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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2) 현대복음송(C.C.M.) 1

[ 2010-08-12 11:29:30]

 

현대복음송(C.C.M.) - 세속화된 교회의 대중가요

  

 

    1. 정의(Definition)

 

현대복음송은 세속화된 교회의 대중가요이며 교회의 타락한 음악(노래)을 말한다.

먼저 ʻ현대ʼ(Contemporary)란 이 시대의 철학과 문화로 오염된 그 무엇을 말한다. 따라서 현대복음송이란 이 시대의 철학, 이 시대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음악을 말한다. 이 시대의 철학, 이 시대의 문화란 이시대 다수 사람들의 정신상태, 의식구조, 사고방식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생활양식을 말한다. 영어에서 contemporary는 modern과는 구별된다. 현대복음송은 이런 시대의 철학, 이런 시대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음악이니만큼 그런 음악은 어떠한 음악인가를 가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2. 기원(Origin)

 

사탄의 제1의 무기는 음악(The First Weapon)

사탄의 원시 상태(original state)는 에스겔서 28장 12-15절에 잘 묘사하고 있다. 사탄이 타락하기 전에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높은 지위에 있는 천사를 계명성(morning star)이라고 하였는데, 영어성경 KJV에는 루시퍼(Lucifer)로, NASB에는 새벽의 별(star of the morning)로, NIV에는 새벽별(morning star)로, 아침의 아들(son of the dawn)로 번역되었다(사 14:12). 타락하기 전 그의 영광은 지혜와 아름다움으로 가득하였으며 흠이 없었다(겔 28:12, 15).

그러나 사탄은 하나님과 동등한 지위를 갖기를 욕망하였고, 다른 천사들과 인류를 지배하기를 욕망하였으며, 심지어 하나님과 같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통치하기를 욕망했다(사 14:12-14).

그리하여 사탄은 범죄, 타락하므로 천국에서 추방되었고 그때에 그와 함께 한 무리들 즉, 천사들 3분의 1이 함께 추방되었다. 타락한 천사는 본성이 악하여 참소하며, 속이며, 시험하며, 파괴하며, 살인하며, 온갖 만행을 자행하는 능력이 있다(마 13:19; 요 8:44; 살전 3:5; 계 12:9-12). 사탄이야말로 마귀들(Devils)과 귀신들(Demons)의 왕이요, 공중 권세를 잡은 자이다(마 12:24; 엡 2:2).

사탄의 제1의 무기는 음악이다. 총․칼․대포가 아니라 음악이다. 사탄은 현대복음송을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에 침투하며 하나님의 자녀들, 특히 청소년들을 중심한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있다. 특히 195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크리스마스 캐럴 같은 찬송곡들을 부르기 시작한 이후로 더욱 혼돈과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3. 현대복음송의 유래

 

1) 현대복음송(CCM)들 중 일부는 신오순절파(방언파)에서 유래되었다.

 

현대 오순절파 운동의 아버지라 일컫는 찰스 팔함(Charles F. Parham, 1873-1929년)은 1905년 미국 중남부 휴스톤에서 ʻ휴스톤성경학교ʼ(Houston Bible School)를 세우고, 현대 방언을 하며 현대복음송을 부르기 시작하였다.

팔함의 흑인 학생들 중 한 명인 세이모어(W. J. Seymour)는 로스앤젤레스 시(市) 아주사 거리(Azusa St.)에서 목회를 하면서 현대복음송을 불렀다. 손뼉을 치며, 몸을 좌우로 흔들고 춤을 추며, 타악기들을 연주하며, 악기가 없으면 냄비나 프라이팬이나 빨래판 같은 것들을 두드리며, 껑충껑충 뛰거나, 교회 안을 뛰어 돌며 현대복음송을 불렀다.

 

2) 현대복음송들 중 일부는 블루스와 재즈에서 유래되었다.

 

블루스(Blues)는 미국 동남부 멕시코만에 위치한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흑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음악이다. 블루스 음악의 가사들은 대부분 노예, 가난 등의 슬픈 내용들을 담고 있으며, 곡들은 재즈(jazz)의 형태를 취한다.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트럼펫(trumpet), 트롬본(trombone), 클라리넷(clarinet), 색소폰(saxophone) 같은 악기들을 연주하며 쉰 목소리(husky) 같은 음성으로 노래를 부른다. 블루스 음악은 흑인들의 대중가요이다.

