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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에 우리는 무얼해야 하나 ⑤

[ 2017-06-26 16:19:47]

 
 조정칠 목사 (뉴욕 필라 블루벨 한인교회 설교목사)

3부 자천 비화 7

1)
예수 처음 표적물
2) 예수 고유 표시 알파 그리고
3) 예수 유일 흔적 못자국
4) 예수 특혜2 - 용서, 치유
5) 예수 조찬 기념 153
6) 예수 구원 실체, 본체
7) 예수 비유 압권 하버지

1.
예수 처음 표적물

목사들 중에 그 잔치집 설교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잘 아는 이야기를 왜 비화로 분류하는지 싱겁다고 비웃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은 것같지 않다. 그 잔치의 뜻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무척 어렵다. 대충 아는 사람은 많고도 많다. 성경 중에서 가장 그 뜻이 오묘하고 깊은 성경이 여기가 아닌가 싶다. 생각할수록 깊어서 감탄할 일이 얼마나 더 남았을까 싶을 정도다.
잔치의 파국을 수습하는 과정은 아주 간단하다. 요한복음 저자가 정리한 결론을 소화하기가 태산을 넘고 험곡을 지나는 느낌이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는 별로 길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는 문장인데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것이 어떤 현상인지 나는 설명할 자신이 없다. 예수님이 아무 말씀도, 아무 행위도 보여준 것이 없다.
이 설교는 많이 듣기도 하였다. 그중에 명설교로 기억되는 설교가 있다. 서울에서 이름난 교회 목사의 설교였는데 제목이 "'떠니'의신앙"이었다. 물을 떠다 주라 해서 떠다 주었더니 포도주가 되었다고 했다. 순종을 강조하기에 절묘한 표현이었다. 표현의 차이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설교가 물 떠다준 순종을 대표적으로 설교한 것 같았다. 그것은 핵심 같지는 않으나 순종을 강조하기는 좋았다.
물 떠주는 일은 별 것도 아니다. 하인인데 그냥 심부름을 했을 뿐이다. 거부할 이유도 없고 기피할 일도 아니다. 하인들은 왜 그렇게 하라는지 전혀 몰랐던 것이다. 처음부터 물을 채우는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 하인들이 알아야 할 일도 아니었다. 거기에 너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결과를 보고 그렇게 과장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연회장은 그런 놀라운 결과를 신랑에게 기쁨을 돌린다.
설교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성경이 표적이라고 지적한 핵심을 알아야 된다는 것이다. 나의 확신은 물이라고 생각한다. 물이 문제를 해결을 한 것은 100% 맞다.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물 채워! 물 떠줘! 두 마디 말씀 그것이 예수님과 그 날 잔치의 하이라이트이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아무것도 밝혀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제자들이 믿었다는 데서 마감을 한 것같다. 그날 가장 중요한 사람은 제자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었을까. 그것만은 생각하고 싶다. 위험에 빠져서 잔치를 망쳤더라면 그가 문은 영영히 수치와 조롱을 당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잔치가 역전승을 했으니 불안에 떨었을 혼주와 가족들, 그리고 자기 모친 등에게 무슨 말씀이라도 해주고 싶었을 것같다. 그런데 일절 함구하셨다. 여기서 예수님이 귀찮아서 입을 다무셨을까? 그것은 아닌 것같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잔치가 잘 끝났으니까 무슨 말씀을 하셔도 좋았을 것이다. 말씀이 우리 가운데 계시매 어찌 하실 말씀이 없을랴 싶다. 그렇다면 더 좋은 것으로 주셨는지 모른다. 입을 닫고도 얼마든지 일을 하실 분이시다. 나는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과연 주님은 엄청난 귀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 말씀하시기보다 하지 않으심으로 더욱 효과적인 것이 있었다. 그것은 증인의 소리였다. 연회장이 잔치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다.
