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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헌신한 여선교사들 ⑦

[ 2021-04-02 10:26:13]   

 

정정숙 박사

 

(13) 유애나(Anabel Lee major Nisbet), 목포 근대교육을 이끌다

 

정명학교 교장으로 규모 있는 교육 실시

한국에 대한 책 저술로 한국을 알림


미국 남장로교는 한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교회와 병원 그리고 학교를 세우는 선교를 하였습니다
. 그들의 교육선교의 신조는 '불신자는 전도하고 신자는 교육한다'(Evangelize the heathen and educate the Christian)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미 신자가 된 학생들을 모아서 장차 교회의 지도자로 육성한다는 것이 미션 스쿨의 취지였습니다. 그러니까 학교를 통해서 전도한다는 북장로교나 감리교의 교육선교 정책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각 선교 스테이션(Mission Station)마다 교회와 병원을 세우고 그후 신자와 어린 자녀들이 생기면 학교를 세워서 교육하는 선교정책을 실시했습니다.

목포에는 1903년 가을에 남녀학교가 세워졌습니다. 유진 벨 선교사의 사택에서 시작된 목포여학교는 처음에는 목회자의 사모와 교회 지도자들로 교수진이 꾸며졌는데, 그 후 미국 대학에서 정식으로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육선교사로 부임한 애너벨 니스벳(Anabel Lee major Nisbet, 한국명 유애나, 1869. 1. 19 - 1920. 2. 21)을 통해서 체계적인 교육이 실시되었습니다.

유애나는 1869119일 테네시 주 클락스빌(Clarksville)에서 태어났습니다. 1885년 찰리스 여자대학을 졸업한 후 모교 강단에서 10여 년간 교사생활을 했습니다.

1899613일 유서백(John Samuel Nisbet) 목사와 결혼하여 목회를 하다가 1906년에 부부가 한국 선교사로 부임하였습니다. 19073월 전주에서 첫 사역을 했고, 기전여학교 교장을 하였습니다. 19113 월부터 목포에 부임하여 여학교 교장을 맡았습니다.

그는 교사 자격증을 가진 최초의 여학교 교장으로 학교를 규모 있게 운영했습니다. 학교이름도 정명여학교로 바꾸고 교사도 신축했습니다.

유애나 교장은 3.1 운동에 참여하여 정명여학교는 19194 8 일에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그는 이 운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지도하고 나오는 길에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이 낙상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다가 1920221일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애나는 낙상의 고통 속에서 191911월에 '한국에서의 나날'(Day in and Day out Korea)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이 책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 25주년 문집으로 그의 선교 사역들을 기록한 역사적인 저작입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는 그녀를 추모하여 붉은 벽돌 2층으로 '유애나 기념관'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3년에 기독교 100주년 기념 체육관을 건축한다고 '유애나 기념관'을 헐어버렸습니다. 참으로 반 역사적이고 반 교육적이라고 하겠습니다.

유애나의 남편 니스벳 (John Samuel Nisbet, 한국명 유서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는 18681111일 미국에서 태어났고, 목사가 되어서 8년간 목회를 하다가 조선 선교사로 왔습니다.

그는 목포 남학교 교장을 하면서 함평, 무안, 영암, 강진 등에 순회 전도를 하였고, 1917년 전남노회가 분리될 때 초대 노회장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내가 죽은 후 아내를 이어 정명여학교 교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192547, 함평에서 한 아기에게 유아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 아기가 '목포의 그룬트비'(Grundtvig)로 불리는 김일남 목사입니다. 그는 목포의 선한 목사였습니다. 그의 아들 김정웅 목사는 태국에서 40년을 선교한 헌신자로 나와는 총신신대원 62회 동기 동창입니다. 김정웅의 두 아들이 목사이니 '3대 목사 가정'의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14) 잉골라(Martha Barbara Ingold Tate), 전주 예수병원을 세우다

 

한강 이남의 최초 근대 의사로

전주에서 28년간 의료 선교로 봉사

 

남장로교 선교부의 사역은 '7인의 선발대'가 이 땅에 도착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그중에 테이트(Louis Boyd Tate, 한국명 최의덕)와 그의 누이 매티 테이트(Mattie S. Tate)가 있습니다.

이들 남매와 몇 년 후에 도착한 잉골라는 전주지방을 중심으로 교회와 병원을 설립한 선교의 개척자였습니다. 테이트는 첫 선발대로 189211월에 제물포에 도착하였고, 1893년에 전주에 도착하였습니다.

잉골라는 1897년에 전주에 도착하였는데 그는 한강 이남의 최초의 의사였고, 전주 예수병원의 설립자입니다.

테이트는 18919월 맥코믹신학교에서 언더우드의 강연을 듣고 한국 선교의 꿈을 키웁니다. 그는 1862년 미주리 주에서 태어났고, 웨스트민스터대학을 거쳐서 맥코믹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선교사로 조선에 와서 전주 서문교회를 설립했습니다.

그의 부인 잉골라 (Martha Barbara Ingold Tate, 한국명 최 부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출신으로 클레어몽 대학과 윈드롭 대학을 졸업하고, 1896년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정식 의사로서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왔습니다. 잉골라는 1905년에 테이트와 결혼하여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잉골라는 189811월부터 28년 동안 전주에서 의료선교를 했습니다.

잉골라의 1902년 선교 보고서에 의하면, 6개월 반 동안에 1,586명을 진료하였다고 합니다. 예수 사랑을 품은 한 여성 선교사에 의하여 병원이 세워지고, 농민들의 한이 치유되어 나갔습니다.

잉골라의 예수 사랑이 전주 예수병원이라는 굴지의 병원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임상 경험 데이터와 과학적 진료는 그 지역 사람들을 치유하는 기적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잉골라는 그날그날의 진료 상황을 일기에 기록하였습니다. 이 기록은 개인의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그 시대상과 당시의 의료상태를 보여주는 귀한 자료입니다. 그의 일기는 당시 우리나라의 의료 상황을 알 수 있는 역사적 문헌이기도 합니다.

테이트는 의과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신학교로 가서 목사가 되고 한국 선교사로 와서 전주를 중심으로 익산, 정읍, 금구, 태인, 고부, 홍덕, 부안, 임실, 남원 등지를 선교 구역으로 하여 전도활동을 하였습니다.

그가 설립한 교회가 78, 장립한 장로가 21, 목사가 5인이었고, 세례를 베푼 교인의 수는 1,500명이었습니다. 테이트 선교사는 1997718일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36호로 지정된 'ㄱ자형' 교회 건물을 19084월에 지역주민의 도움을 받아 건립하였습니다.

잉골라는 예수병원의 진료만이 아니라 말을 타고 왕진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전주 예수 병원의 박물관에 가면 잉골라의 유품인 블라우스, 구두, 성경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수많은 사람을 살렸지만 자신의 아이는 살리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딸은 1910915일에 햇빛을 보지 못하고 사산하여 예수병원의 선교사 묘역에 잠자고 있습니다.

잉골라는 19256월 그의 남편 테이트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여 따뜻한 플로리다 주 템파에서 살다가 1962년에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실천한 그가 세운 전주 예수병원에서 오늘날 매일 3,000여 명 이상이 진료를 받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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