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아이디/비밀번호 찾기
2018년 10월 23일
회사신문보기총회교계 기관교육 선교신학 신앙논단 기획 | 오피니언
 
회사소개 한국교회문제 협력상담소 상담게시판 공지사항

칼럼
논단
기독교문화/책
바른예배와찬송
기획연재
건강상식
Home > 논단기획 > 바른예배와찬송
(연재 26) 찬송의 토착화

[ 2010-08-12 11:42:23]

 

찬송의 토착화

(Contextualization of Hymn)

 

 

찬송의 토착화란 찬송의 가사를 또는 현대복음송의 가사를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노래들(민요들)의 가락․리듬․곡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소위 현대복음송(C. C. M.) 애호자들은 현대복음송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집에는 서양의 가곡․민요․가요․국가 등도 들어 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정서와 우리 고유의 가락․리듬․곡조에 맞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다. 신토불이의 찬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열린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국악의 토착화를 주장한다. 저들의 주장에 의하면, 야곱은 시리아에서 가져왔던 악기들을 애굽으로 옮겨 갔고, 히브리 음악과 시리아 음악과 애굽 음악이 혼합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이스라엘 민족은 430년 동안 애굽에 속하여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음악 속에는 세속 음악은 물론이고 이방신을 제사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던 이방 종교 음악도 스며들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또한 B. C. 586년 유다가 멸망당한 후 그들의 음악 문화는 다시 침략국인 바벨론의 음악에 의하여 영향을 받게 되었고, 바벨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의 음악에 의하여 또 다시 변화하는 과정을 겪게 되었으며, 애굽의 음악, 바벨론 음악, 헬라 음악 등이 기독교 음악의 근간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깊이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판소리․굿거리․살풀이․농악․민요 등의 음악 형태들로 찬송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평: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유구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다수의 사람들은 그 시대 문화에 동화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반면에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단 1:6)처럼 우상에 무릎을 꿇지 않는 남은 그루터기들을 보전하셔서 참된 진리를 보수하여 온다는 사실을! 유대교의 정통파(히브리인들 중 히브리인들)는 심한 환란과 문화의 변천 속에서도 모든 전통을 지켜오고 있다.

 

물론 우리의 찬송가집에는 서양의 가곡․민요․가요․국가 등도 들어 있으며 우리가 그런 곡들을 애창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찬송들이 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545장): 이 찬송은 우리나라에 와서 48년간 선교사로 수고한 소안론 목사(W. L. Swallen)의 찬송시이다. 그는 이 찬송시를 1905년 작시하여 스코틀랜드의 애니 로리(Annie Laurie) 민요곡에 붙인 찬송이다. 이 찬송은 일제의 압제와 공산주의 치하에서 고통당하던 성도들, 그리고 지금도 고통당하는 성도들에게 큰 용기와 소망을 주는 찬송이다.

'피난처 있으니'(79장): 이 찬송은 시편 46편을 배경으로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환란 때에 보호자가 되심을 강조한 작사 미상의 찬송시이다. 이 곡은 영국 국가에 붙인 찬송이다.

'시온성과 같은 교회'(245장): 이 찬송은 존 뉴턴(John Newton)이 시편 87편 3절에 근거하여 작시했으며, 하이든(Haydn, Franz Joseph)이 1797년에 작곡한 찬송으로 독일 국가이다.

'예수님의 귀한 사람'(27장): 이 찬송은 하이든(F. J. Haydn)이 1797년에 작곡한 찬송으로 이 곡은 오스트리아 국가이다.

'전능의 하나님'(77장): 이 찬송의 1, 2절은 콜리(H. F. Chorley, 1842)의 시(poet)이며, 3, 4절은 엘러톤(J. Ellerton, 1870년)이 작시한 것으로 이 곡은 제정 러시아의 국가이다.

'구세주를 아는 이들'(14장): 이 찬송은 토마스 켈리(T. Kelly)가 1806년에 작사하여 독일 민요곡에 붙인 것이다.

'즐겁게 안식할 날'(57장): 이 찬송은 워즈월트(C. Wordsworth)가 1862년에 성수주일을 위해 작사해 독일 민요곡에 붙인 것이다.

'새 예루살렘 복된 집'(225장): 이 찬송은 몽고메리(J. Montgomery, 1771-1854년)가 작시하여 독일 민요곡에 붙인 것이다.

'내 선한 목자'(430장): 이 찬송은 로빈슨(C. Robinson, 1829-1899년)이 누가복음 15장 6절을 배경으로 작사하여 독일 민요곡에 붙인 것이다.

