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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헌신한 여선교사들 ④

[ 2020-12-29 17:02:44]   

 

정정숙 박사
 

(7) 서서평(Elizabeth J. Shepping), 한국 여성을 위한 헌신

 

한평생을 한국 위해 바친 헌신

장례식은 광주 최초의 사회장으로 엄수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헌신하였고 그들의 공헌을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분이 있으니 서서평(Elizabeth J. Shepping, 1880-1934) 선교사입니다.

그는 1912년 한국에 입국하여 간호 사업, 학교설립, 육아 사업, 금주 운동, 공창폐지운동, 빈민구제 사업 등을 전개하며 일생을 한국을 위해 바쳤습니다.


서서평은
1880926일 독일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그가 3 세 때에 어머니가 미국으로 가버려서 할머니의 손에 자랐습니다. 그가 11세 때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마져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의 주소만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3세 때 헤어진 어머니를 8년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도움으로 뉴욕고등학교에 진학하였고 진로를 고민하다가 당시 크리미아 전쟁에서 영국이 승리하자 나이팅게일의 공로가 크게 알려졌는데, 여기에 감화를 받아서 간호사가 되기를 꿈꾸고 21세 때에 뉴욕 시립병원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에 서서평은 로마가톨릭에서 기독교로 개종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는 딸의 개종을 반대하여 딸을 집에서 내어 쫓았습니다. 서서평은 오직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기에 신앙에 몰두했습니다. 31세가 되던 해에 뉴욕성서사범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서서평은 한국에 갈 정식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남장로교 외국 선교국에 선교사로 지원하여
1912220일에 의료선교사 자격으로 한국을 향했습니다.

서서평은 한국에 와서 광주 제중병원에 근무하면서 한국어와 한국풍속을 배웠습니다. 특히 한국풍속을 좋게 여겨서 나중에는 한국 사람들에게 가르칠 정도였습니다.

4년동안 광주에서 일하다가 군산 구암예수병원에서 1년 일하고 서울의 세브란스병원으로 옮깁니다. 이때 3.1운동이 일어났는데 서서평은 외국인으로서 만세 시위에 가담했습니다. 일본의 압력이 심해지자 다시 광주 제중병원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는 광주에서 근무하며 간호원 양성을 하고 1923년에 한국간호협회를 조직하고 초대회장이 되었고, 일본의 반대를 이기고 캐나다를 왕래하며 국제간호협회에 가입시켰습니다.

서서평은 한국 여성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1922년에 자기 집에서 지도자 양성학교를 열어 성경과 과학을 가르쳤고, 1923년에는 성경과 3년 과정을 개설하고 미국인 친구 니일(Neel)의 후원으로 3층 교사를 신축하였습니다. 1926년에는 후원자의 이름을 따서 '이일(Neel)학교'라고 했습니다.

서서평은 이 학교 교장으로 여성교육에 공로가 있다고 하여 조선총독부가 훈장을 줄 정도였습니다.

서서평이 1934년에 별세하고, 1941년에 신사참배 반대로 학교가 폐교되었다가 1961년 전주 한례정신학교와 합병하여 오늘의 전주 한일여자신학교가 되었습니다.


서서평의 사역에서 돋보이는 것은
19221222일 그의 자택에서 부인조력회(여전도회)를 조직하고 호남과 제주 각 지역에 조직을 지도했습니다. 192899일 전국연합회가 조직될 때 광주대표로 참석했습니다.

그는 의료 선교사요, 교육자요, 사회봉사자였습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다가 1934626일에 한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은 광주 최초의 사회장이었고, 광주 사람들이 광주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천국으로 환송했다고 호남신학교 뒷동산에 있는 남장로교단 출신의 선교사 묘역의 묘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기념비는 현재 전주 한일여자신학교에 있습니다.

 

(8) 노일연(William Ross), 한국에서 헌신한 2세 선교사

 

부산에서 태어난 2세 선교사로 헌신

검소한 생활하며 학생들을 도와

 

대를 이어 한국에서 충성하는 선교사 가문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은 언더우드 가문이고 호남 지역의 린톤 가문도 대를 이어 헌신했습니다.

2세 선교사 가운데 노일현(William Ross, 1900-1993) 선교사가 있습니다. 그는 190011 30일부산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노세영 선교사가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1897년 부산에 파송되었을 때 그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평북 선천으로 선교지를 옮겼고 노일연은 집에서 어머니에게 배웠고 12세 때에는 평양의 기숙사 학교에서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때는 기차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선천에서 평양까지 왕복 6시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1917년 미국으로 가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파크대학 (Park College)에서 성경과 교육학 그리고 식품영양학을공부했습니다.

 

이 가정은 국내 정치 사정으로 인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러일전쟁으로 귀국하였다가 1906년에 선천에 돌아와서 선교사역을 계속했습니다. 1917년에 미국으로 갔다가 1926년에 한국에 다시 왔고, 1931년 만주사변으로 쫓겨갔고, 1940년에는일본 경찰에 쫓겨서 중국 상해를 경유하여 필리핀의 일본군 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1945년 일본 패망과 함께 미국에 돌아갔습니다.

노일연은 1948년에 한국에 다시 와서 대구에 주재하면서 사역을 본격적으로 감당했습니다. 그러니 한국 민족의 고난과 맥을 같이 하여 쫓겨 가기도 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평북 강계에서 여전도회를 조직하고 연합회 2 대 회장(1928-1929)을역임하였고, 평북연합회 고문으로 5-6년간 봉사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사역하였습니다. 황해도 재령에서 5, 평양과 강계에서 10년을 사역하였고, 필리핀의 포로수용소에 감금된 3년간 그 안에서 전도하였습니다.


1948
년부터 대구에 주재하며 많은 일을 하였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 교사의 사역입니다. 경북고등성경학교에서 가르치면서 농어촌교회 사경회를 인도했습니다. 후에는 성경학교 교장으로 천국 일꾼을 양성했습니다.

그때 경북고등성경학교는 피난민 학생들과 경북의 농어촌 학생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너무 가난하여 노일연 선교사가 학비와 기숙사비를 후원해 주었습니다.

그는 매우 검소한 삶을 살면서 절약한 돈으로 학생들을 도왔습니다. '저는 옥수수 하나면 됩니다. 감자 하나면 됩니다.'라고하면서 검소한 식사를 했다고 당시의 제자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한 제자가 '왜 결혼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하나님께서 결혼을 시키지 않았고, 하나님과 함께 사니 외롭지 않다.'고 했습니다.


둘째는 그는
6.25 전쟁 후에 고아원을 운영하였고 전쟁미망인을 위하여 모자원을 경영했습니다. 전쟁의 참화로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을 때 고난당하는 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1966년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의 공식 임기를 마친 후 독립선교사로 대구 동산병원에서 의료선교를 하면서 성경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아원과 모자원을 운영하기 위해서 미국 교회들로부터 후원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했습니다.

그가 태어난 한국에서 일하다가 1983년에 미국으로 귀국하여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1993년 초에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한국을 사랑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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