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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헌신한 여선교사들 ⑪

[ 2021-08-06 09:49:02]   

 

정정숙 박사


(21) 엘리스 아펜젤러 (Alice Rebecca Appenzeller),  첫 외국인 아기가 이화의 상징이 되다

 

첫 선교사의 딸로 한국에서 태어나

오늘의 '이화'의 기틀을 마련하다


대를 이어서 사역한 선교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 그중에서도 특이한 분이 있으니 엘리스 리베카 아펜젤러(Alice Rebecca Appenzeller, 1985-1950)입니다.

그는 한국의 첫 선교사인 헨리 게하르트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와 엘라 닷지(Ella Dodge)의 첫 딸로 어머니 뱃속에서 태평양을 건너와 18851119일에 서울에서 태어난 한국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의 딸입니다.

그는 18864월에 유아세례를 받고 한국에서 유치원 과정을 마친 후 어린나이에 미국으로 가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1902년 아버지 아펜젤러 선교사가 성경번역위원회에 참석차 목포로 항해하다가 순직할 때에 그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1905년 랑카스터(Lancaster)의 쉬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09년에 매사추세츠 주의 웨슬리안대학을 졸업하고 랑카스터의 모교에서 독일어와 역사 교사로 봉직했습니다.


엘리스 아펜젤러는
1915년 감리교 선교사로 부모의 뒤를 이어 한국에 왔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한 후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1920
년에 이화학당 당장서리에 임명되었고, 1921년에 이화학당 당장에 취임하였습니다. 1922년에는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사범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는 '이화'를 위해서 원대한 사역을 하였습니다. 19254월에 이화여자전문학교로 승격시켜 초대 교장에 취임하고, 전문학교와 고등보통학교를 분리시켰습니다.


그는 신촌에
5만여 평의 학교 부지를 구입했습니다. 당시 신촌은 경기도 고양군 신촌면이라는 시골이었습니다. 여기에 터전을 잡고 1933년에 새 교사를 지어 이화동산을 건립했습니다.


엘리스 아펜젤러는
192812월에 학교 교사 건축비 45만 불을 모금하기 위하여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45만 불은 지금도 큰돈이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그는 2년만에 모금에 성공하여 1931년에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이때 동창회가 베푼 환영회에서 󰡒내가 2년 전 미국으로 향해 떠날 때는 어찌나 짐이 무겁고 감당하기 어려웠던지 어떤 큰 힘이 나를 누르는 같아서 내가 타고 가는 배가 파선을 했으면 좋겠다고 까지 생각 했습니다.󰡓라고 그때의 무거운 심정을 고백했습니다.


1932
년에는 기독교조선감리교회 목사로 임직되었고, 웅장한 석조 건물을 신축하는 데 힘을 쏟아서 1933년에 완공을 했습니다.

이렇게 힘든 일을 치루어 내고 1935년에는 안식년으로 미국에 가서 19376월에 보스턴대학교(Boston University)에서 명예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습니다.


그는
25년간 이화에서 봉사하고 세계 굴지의 대학이 될 터전을 마련한 후 19394월에 제자인 김활란에게 교장 자리를 인계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에 선교사들의 강제 귀국으로 그는 1940년 미국에 가서 스카랫대학에서 4년간 강의하고, 1943년부터 1946년까지 하와이에 가서 선교사역을 하다가 194612월에 가서 다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는 그를 명예총장으로 모셨고, 1950220일 오전 11시 채플에서 '반석 위에 집을 지으라'고 설교하다가 뇌일혈로 쓰러져서 6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나라로 갔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나서
, 한국에서 자라고, 한국에서 일 하다가 백발이 되어, 한국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갔습니다. 한국과 한국 여성을 사랑한 한국의 여종이었습니다.



(22) 에이미 스키너(Amy Skinner),  통영의 '신 교장'

 

통영을 사랑한 선교사 '신 교장'

수많은 인재들 키워낸 근대 교육 선구자

 

지금은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은 1900년 초기까지 한적한 어촌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발자취가 드리워져 있는 이곳을 한 때는 '충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호주 선교부의 선교 구역으로서 많은 선교사들이 헌신하였습니다
. 그중에도 통영 시민들에게 본명보다 '신 교장'으로 불리는 처녀 선교사가 있었습니다. 그 이름은 에이미 스키너(Amy Skinner, 한국 명 신애미<愼愛美>)입니다.

 

스키너는 1889년 호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유명한 의사로서 호주 빅토리아의 비치워쓰에서 병원을 운영했습니다. 삼촌 한 분은 캠브리지의 웨스트민스터 대학의 구약학 교수였고, 다른 한 분은 인도 선교사였습니다.

스키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멜버른대학 인문학과에 입학하여 신앙운동에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졸업 후 다시 교육학과에서 공부하고 한국 선교사를 지원하여 19149월에 일본을 거쳐서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호주장로교 선교부는 부산, 마산, 진주, 거창, 통영에 선교 스테이션(Mission Stationer)을 개설하고 있었습니다.

신임 선교사인 스키너는 거창의 교육선교사로 파송 되었습니다. 지금도 거창은 오지인데 그때는 지리산 밑의 첩첩산중이었습니다. 이곳에 파송된 서양 처녀 선교사의 생활상을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거창에서 어린이들과 부녀들을 대상으로 성경과 음악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전통적인 고장이어서 신앙 박해도 있었습니다.

1916년에 그는 마산 선교부로 옮겼습니다. 마산에서 의신여학교 사역을 감당하며 전도부인들을 교육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19201119일 통영 선교부로 옮겨서 본격적인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는 거제도 순회 전도를 통하여 어촌 교회를 돌보았습니다.


그의 사역 가운데 눈에 띠는 것은
1923년에 통영에 진명유치원을 세운 일입니다. 1924년에는 진명야학을 세워서 정규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청소년들을 교육시켰습니다. 1926년에는 도천야학교를 세웠고, 1929년에는 진명학교 교장으로 1940년까지 헌신하였습니다.

통영 사람들은 스키너의 한국 이름인 신애미를 따서 '신 교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신 교장의 영향으로 통영에 근대식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스키너는 많은 믿음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 이들은 그의 제자들이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 최덕지는 통영 진명학교와 마산 의신학교를 졸업하고 1919년 진명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스키너는 최덕지를 평양여자신학교에 보내어 공부시켰습니다. 최덕지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였고, 해방 후 재건교회를 세웠으며 한국 최초의 여성 목사가 되었습니다.


공덕귀는 선교사들에게 피아노와 오르간을 배웠고
, 진명유치원과 진명여학교 교사를 하다가 선교부 장학금으로 동래 일신고등여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훗날 윤보선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었습니다.

시인 김춘수도 스키너가 원장인 진명유치원에 다녔고, 그의 시()에 호주 선교사가 등장했습니다. 시인 유치환, 소설가 박경리도 진명유치원 출신이고, 음악가 윤이상도 스키너 선교사에게 음악을 배웠고, 그는 통영교회(오늘의 충무교회) 성가대 지휘를 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을 남긴 스키너는 19547월 멜버른병원에서 6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겼습니다. 197045일 충무교회는 스키너 선교사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 비문에는 '통영을 사랑한 선교사로, 통영을 위해서 일생을 바쳤던 스키너여! (중략) 우리는 영원히 스키너의 이름을 가슴에 기억하리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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