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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헌신한 여선교사들 ⑤

[ 2021-02-04 16:05:20]   

 

정정숙 박사

 

(9) 로티 벨(Lottie Ingram Witherspoon Bell), 선교사의 아내 그리고 어머니

 

34세의 젊은 나이로 목포에서 별세

명문가 출신의 뛰어난 헌신자의 삶

 


1892
11,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이 땅에 찾아왔습니다. '7인의선발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레이놀즈(WilliamDavis Reynolds, 이눌서), 전킨(W. MacCleery Junkin, 천위렴), 테이트(Leuis Boyd Tate, 최의덕) 등의 3명의 목사와 매치 테이트(Mattie S. Tate, 테이트의 누이), 리니 데이비스(Linie Fulkerson Davis Harrison), 메리 레이븐 (Mary Leybun, 전킨의 아내), 팻시 볼링(레이놀즈의 아내) 등 여자 4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부부나 남매로서 출신이나 사역희망지가 달랐으나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하고 조선을 복음화하자는 열망은 같았습니다.

이들의 뒤를 이어 유진 벨(EugeneBell, 배유지)가 조선에 왔습니다. 유진 벨의 아내 로티 위더스푼 벨(Lottie Ingram Witherspoon Bell)을 주목해서 다루려고 합니다.

로티는 1867513일 미국 캔터키 주 루이빌(Louisville)에서 출생했습니다.

로티는 18954 9일에서울에 도착했습니다. 서울에서 사역하다가 목포로 재배치 되었습니다.

1896527일에 아들 헨리(Henry)를 낳고, 189916일에는 딸 샬롯(Charlotte)을 낳아서 양육했습니다.

로티는 선교사의 아내요 어머니로서의 직무를 감당하면서 목포의 소녀들을 대상으로 가정학교를 시작했습니다. 문화의 차이, 언어문제 등 어려움이 많았으니 이 모든 것들을 이기고 헌신했습니다.

한 예를 들면 선교사 사택 건축 공사가 진행 중인데 한 방에는 총각 선교사 오웬이, 다른 방에는 처녀 선교사 스트래퍼가 살았고, 그 옆방에는 어학선생까지 같이 살았으니 그 기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심리적 갈등과 고통이 격심했을 것입니다. 남편 유진 벨은 시골 전도여행과 선교회 일로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았으니 명문가 출신인 로티의 고생과 힘듦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남편 유진 벨을 도와서 목포교회를 개척 설립하였으며, 교회와 마을의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이런 헌신적 사역도 만성피로와 스트레스로 인하여 오래 가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심장병을 얻어 치료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고 1년 가까이 고생하다가 1901412일에 34세의 젊은 나이로 목포에서 별세했습니다. 로티는 목포에서 별세했으나 장례는 서울 외국인 선교사 묘역인 양화진에서 언더우드 목사의 집례로 드려졌습니다.

목포교회는 1903628일 새 예배당을 헌당하면서 로티를 기려서 '로티 위더스푼 벨 기념교회'(LottieWitherspoon Bell Memorial Church)라 이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귀한 교회 건물은 이내 사라져버렸습니다. 목포교회가 성장하여 1910년에 더 큰 예배당을 지으면서 기념교회당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정말로 아쉽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로티의 가정은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후예들입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루이빌신학교 총장이었고 할아버지는 미국의 건국운동의 지도자인 존 위더스푼 목사였습니다. 할아버지는 프린스톤 대학교의 총장이며 미대륙회의 의장으로 독립선언서 작성을 주도했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56명 가운데 유일한 성직자였습니다.

