세에 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자진하여 학도의용군으로 6.25참전 등 15항목

목회 경력 6개항

교계 경력 28개항

국제회의 참석 9개항

저서 및 논문 16개항

해암 김만규 목사의 회고록은 공개된 문헌이나 회고록을 필독하려면 해암 김만규 목사 회고록 간행위원회로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031-591-7627 / 25,000(송료 3,000원 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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