재즈(Jazz)는 유럽 음악의 화성구조와 아프리카 음악의 복잡한 리듬의 영향을 받은 즉흥성이 강한 음악으로 블루스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므로 블루스와 재즈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3) 현대복음송들 중 일부는 팝송에서 유래되었다.

 

팝송(Pop song)이란 영어로는 Popular Song(인기있는 노래)으로 다수의 세상 사람이 즐겨 부르는 대중가요를 말한다. 다수의 세상 사람이 즐겨 부르는 대중가요란 물론 가사나 곡조가 모두 세속적인 노래들이다. 현대복음송들 중 일부는 팝송에서 유래되었으므로 리듬이 대중가요와 거의 구별할 수 없다.

 

4) 현대복음송들 중 일부는 찬송곡들을 편곡하여 부르는 노래들이다.

 

하우킨스(Edwin Hawkins, 1943년- )는 신오순절 계통의 흑인 피아니스트요 합창단 지휘자로, 영국 회중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인 다드리지(Philip Doddridge, 1702-1751년)가 작사하고 림바울트(Edward Rimbault)가 작곡한 ʻ오 해피 데이ʼ(O Happy Day, 우리말 번역, 주의 말씀 받은 그날)를 빠른 템포에 드럼과 솔로, 알토들의 백그라운드 화음을 가(加)하고, 피아노로 화음과 리듬을 섞어서 편곡하였다. 감정은 레이 찰스(Ray Charles)같이 가사 하나하나에 악센트를 주어 당시 톱(top) 40곡 중 첫 번째로 올랐다.

 

5) 현대복음송들 중 일부는 찬송의 토착화에서 유래되었다.

 

찬송의 토착화(Contexualization)란 찬송의 가사를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노래들(민요들)의 가락․리듬․곡조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현대복음송 애호자들은 현대복음송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말하기를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집에는 서양의 가곡․민요․가요․국가 등도 들어 있다. 그와 같이 우리도 우리 고유의 정서와 가락․리듬․곡조에 맞는 노래를 부르는 것도 좋다. 신토불이의 찬송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판소리․굿거리․살풀이․농악․민요 등의 음악 형태들로 찬송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향린교회와 같은 일부 교회들은 벌써부터 그렇게 부르고 있다.

 

6) 현대복음송들 중 일부는 록 음악에서 유래되었다.

 

록음악(Rock Music)에서 유래된 현대복음송을 일명 ʻ크리스천 록음악ʼ(Christian Rock Music)이라고 부른다. 미친 듯한 고성(loud voice), 전자 기타, 드럼, 심벌즈, 신디사이저 같은 타악기들의 전쟁소리 같은 요란한 소리들이 계속 반복되어 육신을 흥분시키고 자극한다.

 

이외에도 온갖 세상의 타락된 노래들이 복음송이라고 하는 가면을 쓰고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행 20:28)에 침투해 들어와 암, 독버섯, 누룩처럼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다.

오! 하나님 아버지여! 이 패역한 세대에서, 그리고 이 타락한 열린예배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옵소서!

 

 

4. 현대복음송의 특징들(The Characteristics of 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현대복음송(C.C.M.)의 특징은 춤추며 노래하는 것이다.

 

1)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원래 손뼉을 치며(hand crapping) 열광적으로 찬송을 부르는 것은 신오순절 계통(신비파)의 교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은 예배시간이나 또는 부흥회와 같은 특별 집회 때 손뼉을 치면서 찬송을 불러왔다. 그러나 지금은 교파를 초월하여 상당히 많은 교회들이 손뼉을 치면서 찬송을 부른다. 그들은 시편 47편 1절,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라는 말씀을 오용한다. 그러나 소위 현대복음송이 교회들 안으로 들어오면서부터는 열광적으로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던 예배행위가 점차적으로 양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며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현대복음송을 부르는 면으로 양상이 바뀌고 있다. 물론 손뼉을 치면서 현대복음송을 부르는 것이나 양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며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면서 현대복음송을 부르는 것이나 모두가 육신의 감정적인 면에만 치우치는 것은 다를 바 없다.

 

2) 양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며 노래를 부른다.

