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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참 영남인 (1)

[ 2021-04-02 10:32:16]   

 

< 이대영 목사 >

1. 중국 선교 33년 후 총회장 된 이대영 목사


최장기 중국 선교사로 선교의 지평 넓혀

귀국 후 부흥회와 교회를 섬기며 총회장으로

 

이대영(李大榮, 1887-1968) 목사는 경북 예천의 불신가정에서 부해리 선교사(Rev. Henry Barren)의 전도로 홀로 예수를 믿었고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한다. 그는 신앙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으나 목회자로, 선교사로 평생을 보낸다.

 

1. 선교사로의 헌신

 

이대영은 경북 여러 지방에서 조사로 사역하다가 신학공부와 목사장립을 받고, 또 중국 선교사로 부름 받는다.

 

(1) 신학교육

이대영은 191612월 경북노회에서 신학입학 허락을 받았으므로 1917년 초에 입학하였을 터인데 192012월에 졸업하였으니 5년간 공부한 것이 아니고 4년만 공부하고 졸업을 한 셈이다. 평양 서문밖에 위치한 예수교장로회신학교는 1920년부터 학제를 고쳐서 매년의 봄과 가을 양차씩 3년에 졸업하게 되었다.

신학교는 1920년에는 311일 개학하여 100여 명이 공부하였는데 서양선교사들의 지도하에 장로교신학을 공부한 이대영은 192012월 제14회로 신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장로회신학교는 1920년에 졸업식을 두 번 거행하였는데 당시 교장이던 마포삼열이 19204월에 휴가차 귀국하여 라부열 선교사가 교장대리로 시무하였다. 이대영은 동기생 윤하영(귀성), 황보덕삼(대동), 최홍종(광주) 등 합 18명이 같이 졸업하였다.

 

(2) 목사장립 및 안동읍교회 목회

평양과 경상도를 오가며 신학을 공부하던 조사 이대영은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19211월 대구에서 개최된 제9회 경북노회시에 신학준사 문답을 받았고, 노회 결의로 목사장립을 받게 되었다. 목사가 된 이대영은 안동읍교회 목사로 청빙을 받게 되었다.

경북노회 임사부는 안동읍교회에서 이대영 목사를 선교사 권찬영 씨와 동사목사로 청빙하는 건을 보고하였고 그대로 허락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안동읍교회는 새로 부임한 이대영 목사 위임예식을 거행하였다. 안동교회 80년사에 의하면 안동읍교회는 1909년에 첫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된 교회로 한국인 초대목사는 김영옥 목사였다. 이대영 목사는 안동읍교회 제2대 한국인 목사로 부임해 위임예식을 거행하고 첫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3) 선교사로 파송

이대영 목사는 첫 목회지 안동읍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는데 동년 9,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에서 이대영 목사를 중국 선교사로 선택한 것이 보고되었고, 192112월 조직된 경안노회에서 허락 결의되었다.

192112월경 경안노회가 경북노회에서 분립하여 안동읍에서 창설될 때에 이대영 목사는 임시서기로 공천되었으며 임원선거에 부서기로 선출되었다. 이대영 목사가 경안노회 조직노회에서 부서기로 선출되기 이전인 19219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10회 조선 예수교장로회총회에서 총회 전도부장 이자익 목사는 안동 목사 이대영 씨를 래양선교사로 택하였다고 보고하였다.

1년 전인 1920년 제9회 총회에서 총회 전도국은 경충노회 차재명 목사를 중국선교사로 인선하였음을 보고하였으나 차재명 목사의 허락을 받지 못했고 결국 이대영 목사를 인선하여 총회전도국은 조직되는 경안노회에 이대영 목사를 중화민국 산동성 선교사로 선정함을 승인허락 청하는 공문을 발송하였으며 경안노회는 허락키로 가결하였다.

총회 중화민국 선교사로 헌신한 이대영 목사는 첫 목회지인 안동읍교회를 떠나 1922613일 중국 산동성 임지에 도착하여 선교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경상도노회와 경북노회를 거쳐 경안노회에서 부서기 및 제1회록 기록서기로 활동한 이대영 목사는 192211월 조선예수교장로회 경안노회에서 중국 교동노회로 이명하여 선교사이자 중국노회원이 되어 활동하게 되었다.

