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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에 등한히 하면 배신당한다

[ 2022-12-20 10:32:44]   

 
우리 총회 역사에서 가장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돌아서서 배신하여 총회를 소요케 한 일이 종종 있어왔다
이미 고인이 되었으나 당시 실력자였던 이영수 목사의 주변에는 책사도 있었고, 재력가도 있었으며, 출세를 위해 자리를 얻고자 하는 이들도 많이 있었다.
 
한번은 김○중 목사가 필자에게 전화를 하였다. '김목사, 나 김○중이야. 나 김목사를 특별히 한번 만나야겠는데 서울로 좀 올라오면 좋겠소.'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김○중 목사가 제시하는 대로 서울로 올라왔다. 장소는 서울시청 옆 구 국회의사당 부근의 당시로서는 제일 유명한 양식당이 있는 '외교구락부'였다.
 
김○중 목사는 외교구락부에서 참으로 맛있는 양식을 주문하여 한 배를 채웠다. 음식을 들면서 총회에 돌아가는 이야기를 이것저것 나누다가 대뜸 '요즘 이영수 목사의 근황이 어떠냐?'고 물어왔다. 사실 김○중 목사는 필자보다 이영수 목사를 더 자주 만나는데도 그 같은 질문을 해온 것이다.
 
거기에 더해 '요즘도 이목사 쏘콜하제.'라고 한 마디 던졌다. '쏘콜'이란 콜라에 소주를 곁들인 음료로, 한 동안 이목사의 그룹원들이 남대문시장 부근이나, 대전 한밭의 모 음식점 등에서 종종 소주와 콜라, 맥주와 소주를 혼합하여 마시기를 즐겨한 적이 있었다. 김○중 목사는 그 '쏘콜'의 실체를 알고자 필자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분명 당시에 그런 일은 있었다. 이영수 목사 주변에 하○○, 손○○, 김○○, 또 한 사람 김○○이 만나면 이영수 목사에게 '쏘콜'을 권하는 일이 있었는데, 김○중 목사는 그것을 알고 싶었고, 그리하여 '쏘콜'의 실상을 공개함으로써 이영수 목사를 제거할 의도였다.
 
필자는 김목사의 내심을 간파하고 '그런 일은 모릅니다. 그런 말을 누구에게 들었습니까? 구체적인 말을 듣고 싶으니 아는 대로 말 좀 해주십시오.'라고 되물었다.
 
이때 김목사는 이것저것(술담배는 물론 심지어 여자관계, 돈관계까지) 이야기를 이어갔으나 필자에게 얻은 것이 없자 '나는 김목사가 제일 많이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라는 말을 하고는 필자에게 돈 10만환을 여비로 주었다. 그리고는 '지금 안 해도 되니 일주일 후에 전화주면 좋겠다.'고 하고 헤어졌다.
 
한 주일 후, 약속대로 필자가 전화를 하였다. "김목사님, 한 주일 동안 생각해도 '쏘콜'에 대해 더 이상 아는 것이 없군요."라고 답하자, 김○중 목사는 '에끼, 이 사람아!'라고 호통을 쳤다. 이에 필자는 '김목사님, 목사님 교회로 10만환을 돌려보냅니다.'라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당시 이영수 목사의 측근에는 법률고문인 김○중 목사, 실무자문인 이○학 목사, 그 아래 4인방으로 이○일, 김○채, 손○호, 홍○우 목사 등이 있고, 4인방 외에 김○권 목사, 서○행 목사(이중적 참모) 그리고 그 외에 필자까지 있었다.
 
그런데 제70회 총회 때에 이들의 반란이 성공하여 이영수 목사는 18년 권좌에서 물러나고 그때의 충격으로 간이 녹아 결국 암으로 별세하고 말았다.
 
이들 참모들의 반란 이유를 몇 가지로 요약하면 첫째, 좋은 자리를 안 준다는 것. 둘째는, 청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 셋째는, 돈을 안 준다는 것 등이다.
 
사실 이영수 목사 시절에 그 측근들에게 청탁하는 이들이 많았고, 청탁하는 것마다 효과적 이익을 챙기는 이들이 많았다.
 
그런데도 김○중, 이○학 등이 권력 찬탈을 위해 김모씨, 이모씨, 손모씨, 홍모씨 등이 미국 LA로 여행가서 이영수 목사를 배신하기로 모의한 것이다. 그 모의의 연장선상에서, 이영수 목사를 대적하는 한○수와 이○학을 선봉장으로 부곡온천에서 모인 교역자수양회 때 반란을 시도하고는 제70회 총회를 엎어버렸다.
 
당시 이들의 반란 시도를 사전에 알았으나 손을 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반란자들은 문○○, 유○○ 등 야전군 같은 두 장로를 동원하여 한 사람(유씨)은 이영수 목사가 첩을 두었다 하였고, 또 한 사람(문씨)은 총회 돈을 횡령하였다고 사법에 고발하여 재판을 받게 했다.
 
그리고 70회 총회시 이영수 목사와 함께하는 이들은 청량리의 맘모스 호텔을 본부로 하고 총대들의 숙소로 정하였으나 문○○ 장로가 동원한 보안사 이○○ 씨의 세력으로 인해 맘모스호텔은 총회기간중 정부가 특별히 사용한다는 명목으로 이영수 목사측 예약이 해약되었다. 그뿐 아니라 인근의 주요 여관 모두를 봉쇄하여 결국은 제70회 총회에서 이영수 목사는 패하고 말았다.
 
당시 필자는 두 가지를 얻고 한 가지를 잃었다. 얻은 것은 첫째 '외국시민권자 목회 금지한다.' 둘째 '우리 교단에서 최초로 장애인을 목사로 세울 수 있다'고 결의하게 한 것이다. 70회 총회 촬요 12쪽에 '신체장애로 강도사 고시에 합격한 자 명단'이라는 것이 있는데, 거기에 강동현과 홍성훈이 그 주인공이다.
 
잃은 것 하나는 70회 총회에서 이영수 목사측이 패자가 되자 당시 기관지인 기독신보(현 기독신문) 1면에 특대로 <이영수 김만규 홍○우 목사 등은 면직에> 라는 제하의 기사가 게재된 것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합동총회를 섬겨오면서 가장 유명하게 되고 제일 높은 자리를 얻었던 때는, 이영수 목사 다음으로 김만규를 면직해야 한다고 한 기관지의 톱기사 제목에서 이다. 이처럼 필자에게 면직 2호의 호칭을 준 것은 당시에 실력가이며 이영수 목사의 심복이었으나 등을 돌린 배가(背家)들의 작품이었다.

필자는 전에, 지금은 고인이 된 우○○ 목사에게 '배가야, 신자야'라고 불렀던 일이 있었다. '배'(背)가와 '신자'(信者)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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