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회원가입아이디/비밀번호 찾기
2019년 12월 6일
회사신문보기총회교계 기관교육 선교신학 신앙논단 기획 | 오피니언
 
회사소개 한국교회문제 협력상담소 상담게시판 공지사항

사설
방패
독자질의
이슈와 해설
PDF 신문읽기
포토뉴스
Home > 논단기획 > 기획연재
백은 최재화 목사와 독립운동 (5)

[ 2019-05-17 15:38:02]   

 
 김남식 박사 (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III. 교정가 최재화

1.
교회 재건과 최재화

해방 후의 한국교회는 교회 재건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특히 부산지방이 그 대표적 사례였다. 부산에는 신사참배를 선봉에서 이끈바 있는 김길창 목사 그룹과 신사참배를 반대하다가 옥고를 치른 한상동 목사 그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이 양극 사이에 최재화를 중심한 주도 그룹이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분열하지 말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여 한국교회를 재건하자는 온건 중도론을 전개하였다.
최재화는 그 중심에 서서 양쪽 지도자들을 설득하고 대화를 시도하였으나 의견으 차이가 너무 심하여 더 이상 어쩔 수 없어 마침내 장로교 제1차 분열로 치달았다.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새 신학교가 개교되고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교육을 할 때에 신학교 명칭을 어떻게 할 것이냐 라는 논의가 있었다. 최재화는 '고려신학교'가 어떠냐고 제안하였다. 고려는 Korea인데 한국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자 모두가 찬성하여 '고려신학교'로 부르게 되었고, 이것이 오늘의 고신대학교의 모체이다.
해방이 되자 이 땅의 혼란은 사회가 각 분야에서 나타났고 정치세력들은 자기들의 영역확장을 여러 사람들을 끌어들이려 하였다. 당시 한국 정치는 이승만, 김구, 김규식의 삼 영수가 주도하고 있었는데 최재화의 경우를 보면 김규식의 제자요, 김구의 경호원이었으니 자연히 김구 계열 즉 임시정부 계열로 분류되었다.
1948510일에 제헌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다. 각 지방에서는 독립운동가들이 국회에 가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 고향 선산의 유지들이 그를 찾아와 국회의원 출마를 강력히 요청하였다. 처음에는 거절하였으나 그들의 요청에 따라 국회의원에 출마하였다. 한민족 5천년 역사에 처음 있는 이 선거에 고무신과 먹걸리가 판을 쳤다. 또 최재화는 김구파로 몰렸고, 김규식의 제자임을 상대편이 공격하였다. 결국 낙선하고 말았다.
'내가 일생일대의 실수를 하고 말았구나. 고향 어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내 책임이 크구나! 나는 하나님의 종으로 가야 할 길을 가야 하는데 .' 최재화는 이렇게 후회하고 자탄하였으니 이미 지나간 사건이 되고 말았다.
이것을 계기로 앞으로 남은 생애는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데 전념하기로 할 것을 결심하고 더욱 근신하며 목회사역에 충성하였다. 혼란의 도가니 속에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는 역정을 가지려고 노력하였다. (계속)

김남식 박사 (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 기독신보 (http://www.ikidok.org)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인기기사
제103회 총회 둘째 날 ..
이단감별사의 거짓증언은..
S교회 무엇이 문제였나?..
교회법과헌법해설
포토뉴스
사진으로 보는 제104회기 총회 이모저모
공지사항
시스템 점검
인터넷 기독신보 드디어 오픈합..
기독신보사 ∥ 등록번호: 서울,아 01362 ∥ 등록(발행)일: 2010.09.29. ∥ 인터넷기독신보 ∥ 발행인 및 편집인: 김만규
청소년 보호정책이메일 무단수집 거부개인정보취급방침 ∥ 개인정보 및 청소년보호책임자: 김만규
서울시 구로구 오리로 1197, 118-406 (오류동, 금강수목원@) ∥ 메일주소: ikidok@naver.com ∥ 전화번호:(02)2684-1736 ∥ 팩스:(02) 2684-1737
Copyright ⓒ 기독신보. All rights reserve. 기독신보의 기사 등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