 

이대영의 33년 선교사역을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초기 중국 선교사 가운데 33년이란 최장기 사역을 감당한 선교사이다. 둘째, 중국 선교의 상황화를 위해 헌신한 선교사이다. 셋째, 선교사역에 네비우스 방법을 적용시킨 선교사이다. 넷째, 전도집회와 부흥사경회를 통해 현지인의 영적 각성을 도모한 선교사이다.

 

2. 이대영의 말년 사역

 

이대영의 선교사역은 광대한 바다이다. 목회자로 시작하여 선교사로 33년간 사역하고 다시 목회자로 돌아온 아름다운 사례이다. 그의 사역 특히 말년사역에 대해 새로운 조명이 필요하다.

 

중국 공산화로 인한 본국에서의 사역

 

산동 청도에서 활동하던 이대영 선교사는 19487월에 분단된 조국 남한을 방문하여 약 10개월간 각 교회를 순회하며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194899일부터 5일간은 총회 종교교육부 주최로 120명이 회집한 목사수양회 특별강사로 활동하였다. 본국에서 활동 중이던 이대영 목사는 1949419일부터 서울 새문안교회에서 열린 제35회 총회에 참석하여 새벽기도회를 인도하였고(성경 및 제목: 22:24-46,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기 위한 예수님 의 기도) 산동선교 보고를 하였다.

이대영 선교사는 중국에 있는 가족과 떨어진 상태에서 본국에서의 후원 기반을 다지기 위해 동분서주하였으며 방지일 선교사에게 가족을 부탁하였다. 이대영 목사는 19494월 총회에서 산동선교 예산청원 허락이 잘 되어졌으므로 5월말이나 6월초에 입중(入中)하려고 수속을 진행하였다.

19495월말이나 6월초에 중국으로 입국하려던 그의 계획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하였고, 194910월에 중화인민공화국 정권이 수립되면서 선교지 중국은 다시는 갈 수 없는 나라가 되었으며 가족과도 생이별하게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래양구회 소속 목사인 이대영 선교사는 교적은 중국에 두고 한국에서 활동을 해야만 하였다.

이대영 목사는 한국 내 중화교회 사역과 총회 관련 업무에도 참여하였는데, 19544월 경북 안동중앙교회에서 개최된 제39회 총회에서 경서노회장 황병혁 씨가 제출한대로 이대영 목사를 중국에서 다시 선교할 수 있는 길이 열릴 기간까지는 국내 노회에 소속시켜서 교역하도록 해달라는 청원대로 가결되었다.

또 선교부장 한경직 목사는 이대영 목사를 산동 복귀할 때까지 총회 관내에서 임시목사로 허락하여 달라는 경서노회장의 청원건을 허락하여 주도록 청원하였으며 그대로 가결되었다. 그리고 총회 선교부는 중국에서 30년간 근무한 선교사를 위하여 주택을 준비하여 주는 일에 총회가 협력하여 달라는 안과 선교 70주년 기념행사 중 이대영 선교사를 표창하는 일 허락 건을 청원하였는데 역시 그대로 허락을 받게 되었다.

 

3. 귀국 후의 사역

 

이대영 목사 사모와 자녀들은 공산 치하에서 생활하다가 19554월에 분단된 조국 남한으로 귀국하였다. 그리하여 1955424일 오후 2시에 서울 영락교회에서 이대영 선교사 선교 33주년 기념 및 가족환영 예배가 성대히 거행되었다.

한경직 목사의 사회로 거행된 예배는 승동교회 성가대의 찬양과 이자익 목사의 설교, 최재화 목사의 기념사, 타마자 선교사의 축도 순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외무부장관 변영태 씨, 서울신학교 교장 이명직 목사, 선교사 대표 구례인 목사 등이 축사하였고, 이대영 목사가 답사를 하였다. 그리고 1955년 총회에서 중국선교사 이대영 목사의 사면이 수리되어 1922년부터 시작한 그의 중국선교사직을 마치게 되었다.

이대영 목사와 다년간 청도에서 같이 활동하였던 방지일 선교사는 1957년 남한으로 귀국하였으며 장로회 총회가 분열하면서 이대영 목사는 합동측 총회에, 방지일 목사는 통합측 총회에 소속되어 각각 총회장을 역임하며 한국교계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이대영 목사는 서울 승동교회에 목사로 부임하여 활동하였고, 1955614일에 위임식을 거행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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