 

오늘날 현대복음송을 애창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양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며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부른다. 이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시작된 흑인들의 블루스와 재즈 음악(Blues and Jazz)의 형태이다. 이는 마치 세상의 열린 음악회 같은 곳에서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며 몸을 율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과 같다. 현대복음송들의 곡조와 창법 그리고 현대복음송을 부르는 사람들의 제스처(gesture)가 열린 음악회 같은 곳에서 대중가요를 합창하는 세인(世人)들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랴!

 

3) 손유희를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손유희란 율동과 말 못하는 청각장애인의 언어인 수화(sign language)를 혼합한 것을 말한다. 소위 젊은 청춘 남녀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교회 앞에 나와 손유희를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근래에는 찬양학교, 율동학교들이 있어서 소위 찬양사역자들과 손유희 반사들을 양산한다. 손유희를 못하면 주교 반사 자격도 없고 가르칠 수도 없는 시대가 되었으니 분명히 말세의 징조가 아닌가!

물론 열린예배 보는 교회들에서 하는 손유희와 청각장애인들의 수화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청각장애인들의 수화는 의사소통의 유일한 수단이요 방편이다. 입으로 말하지 못하니 손짓으로 말하고 찬양하며, 귀로 듣지 못하니 눈으로 손동작을 보면서 의사소통을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각장애인들의 수화는 정당하고 옳다. 그들은 수화로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하심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느끼고, 깨닫고, 찬양하는 것이다.

 

4) 워십 댄스를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워십 댄스(Worship Dance)란 찬송이나 복음송의 내용들을 춤(몸의 동작)으로 나타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5) 현대무용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 부활절 같은 절기 때와 총동원 전도 주일 같은 때에는 청춘 남녀들이 몸에 꽉 붙는 옷, 앞가슴이나 하체부분이 드러나는 옷을 입고 신성한 강단 위에 올라가서 휘황찬란한 조명을 받으며 리듬 음악에 맞춰 발랄한 춤을 추는 것이 교회마다 대유행이다. 춤사위로만 메시지가 전달되는 셈이다.

 

6) 꽃촛불인형머플러 등을 가지고 춤추며 노래를 부른다.

 

열린예배 보는 교회들은 예배순서 중에 10-20명의 여자들이 한 조(a group)가 되어 머리에 꽃송이를 꽂고, 목에 머플러를 감고,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몸을 율동적으로 흔들면서 춤을 추며 현대복음송을 부른다. 이들은 청년회나 여전도회를 중심한 각 부서들이 경쟁이나 하듯 다투어 전 대원이 사치한 의상들을 갖춰 입고 소품들을 늘 새롭게 바꾼다. 여기에 드는 경비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이러한 모습을 한국에 복음을 전했던 초창기 선교사님들이나 신사참배까지 거부하였던 경건한 하나님의 종들이 바라본다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과연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성경이 말하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인가?(요 4:24; 롬 12:1)

 

7) 뮤지컬을 한다.

 

뮤지컬(Musical)이란 대중 오락적인 음악극이다. 다시 말해 노래․춤․연극․의상․분장․무대장치․조명 등에 의해 양식화된 음악극이다.

남녀 신도들이 노출된 옷을 입고, 짙은 분장을 하고,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조명이 비추는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대사(연기자가 각본에 따라 하는 말)를 외며, 춤을 추며, 연극을 한다. 말세로다.

 

8) 힙합을 추며 노래를 부른다.

 

힙합(Hip Hop)이란 문자적으로 힙(Hip)은 ʻ엉덩이ʼ를, 합(Hop)은 ʻ껑충껑충 뛰다ʼ라는 뜻이다. 따라서 힙합 음악은 타락한 청소년들이 거지 같은․허스름한․헐렁헐렁한 옷을 입고, 괴상한 모자를 쓰고, 엉덩이를 들썩들썩이고 껑충껑충 뛰면서 허튼 노래를 지껄이는 것을 말한다.

원래 힙합은 1970년대 미국 농장에서 흑인들이 부르기 시작한 것으로 브레이크 댄스(Break Dance)라고도 한다. 그 이유는 춤을 추면서 노래하다가 노래는 멈추고 춤만 추다가 다시 춤과 노래를 같이 하기 때문이다.

힙합은 비트(beat)가 강하고 소리가 크며, 반문화적(counter culture) 은어와 욕설, 섹스, 마약, 기성사회에 대한 반항과 비판 등이다. 이런 타락한 힙합을 추며 소위 현대복음송을 부른다.

 

9) 크리스천 록음악을 부른다.

