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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헌신한 여선교사들 ②

[ 2020-11-03 09:25:41]   

 

기획시리즈

정정숙 박사

 

 

(3) 허버 존스, 인천 영화학당의 설립자

 

인천 지방 최초의 여자학교 설립해

김활란 등 여성지도자 양성에 주력

 

이 땅의 여성들을 일깨운 수많은 헌신자들 가운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벽안의 여성이 있습니다. 그는 허버 존스(Herber Jones) 여사입니다(원래 이름은 마가렛 벵겔<Margaret J. Bengel>).

존스는 186981일 미국 오하이오 주 포머레이(Pomerey)에서 태어났습니다. 신앙 안에서 자란 그는 한국 선교사를 지원하여 189094일에 제물포에 도착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이 갓 넘은 젊은 처녀였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사역하기 위해 한국어를 빨리 배우려고 스크랜톤 부인으로부터 최헬렌이라는 어학 선생을 소개받아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원래 어학을 배우게 되면 눈에 보이는 세계가 달라지는 법인데 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국 여성들을 위하여 일하기로 결심하고 서울의 이화학당에서 스크랜톤을 도와서 교육선교에 헌신하였습니다.

1892 130일 존스(George H. Jones, 한국 이름 조원시<趙元時>)와 결혼하고 제물포 지방 선교사로 파송받습니다. 이곳에 오자 존스 목사는 내리교회를 설립하여 전도 사역을 하였고 부인은 여선교회를 조직하여 여성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부인은 교회 옆에 조그마한 학교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오늘의 영화여학교(永化女学教)의 전신입니다. 여성교육을 생각지도 못하던 시절에 새로운 혁명적 깃발을 들게 되었습니다.

처음 7년간은 존스 부인의 집에서 교육하다가 190042일부터 안골(内洞)예배당(오늘의 내리감리교회) 뒷방을 빌려서 교사로 사용하였고 학생도 8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때 영화학당이란 교명이 정해졌습니다. ()은기독교의 영생이란 단어에서 첫 자를 땄고, ()는기독교의 교화하는 말에서 따왔습니다. 그러니 학생들을 영생(永生)으로 교화(教化)한다는 선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은 당시 한문교사였던 박용래(朴容来) 씨가 지었다고 합니다.

이런 교육선교의 불씨가 미국에 알려지자 카두렌 씨가 당시 거액인 1,000달러를 기증하여 그 돈으로 지금의 싸리재에 대지 120평을 구입하고 26평의 교사를 신축하여 작은 학교이지만 인천 지방의 근대 여성교육의 선구자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학교는 개화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여성지도자를 배출하였습니다. 한국 첫 여자박사이며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을 역임한 김활란을 비롯하여 김애마, 김영의 등이 인천 영화학교가 배출한 인재들입니다.

한 젊은 선교사의 헌신으로 뿌려진 씨가 이 땅에 새로운 역사를 이루었으니 이것이 우리를 향해 내리신 하나님의 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존스 여사는 1919511일에 한국을 떠나 귀국하였습니다. 그는 문학적 재능이 있어서 한국을 소개하는 책을 여러 권 썼습니다. 대표적인 그의 책은 1894년에 쓴 <Korea Primus>1912년에 쓴 <The Lure of Korea>가 있습니다.

존스 여사의 저서가 한국을 소개하는 귀중한 자료이지만 우리에게는 크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것은 책을 저술한 선교사가 많지 않고 특히 여선교사의 저술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그는 19623792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한국 여성교육의 개척자요, 저술가이며, 전도자인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땅을 사랑하였고, 한국 여성들을 위해 헌신하였고, 한국을 소개하는 저서들을 남겼습니다.

 

(4) 케이트 쿠퍼, 여교역자 양성에 헌신

 

여성 교역자 양성 위해 보혜관 세워

만주 용정에도 여자성경학교 개설

 

한국 여성들을 위해 헌신한 여선교사들이 많습니다. 누가 더하고 누가 덜하고를 말할 수 없지만, 초기 여선교사들 가운데 대표적인 분을 들라면 메리 스크랜톤(Mary Scranton), 조세핀 켐벨(J. P. Campbell),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그리고 케이트 쿠퍼(Kate Cooper)를 들 수 있습니다.

케이트 쿠퍼는 미국 조지아 주 다글라스 힐에서 태어났습니다. 지방판사와 군수로 봉직한 아버지 헨리 토마스 쿠퍼와 어머니 헤스터 돌시 쿠퍼의 33녀는 모두 신앙으로 잘 양육되었습니다. 부모들은 그를 조지아 주 메이콘에 있는 메이콘 여자대학 3학년에 편입시켰습니다. 이 대학은 1836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4년제 여자대학입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켈로틴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2년간 가르치다가 어느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고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 성경을 배워야 했기에 스켈딜성경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이 학교는 오늘날 테네시 주 네시빌에 있는 스켈딜대학이 되었습니다.

이 학교는 1892년 미국 남감리회 여선교부가 여선교사와 여교역자 양성을 위해서 세운 학교입니다. 케이티는 1908년 그가 22세 되던 해에 졸업하고, 19086월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에서 모인 남감리회 여선교대회에서 한국 선교사로 임명받고 사역 후보지가 원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를 떠나서 일본 고베를 거쳐서 19081022일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한국어를 열심히 배웠고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노방전도와 지방순회를 하였는데 1944년까지 계속하였습니다.

그는 새벽기도회를 인도하였고, 성경반(Bible Class)을 열어서 부녀자들에게 성경을 가르쳤는데 그의 사역 가운데 가장 보람있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원산 북지방과 북지방의 10구역(4-5백리 지역)을 맡아서 순회사역을 하루도 쉬지 않고 하였습니다.

쿠퍼의 사역 가운데 가장 귀한 것은 여교역자를 양성하기 위해서 보혜관을 이끌어 나간 일입니다. 보혜관은 1906년에 메리놀 부인이 원산에서 시작하여 여성들에게 한글과 성경을 가르치는 곳이었습니다.

1908년에 쿠퍼가 원장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현역 전도부인들을 교육하였고, 교회 여성지도자를 훈련시켰습니다. 당시 전도부인을 교육하는 교육기관이 없었기에 전도부인들의 수준이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쿠퍼는 이들을 불러서 제대로 교육시켰습니다.

쿠퍼는 1930년에 만주 용정에 한국여성을 위한 동만여자성경학교를 개설하고 실향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쿠퍼는 1913년에 김한나 외 11명의 여성들과 여선교회를 처음으로 조직하여 여성들이 교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 외국인 선교사들의 강제 추방으로 1944년에 미국으로 갔다가 1945년 해방이 되자 한국에 나와 원산에서 하던 사역을 충정로에서 계속하다가 19506.25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영구 귀국하였습니다.

1908년에 한국에 와서 1950년까지 사역하였습니다. 여교역자 양성이라는 귀한 사역을 감당한 그는 19788월 향년 90세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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