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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헌신한 여선교사들 ⑫

[ 2021-08-31 11:39:54]   

 

정정숙 박사

 

(23) 에셀 커를 (Ethel Anstey Currell),  진주의 첫 선교사

 

서부 경남 지방 최초의 진주교회 설립

진주 최초 여성교육기관 '시원학교' 세워


역사적 도시 진주는 오랜 전통을 가진 고도입니다
. 진주에 처음 온 서양인은 1902년 한국에 도착하여 부산을 거쳐 진주에 온 영국계 호주인 의료선교사 휴 커를(Hugh Currell)입니다.


그는
19051020일 밤에 진주에 도착하여 10년간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세워서 교육선교를 하면서 병원을 세워 다각적인 선교를 하였습니다.


휴 커를은
187128일 아일랜드 북부지방인 안트림(Antrim)에서 가까운 칸라우(Carnlough)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는 1892년 벨파스트(Belfast)에 있는 아일랜드 왕립대학교(the Royal University of Ireland) 퀸즈 칼레지(Queen's College)에 입학하였습니다.


그는 목회자가 될 것인가
, 선교사가 될 것인가를 고민하다가 의료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의학을 공부하여 1897년에 내과 전공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는 만주에 의료선교사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는 잉글랜드와 웨일즈에서
1년 반 동안 병원을 개업했다가 호주로 건너와서 의사로 활동했습니다.


1899
년 커를은 안식년으로 귀국한 아담슨(Andrew Adamson, 한국명 손안로)를 만나서 한국의 부산 경남지방에 의료선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빅토리아장로교회 해외선교위원회(FMC)에 한국 선교를 지원하여 빅토리아 주 청년연합회(YMFU)의 파송을 받았습니다.


커를의 아내 앤 내스빗
(Anne Nesbit)은 그가 의사로 일하던 루더글랜(Rutherglen)에서 결핵으로 사망했습니다. 그 후 그는 한국으로 떠나기 전에 루더글랜 감리교회에 출석하는 에셀 앤스티(Ethel Anstey)와 재혼을 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190243일 한국으로 출발하여 519일에 부산에 도착하여 선교의 현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에셀 앤스티는
188138일생으로 19032 월에 장녀를 낳고, 1904년에 차녀 프랜시스를 낳았습니다. 그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부녀들을 위한 주일학교를 이끌어나갔습니다.


호주 장로교회는
1892년 부산에 선교부를 설치하였고, 1905년에는 진주에 선교부를 설치하고 휴 커를을 파송했습니다. 이들은 진주에 이주해 온 첫 서양인으로 서부 경남 최초의 진주교회를 세웠습니다.


1906
415일에 신자들의 자녀들에게 신학문을 가르치고 신앙교육을 위하여 '사립 안동학교'를 세워 커를 선교사가 설립자 겸 교장으로 21명의 학생을 모아 개교했습니다.


그후
19068월에는 에셀 커를의 주도로 여학교를 세웠습니다. 이 학교는 진주에서 처음 실시된 여성교육기관으로 '정숙여학교'라고 이름 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2대 교장의 한국 이름을 따서 '시원여학교'라고 개명했습니다.

그러나 시원여학교는 어려움 속에서 운영되다가 1939년 신사참배의 강요를 거부하다가 폐교하고 말았습니다.


진주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세우고
, 남녀학교를 세워 청소년들을 가르쳤고, 배돈병원을 세워 환자를 치료한 커를 부부는 19169월에 호주로 돌아갔습니다. 이들이 떠나는 날 진주교회 교인들과 남녀 학생들이 남강 뱃머리에 늘어서서 이들을 전송했습니다.


커를은 호주 멜버른에 돌아가서
20년 동안 해외선교위원회 위원으로 봉사하며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글을 발표하다가 1943310일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진주교회는
2011년 교육과 선교를 위한 건물을 교회 본당 옆에 건축하고 '커를 기념 비전센터'라 이름 했습니다.

 

(24) 스콜스 (Nellie Scholes),  진주 여성 교육의 선구자


조랑말을 타고 진주 방문하고

'백정 문제' 해결한 사회적 공헌도

 

아늑한 고도 진주에도 복음의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1905년 진주에 도착한 커를 부부는 진주교회를 세우고, 남녀학교를 설립하며, 병원을 세워서 총체적인 선교사역을 했습니다. 이들을 따라서 스물여섯의 처녀 선교사가 진주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넬리 스콜스
(Nellie Scholes)입니다. 스콜스는 아버지가 교장으로 일하고 있던 빅토리아 칠턴(Chiltern)의 미들 인디고(Middle Indigo)에서 1881년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10살 때 어머니를 잃는 슬픔을 겪었고, 학교 졸업 후 교사가 되어 루더글랜(Rutherglen)에서 근무하였습니다. 여기서 훗날 커를 선교사의 부인이 된 에셀 앤스티(Ethel Anstey)를 만나서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스콜스는 선교사로 한국에 간 에셀과 계속 편지로 교류하다가 한국 선교사로 가기 위해서 훈련을 받고
, 선교사로 임명되어 1907227일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커를 부부가 마중을 나와서 다시 만나게 되었고, 한국 선교의 동역자로서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스콜스는 부산에서 진주까지 조랑말을 타고
411일에 진주를 탐방했습니다. 부산에 돌아와서 어학을 공부하고 그해 10월에 진주에 배속되어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스콜스는 주로 어린이들을 가르쳤습니다
. 진주에 거주하던 선교사 2가정이 휴가로 호주로 돌아가자 진주의 교회와 학교를 스콜스와 켈리 두 여선교사가 이끌어야 했습니다.


1907
년에 진주교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백정 신자들과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겠다는 이들로 인해서 분규가 나고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백정 문제'라고 하면 서울 승동교회가 백정들이 중심이 되었다고 하여 양반들이 함께 예배드릴 수 없다고 새롭게 안동교회를 설립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주교회는 두 여선교사의 노력으로
190781일 주일에 동석예배를 드리는 역사적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계층의 장벽을 깨고 하나가 된 놀라운 역사였습니다.


스콜스
1908년 커를 선교사 부부가 안식년을 마치고 귀국하자 여학교의 책임을 맡아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학교가 정부의 인가를 받았고 스콜스가 교장으로서 헌신하였습니다.


커를은
1908년 진주의 가장자리 비탈에 25원을 주고 사 두었던 땅에 여학교와 진료소로 사용할 방 세 개가 있는 작은 집을 지었습니다.


여학교는 인기가 있어서 몰려온 학생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 백정들과의 동석예배로 진주는 그 당시에 '인권 도시'로 유명했습니다. 이것도 스콜스의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서
1919년에 호주로 돌아가는 중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26세에 한국에 와서 38세까지 독신으로 지내며 교육에 헌신하였습니다.


그의 정성을 잊지 못하여 광림학교 여자부 학교를
1921년에 '넬리 스콜스 기념학교'(Nellie Scholes Memorial School)로 학교 이름을 바꾸고, 한국 이름은 '시원(柴園)여학교'(Scholes' Garden School) '시 교장의 정원학교'라는 뜻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스콜스는 진주에서 처녀인고로
'시 동정'(柴童貞) 또는 '시 교장'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그의 한국 이름은 '시넬리'라고 했는데 성인 스콜스(Scholes)''()라고 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였던 것입니다.


호주선교회는
'그녀의 생애는 이 나라에서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에게 아낌없이 드려졌다 …… 그녀는 자신이 지닌 모든 것들 중에서 대부분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애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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