 

크리스천 록음악(Christian Rock Music)이란 빈약한 기독교의 가사를 록음악의 형태(rock music style)로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크리스천 록음악은 현대복음송들 중 가장 타락한 교회 음악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록음악 악기들인 기타, 전자 기타, 드럼, 심벌즈, 키보드 등을 연주하면서 발광을 한다.

워렌은 크리스천 록음악을 새 노래(New Song)라고 하면서 새 노래를 부르라고 강조하며 시편 96편 1절의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는 말씀을 오용했다.

‣ 또한 워렌은 그의 저서에서 “음악은 현대적이어야 한다. 음악의 가사들이 더 근래의 것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음악 스타일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날마다 듣는 것이어야 한다. 교회가 해야 할 첫 번째 일들 중의 하나는 오르간을 밴드로 대체하는 것이다. … 몰아붙이는 박자(beat)를 가진 큰소리의, 쉰 목소리의 음악이 그의 회중들이 듣는 종류의 음악이다.”라고 했다.

‣ 또 그는 “우리는 주말 집회 때 정말 소리가 크다. … 나는 말한다. 우리는 그것을 낮추지 않을 것이다. 어린아이 같은 회중들은 음악을 느끼기를 원하지, 듣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또 “우리는 클래식, 컨추리 뮤직, 재즈, 록, 레게(서인도 제도 자마이카 기원의 록 뮤직), 경음악, 심지어 랩도 사용한다”라고 말했다.

“We used classical, country, jazz, rock, reggae, easy listening and even rap.”

 

답손은 “우리는 록음악을 사용해야 하는가? 한마디로 대답은 ʻ예ʼ이다”라고 말했다.

“Do we have to use rock music? in a word, the answer is yes.”

 

10) 장구 치며 한국 민요가락에 맞추어 현대복음송을 부른다.

 

장구 치며 춤추며 우리나라 민요가락에 맞추어 흥에 겨워 현대복음송을 부르는 것을 저들은 찬송의 토착화라고 한다(유명해 국악선교예술단 (02) 391-1599. 유명해 여자 목사(학장)).

 

비평:

찬송은 더 이상 부르지 않는다. 좋은 음악, 나쁜 음악이 없다? 노래는 모두 같다? 누구든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은 좋다? 메시지는 다양한 스타일로 전달될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노래를 부른다? 록․레게 심지어는 랩도 부른다? 교회가 완전히 세속화되고 타락한 증거이다. 이것은 철저한 주관주의, 개인주의, 상대주의, 쾌락주의의 생각으로서 진리의 절대성과 보편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은 철저한 인본주의자들의 다원주의적 사상이다. 이것은 소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탈현대주의)의 현상이다.

 

주관주의(subjectivism)는 개인의 생각․태도․느낌․주장만이 옳다는 주의이다. 따라서 주관주의는 결코 객관성이 없다.

크리스천 록음악은 기독교의 저속한 복음송 가사와 사탄의 음악인 록음악의 형태로 구성된 가장 타락한 교회 음악이다. 열린예배의 주요 음악인 크리스천 록음악이 어떠한 음악인지를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록음악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

개인주의(Individualism)는 자신만을 위하는 철저한 자기 중심의 이기주의이다. 타인들의 안녕에는 관심이 없다.

상대주의(Relativism)는 절대적 표준, 가치, 판단,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주의이다. 따라서 상대주의는 표준, 가치, 진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상대주의적 사상은 절대주의가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쾌락주의(Hedonism)는 자신의 육체의 쾌락만을 위하는 향락주의이다. 정신적․영적 세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크리스천 록음악은 세상에서도 가장 타락한 음악(사탄의 음악)인 록음악 형태로 나타난다. 강단을 무대로 만들고, 조명 장치를 요란하게 하고, 음란한 무늬의 청바지 같은 옷을 입고, 강단 위에 올라가 몸을 상하좌우로 강하게 떨고 흔들며, 기타치고 드럼 치며 고성으로 악을 쓰며 노래한다.

기타는 하체 중심부까지 내려뜨리고 좌우로 마구 흔들면서 줄을 튕긴다. 드럼(대북․소북․중북)을 북채로 터져라 때리며, 키보드를 띵띵 땡땡하며, 심벌즈로 계속 챙챙 치며(round medal brass), 전자 앰프의 볼륨(volume)을 높이고, 마이크를 잡고 악을 쓰며 노래를 부른다.