'불길 같은 성신여'(173장): 이 찬송은 후라이(C. Fry)가 작사하여 영국의 전통 민요곡에 붙인 것이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338장): 이 찬송은 찰스 워슬레(Charles Wesley)가 작사하여 영국 민요곡에 붙인 것이다.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533장): 이 찬송은 작사 미상으로 아일랜드 민요곡에 붙인 것이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545장): 이 찬송은 작사 미상으로 스코틀랜드 민요곡에 붙인 것이다.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40장): 이 찬송은 칼 보벌그(Carl Boberg) 목사가 1885년에 작사하여 스웨덴 민요곡에 붙인 것이다.

'오 하나님 우리의 창조주시니'(32장): 이 찬송은 캐디(J. B. Cady)가 1902년에 네덜란드 민요곡에 붙인 것이다.

'성도여 다 함께'(29장): 이 찬송은 베이트만(C. H. Bateman)이 1843년에 작사하여 스페인 민요곡에 붙인 것이다.

 

그러나 리몬(Liehmohn)은 "그러나 소위 루터 시대의 유행가와 우리 시대의 유행가는 노래의 두 다른 (상이한) 범주에 있다. 그 시대의 노래와 이 시대의 노래는 낮과 밤이 다른 것처럼 판이하다. … 선곡들과 세상 음악 사이의 차이점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과거 오래 전에 유럽이나 영국 그리고 미국의 민요들은 백성 전체의 종교성과 도덕성이 높은 수준에 있을 때 기독교 문화에 근거를 두고 작사․작곡하여 애창한 노래들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그와 같은 노래들은 조금도 거부감이나 이질감이 없었다. 오히려 그 시대의 클래식 노래들의 멜로디는 복음찬송들의 멜로디보다 예술적 가치가 훨씬 높은 곡들도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클래식(Classical) 노래들을 꼽을 수 있다.

켄터키 옛집(My Old Kentucky Home), 꿈길에서(Beautiful Dreamer), 캠프타운 경마(De Camptown Races), 올드 블랙 조(Old Black Joe), 벤조를 울려라(Ring De Banjo), 스와니 강(Some Folks), 축배의 노래(Stein Song),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O My Darling Clementine), 여리고의 전쟁(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거기 너 있었는가(Were You There), 엘리야의 바위(Elijah Rock),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 대니 보이(Danny Boy), 언덕 위의 집(Home on the Range), 희망의 속삭임(Whispering Hope), 자장가(Wiegenlied),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Carry Me Back to Old Virginia), 흔들려라 황금마차여(Swing Low, Sweet Chariot), 아름다운 미국(America, The Beautiful) 등이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가요들은 기독교 문화에 근거를 두지 않고 작사․작곡되었고 육신의 향락과 허무 같은 내용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비록 우리나라의 고유 가락․곡조라 할지라도 우리의 신앙 정서에 맞지 않는다.

성도들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노래들 중에도 취해야 할 노래가 따로 있고 취하면 안 될 노래가 따로 있다. 우리는 판소리․굿거리․살풀이․농악․민요 등 찬송의 원리에 위배되는 세속 음악 형태를 철저하게 봉쇄해야 한다. 세속화된 음악 형태를 취하면 교회는 타락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의 정서에 알맞은 우리 고유의 가락․리듬․곡조에 맞추어 찬송이나 현대복음송을 불러야 한다는 주장은 찬송의 토착화를 의미한다. 불행하게도 우리 고유의 가락․리듬․곡조 등은 육신적 즐거움과 쾌락을 위주로 한 노래들이다. 또 전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우상숭배와 연관된 악기들이었고 거기에서 발생한 음악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고유의 민요나 가요 등의 곡조는 육신적 정서에는 맞을지라도 중생한 영에게 기쁨을 주거나, 생명을 살리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는 못한다. 찬송의 토착화는 찬송의 세속화를, 찬송의 세속화는 예배의 세속화를, 예배의 세속화는 마침내 교회의 세속화를 가져온다.   <계속>

 
ⓒ 기독신보 (http://www.ikidok.org)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인기기사
이단감별사의 거짓증언은..
S교회 무엇이 문제였나?..
기독신문에 내동댕이쳐진..
교회법과헌법해설
포토뉴스
제103회 총회 둘째 날 기관 인사(인사순)
공지사항
시스템 점검
인터넷 기독신보 드디어 오픈합..
기독신보 ∥ 등록번호: 서울,아 01362 ∥ 등록일: 2010.09.29. ∥ 발행인 및 편집인: 김만규 ∥개인정보 및 청소년보호책임자: 김만규
서울시 구로구 오리로 1197, 118-406 (오류동, 금강수목원@) ∥ 메일주소: ikidok@naver.com ∥ 전화번호:(02)2684-1736 ∥ 팩스:(02) 2684-1737
Copyright ⓒ 기독신보. All rights reserve. 기독신보의 기사 등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