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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향해 계속 달린다 1

[ 2018-01-22 15:13:11]

 
운정 정정숙 교수의 자전 에세이

그리움의 본향


운정 정정숙 교수의 자전에세이를 연재한다. 신앙인으로, 개혁주의 신학자로, 한평생 총신대학교에서 교수한 그의 삶을 통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방향을 조망한다(편집자 주)
고향은 그리움의 본향이다. 멀리 떠나 있어도 바람처럼 몰려오는 추억의 파편들로 인해 지난 날을 형상화한다.

내 고향은 경상북도 문경시 호계면 막곡리 (지금은 도로명 주소로 인해 막곡로 라고 부르지만 내 가슴 속에는 막곡리로 남아있다)이다. 경북 북부지역인 점촌에서 10리 길이다.
막곡리는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윗마을인 양지마을, 아랫마을, 건너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살았던 양지마을은 50여 호의 청주 정씨가 모여사는 집성촌이고, 아랫마을은 황씨들이, 건너 마을은 김씨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 또한 양지마을에서 1km 떨어진 곳에 막곡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영강이 흐르고 뒤로는 오정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글자 그대로 시골 마을이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서 10리 밖의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고향집에서 살았다. 내 유년기의 소담스런 추억은 모두 이곳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그 아련한 추억이 쌓여있는 고향을 떠난지도 오래 되어 6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다녀올 수 있는 곳이지만 마음으로만 생각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그분들을 뵙기 위하여 방학 때마다 고향집을 찾았지만 두 분이 돌아가신 후에는 가야 할 일이 없었고, 아버지를 선산에 모시기 위해서 다녀온 후에는 한번인가 잠시 고향마을을 둘러보고 온 것이 전부이다. 바쁜 일상이나 게으름 때문일까? 아니면 추억의 퇴색일까?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가 있겠지만 다녀 오지는 못하고 세월이 갈수록 한폭의 수묵화처럼 그리움만 더해 간다.
어릴 적의 삶이란 누구나 비슷할 것이지만, 6.25 한국 전쟁 전후의 혼란기에 유년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애틋한 추억보다는 아픔과 고통의 날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집에서 나와 골목길을 나가면 호계초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당시에는 별다른 놀이 기구가 없었고 놀만한 장소도 없었기에 나와 친구들은 학교 운동장을 놀이터로 삼았다. 학교 운동장에 있는 나무 그늘에서 공기놀이도 하고, 고무줄 놀이도 하고, 달리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 여름이면 강가에 나가서 골뱅이도 잡고 물고기도 잡았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익어가는 벼를 보호하기 위해서 들에 나가 참새 떼들을 잡기도하고 닭모이를 만들기 위해서 아카시아 잎이나 크로바 잎을 따오고 골뱅이를 주워다가 사료에 넣어 먹이면서 250마리의 닭을 키워 학비에 보태기도 하였다.
요즘의 고상한 표현을 빌린다면 '자연친화적인 놀이'를 하고 가계를 도우며 학비를 벌어서 자비량하는 생활교육을 받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속에서 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가슴 속에 그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 1-3학년 시절에는 전쟁을 피해서 청도, 밀양까지 피난을 가기도 했고, 비행기의 폭격을 피하여 땅콩밭에 목만 숨기며 죽음의 고비를 넘기기도 하였고, 하룻밤 자고 나면 인민군이 마을에 들어와서 닭, 돼지, 소들을 끌고 가고 양식을 빼앗아가서 배곯고 살았던 고통스러운 날들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서도 친구들과 어울리면 행복했었다.
