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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3부작을 낸 정정숙 박사

[ 2016-08-30 13:50:05]

 

한 평생 기독교상담학과 교육학을 교수하며 
성경적상담학 정립을 위해 헌신과 봉사한 학자

총신대학교 명예교수 정정숙 박사가 회고록을 3부작으로 출간하였다. 평생을 총신대학교에서 봉직한 그는 한국교회 현장 특히 신학교육의 현장에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였다. 노경에 들어 지난 세월들을 반추하며 역사를 통해 미래를 전망하는 지혜를 회고록을 통해 제시한다. 그를 만나 회고록의 행간의 이야기를 듣는다(편집자주)

 

△ <회고록>을 간행한 것을 축하드립니다. 보기 드문 기획을 통해 역사에 대한 반추를 하고 있다. 회고록 집필의 동기와 내용에 대해 설명해 주시지요.

▲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어서 감사드립니다. 처음부터 회고록을 생각하고 저술한 것은 아니고, <기독신보>에 󰡐정정숙 교수의 인물 산책 : 삶의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매월 1회씩 전면특집으로 30회 연재한 것이 모여서 한권의 책이 된 것입니다.

나의 회고록은 3부작으로 기획하였습니다.

제1권은 <여정, 꿈 그리고 나의 삶-(회고록 1)>로 '내가 본 나'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회고록의 형태입니다.

제2권은 <삶의 길목에서 만난 사람들-(회고록 2)>로서 대학생 때부터 만난 52명의 각계 인사들에 대해서 기록했습니다. 여기에는 고황경, 박형룡, 박윤선 박사 등의 스승 그룹과 하비 칸, 제이 아담스, 다키우라 시게류 박사 등의 외국 교수와 친구들, 이종윤, 정성구 박사 등의 동료 신학자들, 최성구, 김태규 목사 등의 동창 목사들, 해외 선교사와 제자들 등의 다양한 그룹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저자의 교우록이고 한국 교회의 이면사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3권은 <그리움의 묵향:정정숙 선생님을 그리며-(회고록 3)>인데 102명의 각계 친지들과 제자들이 교수직 은퇴를 기념하여 그들이 본 나에 대해서 분석하고 평가한 책입니다.

 

△ 회고록을 이렇게 3부작으로 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것은 역사의 기록인 동시에 자기 성찰의 길이라고 보는데 …

▲ 회고록이 자기 자랑의 글이 아니라 개인사를 중심한 역사의 기록이라고 봅니다. 역사의 기록은 옛날부터 있어 왔습니다. 로마시대에는 세 가지 방식의 역사 기록이 있었습니다. 하루의 일(역사)을 기록하는 디아리움(diarium), 월별로 역사를 기록하는 칼렌다리아(calendaria), 그리고 년별로 역사를 기록하는 아날레스(annales)가 그것입니다. 역사 기록에는 아날레스가 중심을 이루었지만 디아리움과 칼렌다리아의 기본 자료를 통하여 오랜 세월동안 인간의 삶과 그 이력을 기록하는 히스토리아(historia)가 편찬된 것입니다. 이 회고록은 내가 살아온 삶의 역사에 대한 고백이며 회한의 기록입니다.

 

△ 교수님은 한평생 총신대학교에서 봉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경험하고 보고 들은 것이 많을 것입니다. 교수님이 경험한 교수 사역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 저는 평생을 사당동의 총신대학교에서 보냈습니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생으로 3년을 보냈고, 외국에서 공부한 몇 년을 빼고는 강사로 시작해서 임시전임, 전임대우,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 정년보장교수 등으로 36년을 봉직하고 은퇴하였고, 그 후 명예교수로 지금도 매 학기 강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행동 반경이 매우 좁은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한 평생 외길을 걸어 왔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교수님의 이력을 보면 늘 '최초'가 따라 다니는데 개척자의 삶을 사신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나는 경북 문경 출신으로 불신앙의 가정에서 처음으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온 가정이 예수님을 믿고 목사, 장로, 권사 등 헌신자들이 나왔으니 감사하지요. 나의 이력에는 '최초'라는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최초라는 의미는 개척자의 길이기도 하고 고난의 길이기도 하지요.

서울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제1회 졸업생입니다. 1961년 서울여자대학교가 개교되었을 때 기독교 여성 지도자를 만든다는 건학이념이 좋아서 입학한 첫 입학생입니다. 초창기의 학교였기 때문에 장점도 많았지만 어렵고 불편한 점도 많았지요.

그 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당시에는 신과라고 불렀음)에 입학하기 위해 영등포 산업선교기관에서 일하면서 1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때는 여학생들을 M.Div.과정에 받지 않았지만 1년간 기도하며 기다리는 동안에 여학생을 받는다고 학칙을 바꾸어서 첫 M.Div.과정의 입학생이 되었습니다. 3명의 여학생이 입학하여 한 명은 도중에 결혼을 하여 학업을 중단했고, 저와 안춘진 권사가 졸업을 했지요.

그 후 제1차 유학 후에 총신대학교 교수가 되어서 가르치다가 1985년에 제2차 유학을 미국의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으로 갔습니다. 여기서 목회상담학을 전공했는데, 그때까지 이 학교에서는 여자에게 박사학위를 준 적이 없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로 코스웍과 인턴십 및 종합시험을 마치고 학위논문이 통과되어 이 학교의 개교 60주년이 되던 해에 졸업을 했고, 개교 60년만에 첫 여성박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또 하나의 벽을 허문 것입니다.