이 같은 현상은 오케스트라 연주회(관현악 연주회) 같은 곳에서는 물론 세상의 열린 음악회 같은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타락한 장면들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이 세상에서도 가장 타락한 댄스홀(dance hall)이나 사탄의 음악인 록음악 공연장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우리는 인류 초기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를 때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르며, 고성으로 노래를 불렀다는 기록이나 정보를 찾아볼 수 없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노래를 부를 때 악을 쓰며 고함을 지르며 고성으로 노래를 부른 일이 없었다.

 

이런 소리들과 음들은

① 거칠다(raw), 투박하다(blunt), 난폭하다(wild).

② 혼란한 혼동된 음(chaotic sound)이다.

③ 음이 저속(vulgar)하고 교양이 없다(rude).

④ 사람들의 정신 상태를 마비시킨다(mind-numbing).

⑤ 사람들을 최면시킨다(mesmerizing) -열광시킨다(frenzy).

⑥ 청각을 상실시킨다(hearing damage).

⑦ 예술적 가치는 빵점이다(zero value).

⑧ 사람들을 타락시킨다.

 

우리는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이나 사용하는 악기들이 회중의 귀에 거부 반응이 없도록, 청각을 상실하지 않도록, 정신적으로 타락하지 않도록 음량(volume)을 조절해야 하며, 출력을 제한해야 하고, 마음을 진정․안정시키고, 이성의 지배를 받는 순수한 감정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찬송 지도를 올바로 해야 한다.

이 세대의 소위 현대복음송을 무엇에 비유할꼬! 출애굽기 32장에 의하면 모세와 여호수아가 시내 산으로 올라가다가 여호수아는 중도에 머물게 하고(출 24:13), 모세만이 산 위에 올라가 하나님과 대면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십계명을 하사하시고, 모세는 산에서 내려오다가 여호수아를 다시 만나 이스라엘 진영으로 같이 내려왔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가까이 내려갈 때에 이스라엘 백성의 떠드는 소란한 소리가 들렸다. 이스라엘 진영에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이스라엘의 진에서 전쟁 소리 같은 소란하고 요란한 소리가 난다”라고 말했다(출 32:17). 모세는 “내가 듣기에는 요란한 소리, 시끄러운 소리, 떠드는 소리”라고 말했다(출 32:17-18). 모세와 여호수아가 내려와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거기에 제사하고, 춤을 추며, 소란하고 요란한 노래들을 부르고 있었다. 그것을 목도한 모세는 노하여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불사르고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리고 그 물을 그들이 마시게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들은 40년 동안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 생활을 하지 않았는가!

모세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산 밑에서 불평하며, 반역하며, 불안하며, 혼돈하며, 타락하여 배도하며, 전쟁 소리 같은 소리(sounds like war)로 노래하며 춤추던 그 노래들과 오늘날 자신들의 여흥을 위하여 전자 기타 줄을 때리며, 북을 치며, 손뼉을 치며, 몸을 뒤흔들면서 부르는 현대복음송이 무엇이 다를꼬!

 

손뼉을 광적으로 치며 찬송 또는 현대복음송을 부르는 것이 성경적인가?

 

손뼉을 치며 찬송 또는 현대복음송을 부르는 사람들은 시편 47편 1절의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예배에 손뼉 치는 것을 합리화한다.

 

비평:

손뼉 치는 것은 기쁨의 한 외적 표현이다. 그러나 시편을 기록할 당시는 음악적으로도 고대에 속한다. 유감스럽게도 히브리인들의 순수 음악 유품 같은 것도 전혀 남겨져 있지 않다. 다만 히브리 음악은 질질 끌어 나가는, 즉 시를 읊는 것같이 가사를 읊음으로 노래를 불렀다. 가사의 곡은 첫 부분이나 끝 부분에 음을 다소 높이거나 낮추는 정도였다. 고대음악은 음의 고저나 리듬이 없는 단조로운 음악이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기뻐 받으신다. 시편 47편 1절의 ʻ손뼉을 치며ʼ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넘치는 기쁨으로 마음껏 찬양하라는 말씀이요, 광적으로 손뼉을 치며 예배드리라는 말씀이 아니다.