그가 말하였을 때 신랑까지 불러내어 많은 하객들이 듣는 데서 물 그릇을 받아들고 하는 말을 예수님께서도 똑똑하게 들렸다. 그의 말이 예수님께서 하시고 싶었던 말이었다. 물을 떠다 주라 했으니 하인들은 오금이 저려서 넋을 잃을 뻔 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직접 맛이 어떠냐고 물었을 수도 있다. 예수님은 기다렸다가 연회장이 깜짝 놀라면서 맛에 감탄하여 소리치는데 그만 말문을 채웠던 것같다. 얼마나 고마운지 시키지도 않고 부탁도 않았는데 그렇게 칭찬을 하다니.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일장 설교까지 덧붙였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것을 내다가 나중에는 질이 나쁜 것을 내는 법인데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것을 두었도다.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만 잘하지 나중에는 실망을 시키는데 그대는 어찌 다르게 한단 말인가 하고 격찬을 했는데 그 말은 신랑을 보고했으나 실제로는 예수님께 한 말과 같다. 제자들이 그 장면을 보았다. 먼저 좋고 나중 나빠인데 먼저 좋고 나중 좋고라고 했다.
그런 명언은 예수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처음과 나중이라 하실 때 한 몫 끼워주셨을 것이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실 때 아구까지 가득 채운 것은 처음 모습이다. 하인들이 잘 안다. 물이 가득 차면 잔치 시작이다. 그리고 가득 찼으니 끝이다. 그 한 장면 안에 처음과 끝이 같이 있었다. 이 장면이 예수님이시다. 그 연회장의 증언이 있으므로 예수님은 가만히 계셨다.
기독교는 증인의 종교다. 예수님은 증인에게 맡기시고 증인을 신뢰하신다. 연회장은 예수님과 모르는 사이다. 그래서 그 증언은 더욱 확실하고 가치가 있다. 그 현장에는 여섯 제자가 증인의 자격으로 참석하였으니 얼마나 확실한 체험이 되었을까 싶다. 그리고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말씀은 참 귀한 포인트인 것을 그 잔치에서는 단 한 명도 눈에 띄는 사람이 없고 거명되는 안물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
하인들은 모든 상황을 알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속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모친도 일이 된 것을 보고 속으로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이다. 연회장은 아직까지 먹어본 적이 없는 맛 있는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몰라서 '아이구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지 않았을까 싶다. 잔치집 주인이 그 형편을 몰랐을 턱이 없다. 잔치가 파행이 되면 죽고 싶을 것인데 살았으니 하나님을 불렀을 것이다.
어느 한 사람도 영광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도 아주 귀한 일이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이 얼마나 사람들로 말미암아 방해가 되는지 모른다. 더구나 목사라는 사람도 그런 면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강단에서 모든 것을 독점하려고 아무에게도 기회를 주지 않는다. 목사가 하나님 대리자는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목사들 중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개혁 없으면 하나님 영광 글쎄다.
영광을 나타내셨다는 말은 영광을 돌렸다는 말과 크게 다른 느낌이다. 아무도 나타나려고 하지 않고 한 사람도 잘난 척 하지도 않고 모두가 조용하고 편안하고 영광이 나타나기에 너무나 적합한 잔치였다고 생각된다. 예수님은 무엇보다 잔치가 잘 된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간 대사가 결혼식이다. 결혼이 잘 되면 나라가 부강하게 된다. 결혼이 잘 되면 백성이 행복하고 인류가 행복하다.
예수님은 결혼식에서 역사를 쓰기 시작한 것으로 표적을 삼아도 손색이 없을 것같다. 지금 우리나라는 결혼 기피, 결혼 거부, 결혼 압박, 결혼 공포, 결혼 포기 등등으로 국가적 위기 앞에서 고민하고 있다. 과거 한때는 향락주의가 결혼을 기피하기도 했으나 지금 우리나라에는 먹고 살아야할 생존문제가 결혼을 위협한다니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무엇을 먹고 살까' 그런 걱정을 말라고 성경은 가르친다.
그런 시점에서 가나 혼인잔치는 성경적 안목으로 다시 조명되어야 할 비화같다. 예수님은 결혼식 파행을 제일 첫 번 과제를 삼았다. 거기서 예수님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 영광이 나타났다. 오늘의 교회는 시끌벅쩍하다. 그것도 소음에 가까운 굉음같이 요란하다. 소리가 영광처럼 작용한다. 설교에 화답하는 아멘 소리가 작으면 설교자가 짜증을 낸다. 예수님의 처음 표적은 조용하기만 했다.
그 잔치에서 신나고 좋았던 사람은 마리아였다. 그가 가만히 있었더라면 잔치는 당장 끝나고 손님은 흩어졌을 것이다. 마치 산모가 해산 중에 출혈이 과다하여 죽게 되었는데 급히 수혈을 하여 산모도 아기도 살아나는 것과 흡사한 장면이다. 피와 포도주는 같은 뜻이다. 예수님은 수혈을 해주시려고 오셨다. 가나 혼인잔치를 순종하라고 시키려는 설교보다 어떻게 믿으라고 말하는 것이 설교답고 은혜가 될 것 같다.