이런 명문가정 출신인 로티는 선교사의 아내로, 두 자녀의 어머니로 살다가 34세에 심장병으로 생명을 마감했습니다. 유진 벨의 후손들이 '유진 벨 재단'을 만들어 북한의 결핵에 걸린 어린이들을 도우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10) 인사례 (Charlotte Ingram), 목포의 첫번째 외국인 아이

 

두 살 때 어머니 잃고 조부모가 키워

선교사의 아내되어 교육사역에 헌신

 

유진 벨과 그 아내 로티 벨 사이에는 아들 헨리(Henry Vernable, 1896. 5. 27- )와 딸 샤롯(Charlotte Ingram, 한국 이름 인사례, 1899. 1. 6.-1974)이 있습니다.

인사례는 목포에서 태어났습니다. 목포에서 태어난 최초의 외국인 아이였습니다. 인사례는 겨우 만 두 살을 넘긴 어린 나이에 어머니 로티를 심장병으로 잃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할아버지 집에 보내져서 자라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그가 청년이 되었을 때 그는 부모를 이어 한국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선교사를 지원하였습니다. 그는 린튼(William A. Linton, 한국 이름 인돈, 1891-1960)1922년에 결혼하였습니다.

린톤 선교사는 21세 때 한국 선교사로 온 최연소 선교사였습니다. 린튼이 샤롯(샬롯의 결혼 후 한국 이름은 인사례)을 만났을 때는 이미 10년간 호남지역에서 선교사역을 하고 있었습니다.

린톤은 전주 기독교학교(신흥학교) 교장을 하였고, 인사례는 기전여학교 교장을 했습니다. 이들의 사역 가운데 돋보이는 것은 교육사역입니다. 군산과 전주의 기독교학교를 운영하고 1956년에는 대전대학(오늘의 한남대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그들은 교육 선교를 실천하였고, 대전에 기독교 대학을 설립함으로써 서울의 연세, 숭실, 이화, 대구의 계명과 함께 대전의 한남이라는 교육의 새로운 영역을 확산시키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19608월 린튼이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나자 인사례는 주저없이 목포로 내려갔습니다. 목포는 그가 태어난 곳이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잊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한 이곳에서 정명여학교와 고등성경학교를 위해서 그의 마지막 생애를 바쳐 헌신하였습니다.

린튼과 인사례에게는 네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윌리엄, 유진, , 드와이트 입니다. 그러니까 유진 벨에게는 외손자가 됩니다.

셋째 휴(HughMaclntyre Linton, 한국 이름은 인휴, 1926-1984) 목사는 한국 선교사로 헌신하였습니다. 휴는 부인 로이스(Lois Elizabeth Flowers Linton, 한국 이름은 인애자, 1927- )와 함께 전남 섬지방과 농촌선교에 헌신하였습니다.

'검정고무신'이라는 별명과 함께 검소하고 검소한 그는 순천을 중심으로 전남 동부지방을 걸어다니며 200여 교회를 개척했으며, 여수 요양원 사역을 하다가 전남 기흥에서 교통사고로 1984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들은 세 아들을 결핵으로 잃었는데 부인 로이스는 순천결핵원을 세우고 결핵 환자들을 위해 35년간 헌신하다가 은퇴하여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블랙 마운틴에서 노년을 보냈습니다.

넷째 드와이트(Thomas Dwight Linton, 한국명 인도아, 1927-2010) 목사는 1952년부터한국 선교를 시작하여 광주의 호남신학대학에서 교수 사역을 하였습니다. 아내 앤 (Marjory Ann Potter, 한국명 인마서, 1925- )과사이에 32녀를 두있습니다.

인휴와 인애자의 아들이며 유진 벨의 외증손자인 스티브(Stive Linton, 한국명 인세반, 1950-)1995년 유진 벨 선교 100주년 기념으로 󰡐유진 벨 재단󰡑을 설립하여 북한 결핵퇴치 등 북한돕기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John Linton, 한국명 인요한, 1959- )은연세대학교 국제진료센타 소장으로 의료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대를 잇고, 선교 헌신의 대를 이은 아름다운 가문들에는 늘 헌신적인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계대 신앙, 계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계대 신앙, 계대 헌신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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