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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 500주년에 우리는 무얼해야 하나 ②

[ 2017-02-24 15:12:28]

 

조정칠 목사의 서신

사랑하는 친구여 한번 웃자!

얼마만인가 우리.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우리가 아닌가. 서덕조만 일찍 가지 않았어도문득문득 생각이 난다구. 그만한 목사도 만나기 어려운 참 괜찮은 명물이 아니던가. 김만규는 그보다 훨씬 거물이지만 아직도 남아 있지 않은가 말일세. 나는 여기서 가끔 내 친구가 신문사 사장이라고 자랑도 한다네. 친구 팔아서 덕보는 셈이지.

나는 아직 설교를 하면서 담임목사가 없는 교회에서 담임처럼 설교한다네. 눈 때문에 운전을 못하니 돌아다니지 못하네. 집에서 글을 쓰는 것이 일일세. 책을 27권 쓰고 손을 털었네. 그러나 죽기 전에 성경 비화 한 권은 써두고 갈 생각이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특집이라는 타이틀을 써 볼까 생각중이야. 그렇게 뻥을 치고 싶어.

종교개혁 500주년에 우리는 무얼해야 하나

서언

종교개혁은 구교와 신교가 나눠진 역사라고 말해도 된다. 그러나 개혁자의 후손들은 그렇게는 쉽게 말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주권이 성경에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법, 즉 그의 뜻이다. 성경은 같은데 뜻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은 비극이다. 종교개혁은 그런 비극이라 할 수 있다. 뜻이 다른 것은 견해 차이가 아니라 길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성경의 문제는 해결이 된거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대답하는 것이 정답이다. 종교개혁으로 생긴 신교라도 성경해석의 원칙이 일정하지 않다. 그래서 계속 개혁을 않으면 교회가 유지되기 어렵다.

무엇을 개혁할 것인지 그것은 말하기 곤란하다. 오직 성경에 바로 서면 스스로 개혁하게 될 것을 기대할 뿐이다. 성경은 읽어서 납득이 되는 서적과는 다르나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인지라 함부로 못하게 숨겨 놓은 비화가 많다. 이것을 지혜있고 슬기로운 자들에게는 숨겨 놓으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신다고 제한되게 기록한 비화이다.

성경으로 돌아가는 개혁만 교회가 살 길이고 목사가 살 길이고 신앙이 살 길이다. 나는 80 넘은 노인이다. 내 눈에 성경이 바르게 들어올리는 없다. 그러나 나 같은 늙은이라도 어린아이의 자리로 내려가서 엎드려 기다리면 주실 것을 믿는다. 나는 거기서 끝까지 기다리며 성경 비밀을 찾을 것이다. 이런 나의 각오로 종교개혁 500주년에 소신의 글을 쓰려 한다.

목차

비화 1) 예수 처음 표적 아는 사람 없는가

비화 2) 예수 고유표시 몰라도 되는가

비화 3) 예수 십자가 그대로 둬도 좋은가

비화 4) 예수 손에 든 일곱 별 본적 있는가

비화 5) 예수 구원 33, 노아 방주 33 공법 봤는가

비화 6) 예수 부활 후 153 숫자 무슨 뜻인지 아는가

비화 1) 예수 첫 표적 아는 사람 없는가

갈릴리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목사들 중에 그 잔치집 설교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 잘 아는 이야기를 왜 비화로 분류하는지 싱겁다고 나를 비웃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목사들 중에 그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인지? 성경을 대충 알면 대강 뜻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성경은 대충이라는 말이 해당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말하면 큰 잘못이다. 그런데 자세하게 바르게 알지 못하면 대충이 된다.

그러면 성경을 안다고 하지 말고 자세히 알고 난 다음에 말을 해야 옳은 태도이다.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는 별로 어렵지 않는 편이다. 거기서 성경에 대한 자세가 둘로 나뉜다.

다 알았으므로 더 생각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사람.

알 것 같은데 핵심이 어디에 맞춰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

나는 두 번째 사람이다. 그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고 뜻이 깊어서 설명할 수가 없었다.

읽고 또 읽어도 생각할 것이 많은지라 책을 한 권 쓰기까지 했다. 책 이름을 󰡒예수 첫 나드리󰡓라고 붙였다. 그러고도 좀처럼 그 성경이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그 책을 쓰기 위하여 그 장면을 그린 명화를 보려고 답사를 가기도 했다. 파리 루브르박물관 중세기 명화전시관을 찾아갔다. 거기서 거대한 규모의 그림을 오래도록 서서 감상했다. 물론 현장을 스켓치한 것은 아니지만 화가가 해석하여 중세기적 화풍으로 그린 것이 훨씬 도움이 되었다. 그 화가는 피렌체 출신 빠울로베였는데 예수님을 로얄석에 귀빈으로 중앙에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화가가 되었든 목사가 되었든 상상에는 자유다. 나사렛 예수는 무명시절인데 그 집에 귀빈석에 앉은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 화백은 달랐다. 거대한 저택을 배경으로 어마어마한 잔치를 예수님의 첫 데뷔로 장식했던 것이다.