구약시대 예배의식(제사 의식)에 손뼉을 치는 일이 없었으며, 회당 예배의식에도, 신약시대 예배의식에도, 그리고 기독교 역사 2천 년 기간에도 광란적으로 요란하게 손뼉을 치며 예배드리는 일이 없었다. 광적으로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는 예배의식은 최근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과 광신도들의 부흥회 같은 집회들에서부터 시작되어 지금은 교회의 성역 없이 퍼져 나가고 있다.

음악은 영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에 영향을 미치듯이 육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음악의 육체적 반응은 머리를 흔들거나, 손뼉을 치거나, 발바닥을 두드리는 것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런 반응들은 이성의 지배를 받는 범위 안에서의 반응이어야 한다. 주석가 박윤선 박사는 “손뼉을 치는 것은 기쁨이 충만한 행동이니 그저 기쁨으로 찬송해야 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손뼉 치는 것을 종교의식처럼 가지라는 명령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5. 현대복음송의 문제점들(Problems)

 

현대 세속화된 교회 음악들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1) 현대복음송의 작사자작곡가들은 자질자격이 부족하다.

자질이란 타고난 성질과 품격을, 자격이란 전문직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인격․지식․기술․경험 등을 갖춘 것을 말한다. 그런데 현대복음송의 작사자․작곡가 대다수는 자질과 자격이 심히 부족하다.

교회 음악의 올바른 작사자, 작곡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천적으로 타고난 예술적 자질(소질)과 재능이 있어야 하며, 후천적으로 그 소질과 재능을 잘 개발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소정의 전공 과정을 이수하고, 그 전공 분야에서 상당한 경륜을 쌓아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교회 음악은 종교 음악이니 만큼 바른 신앙과 신학적 지식과 인격이 갖춰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복음송의 작사․작곡가(소위 찬양 사역자)들 다수는 교회 음악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자격을 구비하지 못한 무자격자들이 태반이다.

그러므로 일찍이 라오디게아 공의회 문헌 제59항은 찬송시를 사사롭게 하거나 예배에 쓰이는 것을 금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나 성곡들을 작사, 작곡한 사람들 다수는 참으로 믿음, 지식, 인격, 자격이 구비된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대표적 인물들은 마틴 루터(Martin Luther), 모차르트(Mozart), 바흐(Bach), 하이든(Haydn), 헨델(Handel), 헨리 퍼셀(Henry Purcell), 멘델스존(Mendelssohn),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토마스 켄(Thomas Ken), 아이작 왓츠(Isaac Watts), 필립 다드리지(Philip Doddridge), 탑플래디(Augustus M. Toplady), 존 뉴턴(John Newton),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 제임스 몽고메리(James Montgomery), 레지날드 히버(Reginald Heber), 존 케블(John Keble), 존 메이슨 닐(John Mason Neale), 존 헨리 뉴만(John Henry Newman), 호라티우스 보날(Horatius Bonar), 후레드릭 윌리엄 훼이버(Frederick William Faber), 토마스 켈리(Thomas Kelly), 세실 프란시스 알렉산더 여사(Mrs, Cecil Francis Alexander), 샤롯 엘리옷(Charlotte Elliott), 캐더린 윈월트(Catherine Winkworth), 존 다이크(John B. Dykes), 조지 제임스 웨브(George James Webb), 디모데 드와잇(Timothy Dwight), 토마스 해스팅스(Thomas Hastings), 레이 팔머(Ray Palmer), 사무엘 후랜시스 스미스(Samuel Francis Smith), 브래드베리(William B. Bradbury), 패니 제인 크로스비(Fanny Jane Crosby), 윌리엄 제임스 컥패트릭(William James Kirkpatrick), 윌리엄 하워드 돈(William Howard Doane), 말트비 다벤포트 밥콕(Maltbie Davenport Babcock), 필립 폴 블리스(Philip Paul Bliss) 등이다.

그런데 오늘날 현대복음송 작사․작곡가들은 어떠한가! 기타만 좀 칠 줄 알면 아무나 작곡하고, 너나없이 가사들을 쓴다. 음성만 조금 좋다 싶으면 영락없이 찬송사역자라고 이름 붙이고 또 그렇게 행세하며 교회들을 순회, 공연한다. 어떤 교육과정을 거치고 자격요건을 갖췄으며 누가 사역자라는 직함을 주었는가? 기름 부어 안수라도 했단 말인가? 그들 다수는 찬송을 작사, 작곡할 자질과 품격과 자격이 없다. 그들이 바로 주님의 보혈로 값 주고 사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노래로 세속화시키는 사람들이 아닌가?

