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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체면 유지

[ 2019-06-28 12:54:59]

 
한국인의 특유한 성품 중에 체면유지라는 것이 있다.
체면은 '나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타인을 의식'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명예와는 다르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양반의 체면 때문에 굶주리고도 굳세게 참아왔고, 추워도 더운 척을 했으며, 배가 불러도 밥을 먹어야 했다. 체면 때문에 울고 싶어도 울지를 못하고 참아야 하는 생활을 익숙하게 해왔다.
어쩌면 체면은 한국인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고 문화 형성을 했다.

성경의 문화 본고장인 유대 나라에는 이런 체면 따위는 없다.
예를 들면,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이 있을 때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 어떤 범법자의 재판을 할 경우 그를 공회 앞에서 재판을 실행하려면 2~3명의 증인이 있어야 하고, 범법자가 지은 죄가 사실이기에 구형을 내릴 때에도 배심원 전원의 만장일치라는 것이 없다.
만약에 만장일치로 구형이 됐을 때에는 그 구형은 무효가 됐다. 반드시 판결할 때 몇 사람의 반대와 이의 제기가 있어야만 한다.
이런 규정을 정해놓고 재판을 하는 것은 범법자가 불리하게 매도당하는 불이익을 주지 않기 위함이고 구형을 할 때 외부로부터 있기 쉬운 압력과 비호, 간섭을 배제하기 위한 민주적인 제도이다.
법을 집행할 때 그 사건이 주는 지배적인 여론과 당위성이나 명분 때문에 배심원들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본심을 희생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유대인들의 합리적인 사고에서 비롯된 제도이다.
이런 유대의 군중심리에는 체면이 존재하지도 못하고 존재해야 할 필요성 역시 없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이를테면 어린아이가 제일 먼저 말을 듣는 유치원의 경우를 살펴보면, 선생님이 무언가 설명한 후 '여러분 알겠지요'라고 하면 아이들은 획일적으로 ''라고 크게 대답을 한다.
선생님의 물음에 어린 아이들은 전원일치가 되어 대답을 한다. ''라는 대답은 선생님의 요구에 조건 없이 순응을 하겠다는 것이고, 선생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된다.
어려서부터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선생님과 호흡을 함께한다.

물론 어린이들 중에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는 어린이는 몇 명이 되지 않는다.
몰라도 잘 아는 것처럼 대답을 할 때 선생님의 체면이 유지된다. 초등학교에서도 이런 체면치레는 계속된다. 알지 못하는 학생도 모두 알 것이라는 지배적인 추세 때문에 모른다고 하지를 못하고 본심을 희생시킨다.
여기서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독립적인 언행은 분위기상 용납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체면은 식당에 간 어른들에게서 종종 나타난다. 음식을 선택할 때 어느 선배나 선임자가 하나를 선택하면 자신은 그 음식이 그렇게 먹고 싶지 않지만 '나도 같은 것으로' 하고 만다.
이렇게 매사에 있어서 본심은 답답하지만 가슴 속에 숨겨두고 주변의 경황과 당위성으로 본심을 짓누르고 참고 산다.
직장생활에서도 겉과 속을 달리하며 친구를 사귀고 상사를 모시고 살아간다.
이런 표리부동이 이중구조 사회를 형성하게 됐고 이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이단자로 낙인이 찍히게 된다.
이런 당위와 본심의 이중구조는 자신을 강하게, 개성있게 살아가지 못하게 했다. 다시 말하면 당위와 본심이 일체구조가 아니고 복합구조가 되어버렸다.
한국인의 이중적 의식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체면이 한국교회에 깊이 들어와 있다. 교회 내에서도 당위는 극대화되고, 개인의 본능이나 감정, 욕구, 의견과 같은 본심은 극소화시켰다.

막연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당위성을 강조하면서 유치원 선생님이 어린이를 향해 '알겠지요?' 하는 식으로 주장하면서 ''라는 대답을 강요해 왔다.
교회당을 건축하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 '축복받는 일'이라는 당위만 강조하며 신자들에게 '아멘'을 강요하고 따라오기를 바랐다.
체면유지의 현상이 부흥회에서 더욱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강사의 설교 내용이 신자들을 납득시키고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은 믿어야 하고 내가 하는 말을 따라야 한다'는 당위를 주장하면서 청중들에게 '아멘'을 강요했다.
설득력이 없는 인격을 가지고 있는 부흥사가 더욱이 청중들의 '아멘' 소리에 집착을 한다. '아멘'의 유무가 자신의 체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청중 개인의 의견이나 생활조건, 그의 희망, 감정, 본능은 무시당하고 표리부동한 일체감이 있을 뿐이다.
만약에 이때 청중 한 사람이 질문을 한다거나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부흥회를 인도하는 사람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고 당위성에 대한 도전이 되고 일체감을 파괴하는 커다란 죄가 될 수 있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그 강사가 너무 지나치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하는 말을 하지만 그 다음 시간 또다시 일체 속에 들어가 '아멘'을 남발하며 살아간다.
이런 상태의 집회에서 감정과 구호의 일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성과 인식과 결의의 일치는 있을 수가 없다.
이런 모순된 구조가 계속 반복될 때 지금과 같이 지극히 합리적이지 못한 신앙과 표리부동한 신앙생활이 지속되어 더 이상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종교가 될 것이다.
교회 지도자가 고급 승용차, 해외선교여행, 성지순례, 부동산 매입 등을 하며 비정상적인 사치와 방종의 생활을 영위하며 지낼 수 있는 것은 능력도 아니고 하나님의 택하심 때문도 아니다.
다만, 지나친 명분 세우기에 집착했기 때문이고 당위성 주장으로 대중의 의사와 인격과 본심을 말살시켰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교회는 가정(사적자기)과 사회(공적자기)를 일체화 시킬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신앙과 행위를 일치시켜야 하고 무엇보다도 신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깊이 인식하고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자들의 체면유지를 위한 처세는 버려야 할 것이다.
(민정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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