다시 총신대학교에 복귀하여 교수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그 후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텔렌보쉬대학교에서 기독교상담학 전공으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받은 두 번째 박사학위였으며 그 후에 미국의 로욜라대학교에서 이상심리학전공으로 철학박사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이런 계속된 학위과정의 공부는 이론과 실천 현장에서의 필요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후 총신대학교에서 첫 여자 정교수가 되었습니다(내 성이 정씨이니 항상 정교수로 불리었지만 말입니다).

 

△ 예장 합동측이라는 보수교단에 소속된 여성 신학자로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기억나는 일들 중에서 한두 가지를 소개해 주십시오.

▲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첫 번째 벽은 신학대학원에 여학생을 받아주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1년을 기도하면서 기다렸고 학칙이 바뀌어서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입학시험 치러 갔더니 같은 수험생이 󰡒목사도 못될 여자가 여기 왜 왔느냐?󰡓고 질문하더군요.

두 번째 벽은 총신대학교 전임교수로 임용될 때의 일입니다. 당시 학교의 실권을 잡고 있는 이들이 '가정을 가진 여자가 어떻게 교수가 될 수 있느냐?'라고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사들의 강력한 요구로 전임교수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 벽은 보직을 맡는 일에도 항상 여자이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학과장이나 연구소장 정도는 말이 없었으나 처장, 원장, 부총장, 총장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도서관장이나 대학원장(교육대학원장, 상담대학원장, 사회복지대학원장, 지도자대학원장 등)까지의 보직은 허락되었으나, 대학원장도 총신대학교에서 최초의 여자교수로서의 보직이었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말이 많았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졸업식 때 졸업하는 학생의 모자 위의 술을 넘겨주는 행사절차 때문에 여자가 남자 머리위에 손을 얹을 수 있느냐는 문제로 장시간의 토론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벽이 있었습니다. 능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남녀의 성 차이를 먼저 보는 풍토 속에서 지내 왔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으나 개척자의 입장에서 헤쳐 나가야 했기 때문에 힘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매사에 조심하고 근신하며 생활해 왔습니다. 예를 들면, 학생들과 후대의 여교수들의 자리매김을 위해 자녀 출산까지도 방학 때에 출산을 하도록 계획하고 실천해왔습니다.

 

△ 교수님은 많은 저서를 내신 줄 알고 있습니다. 한 평생 연구의 결실들이 후학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고 봅니다. 저서에 대해서 소개해 주십시오.

▲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최근에 와서 그동안 낸 책들을 묶어서 전집으로 출간하고 있는데 전45권입니다. 기독교교육학, 상담학, 가정사역 등을 중점적으로 다루었고 최근에 와서는 칼럼집도 내고 있습니다. 이 책들이 내가 살아온 삶의 자취이며 내가 추구해온 학문적 결실입니다. 강의를 처음 시작한 10년은 전공분야의 좋은 책을 번역을 하여 자료로 활용했으나, 10년이 지나고부터는 그동안 강의하며 연구한 자료들을 정리하여 책을 출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기독교상담학>이 일본어와 중국어로 번역되어 아시아권에 󰡐성경적 상담학󰡑을 확산시킨 일입니다.

초창기에 자료로 사용하던 저의 번역서는 모두 39권입니다. 상담학 분야가 주류를 이루고 있고, 개혁주의 신학과 기독교교육 분야의 귀한 저서들을 우리나라에 소개하였습니다.

 

△ 교수님은 우리나라에 '성경적 상담학'을 처음으로 도입하고 이것을 한국의 실정에 맞게 이론화하고 적용시키고 있는 줄 알고 있습니다. 은퇴 후에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말씀해 주시시지요.

▲ 은퇴를 했지만 가르치는 일과 상담 사역의 일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2016년 가을 학기에도 박사과정을 비롯하여 3과목 8시간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힘 있을 때까지 가르치는 사역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또한 1994년에 '한국상담선교연구원(www.한국상담선교연구원.com)'을 세워서 오늘까지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상담 훈련을 시키고 <상담과 선교>라는 계간 학술지를 84호까지 만들어 왔으며, 상담사역을 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고, 1995년에 세운 '한국성경적상담학회'의 회장직을 다시 맡아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 두 기관을 통하여 성경적상담학이 뿌리 내리도록 노력하려고 합니다.

또한 은퇴를 한 후에 마음속의 이야기들을 글로 남기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 속에서 월간<창조문예>를 통하여 수필가로 등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페이스북에 <운정팡세>라는 짧은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이것을 책으로 묶어서 현재 세권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자녀들은 '일 좀 그만하고 놀라'고 성화이지만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고 하듯이 놀아 본 적이 없으니 놀 줄을 모르고 그냥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국교회에 바라는 점이 무엇입니까?

▲ 제가 바라는 것은 많습니다. 그러나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거짓말 하지 말고 살자'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줄 압니다. 또 '교회를 교회답게 하자'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교회가 교회 구실을 못하니 사회에서 비난받고 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일에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합니다. 무엇 보다도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에는 이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오랜 시간 감사합니다.

▲ 감사 드립니다. 신문사의 발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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