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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한국전쟁과 기독교의 수난 ②

[ 2017-07-19 15:29:12]

 
김남식 박사

(1)
군인과 민간인의 피해
 
31개월 2일간에 걸친 6.25전쟁 기간에 목숨을 바쳐 자유를 지킨 전사자의 수는 한국군 225784명을 포함해서 유엔군 총 254520명에 달한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으나 전상을 입었거나 행방불명된 사람이 한국군 76655명을 포함해서 유엔군 총 876005명이다. 자유 우방을 위해 참전한 미국의 젊은이 중 모두 157730명이 사상 혹은 행방불명이 됐다. 무명의 이등병에서 위로는 장군에 이르기까지 용감한 전사를 했는가 하면 딘 소장에겐 포로라는 치욕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와 같이 민족의 수난 6.25 전쟁은 유엔군 115463명이라는 엄청난 피해를 남겼다. 유엔군은 131이라는 우세한 공중전을 통해 114대의 항공기 피해를 입은 대신 공산군에는 미그15기를 포함해서 총 1108대를 잃게 했다. 중공군은 꽹과리를 울리며 쳐내려와 인해전술을 썼지만 90만 명이 전사했고 인민군은 52만 명이 죽었다. 그런가 하면 406천 명의 비전투 요원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유엔군의 폭격으로 공산군은 차량 75천 대, 기관차 1천 대, 열차 16000, 교량 2만 개소, 철로 2700개소, 함선 6백 정, 탱크 410대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유엔군의 북진 그리고 1.4후퇴와 함께 685316명의 북한 동포가 피난길에 올랐다. 북한의 기습은 남한의 주민들에게도 피난길을 강요해서 2394918명이 부산, 제주 등지로 대이동을 했다. 그래서 󰡐남반부 9개 도의 해방 지구 108개 군, 1168개 면, 13654개 리의 지방 주권 기관의 선거 사업을 성공시켰다󰡑고 북한은 떠들어댔다.
그들은 현물세 25%의 강징과 수탈, 차용증 1장으로 재산을 마구 털어가는 등 악몽의 90일간의 점령 기간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 말고도 128736명이 학살되는 등 총 139968명의 민간인이 비극을 겪었다. 이 중 244663명은 모진 고문에 견디다 못해 숨져 갔는가 하면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지금도 아픔이 가시지 않은 부상자는 229625명이나 된다.
84532명이 붉은 쇠사슬에 묶여 애통의 미아리고개를 넘어 지옥에로의 행진을 강요당해서 지금까지 소식조차 알 길이 없다.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진 가족 친척 형제도 33212명이나 된다. 소위 '해방전쟁'이란 미명 아래 입가에서 젖냄새가 가시지도 않은 어린 16세의 소년부터 반백이 다 된 50세의 늙은이까지 끌어내어 강제로 의용군에 입대시킨 수는 40만 명이 넘는다.
인민군의 강제 의용은 1차 때 16세에서 20세까지, 2차 때는 16세에서 30세까지, 3차 때는 16세에서 35세까지, 4-5차 때는 16세에서 40, 후에는 50세까지로 나이를 올렸다. 이들이 키보다 큰 소련제 장총을 메고 낙동강 전선으로 끌려가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 없었다.
6.25전쟁이 나기 전 해인 1949년도 남한 인구 중 20-24세 연령층이 8.5%를 차지했으나 6년만인 1955년도엔 8.2%로 줄어들었으며, 25-29세 계층은 6.7%에 불과했다. 전쟁이 얼마나 많은 젊은이의 목숨을 앗아갔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6.25전쟁 당시 부산의 인구가 1429726명이었다. 이와 맞먹는 수가 북한의 학정 90일 동안에 죽어 가고 혹은 강제의용군으로 끌려갔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은 2백만 명의 양민의 목숨과 14만 명의 병력을 구제했다. 유엔군의 무제한 북진 명령이 내렸을 때 패주하는 공산군 측은 도, , , 면 단위로 학살 인원을 미리 정해놓고 수의 확인을 위해 눈, , 귀 등을 잘라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남한에서의 만행 말고도 북한은 6.25전쟁의 예비 학살과 보복 학살을 그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소위 조국해방전쟁역사에는 미군이 가장 많은 학살을 했다고 기록했다.
경남 남해에서 인민군 제6사단 (사단장 방호산, 195012월 영웅 칭호를 받았으나 휴전 무렵 숙청)이 패주할 때 76명의 청소년을 북한에 데려간다고 속이고 경남 산청군의 어느 산중에서 사살, 얼마 후 시체로 발굴된 일도 있다.
군경 가족, 교원, 봉급 생활자 등이 많이 집결된 수원, 대전, 광주, 김천, 전주, 군산, 천안 등지에서는 한 곳에 3천 명, 어떤 곳에서는 5백 명씩 몰려있다가 붙들려 철사로 손이 묶여 생매장 되거나 총살당했고 군경 가족은 부인, 유아를 가리지 않고 생매장을 했으며 우는 어린애를 삽으로 쳐죽이는 만행도 서슴지 않았다.
황해도 웅진읍에선 3백 명의 읍민을 학교에 모이게 하고 그들을 산으로 이동시킨 후 기관총으로 집단 살해했는가 하면, 강원도 강릉 구정면 예천리의 지서 앞에서는 40명이 살륙당했다.
대전에서는 1천 명의 애국 인사들을 끓는 물에 집어넣어 죽이기도 했다. 할당제 살륙이 공개되어 입장이 난처해진 김일성은 무정, 김한중, 최강 등에게 책임을 씌워 면직시키기도 했다.
국군 18연대가 원산에 입성했을 때 원산 감옥에 수감되었던 280명이 학살당했음을 발견했다. 이들 중에는 한명준 목사, 김봉식 선부, 이희염 목사 등이 섞여 있었으며, 중고등학교 학생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강릉과 원산 사이에선 인민군이 총탄을 아낀다고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져 죽인 것만도 3천 명이 넘었다. 평양 감옥에는 1천이 넘는 시체가 쌓였고 어머니를 껴안고 같이 죽은 6-7세의 어린이들과 젖을 먹으려다 죽은 어린이도 있었다. 평양에서는 인민군이 도주하면서 철골리 지역에 집결시켰던 2500명을 학살했고 귀호리 부근에서는 4백 명을 죽였다.
이밖에도 기정리 공동묘지, 청룡한 공동묘지에 생매장 등 학살 행위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평양역에서의 학살에 많은 납북 인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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