 

2) 현대복음송은 가사 내용이 너무나 빈약하며 잘못되었다.

 

① 현대복음송 대다수는 내용이 빈약하다. 자격이 결여된 무명의 작사자들의 작품이고 보니 가사의 내용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현대복음송들에서는

㉮ 종교개혁 이후의 4형태의 찬송들,

㉯ 성경 말씀들을 가사로 작곡한 교회 합창들(anthems),

㉰ 기독교 교리를 가사로 해 작곡한 찬송들,

㉱ 영적 각성과 영적 전쟁을 위한 찬송들,

㉲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위한 고난에 관한 찬송들

㉳ 배교와 불신앙으로부터의 성별에 관한 찬송들

㉴ 구원․영생복락에 관한 찬송 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대복음송에서는 주님의 보혈(blood), 십자가(cross), 고난(suffering), 영적 전쟁(battle), 성별(separation), 구원, 영생에 관한 가사들을 찾아볼 수 없다. 현대복음송에는 복음이 없다.

 

② 현대복음송 대다수는 내용이 잘못되었다. 현대복음송 다수는 가사의 신앙적․교리적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다. 신앙적으로 유치하거나 교리적으로 정통성이 아닌 내용들이 많이 들어 있다. 현대복음송은 신앙의 지로(知路)가 되는 내용들이 결여되고 잘못되었으므로 성도들의 신앙의 성장을 오히려 감퇴시키며 잘못된 길로 오도하고 있다. 구속의 은총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 신앙적 지식이 정립(正立)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3) 현대복음송은 곡조가 단조로우며 세속적이다.

 

① 현대복음송 대다수는 곡조가 단조롭다. 곡조가 단조롭다는 것 자체만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모차르트(Mozart, 1756-1791년)의 곡들은 단조롭지만 고상하여 더욱더 감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현대복음송은 빈약한 내용, 잘못된 내용에 단순한 곡조들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는 쉬우나 영감이 없고 은혜가 되지 않는다.

 

② 현대복음송 대다수는 곡조가 세속적이다. 현대복음송의 멜로디(음율, 가락)와 리듬(박자의 흐름), 하모니(화음)가 전혀 신앙인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 현대복음송의 곡조들은 세인들의 대중가요 곡조들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현대복음송들 중 크리스천 록음악은 사탄의 음악인 록음악과 리듬이 조금도 다를 바 없다. 현대복음송들은 가사 내용이 빈약하고 잘못되고 곡조가 세속적이어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면서 세속에 물들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복음송은 타락한 교회의 ʻ대중가요ʼ(Pop music)이다.

 

4) 현대복음송은 감정적인 면에만 치우친다.

 

예술에 있어서 감정적인 면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그 감정이란 순수한 마음(pure heart)에서 나오는 순수한 감정(pure emotion)이어야 한다. 순수한 감정에서만이 순수한 예술(pure art)이 창출된다. 그런데 현대복음송을 부르는 사람들이 육신적, 감정적인 면에만 치우친다는 말은 육신의 욕망(desires) 또는 정욕(lusts)에만 치우친다는 말이며 지적인 면은 소홀 또는 등한시한다는 뜻이다. 사람은 지식․감정․의지의 균형을 이룰 때 비교적 온전한 인격자가 되는 것처럼, 음악도 지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intellectual and emotional)의 균형과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좋은 음악이 된다. 사람이 지식․감정․의지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인격적으로 불구자(handy cap)가 되는 것처럼, 지적인 면이 결여되고 육신의 감정적인 면에만 치우친 음악은 음악의 균형과 조화를 상실한 불구의 음악(crippled music)이 된다.

그런데 현대복음송은 육신적, 감정적인 면에만 치우치므로 지적인 면의 빈약․결여․상실을 가져온다. 그러므로 현대복음송은 지적인 면과 감정적인 면의 균형과 조화를 상실한 불완전한 음악(deficient music)으로, 음악의 본래 모습(integrity)을 상실했다. 지적인 면이 결여된 현대복음송은 지적인 면으로 전달해야 할 내용 또한 결여되므로 내용이 매우 빈약하다. 내용이 매우 빈약하고 보니 음악의 영감(inspiration) 또한 빈약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따라서 현대복음송은 육신의 감정에만 치우친, 음악의 자질이 결여된, 내용이 빈약한, 영감이 없는 불구의 음악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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