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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3) 현대복음송2

[ 2010-08-12 11:33:21]

 

5) 현대복음송은 자신을 즐겁게 한다

 

현대복음송에 열광하는 사람들 다수는 현대복음송을 부름으로 자기 자신들을 기쁘고 즐겁게 하고 있다. 자신을 즐겁게 한다는 말은 육체의 쾌락을 말한다. 육체의 쾌락 또는 향락의 헬라어는 헤도네(sensual pleasure)로서 육체의 감각에 의한 쾌락을 말한다. 이 단어를 한글 성경에는 일락(눅 8:14), 행락(딛 3:3), 열락(벧후 2: 13), 정욕(약 4:1, 3) 등으로 번역했다. 이 단어는 위로부터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참된 영혼의 기쁨을 의미하는 카라(joy; 기쁨, 희락)와는 성질상 판이하다. 물론 현대복음송 중에서도 크리스천 록음악은 더욱더 육신의 쾌락을 추구한다.

현대복음송은 회중의 기분(feeling)을 즐겁게 하는 일종의 여흥오락(entertainment)이다. 대다수의 현대복음송 애호자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예술적 가치와 미(美)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찬송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릴 뿐만 아니라 부르는 성도 자신에게도 영적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현대복음송 애호자들은 현대복음송을 부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 대신에 자신들을 즐겁게 한다. 즉, 육적인 즐거움을 추구한다.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그것을 부인하랴! 세상의 쾌락주의 문화가 현대복음송을 통하여 교회 안에 침투한 명백한 증거이다.

우리는 연예인들을 가리켜 여흥자들(entertainers)이라고 부른다. 분명히 대중가요를 직업적으로 부르는 가수들(소위 찬양사역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똑같음)은 세인들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여흥자들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찬송을 부르는 성도들은 연예인도 아니고, 방청만 하는 청중도 아니다. 또한 교회 음악은 예배 음악이요, 예배 음악은 노래로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사람의 쾌락주의(Hedoism)란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예배 음악(찬송)이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현대복음송으로 대치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것을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대처해야 한다. 예배와 오락은 구별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귀에 감미로움과 즐거움만을 위하여 작곡된 노래들은 교회의 위엄(존엄)에 합당치 못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음악의 쾌락적인 면을 철저히 금했다.
 

6) 현대복음송은 사람들을 자기중심의 이기주의자로 만든다

 

현대복음송은 자기만족을 추구하게 하므로 자연히 자기중심의 이기주의자로 만든다. 현대복음송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하나님 중심으로부터 떠나 자신만을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하는 이기주의, 주관주의, 상대주의, 쾌락주의, 실용주의, 인본주의로 점점 빠져들게 한다. 그 결과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나(I) 중심이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기쁘게 한다. 분명히 현대복음송은 원리 문제와 실행 문제 사이의 충돌을 가져온다. 분명히 현대복음송은 찬송의 의의와 목적에 역행한다.

현대 교회의 예배가 하나님 중심으로부터 사람 중심이 된 것은 일반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분명히 알 것은 예배의 목적은 개인의 필요와 만족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7) 현대복음송은 신자들의 신앙을 저하시킨다

 

현대복음송은 지적인 면이 결여된 빈약한 음악이고 영감 또한 빈약한 노래이고 보니 신앙의 성장, 발전을 저하시킨다. 현대복음송은 신앙적으로 성숙한 음악이 아니다. 현대복음송 애창자들 다수가 자신들을 즐겁게 하고 만족을 추구하므로 신앙의 성장이 거의 없다. 따라서 현대복음송을 애호하는 신자들이나 소위 현대 방언이나 신유의 은사(병 고침)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는 신앙적으로 미성숙한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본인은 현대복음송에 열광하는 자들, 소위 현대 방언이나 신유 은사를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들을 본 일이 없다. 현대복음송 애창자들 다수는 신앙적으로 미성숙(immature)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굳은 음식(영의 양식)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로마서 10장 17절,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다. 기본적 신앙이 장성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성(reason)으로 깨닫고, 마음으로 새김질하며, 의지로 준행함에 있다.

 

 

8) 현대복음송은 사람들을 우상숭배로 안내한다

 

사람이 지적인 면은 도외시하고 감정에만, 그것도 순수한 감정이 아닌 육신적 감정에만 치우쳐 육신의 기분과 만족만을 추구하다 보니 이기주의에 빠지게 되고, 드디어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고 섬기는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 물론 자신들은 자신들이 우상숭배를 한다는 것을 완강히 부인하겠지만 무엇이든지 하나님보다 우선시하고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이다. 이 경우 󰡒너는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갖지 말라.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는 것이 된다.