고향 이야기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이다. 이분들은 집안의 첫 손주인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셨다. 부모님이 직장 관계로 서울에서 살았기에 고향 집에 남겨진 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성장했다.
한학과 유교 신봉자인 엄격한 할아버지는 면소재지인 마을에서 소금과 담배 등의 전매점을 운영하면서 근검절약하며 마을의 어른으로 살아가셨다. 할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나면 마을의 장년층은 물론이고 울던 아이도 울음을 멈출 정도로 그는 유교적인 예의와 질서의 모범이었고 집성촌의 어른으로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이런 그림자가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내게 남아있는 것은 어릴 적의 가정교육과 가족적인 분위기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우리 집은 450평 정도의 넓은 집이었고, 집 뒤로는 오죽이 자라고 있어서 사계절 푸른 대나무를 바라볼 수 있었고, 돌담을 둘러서 있는 감나무, 배나무, 호도나무, 살구나무, 포도나무, 석류나무 등의 과일 나무들과 화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마당에는 펌프가 있어서 동구 밖에 있는 샘에 물을 길으러 가지 않아도 되어서 여간 다행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건물은 방 5. 마루, 부엌과 광이 딸린 안채와 외양간, 창고, 방 두개가 딸린 아래채가 있었다. 이 집에서 조부모님과 결혼 전인 고모들과 함께 살았다. 아래채에는 농사와 소를 먹이는 머슴 둘이 거처했고 외양간에는 건강한 소 한마리가 있었다. 담하나 사이로 친척들이 살고 있었기에 촌수나 항렬보다는 형제 같은 삶의 연속이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은 무한하다. 내가 할머니가 되고 보니 자식보다 손주들에게 정이 더 가는 것을 느낀다. 아마도 우리 할머니도 그러셨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한번도 칭찬을 해 주시지 않으셨지만 밤마다 안방에 오셔서 이불을 덮어주시고 토닥여 주신 것을 보면 겉으로는 엄격하셨어도 속사랑은 대단하셨던 것 같다. 이렇게 지극한 두분의 사랑을 한몸에 받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멀리있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외로움과 허기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를 마치고 10리 떨어진 점촌에 있는 문경중학교에 입학했다. 우리가 입학을 하고 몇달 후에 문경여자중학교가 생겨서 우리 동기생들이 문경중학교의 마지막 여학생들이 되었다. 따라서 친구들의 결속이 각별하였다.
나는 중학교 3년 동안 교통편이 없어서 매일 등하교를 10리 길인 4km를 걸어서 다녔다. 해가 긴 봄부터 가을까지는 아침 시간이 일러서 어려움이 없었지만 겨울은 밤이 길어서 해가 늦게 뜨고 아침밥이 늦어 지각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 다녔으나 하교시간은 주변의 자연에 대한 관찰과 사색의 시간이었다. 영강을 끼고 걷는 등하교 길은 철따라 각종의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피었다. 나뭇잎들이 피고 자라는 모습과 꽃잎들을 바라보며 걷는 길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가 있었고, 가을철에는 메뚜기를 잡아서 돌아오기도 했다.
지금은 그 길에 마을버스들이 시간 맞춰서 다니기 때문에 학생들이 걷거나 뛰어다니는 일이 없어졌지만 우리 세대는 이 정도의 길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늘 걸어 다녔다.
코스모스가 줄지어 핀 강뚝길을 걷다보면 마음은 항상 푸른 하늘을 날아다녔다. 이 길을 계속 가면 어디가 될까? 부모님이 살고 있는 서울일까? 아니면 더 먼 곳일까? 그 길은 계속 달리고 싶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서울을 거쳐 미국, 또 더 멀리 아프리카 남단까지 가게 되었다. 걷고 또 걸으니 새로운 세계가 나타나곤 했다.
이렇게 고향의 강뚝길은 꿈을 향해 가는 길이다. 봄꽃을 바라보며 소녀는 달음질 하였고 코스모스 향기에 취하여 시간을 잊었다. 그 소녀가 처녀가 되었고 다시 아줌마를 거쳐 할머니가 되었다.