마리아보다 훨씬 더 좋아하실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생각한다.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어머니의 보호를 받고 살다가 어머니의 요청을 들어줌으로써 어머니의 면목을 빛나게 만들어준 기쁨이 오죽하랴 싶다. 맛 있는 포도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만족하고 무엇보다 사흘 동안 제자들과 함께 새로운 어부로 출발하게 된 감격이 얼마나 컸을까 싶다. 그보다 더 충격적인 기쁨은 연회장의 증언이었다.
예수님은 30년의 역사를 곧 마감하게 된다. 3년만 있으면 땅에서 할 일은 끝이 난다. 그 다음에는 증인들이 이어가야 할 천국복음이다. 그래서 30년간 하나님께 적합한 제자를 구해달라고 원했다. 그 후로 3일 전에 해변에 나가서 베드로와 안드레 두 형제,야고보 요한 두 형제 4사람을 만나 제자로 삼았다. 그 다음날 빌립과 그의 친구를 두 사람 추가해서 사흘째는 6명의 제자가 함께 잔치에 갔다.
예수님은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다. 다만 후계자만 결정되면 된다. 그들이 증인이 되어 예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예수 증인이 되면 그 다음 증인이 또 계승할 것을 시범하는 출발점이 가나 잔치였다. 그런 자리에서 기절할 만큼 감동을 주는 증인을 보게 되었다. 그가 곧 연회장이었다.
예수님과 만난 적도 없는 그가 포도주 맛에 놀라서 신랑을 불러내어 많은 하객들이 들리도록 큰소리로 칭찬을 했다. 실상은 예수님이 하신 일인데 연회장은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신랑으로 착각했다. 예수님 대신에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신랑이 높게 되었다. 예수님이 그 소리에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그뿐 아니라 그의 설명이 가관이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기상천외한 설명이 터졌으니 말이다.
모든 사람은 처음은 좋은 것을 내고 나중에는 형편없다. 그런데 그대는 처음도 좋았고 나중도 좋았다. 이런 일은 세상에는 흔히 듣는 일이 아니다. 연회장의 이 설명도 극찬에 극찬이다. 이 모든 찬사가 모두 예수님께 해당되는 찬사였다. 예수님이 감동할 만한 까닭이 있다. 사람들의 찬사는 상대방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전혀 모르는 사이다. 그러니까 아무 사심도 없는 진실한 증거이고 순수한 고백이다.
그러니 예수님은 말씀하실 의향이 없었다. 증인의 말이 얼마나 힘이 있고 얼마나 가치가 높은지 예수님은 자기 제자들이 그 증언을 듣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귀하고 기대가 되었을까 싶다. 기독교는 이런 것이다 라고 전경을 보여주고 있는 기록영화와도 마찬가지다.
1) 현명한 여성 마리아 같은 신자
2) 순진한 일꾼 하인 같은 신자
3) 좋으면 증거하는 연회장 같은 신자
4) 칭찬받아도 말없는 신랑 같은 신자
5) 잔치 잘해도 자랑않는 주인 같은 신자
교회는 목사의 설교부터 말이 많다. 온갖 소문, 온갖 자랑. 가나 혼인잔치를 기독교 모델로 했으면 좋겠다. 말이 아니라도 잘 되는 교회, 말은 사심없이 진실한 말만하는 교회, 말이 말같이 청중을 즐겁게 하는 교회로 개혁을 하면 될 것이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태초에 계신 분으로 전제하고 시작한다. 태초는 맨 처음 알파이다. 요한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알파의 존재, 최고의 존재, 절대적 존재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1:1'태초의 존재', 2:1에는 '처음 표적의 주인'으로 알파와 오메가를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시작한다. 가나 혼인잔치가 알파와 오메가의 주인공을 증거한다고 생각하면 성경이 입체적으로 잘 들어올 것같다.
그리고 다시 '떠다줘' 이것은 끝이다. 한 자리에서 처음과 끝을 동시에 이루어 내신 알파와 오메가이심을 완벽하게 실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sign)이다. 그 반응 3가지를 똑똑하게 기록으로 남긴 것이 첫 표적의 압권이다. 1) 연회장이 놀랐다. 2) 하인들은 알았다. 3) 제자들이 믿었다.
제발 물이 포도주로 변하듯이 교인들이 변하라고 하는 것은 조심하고 삼가면 좋겠다.
그렇게 변화를 말하고 싶으면 차라리 돌항이리 6은 세수통인데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식수통으로 만드셨다고 하면 변화를 하라고 해도 말이 될 것 같다. 변화는 자기가 하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니다. 변화는 시켜줘야 되는 것이다. 고기 잡는 어부가 사도로 변한 것은 확실한 변화다. 나사렛 시골 사람이 천국 복음의 선두주자가 되었다면 크나큰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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