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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5) 현대복음송 4

[ 2010-08-12 11:39:45]

 

 

6) 복음찬송(Gospel Hymns)만 부른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 것인가?

① 복음찬송이 성경적이고 적합한 찬송이라도 복음찬송만 계속 많이 부르고,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찬양, 기독교 교리를 중심으로 한 찬송을 부르지 않는다면, 점점 더 육신적․감정적인 면으로만 흐르게 될 것이요, 신앙은 점점 더 저하될 것이다.

② 복음찬송만 부른다면 찬송의 우선순위와 균형이 상실된다. 찬송의 우선순위는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이요, 그 다음은 기독교 교리를 중심으로 한 찬송(Hymns)이다.

③ 현대복음송은 예배로서의 균형(balance)을 파괴한다.

예배로서는 기도․찬송․신앙고백․설교․성찬․축도 등인데 열린예배는 찬송 대신에 현대복음송만 계속 부른다. 영적으로 어린 하나님의 자녀들을 온갖 잘못된 길로 인도한다.

 

 

7) 현재 찬송가집의 찬송들만으로는 부족한가? 더 많은 찬송들을 필요로 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좋은 찬송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이 찬송들이면 충분하고도 넘친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경배․찬양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통일찬송가에만도 50곡이 넘는다. 그래도 성도들의 유익을 위하여 더 많이 나오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찬송가 작사․작곡가들의 자질이 요구된다.

교회 역사를 보면 암브로스, 루터, 칼빈, 토마스 켄, 헨리 퍼셀, 아이작 왓츠, 탑플래디, 찰스 웨슬리, 존 뉴턴, 윌리엄 카우퍼, 레지날드 히버, 토마스 켈리, 토마스 헤스팅스, 레이 팔머, 윌리엄 브래들리, 하워드 돈, 다벤포트 밥콕 등 위대한 찬송시․찬송작가들이 영계의 음악을 담당했다. 이러한 인물들이 요구된다.

 

 

8) 오늘날 복음송이 그토록 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오는 데도 불구하고 왜 좋은 곡들이 희귀한가?

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철학과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철학과 문화는 타락한 철학과 문화이다.

② 좋은 찬송들이 많이 나오던 종교개혁 이후 독일․스위스․영국․오스트리아․미국 등의 당시 영적․신앙적․도덕적 상황과 이 시대의 영적․신앙적․도덕적 상황은 낮과 밤이 다른 것처럼 판이하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찬송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없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찬송들이 숫자적으로나 내용적으로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이다.

 

 

    7. 춤은 예배의 한 방편이라는 궤변들(Excuses)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세속화된 교회들은 "성경을 살펴보면 성경은 춤을 예배의 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고 많은 신앙의 열조들이 이것을 통하여 주님께 기쁨을 드리며 예배를 드렸음을 본다. … 춤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경배하는 표현일 뿐만 아니라 기쁨을 표현하는 한 형태이다. … 교회 안에 춤은 회복되어야 할 영역이다. … 시편의 찬송시 등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중요한 방편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궤변을 토하면서 출애굽기 15장 20-21절; 사무엘하 6장 16-22절; 역대상 15장 29절; 사사기 11장 34절; 시편 30편 11절, 150편 4절; 마태복음 11장 29절; 누가복음 7장 32절, 15장 25절 등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있다.

현대 무용하는 젊은 여성들이 몸에 착 붙고 살이 비치는 얇고도 투명한 옷을 입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거룩한 강단을 무대 삼고, 번쩍번쩍하는 오색찬란한 조명 아래서 누웠다 일어났다, 다리를 들었다 하면서 춤을 춘다.

먼저 우리나라 국어대사전에는, "춤이란 손짓․발짓을 율동적으로 우쭐거리면서 뛰노는 예술적 행동․무용이다"라고 정의했다. 웹스터(Webster) 사전에는 "춤이란 노래에 맞추어 몸과 발을 신속하게 움직이는 동작"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오늘날 세속화된 교회, 열린예배 보는 교회의 젊은이들이 예배 때에 추는 춤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복음송을 부르면서 양팔을 들어 좌우로 흔들면서 춤을 추는 형태(율동, 손유희)이고, 다른 하나는 기타와 드럼을 치며, 이따금 심벌즈를 챙챙 마주치며, 몸을 뒤흔들고 열광적으로 크리스천 록음악을 부르면서 춤을 추는 형태이다. 이 형태는 더욱 열광적이고 발광적이다.

 

 

열린예배 찬동자들은 아래의 성경구절들을 오용하여 춤은 예배의 한 방편이라고 궤변을 토한다.

① 출애굽기 15장 20-21절,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며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때에 홍해(Red Sea)를 육지같이 마른 땅으로 건넌 후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하심,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온 신기하고도 놀라운 체험, 그리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바로의 손에서 구출하여 주신 그 크신 은혜를 감사․감격하여 기뻐서 소고를 잡고 춤을 추었다. 소고(timbrels)는 나무로 만든 작은 북으로 오늘날의 탬버린(tambourine)과 유사한 악기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② 사무엘하 6장 12-22절, 역대상 15장 29절은 여호와의 궤(ark, 율법을 새긴 두 돌비석이 들어 있는 언약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여 춤을 추었다. 이 말씀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는 전혀 무관하다.

③ 사사기 11장 34절은 사사 입다가 암몬 자손들과 싸워 크게 승리하고 미스바에 돌아와 자기 집에 이를 때에 그 딸이 나와서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했다. 이 말씀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는 전혀 무관하다.

④ 시편 150편 4절의 "소고 치며 춤추며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라는 말씀은 시편 기자가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그의 업적을 기리면서 여러 종류의 악기를 연주하고 찬양하라는 말씀이다.

⑤ 누가복음 15장 25절은 한 아버지가 탕자가 돌아왔을 때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아 기뻐서 풍류와 춤을 추었다. 풍류는 헬라어로 쉼포니아(symphony; 심포니)로서 그 문자적 의미는 화음을 뜻하며, 이 단어에서 영어의 심포니가 유래되었다. 음악에 있어서 심포니는 교향악단에서 연주하는 다양한 악기들의 연주를 말한다.

이 말씀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는 전혀 무관하다. 신구약 성경 어느 곳에도 사람들이 즐겨 추는 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는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저들이 말하는 춤이 예배의 한 방편이라는 주장은 성경 말씀의 원리,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의 속성(성품), 예배의 성질과 특성, 예배 모범, 교회 역사 등에 비추어 볼 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타락시키는 궤변들로서 역사적 기독교 정통 신앙을 지켜오는 우리에게는 큰 독소가 아닐 수 없다.

성경에 "춤추며"라는 말씀은 구원의 감격을 몸과 영혼에 넘치는 충만한 기쁨으로 기뻐하는 외적 표현일 뿐 구약시대 성전 예배나 회당 예배, 신약시대의 예배, 그리고 기독교 역사 2천 년 동안의 정통교회 예배의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열린예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춤은 회복되어야 할 영역이다"라고 했는데 회복이라는 말 자체가 언어도단이다. 회복이란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감을 의미하는데 이전(과거)에는 춤을 추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상황화라는 이름 아래 춤을 예배의 형식으로 도입한다는 것은 성경과 예배 모범에 비추어 볼 때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 된다. 어느 교회도 어떠한 명분과 구실로라도 춤을 추며 예배드린다는 것은 이미 세속화된 증거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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