나는 그 설교를 20가지 제목으로 연속 설교를 한 적도 있다. 그러고도 끝이 나지 않더니 은퇴한 후에도 계속 되더니 기어코 이런 자리에 이르렀다. 가나의 잔치는 예수님의 일생에 단연 넘버 1 비화로 손을 꼽아야 한다.

중요한 내용정리

예수님 처음 표적을 갈릴리에서 행하심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믿으니라

어디서 낫는지 모르고 마신 물이 극상품

연회장에게 불려나온 신랑의 당황하는 장면

거기에 돌항아리 6개가 놓여 있었다는 점

물을 채우라 했더니 아구까지 가득 채웠다는 점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심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 어떤 요청인지?

무엇을 시키든지 그대로 하라. - 무엇을 염두에 두고?

아무도 모르는데 하인들은 알더라 - 무엇을 의미하는가?

3일째 되던 날 - 2일 전에 무슨 일이?

청함을 받아서 같다 - 누구의 초청인지?

전모를 펴놓고 보면 생각할 것이 아주 방대하다. 그중에 어디가 초점이 맞춰 있는 지. a.예수님의 생각 b.요한의 생각 c.마리아의 생각 d.제자들의 생각 e.설교자의 생각 f.일반의 생각

거의 평생 동안 생각하고 즐겼던 성경이건만 어찌하여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이 나는건지 고맙고 신기하고 즐겁기가 하늘로 솟는다.

가나 혼인 기사는 요한만 기록한다. 요한복은은 예수님을 태초에 계신 분으로 시작한다. 태초는 맨 처음 알파이다. 요한에게 있어서는 예수님은 알파의 존재 최고의 존재 절대적 존재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1:1에 태초의 존재 2:1에 처음 표적의 주인 알파와 오메가를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시작한다. 가나 혼인잔치가 알파와 오메가의 주인공을 소개한다고 생각하면 성경이 입체적으로 잘 들어올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인물 다양한 장면 다양한 언사들 그중에 표적은 단연 알파와 오메가라고 확신한다.

요한의 마지막에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재확인 말씀이 예수 첫 표적과 일치한 표시로서 요한을 위로하신다. 보다 넓은 의미로는 예수의 첫 표적으로 특혜를 입은 혼가를 표적의 범주 안에 포함시켜도 좋을 것이다. 잔치의 결과는 혼인잔치가 잘 되었다는 것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일 수도 있다.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혼인할 계획이 없으실 것을 전제로 하여 제일 먼저 결혼식을 찾아오셔서 축복하신 것이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다. 그밖에도 설교할 대목은 상당한 양이 들어있다.

제발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듯 하라는 말만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예수님의 뜻은 그런 의미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물은 필수품이고 포도주는 기호품에 불과하다.

그리고 하인의 순종을 강조하는 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하인은 순종하고 하지 않고 할 입장이 아니다. 많은 목사들이 순종을 너무 강조한다. 말씀 순종은 목사가 할 일이다.

교인들에게 순종 요구는 목사의 욕심이다. 교인은 믿음을 심어주고 행동하게 되는 것이 신앙의 구조다. 믿고 행할 것인가는 성경의 핵심이고 명령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과 순종이 없는 믿음은 다르다. 복음서에는 순종이 거의 없다. 순종은 굴욕적이다. 행함은 신앙의 꽃이며 인격의 가치다. 교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목사가 예수님께는 좋은 제자라 할 수 있다. 설교할 때마다 믿고 순종하라는 것은 목사들의 즐기는 메뉴다.

계시록 22장의 알파와 오메가를 요한복음 2장에서 미리 시범하는 것이 가나 혼인잔치라고 봐도 된다. 언제나 성경해석의 옳은 방향은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가에 고정시키고 보아야 한다.

가나 혼인잔치 이야기도 같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을 핵심으로 삼는 것이다. '물 채워' 하신 다음에 '물 떠다 줘' 하신 것이 표적이다. 물이 가득 찼을 그때가 잔칫날 처음 보던 장면이다. 잔치가 시작될 때 한 번 그렇게 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처음 장면을 연출하신다. '물 떠줘' 그 다음은 연회장이 좋은 것이라는 찬사로 끝이 났다. 더 할 일도 더 할 말도 없다.

가나 혼인잔치는 '처음 좋아 나중 나빠'의 일반인 것을 '처음 좋아 나중 좋아'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연회장의 증언이다. 우리들의 증언은 '처음 참 좋아 나중 더 좋아'로 해야 옳을 것이다.

'First Good Last Good'(好始 好終)

'Good First Good Last'(好先 好後)

그리고 다시 '떠다 줘' 이것은 끝이다. 한 자리에서 처음과 끝을 한 시에 이루어내신 알파와 오메가이심을 완벽하게 실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표적(sign)이다. 아무리 설교를 잘 하고 오래 해도 10번쯤은 하는 것이 첫 표적을 소화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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