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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추인 합동총회 역사 (39)

[ 2018-01-22 14:56:57]

 
[總會 野史] - 뒤안길의 이야기들
 
배신 아무나 하나요, 총회장급이 하는 것이 배신이지요

김만규 목사(본보 발행인)

전에 월간 조선에 '수출 3,000억 달러 기적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기사가 있었다.
그 기사의 내용 중에 1위가 정주영 회장, 2위 이건희 회장, 3위 박정희 대통령, 4위 이병철 회장, 5위 김우중 회장, 6위 정몽구 회장, 7위 박태준 회장, 8위 구본무 회장, 9위 구자경 회장 등의 이름들이 열거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배신의 역사를 기록할 때 제1위는 김현중 목사, 2위는 이봉학 목사, 3위가 김모 씨, 4위도 김모 씨요, 5위가 서모 씨이며, 6위가 김모 씨이고, 7위가 또한 김모 씨이며, 8위가 안모 씨이고, 9위가 길모 씨이고, 10위가 한모 씨이다.
10위권 외에도 정모 씨도 있고, 이모 씨도 있고, 권모 씨도 있고, 이모 씨도 있다.
우리 총회 역사에서 기록을 남길 만한 역사의 배신자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데 심히 괴롭다.
그들은 한결같이 '달면 삼키고, 쓰면 내뱉는' 자들이었고, 리더가 잘 나갈 때 보좌관을 자처하고 제2인자요 충직한 참모이더니, 사정이 어려워지자 리더를 헌신짝처럼 내던졌던 자들이었다. 그 같은 일이 우리 총회의 역사를 수없이 장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 아픈 일이지만, 혹시 그것이 역사의 반면교사가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그러나 역사의 흐름이 계속 배신에 또 다른 배신을 거듭 생산하고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배신자 열전을 기록한다.
첫째, 이영수 목사가 총회를 18년간 주도할 때에 그 주변에는 소위 4인방, 5인방이 항상 따라다녔다.
4인방으로는 홍태우, 김기채, 김동권, 이종일이요, 5인방으로는 김기채, 김동권, 이종일, 손중호, 하구봉 등이며 그 외에 외방에 김웅규가 있고 김준규가 있으며 김만규가 있었다.
최근 증경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영수 목사 시대의 4인방, 5인방을 말하자 서기행 목사가 '아니, 그것은 잘못이여. 이영수 시대에 좌태우 우동권이지'라고 하여 서기행이 볼 때에 이영수 목사의 2인방이 곧 홍태우, 김동권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런데 제70회 총회시에 이영수 목사의 세력들이 몰락하자 당시 기독신보 1면에는 '이영수목사 김만규목사 홍태우목사를 면직하라󰡓고 특별기사가 게재되었다.
기독신보의 주장이 그대로 된 것은 아니다. 그중 이영수 목사를 총회가 면직한다고 결의하고는 두 번이나 대전노회로 하여금 이영수 목사를 치리하라고 명령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자 총회 결의로 김현중 목사가 소위 기소위원으로 대전노회에 참석하여 권징조례 제19조에 근거하여 노회 현장에서 면직처리를 하였다.
김만규 목사와 홍태우 목사는 해당 노회가 면직의 사유를 찾지 못하여 치리하지 못하고, 홍태우 목사는 원로목사로 살다가 치리가 없는 하늘나라로 갔고, 김만규 목사는 제78총회가 총회현장에서 긴급동의로 면직 처리하였다가 그 이듬해인 1994년에 법원에서 재판 중에 경북노회가 목사 면직한 것은 불법이었으므로 면직 처리한 경북노회가 결의를 취소하므로 결국 총회 면직이 무효화되었다.
목사직 면직에는 상당한 사유가 있어야 하고, 또한 법적 절차가 따라야 하며, 반드시 정식으로 진행된 치리 절차가 따르지 아니하면 원인이 무효에 처해지게 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총회에 총대는 모두가 목사로서 정치 제15장 제10조와 장로로서 정치 제13장 제3조에 의해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정치와 권징조례와 예배모범을 정당한 것으로 믿는다고 서약을 하였기 때문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이영수 목사가 생존하여 있을 때다. 아마 1983년도 배재운 목사가 총회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직전 총회장을 역임한 김현중 목사가 대구에 전화를 하였다.
', 김만규 목사여 나 김현중인데 김목사님을 급히 만나야 될 일이 있으니 내일 첫 기차로 서울에 올라와서 서울시청 옆에 있는 외교구락부에 12시까지 좀 올라오면 좋겠다'고 연락을 한 것이다.
당시에 총회 형편으로는 김현중 목사가 제67회 총회장을 역임하여도 김현중 목사의 말보다 이영수 목사의 영향력이 막강할 때였다.
필자는 아침 8시 동대구역에서 새마을호를 타고 서울역에 11시경에 도착하여 택시로 시청 옆에 있는 외교구락부 식당에서 김현중 목사를 만났다.
우선 김현중 목사는 필자를 총회에서 가장 정의롭고 용감한 목사로 치켜세우고는 총회를 정화하는 데 뜻을 같이 하자고 제의해 왔다.
필자는 총회 정화하는 멤버가 누구인가고 물었다.
김현중 목사의 말에는 총무 이봉학 목사, 중진 서기행 목사, 이종일 목사, 김동권 목사, 김준규 목사, 한명수 목사 등이며, 장로는 김인득 장로, 문원채 장로, 윤재동 장로 등이 뜻을 같이하고 있다고 했다.
