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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화제의 책 「교회와 국가의 갈등」

[ 2018-07-23 15:24:22]

 

< 김남식 박사 저서>

국기 거부운동의 신앙적 역사적 조명
"거부운동 중심에 주일학교 학생들이 있었다"

교계에 특이한 문제를 취급한 책 한 권이 나왔다. 김남식 박사(장로교사학회 회장)가 쓴 '교회와 국가의 갈등-국기(國旗) 문제를 중심으로'라는 책이다. 이 책은 국가와 교회, 또 국가의 상징인 국기에 대한 교회의 태도, 그리고 그 국기에 대한 경배(배례) 문제 등을 신앙적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있다.
 
책의 내용은 한국교회에서 국기 문제 갈등의 배경, 국기 자체에 대한 거부운동, 국기 경배 방법으로 인한 거부운동, 갈등해소를 위한 노력을 다뤘다.
국기 자체에 대한 거부운동은 경주 시온산교회의 '태극기' 거부와 교회의 수난을 중점으로 다루고 있고, 국기 경배 방법으로 인한 거부운동에는 파주 죽원리교회, 횡성 공근교회, 거창 위천교회, 광양 오사재건교회, 제천 남천교회, 김해 여고 학생들의 거부운동 등을 다루고 있으며, 갈등 해소를 위한 노력에는 장로교회, 성결교회, 감리교회의 반대운동 등을 다르고 있다.
이에 저자 김남식 박사를 만나 책의 내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본다.

교회와 국가의 갈등 가운데 특이하게도 국기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국교회가 국가의 상징인 국기 문제로 국가와 갈등을 갖게 된 배경이 어디에 있는가?
: 한국교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배가 문제가 된 것은 일제의 신사참배에 대한 거부적 반응에서 나온 것이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에 신사참배, 동방요배, 또 일장기 등에 대해 90도로 몸을 숙이는 일본식 경례를 했다. 그런데 그것이 해방 직후 미군정기 기간에 일장기 대신 태극기로 바뀌어 거리낌 없이 '국기배례'가 행해진 것이다. 여기에는 국무총리 이범석과 문교부 장관 안호상 등의 일민주의 사상에 의한 군국주의적 통치이념이 바탕하고 있다. 그리하여 국기에 대한 배례를 반대하는 한국교회와 충돌했다. 결국 이승만 정부는 국기배례를 '국기에 대한 주목'으로 바꾸었는데, 1970년대 유신정권 하에서 국가중심주의가 나타나 다시 '국기에 대한 경례'로 바뀐 것이다. 그 당시에는 길을 가다가가 국기 하강식의 나팔소리가 나면 모두 멈추어 서서 국기를 향해 경례했다.
 
한국교회가 국기를 우상으로 보게 된 종교적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닙니까?
: 한국교회 안에 일부 국기 자체를 우상으로 보는 관점이 있었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기가 '태극'(太極)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유는 태극이 태극점복기(太極占卜旗)라며 기독교신앙과 배치된다는 것이다. 태극은 용과 뱀으로 상징되는 중국의 창조신(創造神)이다.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 태극이 음양을 낳고, 음양이 사상을 낳고, 사상에서 팔괘가 나왔다. 태극의 괘는 그 원리에 따라 점술(占術)로 발달하여 온갖 운명을 예언하는 복술자들의 도구가 되었다. 그래서 국기가 우상이 아니라, '태극기'가 우상의 상징이기 때문에 거부하게 된 것이다.
태극기가 점복우상이라며 거부운동을 한 교회는 경주 시온산제국교회로 일제말 박동기 전도사에 의해 신사참배 반대파 교회로 설립된 교회이다. 시온산교회는 태극원리가 성경의 창조원리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극렬히 반대했다. 해방 후에 1947년 북한에서 '북조선 인민회의'가 태극기를 폐지하자, 우리정부는 태극기 거부 자체를 용공으로 몰아 박해했다. 많은 사람이 수난을 당했다.

책에는 국기 경배 방법으로 인한 거부운동을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전체주의적 강요에 대한 거부로 읽힌다.
: 거부운동의 중심에는 장로교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있었다. 1947년 파주 죽원리교회 주일학생들은 봉일천국민학교에 다녔는데, 이 학교 68명의 학생들이 국기 배례를 거부한 것이다. 당시 주동자들은 약 2달 동안 파주 경찰서, 파주군 교육청, 경기도 교육국 등에서 심문 및 퇴학처분 위협과 회유를 받았다. 국기에 대하여 절을 하지 않는 것은 '빨갱이'이니 감옥에 쳐 넣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어 횡성 공근교회, 거창 위천교회 주일학교 학생들이 학교에서 국기배례를 거부해 큰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그리고 유신정권 하에서 국기에 대한 주목이 '국기에 대한 경례'로 바뀌면서 거부운동이 일어났다. 19727월 광양 오사재건교회 학생들이 진월중앙국민학교에 다녔는데, 50여 명의 학생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는 십계명 중 제1계명의 위배라며 거부해 국기비기혐의와 국기모독혐의로 그들을 가르친 유년부 지도부장 양영례를 구속 수감한 사건이 발생했다.
또 이듬해 19736월 제천 남천교회 목사 백영침과 주일학교 반사 강태호가 동명국민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국기 경배 거부를 선동했다는 이유로 국기모독혐의로 체포되었다. 그리고 이어 19738월 김해 여고에서 교련검열대회 제식훈련 중 35명의 학생이 국기 경례가 우상숭배라며 국기 경례를 거부했다. 이들은 김해지구 고신교단 SFC(학생신앙운동)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었다.
제천 남천교회 사건과 김해 여고 사건은 내용은 동일 사건인데, 대법원 판례는 달랐다. 남천교회 사건은 '무죄'가 났으나, 김해 여고 사건은 '유죄'였다.

국기 문제로 인한 교회와 국가의 갈등이 결국 어떻게 봉합되었는가?
: 먼저 장로교와 성결교 및 연합단체들에서 공교회적 거부운동이 일어났다. 장로교 총회는 1949년 제35회 총회에서 국기배례를 거부하고 국기 첨례를 요청하는 결의를 하고 정부에 건의했다. 이유는 국기배례가 기독교 계명을 어기는 우상숭배라는 종교적 문제, 일본적 잔재라는 국민적 이유, 그리고 국기에 대한 답례로 첨례가 세계적 추세라는 점을 들었다.
또 성결교회에서도 반대운동이 일어났다. 성결교회는 당시 한국기독교연합회를 통해 정부 요로에 시정을 촉구했다.
또 교회지도자들의 활동이 있었다. 대표적 인물이 권연호, 손양원 목사와 권세열 선교사 등이다. 그리고 여기에 정부 안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협력했다. 경남도지사 양성봉 장로, 경남교육청 장학사 김성태 장로 등이 정부에 건의하는 등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활동을 많이 했다.
그러나 대체로 한국기독교는 국기 문제에 대해 역사적으로 무관심했다.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이 유별나게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책이 최초로 그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를 점검한다는 차원에서라도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저자 : 김남식 목사(한국장로교사회회 회장)
<도서출판 베다니/ 신국판 양장 200/ 15,000/ 02-567-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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