같은 건물, 같은 거리라도 보는 시기에 따라 그 규모가 다르다. 어린 시절에는 우리 동리와 초등학교가 크게 보였는데 지금에는 조그만 시골학교, 시골 마을로 보인다.
몇 년 전 초등학교 동창회에 처음 참석했더니 그 옛날의 소년 소녀는 다 어디로 가고 할매 할배만이 가득하였는데 내가 내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바쁘게 살아가다가 문득 고향 생각이 날 때가 있다. 스산한 가을바람이 불어올 때 더욱 그러하다. 뒷집 영이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공부 잘하던 상수는 무엇이 되었을까? 어릴 때 재잘거리던 친구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추억은 아름답다. 그것이 하나의 꿈으로 끝날 수 있어도 그리움 자체가 큰 선물이 아닐까? 그리움의 본향인 고향은 언제나 옛 모습으로 내 마음 속에 살아있다. 고향을 방문하여 변해버린 모습이 허전할지라도 그리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이게 한다.
세월을 역주행하며 어릴적 꿈을 키운 고향집을 생각한다. 모두들 훌훌이 떠나 빈집이 된 그곳, 관리인이 관리를 하고 있지만 밤이면 마을 사람들의 공동 주차장이 되었다는데 이곳을 어이할까?

그런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경상북도 도청에서 경북 출신 명사들의 생가보존 프로젝트를 개설하고 나를 그 반열에 넣어 주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곳을 󰡐생가보존󰡑한다고 한다. 이 일을 위한 선결 조건은 내부 합의란다. 유산상속권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동의해야 진행할 수 있단다. 일이 이렇게 되다보니 내부 조율이 어렵다.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금전이 연결되어 있으니 생각의 차이가 크게 나게 마련이다. 이것이 어떻게 전개될지 미지수이다.

오늘도 도시의 번화한 빌딩 속에서 새들이 노래하고 꿈이 흐르던 고향을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생각의 화려한 궁전인지 모르지만 생각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내 고향 막곡의 양지마을. 이름 그대로 촌스러운 마을이다. 그럼에도 그곳에는 꿈이 있고 사랑이 있었다. 꿈의 마을을 그리워하고 변해버린 풍경을 아쉬워한다.
우리의 영원한 고향은 어디일까? 내 고향 막곡의 양지마을을 통해 영원한 본향을 바라본다.
 
 

필자 정정숙 교수

정정숙 박사는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사회학 (문학사),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신학석사),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교육학석사), 미국 리폼드신학대학원(Reformed Theological Seminary)에서 기독교교육학(기독교교육학석사)을 전공하였다. 미국 필라델피아에 소재한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에서 목회상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목회상담학박사)를 받았다. 또 미국 로욜라대학교(Loyola College of Maryland)에서 이상심리학을 전공하였고( (Ph.D.Cand.),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텔렌보쉬대학교(University of Stellenbosch)에서 기독교상담학을 전공하여 신학박사(Th. D.)학위를 받았다.
그후 정교수는 36년간 총신대학교 기독교교육과 상담학 교수로 _상담대학원장_교육대학원장_사회복지대학원장_도서관장_기독교교육연구소장 등으로 섬기다가 은퇴하였다. 정교수는 또한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의 실천신학 Adjunct Professor로 섬겼다. 정교수는 또한 한국성경적상담학회장, 한국인간발달학회 이사, 미국상담학회(ACA)와 미국 심리학회(APA), 그리고 미국기독교상담학회(AAPC)의 정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뿐만 아니라 정교수는 서울 역삼동에 한국상담선교연구원을 개원하여 목회자와 사모, 평신도를 위한 상담교육과 실천에 힘써왔으며 계간학술지 상담과 선교를 창간하여 84호까지(2014년 겨울호 현재) 발행해 왔다. 정교수는 또한 2012년 월간<창조문예>의 신인작품상 현상모집 수필부분에서 신인작품상을 수상해 수필가로 등단했다.
저서와 논문 및 수상으로는 운정 정정숙 전집(45)과 기타 10권의 저서와 34권의 역서 간행 및 111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서 기독교상담학은 기독교출판문화상 신학부문 최우수상을 받았고 일본어로 번역 출판되었고(일본 생명의 말씀사)중국어로 번역이 끝나 중국과 대만에서 출간 중이다. 인간발달과 상담,Ⅱ」는 총신학술 최우수상을 받았으며 은퇴 시에는 대한민국 근정포장 및 훈장(이명박대통령상)을 받은 바 있다. 정교수는 또한 월간 <창조문예>에서 수필부문에서 신인작품상을 받았으며, <운정팡세>로 제2회 총신문학상(수필부문)을 수상했다.

현재는 총신대학교에서 명예교수로 섬기면서 일본 고베신학교의 초빙교수로, 한국상담선교연구원 원장으로, 한국성경적상담학회 회장으로 사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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