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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에 쓰는 목사의 죄 ⑧

[ 2012-08-19 18:11:40]

 

- 설교의 주인 -

조정칠 목사

목사가 무슨 설교를 어떻게 하는지 그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설교란 들어 주는 사람이 곧 주인이다. 제 아무리 좋은 설교를 해도 성과는 들어 줄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런데 목사들은 종종 착각할 때가 있다. 이렇게 좋은 설교를 왜 듣지 않느냐고 생각한다. 듣는 사람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 설교가 어렵지 않다. 듣는 사람이 누구인가 보다 듣는 그 사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내가 전도사 초년 시절에 작은 농촌 교회로 파송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초가삼간을 교회로 꾸며 놓은 아주 작은 교회였다. 첫 임지라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다녔다.

집에서 두 시간 넘게 걸어서 가야만 하는 교회였다. 중간에 강이 있었는데 그 강을 건너는 시간이 일정하지 않았다. 그 강에는 다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데 배가 자주 다니는 편이 아니었다. 워낙 강폭이 넓고 모래밭이 넓어서 다리를 설치할 수가 없었다. 주중에는 신학교에 다녀야 했고, 주말에 가서 주일을 지켰다.

어느 토요일 오후에 조금 늦게 출발한 탓으로 강가에 도착해 보니 해가 져서 어두어지기 시작했다. 강을 건너는데 한 남자가 같이 건너고 있었다.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거기서부터 가는 길은 밤이면 좀 무서운 길이었다. 그곳은 6․25전쟁 때 인민군이 많이 죽은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밤에는 혼자 다니지 않으려고 했다. 그 길은 혼자 가기에는 좀 섬뜩하고 음산했다.

그러나 그날은 동행이 생겨서 마음이 놓였다. 강을 건너자마자 내가 먼저 물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그 사람은 나보다 갑절은 더 멀리 가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큰 형님 뻘이나 되어 보였다. 조금 걷다가 보니 너무 적적하였다. 내가 다시 말을 끄집어낼까 생각해 보았다. 무슨 할 말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계속 묵묵히 가기에는 너무 지루할 것 같았다.

나는 부흥회 같은 데서 들어 둔 인생론이나 한 번 들려 주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한 마디씩 꺼내다가 어느새 부흥 강사를 흉내내듯 했다. 인생의 허무한 이야기이며 인생의 무지한 이야기를 예화까지 곁들여 열심히 부흥사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잠자코 들어 주던 그 남자가 고마웠다. 나는 완전히 설교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가 싶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멈춰서며 말했다.

'먼저 가시오.'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아닙니다'

'그럼 왜 그러십니까?'

 

내가 혼자 가기가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갑자기 동행을 거부하는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었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을 처음 봅니다. 무슨 젊은이가 인생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지 나는 한 번도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어서 겁이 납니다.'

 

그 사람이 사는 골짝 마을은 나도 알고 있는 곳이다. 거기는 교회가 없는 곳이다. 아마 내 이야기에 감동은 고사하고 질려버린 것 같았다.

 

'당신은 누구이고, 뭘 하는 사람이요. 이런 골짝에는 뭣 하러 가시오?'

 

그의 질문을 듣고서야 내가 결례를 범한 것을 알았다. 좋은 이야기가 공포심을 자극한 결과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내가 좋은 말을 들려 준다고 감동되는 것이 아니었다. 들어 주는 사람이 바로 들어 주어야 무엇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설교 주인은 듣는 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덕분에 이 나이가 되도록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제서야 내가 신학교 학생이며 전도사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자 그쪽에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진작 그랬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내가 누구인 줄 모르는 상태에서 인생 이야기를 듣는 순간 불쾌했던 것이다. 무슨 무당도 아닌 것 같고, 죽은 인민군의 혼령도 아닐 텐데 귀신 씨나락 까는 소리를 들었으니 그럴 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였다 해도 동행을 싫어했을 것이다.

 

몰라도 너무 몰랐던 시대는 그 날로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한평생을 살았던 것 같다. 과거를 돌아보면 그런 맹랑한 실언이 허다하다.

또 한 번은 열차를 타고 가다가 열차 안에서 실수한 이야기다. 받으려고 하지 않는데 나 혼자 맘대로 뭘 줬다가 크게 부끄러웠던 일이었다. 열차 안에서 상인들이 계속 뭘 사라고 지나다녔다. 옆자리에 몸집이 아주 큰 남자가 앉아 있었다. 얼마나 자리가 비좁던지 숨 쉬기가 불편했다. 마침 지나가는 장사꾼이 땅콩 사라는 소리를 듣고 땅콩을 샀다. 옆 사람에게 주려고 하나를 더 샀다. 옆 사람이 눈을 지긋이 감고 있길래 땅콩 먹으라고 흔들어 깨웠다. 내가 뇌물로 주는 줄 얼른 알아차리고 고맙다고 했다. 그러더니 자리를 조금 넓게 양보해 주었다. 땅콩 하나로 편하게 앉아서 가게 된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조금 후에 또 장사꾼이 소주 맥주를 외치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내 옆 사람이 소주 두 병을 사는 것이었다. 아차 싶었으나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땅콩을 사 줬으니 자기는 소주를 사야 되겠다는 생각하고 한 병을 나에게 주었다. 나는 정신이 없었다. 한 번도 나에게 소주를 권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사양을 한 것이 또 화를 불렀다.

넥타이를 맨 정장 차림을 한 신사가 소주는 마다하는구나 싶었던 모양이다. 조금 후에 다시 장사꾼에게 맥주 두 병을 또 사는 것이었다.

그때는 내가 '나는 목사입니다'라고 말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그것을 나에게 준다는 말도 없었는데 앞질러 또 사양하기는 싫었다. 가만 있었더니 정중하게 맥주 한 병을 또 다시 주는 것이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너무 늦어 버렸다. 어쩔 수 없이 또 사양을 했다. 그런데 내가 목사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목사 때문에 재수가 없었다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남자는 내가 누군지 궁금했을 것이다. 왜 안주는 사 주면서 자기 술은 마다 하느냐고 따지고 싶었을 것 같다.

 

목사는 가끔 제멋대로 판단하여 일방적으로 행동할 때가 있다. 주는 것도 상대방의 마음부터 헤아려야 한다는 것쯤은 목사도 알고 있어야 할 매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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