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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 소록도의 참목회자 김두영 목사를 조명한다

[ 2018-07-23 16:11:14]

 
 '소록도의 영원한 목자' 32년 사역
영육 치유를 통한 전인목회 실천

 
소록도에서 322개월간 한센환우를 위한 '사랑의 목회'를 한 김두영 목사의 사역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의 아들 김중석 목사가 아버지의 사역을 분석했다. (편집자 )

 
19622월에 부임하여 19944월에 공로목사 및 원로목사로 추대되어 은퇴하기까지 322개월 동안의 한센씨병 환우 신자들과의 삶을 다음과 같이 조명해 볼 수 있다.
김두영 목사의 소록도교회 32년 사역은 전인구원(全人救援)과 연합목회(聯合牧會)라는 두 개의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전인구원(全人救援)

1.
영혼구원
지금은 원생이 1천 명을 넘나드나 당시에는 6천여 명의 원생이 있었고 그 90%는 소록도교회에 속한 장로교인이었다. 그 숫자도 상당하거니와 그 질에 있어서 성경을 통째로 외우는 운동이 크게 일어났으며 새벽기도회에 1365일 출석을 불렀으며 성가대가 섰다. 부임 후 3년 만에 중앙교회당을 비롯하여 각 마을마다 교회를 세워 7교회당을 건축하였다. 중앙예배당은 3천 명이 들어가고도 남는 웅장한 건물로 당시 서울 영락교회 본당보다 수용인원이 많았다. 교인들의 경제수준은 매우 낮아서 헌금은 말할 처지가 못 되었고, 마침 오마도 간척사업이 벌어져 그나마 노동력 있는 교인들은 모두 징발되고 병약한 사람들만 남은 상황에서 이 다수 예배당 건축사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소록도에서 신앙생활하던 환우 신자들이 정착촌으로 나가서 교회부터 세우고, 소록도에서 배운 것을 실천함으로써 일반인과 다름없이 정상생활로 정착되는, 구라사업(求癩事業)의 성공을 가져왔을 뿐 아니라, 정착지마다 중심에 교회당을 세우고 전국에 정착교회를 설립하는 것을 지도하여, 성진노회(聖進老會, 현 남중노회)를 조직, 수십 교회를 형성함으로써 한때 총회에서 14위의 교세를 이루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김목사는 생을 마칠 때까지 본 노회를 은혜 가운데 지도하였다.
2. 육신구원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은 병원이다. 그러나 환자가 낙심하지 아니하고 의지를 가지고 임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치료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소록도에 수용되어 들어오는 한센씨병 환자들은 극도의 심적 공황(恐慌) 상태에서 들어온다. 이들이 기독교 신앙에 접촉되고 거듭남으로써 그들의 질병 치료에 큰 효과를 보게 되었다. 소록도는 국립나병원이 위치한다. 교호가 소록도 병원에 속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병치료는 교회의 커다란 영향 속에 큰 진전을 보았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신앙을 투철하게 생활화하는 가운데 질병의 고통 속에서도 성공적으로 탈출했다.
육신구원의 또 한 측면은 김두영 목사의 신유역사이다. 김두영 목사는 32년 소록도 사역 중에 한센씨병이 아닌 다른 병이든 교인들을 기도하여 낫게 되는 사례가 다대하였고, 사고 나서 고통받는 사람을 기도하여 낫게 하는 사례도 여러 건이 있었다.
육신구원의 결정판은 믿음 가운데 찬미하며 숨을 거두고 부활에 참여케 되는 데 있다. 소록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숨을 거두지만 슬픔보다는 소망이요, 누구보다 부활의 소망 가운데 주님 품에 안기고 납골당에 유해가 안치된다.
 
3. 경제구원
소록도 교인들은 매우 가난했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것 외에는 없었다. 기껏해야 몇 평의 텃밭을 일구어 채마를 일구고 몇 마리의 닭을 키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경제랄 것도 없었다. 그들의 헌금은 육지에서 100원 할 때 10원 수준이었다. 그러면 그들이 지금은 정착촌에서 건강한 사람보다 더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경제적 구원에 소록도교회와 김두영 목사는 주도적인 역할을 감당했다.
그는 일정시대 일본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소록도에서 교인들에게 푼돈밖에 안 되는 돈이지만 모아서 신용조합을 결성토록 했다. 푼돈도 쌓이면 힘을 발휘했다. 그들의 소비는 보잘것없었지만 그거라도 모아서 구매하는 소비조합을 결성토록 했다. 마늘과 농작물 재배가 텃밭 채마를 일구는 수준이던 것을 일제히 같은 것을 파종, 수확하여 중간상인을 배제하고 직접 도시에다 출하했다. 영농조합을 결성한 것이다. 닭 몇 마리를 키우던 것이지만 이것을 일제히 닭이면 닭, 돼지이면 돼지를 사육하여 중간상을 배제하고 도시로 출하하는 축산조합을 결성했다. 이런 방법으로 협동의 효율성과 경제적인 구원을 일으켜 갔다. 그리고 이 방법을 체득한 교인들은 정착촌에 나가서도 배운대로 함으로써 경제적인 자립을 할 수 있었다.
전국 정착촌교회를 건축함에 있어서 경제적인 문제가 많았는데 <사랑의 금고>라는 신용조합을 만들어서 여러 예배당 건축에 다대한 도움을 주었다. 또 이 금고는 교인들에게도 경제적인 유익을 주었다. 이 사랑의 금고를 위해 김두영 목사는 직접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호소하여 운영기금을 조성하였다.

