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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정치 참여

[ 2019-05-27 13:42:37]

 
몇년마다 이 좁은 땅의 나라는 선거 때문에 홍역을 치르게 된다.
가뜩이나 경제는 몇년 사이에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로 곤두박질을 치고 있고, 정치는 몇 사람의 버릇없는 장난 때문에 혼란하고, 사회기강은 '총체적 난국'이라고 하는 제목하에 능력있는 대통령은 별안간 '범죄와 전쟁'이라는 이상한 포고령을 내려 시내를 온통 경찰로 도배질을 하고 있는 때에 날씨마저도 을씨년스럽기가 이를 데 없다.
우리나라에서 벌였던 잠실벌의 24회 올림픽은 세계가 놀랍게 성공적이라고 하여 경탄을 금하지 못할 정도였고 올림픽이 끝나고 그 여세를 몰아 세계로 모처럼 진출해 보려는 푸른꿈이 영글기도 전에 민주화를 한다고 제일 먼저 실시한 것이 공개재판과 같은 '청문회'였다.
몇 사람의 정치가를 불러다가 실컷 욕하고 삿대질을 하였고 방송사들은 넓다란 화면에 가득 실어 욕하는 모습과 욕먹는 모습을 바라보게 하여 온 국민들에게 분노와 책임전가와 '들추어내기'를 시켜 흥분하도록 부추겼고, 어떤 국회의원은 청문회에서 말장난 잘 했다고 십대 가수가 별안간 유명해지듯 '청문회 스타'라는 별명이 붙었고 해당되는 국회의원은 정말 '스타'가 된 것으로 착각했는지 좁은 땅 넓게 살아보겠다고 한동안 요란을 피웠다.
청문회를 통해 실컷 나라님도 욕했고, 재벌도 욕했고, 삿대질을 하며 '죽여라, 살려라'의 함성소리를 들을 때 마치 빌라도 법정앞 뜰에 모여든 유대군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바나바를 놓아주시오' 하고 소리치던 모습과 어쩌면 그렇게 흡사할까.
침을 튀기며 욕하고 살기등등해 하다보니 올림픽과 함께 꽃피웠던 예절과 인정, 협동심, 근면성실한 국민정신은 모두 사라지고 몇 사람만 모이면 나라욕, 권력가들에 대한 불신, 재벌에 대한 저주가 스스럼없이 표현되는 살벌하기 이를 데 없는 살기 좋지 못한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곧 닥쳐 올 대통령선거는 어떻게 치뤄낼지 걱정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분들을 보면 종교도 제각각이다.
남들은 별로 관심도 보이지 않는 일에 내가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내게는 그 일이 크게 보여지기 때문이다.
보편적 상식으로 종교는 아무리 세력이 크고 조직이 강하다 하더라도 조직과 힘의 소비는 종교자체 내에서 해야 하고 종교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건전한 것이지 그 세력이 사회로 나온다든지, 아니면 사회의 힘을 빌려서 종교의 득을 삼으려고 한다는 것은 종교가 훼손당하기 시작하는 증세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일부의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고 기대하는 󰡐우리종교󰡑를 가진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선교와 기독교 제반 활동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고 기독교의 실추되었던 위세를 세상만방에 떨칠 수 있는 기회라고 한다면 이는 기독교가 한국에 전도를 시작한 이래 가장 비열하고 기독교답지 못한 발상이다.
기독교가 기독교답지 못한 일이고, 기독교가 제 모습을 잃는 일이 될 수가 있다.
그러니 어떤 후보가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미소띨 것도 아니고 다른 종교지도자를 찾아갔다고 해서 시무룩할 것도 아니다.
이 모두 종교가 정치 세력 앞에 무기력하고 맥을 못추는 모습일 뿐이다. 어떤 종교이고 자신들의 이념과 뜻을 가지고 성취하려면 정치와 결탁하여 뜻을 이루려고 한다는 것은 어설픈 생각이다.
만약에 종교가 정치의 힘을 입으려고 한다면 그때부터 종교 이전에 또 다른 색깔의 '정치집단'이 될 것이다.
정치가 종교를 간섭하고 주장하는 것도 올바른 처사가 못되는 것이고 종교가 정치의 힘을 입는 것도 역시 참된 모습은 아니다. 종교가 자신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면 세상 정치세력에 대하여 선지자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고 비판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가 자란 것 만큼 심성도 좀 의연했으면 한다.
기독교의 신앙은 개인의 경험과 확신으로 시작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평화를 누리지만 이 신앙이 사회에 나와서 실제적으로 적용되는 과정에서 만족이나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하나님의 진리를 세상에 적용할 때 오는 고통이나 아픔이다.
지난 과거에도 기독교가 역사 가운데 현존하고 활동을 할 때 이런 고통과 아픔을 수없이 느끼며 살아왔고 고통을 느낄 때 기독교의 의미와 능력을 펼칠 수 있었지만 기독교가 현실과 타협하고 정치와 결탁해 세력이 생기게 되고 재산이 늘어났을 때에는 외형적으로 영화를 누리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기독교의 존재의미는 탈색이 되고 신성성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이런 것을 기독교 역사를 통해 훤히 알고 있는 신자들이 이론적으로는 사회와 역사를 책임지고 고통을 당하며 아픔을 체험하길 원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사회제도와 정치의 권력하에 안일과 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표리부동한 움직임과 불안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기독교인은 어떤 경우에도 정치에 이용되어도 안 되고 정치를 이용해서도 안 된다.
정치세력에 의존해 기독교의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힘의 논리를 가져서는 안 된다.
사회에서 학연, 지연, 혈연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여기에 기독교가 가세하여 정치세력의 땅 뺏기에 빠져들어가는 조짐은 정치편에도 유익이 못되고 교회편에도 도움이 될 수 없다.
신자가 개인의 자격으로는 어느 정치인을 후원할 수도 있고 지지할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는 일이다.
또한 정치가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기독교에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할 수 있다. 이것은 탓할 수 없는 정치가의 행위이고 생리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치가가 자신들과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지지를 한다는 것은 기독교로서는 자기상실이고 자기도취에 깊이 빠져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정치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정치를 정치답게󰡑 해주고 기독교는 '기독교답게'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다. (민정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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