이때 김현중 목사가 필자에게 주문한 것은 '이영수 목사의 사생활을 김목사가 알고 있으니 상세하게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대개 이영수 목사의 돈 씀씀이, 정치자금이 누구에게서 나오는가? 이영수 목사와 4인방, 5인방이 모이는 대전 한밭식당에서의 쏘콜클럽의 실태 이영수 목사의 흡연에 대한 것 그리고 이영수 목사의 사생활 중 여자 문제 등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필자는 '김 총회장님이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는데 제가 할 일이 없습니다.'고 하면서 '알려진 바로는 대전한밭 모임에는 김기채, 손중호, 이종호, 홍태우, 김동권, 김웅규, 김준규, 김성문 등이 같이하고 있다는 말은 들었으나 실제로 나는 한밭식당의 쏘콜(소주 탄 콜라) 멤버가 아니어서 잘 모릅니다.'고 답을 하였다.
김현중 목사는 계속해서 이영수 사단의 멤버와 그들의 돈 씀씀이 그리고 술, 담배, 여자관계 등에 대하여 물었으나 필자는 김 총회장이 저보다 더 많이 알고 있으니 나는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다고 말하고 외교구락부를 벗어나려 하자 김현중 목사는 흰봉투에 돈 20만원 넣은 것을 주면서 앞으로 10일 후에 다시 이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10일 후 필자는 김현중 목사에게 전화를 하여 나는 더 이상 목사님과 함께 이야기 할 것이 없으니 서울에 갈 수 없고 목사님이 주신 20만원은 잘 사용하였으니 돈을 돌려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고 그때부터 김현중 목사와 연락(인연)을 끊었다.
이후 김현중 목사는 경남 부곡하와이호텔에서 모이는 전국교역자수양회 때 그의 참모들과 함께 소위 이영수 목사 타도라는 슬로건으로 1차 쿠데타를 하고, 70회 총회 때 명실공히 이영수 목사 타도를 실현하게 된다.
사실 당시 이영수 목사를 타도하는 첫 번째는 김현중, 문원채, 윤재동의 이영수 목사 공금횡령 건으로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한 것이고 두 번째는 부곡하와이 교역자수양회 때 쿠데타이고 세 번째는 제70회 총회 때(청량교회). 70회 총회시에 김현중 사단으로는 서기행, 이봉학, 한명수, 문원채, 김인득, 윤재동 등이 주동이 되었다.
당시 70회 총회시에 이영수 목사 측이 청량리역 앞 맘모스호텔과 여러 숙박시설을 예약한 것을 보안부대 출신 문원채와 전국에 현찰을 제일 많이 보유하고 있던 김인득 등의 활약으로 중앙정보부의 정보담당과 보안사의 이학봉 등 막강한 권력의 협조로 호텔과 숙박시설을 점령하고 총대에게 숙식과 충분한 여비까지 지급함으로 제70회 총회를 점령하고 말았다.
그때 그들의 구호는 '총회 정화'를 외쳤다. 즉 총회를 정화한다는 것이 구실이었다. 당시 필자는 기독신보를 대응하기 위해 총회소식지를 발간하였다. 사장은 한석지 목사, 주필은 김만규 목사, 편집국장에 손경수 장로를 세우고 총회소식을 전국에 전달하게 되었다.
총회소식에 중요내용은 총회 정화위원회는 총회 정화조다. 개혁하고 정화하자는 이들은 개뼈다귀를 우려먹는 것이지 별것 아니다. 총회를 화목하기 위해서는 총회와 함께하자고 외쳤다.
사실 이영수 목사의 몰락기에 참모이며 보좌관들 중에는 총신을 6개월 수업하고 졸업장을 받은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 중에 김모 씨와 또 다른 김모 씨 등은 총신 6개월을 하고 목사가 되고 또한 총회장직까지 맡았으나 이영수 목사 몰락시에 의리를 지키지 아니하였다. 몰락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
하기야 이영수 사단의 반란은 미주 방문시에 하구봉, 이종일, 김기채, 손중호 등이 이영수 목사가 권력과 금품을 독식한다고 불평한 것이 첫 번째 배신이었고, 두 번째는 김현중(이영수 목사의 참모), 이봉학(이영수 목사의 책사), 서기행(이영수 목사의 숨은 참모), 김동권(이영수 목사의 2인방 중 하나) 등이 당시의 주군을 전장에 몰아넣고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도덕적으로 한밭식당의 쏘콜멤버들의 비협조 및 비동지적 역할이 이영수 목사를 몰락에 이르게 하였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배신은 총회장급 사람들로부터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당시 총회소식지에는 한명수는 배신의 명수이고, S모씨는 S기생으로 표현되었고, 검은 와이셔츠에 흰 넥타이에 흰 구두를 신은 날라리가 총회를 망친다고 하였던 일도 있었다.
총회 역사를 통틀어 살펴보면 항상 총회를 부끄럽게 한 것은 '총회장들이었다'고 제1022차 실행위원회 시에 배재군 목사가 외쳤던 일이 있다.
옛날에는 원로회가 있어 원로들이 총회정책을 논의하였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증경총회장회가 있어 총회에 대해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데 부디 배신의 정치는 없기를 바란다.
배신의 정치로 성공한 것이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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