예배의 참 대상자는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보존하시고 섭리하시는 영원자존, 전지전능,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과 우리를 억만 죄악에서 보혈로 구속하여 주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뿐이시다.

 

 

9) 현대복음송은 전통적 예배의식을 파괴한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기도와 찬송, 진정한 신앙고백, 뜻과 정성이 담긴 헌신, 감사의 예물 등을 통하여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행위이다. 예배드리다 라는 헬라어 동사 세보마이to fear, serve; 두려워하다, 봉사하다)도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행위를 가리킨다.

신약시대 예배의식은 옛날 구약시대 회당 예배의식으로부터 전래되었으며, 예배의 요소들은 기도․찬송․신앙고백․성경 봉독․설교․성찬․헌금․축도 등이다. 그리고 찬송도 예배의 성질과 의식에 따라 마음 중심으로부터 순수한 감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 왔다. 그러나 기독교 역사 2천 년 동안에 일찍이 없었던 소위 현대복음송이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옴에 따라 지금까지 지켜온 전통적 예배의식은 모두 파괴되고 세인들의 열린 음악회처럼 되었다. 전통적 예배의식은 예배의 성질과 의식에 일치하는 예배, 곧 경건한 예배를 가리킨다. 전통적 예배의식을 모르는 신세대 젊은이들은 예배는 이런 식으로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신세대를 위한 예배의식이 따로 존재할 수 없다.

 

 

10) 현대복음송은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간에 장벽을 쌓는다

 

기성세대 성도들의 예배의식, 사고방식과 신세대의 예배의식, 사고방식은 너무나 판이하다. 기성세대 성도들은 전통적 찬송으로 하나님께 경건하게 예배를 드려 왔으나 신세대 젊은이들은 소위 현대복음송으로 자유분방하게 예배를 드린다. 어려서부터 현대복음송으로 자기 기분, 자기만족을 추구하니 엄밀한 의미에서 예배라고 할 수 없으며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장벽을 쌓는 것이 된다. 현대복음송 애창자들은 대다수 공예배에 참석하지 않는다. 세대가 바뀌고, 교역자들이 바뀌고, 현대복음송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회중이 바뀌면 교회는 점점 무당 굿하는 것같이 될 것이 아닌가! 실로 심각한 문제이다.

 

 

11) 현대복음송은 비성경적 연합운동을 촉진한다

 

현대복음송은 기성세대와 신세대 간의 장벽을 쌓는 반면에 신앙고백이 일치하지 않는 교회들, 교단들 간의 장벽을 허문다.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기독교 내의 기이한 현상들 중 하나는 교회들의 비성경적 연합운동(Unbiblical Ecumenical Movement)이다. 비성경적 연합운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 하나는 신앙고백이 일치하지 않는 교회들의 기구적․조직적․유형적․세속적 연합운동이요, 또 다른 하나는 소위 현대복음송으로 인한 연합운동이다. 음악은 회중을 하나로 연합시키는 힘이 있다. 노래는 사람들을 한 음성, 한 생각, 한 마음, 한 정신으로 연합시키는 힘이 있다. 노래로서의 현대복음송은 신앙고백, 신앙 노선을 각기 달리하는 교파, 교회, 신도들을 하나로 연합시킨다.

그러면 신앙고백이 일치하지 않고 신앙 노선이 각기 상이한 교파들․교회들․신도들이 어떻게 하나로 연합할 수 있을까? 그 이유는 20세기 자유주의자들의 비성경적 에큐메니칼(연합) 사상에 깊이 감염되었으며 영적 분별력이 결여․부족․상실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한 자유주의 교회들의 연합 단체인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의 비성경적 연합운동과 현대복음송으로 인한 비성경적 연합운동을 반대해야 한다.

 

 