4.
사회구원
환자들은 몸이 병들었고 마음이 병들었고 영혼이 병들었고 경제가 붕괴되었었지만, 김두영 목사는 교인들로 하여금 신앙으로 마음의 병을 고치고 영혼의 병을 고치고, 경제적으로 구원을 얻게 하고 보니, 정착사업의 가능성을 찾게 되었고 많은 사람이 소록도를 나와서 정착촌에서 자립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정착촌 아이들은 근처 학교에 가기가 힘들었다. 주민 학부형들의 배척으로 소동이 나서 신문에 번번이 기사화되곤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건강인들이 정착촌으로 찾아와 살게 되었다. 오히려 건강인들이 정착마을에 깃들이게 된 것이다. 한센씨 병력자들의 재사회화는 여기서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들은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 되고 지역사회의 유지가 되고, 이제는 해외에 나가서 선교사업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하는 사회의 모범생이 되었다. 그들은 건강인이 버린 아이들을 입양하여 훌륭한 사회인으로 키웠다. 과거에는 사회에서 냉대를 받았으나 이제는 사회를 살찌우고 살려내는 사람들로 역사하게 된 것이다.
김목사는 일찍이 동경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유학생들을 위한 신우학사를 열었고, 조선총독의 신사참배를 제지하기 위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였고, 북한에서 해방이 되자 조만식 선생과 더불어 건국준비위원회 일을 하였고, 공산치하가 되자 이북교회 5도연합회 청년대표로서 김일성정권과 맞선 일이며, 민족의 비극인 한국전쟁시에는 기독교의용군을 조직하여 국방군에 편입시키기도 하였다.

5.
교육구원
지금 한국에서 교육은 엄청난 문제에 직면하고 있고 교육입국이 아니라 교육망국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처해져 있다. 소록도에서 김목사는 <록산중학교>를 세웠고, <성실고등성경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에서 환우학생들은 소담스런 교육열을 불태워 갔다. 환경은 열악했다 할지라도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와 가르치고자 하는 열의가 엮어내는 결과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다. 적지 않은 목회자가 배출되었다. 소록도를 천형의 섬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슴나라로 바꾸었던 것이다.

연합목회(聯合牧會)

한국교회는 선교 2세기에 접어들어서 교세 증가가 둔화되더니 멈추었고, 어떤 교단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게 되었다. 이제 앞으로 교회는 개교회주의를 벗어나서 연합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경쟁적인 태도를 버려야 한다. 내 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의식도 버려야 한다. 한국교회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정신은 어려서부터 교육되어야 가능하다. 개교회에서 시작되어야 가능하다.
소록도교회는 김두영 목사가 부임한 후에 <8개 교회당>을 가지게 되었고, 두 곳에 예배처가 세워졌다. 각 교회당은 지역적으로 각 골짜기마다, 마을마다 떨어져 있다. 예배당도 교인들이 열심을 내어서 지었고, 장로도 뽑고 안수집사 권사도 투표해서 세우고, 성가대 조직, 모든 일을 자율적으로 해결하여 나가는 독립교회와 같다. 그러나 소록도 8교회는 또한 하나다. 여러 예배당 당회가 전체 소록도교회 <한 당회>를 구성한다. 교역자도 순환목회를 한다. 내적으로는 분할 독립적으로 운영되지만 밖으로는 하나로 움직이는 것이다. 독립의 효율성과 연합의 묘미로 아주 잘 살린 케이스가 바로 소록도 모델이다. 만약 한 예배당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성과를 얻으면 곧 다른 예배당에도 퍼진다. 한 예배당에 불상사가 생기면 곧 다른 예배당에도 경종이 울린다. 육지 교회들이 연합은커녕 분열과 분쟁을 거듭할 때 소록도교회는 연합을 이루고 그 열매를 따가고 있었다. 우리는 한국교회 2세기의 가능성을 소록도교회 연합목회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김두영 목사의 생애와 사상을 신학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느 한 개인을 위해서라기보다 한국교회를 위하여, 후진들을 위하여,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 핵심은 역시 <전인구원><연합목회>에 있을 것이다. 기독교회가 추구하는 구원은 영혼구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를 고쳐주셨고, 배고픈 자에게 떡을 먹여 주셨다. 억눌린 자를 자유케 하셨다. 진리에 어두운 자를 깨우쳐 주셨다. 이것이 바로 전인구원이 아닌가! 또한 예수님은 자신이 교회의 머리라고 하셨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21세기 한국교회는 연합정신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917. 1. 3.
평안남도 대동군 추올미면 이천리(현 평양시 편입)에서 김경호 장로의 맏아들로 태어나서
1995. 1. 28. 경기도 부천에서 78세를 일기로 소천. 슬하에 아들 김의석목사, 김중석목사, 김승석목사, 사위 이상호 강도사, 박창훈목사를 남김.

2004. 11. 현재 소록도에는 560명의 나환 교우가 있고, 평균연령은 72. 박창훈목사는 2002. 11. 28. 필리핀에서 나환 사역 중 선교사로서 순직.
 
글쓴이: 김두영 목사의 아들 김중석 목사(사랑의교회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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