<<긴급 제안>>

비참하게도 오늘날 대다수의 신학교에는 찬송학이 교육과정에 들어 있지 않으며, 있다할지라도 이론과 실기에만 편중되어 있다. 찬송의 원리에는 무지(無知)하고 세상 풍조는 홍수처럼 들어오는 상황에서 무방비 속수무책이다. 교회가 타락될 수밖에!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올바른 찬송의 정착을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로, 현대복음송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만을 즐겁게 하는 현대복음송, 지적인 면을 소홀히 하고 감정적인 면에만 치우치는 현대복음송, 사람들을 이기주의로 만드는 현대복음송, 가사와 곡이 교리와 찬송의 원리에 위배되는 현대복음송, 신앙의 성장을 저해하는 현대복음송,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속화시키는 현대복음송, 전통적 예배의식을 파괴하는 현대복음송,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 간에 장벽을 쌓는 현대복음송, 가사의 내용이 빈약하고 잘못된 현대복음송, 곡조가 단조롭고 세속적인 현대복음송, 비성경적 연합운동을 촉진시키는 현대복음송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한 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겸하여 나올 수 없음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한 입으로 찬송과 현대복음송을 겸하여 부를 수 없다. 야고보서 3장 11절은 한 샘에서 어디 단물과 쓴 물을 내겠냐고 하셨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바른 교회 음악에 대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신학교들은 바른 교회 음악 교육을 즉시 시행해야 하며, 각 교회 교역자들, 찬양대 지휘자들 그리고 모든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인 산교육이 절대 필요하다. 신학교에서의 교회 음악은 찬송의 원리를 가르치는 찬송학이어야 하며, 단순히 이론이나 실기만을 가르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셋째로, 기독교 정통 교리를 책임지는 신학자들, 지도적 위치에 있는 교역자들, 교회 음악 전문인들로 구성된 가칭 찬송가 위원회가 결성되어야 한다. 이 위원회에서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찬송곡들 중에 찬송으로는 적합하지 못한 곡들은 찬송가집에서 제외시키는 반면에, 찬송 원리에 일치하는 적합한 곡들을 발굴한다면 그것을 선별하여 총회에 건의하고, 총회는 토론․심의․결의하여 찬송가에 편입시키며, 각 지교회는 비로소 찬송가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복음성가도 동일함).

 

넷째로, 교역자들은 교회 음악 책임자들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중세기에는 그레고리 1세 이후로 성직자가 되기 위해서는 교회 음악 과정을 필수로 이수하도록 했다. 목회자는 찬송의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 음악 담당자들은 목회자의 목회 원리에 일치되는 음악 사역을 해야 한다. 성가대는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는 찬송, 교역자의 말씀과 일치하는 찬송, 성도들이 은혜받는 찬송을 불러야 한다.

 

다섯째로, 우리는 우리가 받은 신앙의 유산, 전통적 예배형식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하고 확고한 신념 가운데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리를 위하여 힘써 싸워야 한다(유 3).

 

마지막으로, 좋은 찬송들을 많이 애창해야 한다. 좋은 찬송이란 가사면에서 성경적․교리적이어야 하며, 곡조면에서 찬송의 원리(정통적 교회 음악의 원리)에 일치해야 한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앞서간 믿음의 열조들로부터 좋은 찬송,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찬송, 영감 있는 찬송, 은혜되는 찬송들을 신앙의 유산으로 많이 물려받았다. 이제 우리는 잠자는 좋은 찬송들을 발굴하고, 좋은 찬송들을 작사․작곡하여 지금의 좋은 찬송들과 더불어 좋은 찬송들을 많이 애창해야 한다.

 

 

․에베소서 5:10, "주께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시험하여 보라"

"시험하여 보라"(proving by test; 시험하여 증명하라).

거지 같은 옷을 입고, 강단에 올라가서 껑충껑충 날뛰며, 기타치고 북 치고 심벌즈 때리고 키보드 누르며, 발광하며 소위 현대복음송을 불러 대는 것이 과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지, 하나님을 노엽게 하며 하나님의 진노를 쌓는 것인지 시험해 보라.

 

․베드로전서 2:11, "사랑하는 자들아! 행인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거하라."

"육체의 정욕을 제거하라"(to abstain from sinful desires)는 육체의 소욕들, 죄의 욕망들을 의지적으로 끊어 버리라고(중간태) 충언했다.

 

․로마서 8:6-8,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flesh)은 육신의 부패성, 죄의 성질을 가리킨다.

① 육신의 "생각"(mind; 정신,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②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 - 그 영이 병들고 쇠하고…….

③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갈라디아서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하므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육체"(flesh)…영(spirit) "육체"는 몸 안에 내재해 있는 육신의 부패성, 죄의 성질을 가리킨다.

"소욕들"(desires, lusts; 욕망들, 정욕들)은 육체가 원하는 욕망들이다. 이 단어를 정욕으로만 번역하면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제한시키는 것이 된다. 이 단어(에피두메이)는 좋은 면과 나쁜 면, 성령과 육체 등에 모두 사용되었다.

"거스리고"(opposes each other)는 서로가 반대하고 대적하고 충돌함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육체의 소욕들은 영 곧 중생한 영, 자아의 주체가 원하는 것을 반대․대적․충돌하며, 반면에 영의 소욕들은 욕체가 원하는 것들을 반대․대적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육체의 소욕들과 영의 소욕들, 옛 사람과 새 사람 사이에서 인간 딜레마(human dilemma)에 빠져 탄식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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