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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대 총회장 백은 최재화 목사의 3.1운동 야사 ⑦

[ 2018-12-14 15:33:18]   

 
 김남식 박사
(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4
3일 이른 새벽

최재화는 정결하게 목욕을 하고 새 옷을 입었다. 부모님이 거처하시는 방으로 가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큰 절을 드렸다. 아들이 하는 일을 눈치채고 있던 부모님들은 의()를 위한 아들의 장거를 말리지 아니하였다.
'아버니, 어머님, 불효 자식을 용서하시고, 오래오래 강녕…'
최재화는 목이 메여 인사를 드릴 수 없었다. 이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부모님들이 자기 때문에 어떤 곤욕을 당하실 것인가를 생각하니 송구스럽기 한이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들의 아들이라기보다 이 민족의 아들로 바쳐진 몸이니 민족을 위해 피를 흘려야 했다.
'오냐, 남아 대장부의 뜻을 누가 막을까? 네가 생각해서 옳다고 작정한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성취해야 한다. 나는 오늘 장한 아들을 두었음을 자랑으로 생각한다.'
최재화의 아버지는 도리어 아들을 격려하였다. 가족에 대한 염려는 하지 말고 소신껏 나라 위해 일하라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아버지의 분에 넘치는 격려를 받은 최재화의 가슴은 메어질 것 같았다. 오늘 이후 자신의 길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상태이니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기로 결심하였다.
최재화는 아내와도 작별 인사를 하고 아들 성진을 안아 보았다.
서울로 중국으로 일본으로 다니느라고 부부다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시부모님과 시누이, 시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 아내가 아니었던가? 남편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바람같이 왔다가 꿈같이 사라지는 남편.
이제는 살아서 다시 볼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기에 더욱 가슴 아팠다. 부부 사이에는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백만 마디의 말보다 더 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아내의 손을 잡은 남편의 목소리는 떨렸다.
'여보, 고생시켜 미안하오. 앞으로 살아서 돌아올지 죽어서 돌아올지 모르는 몸이오. 당신에게 미안하오. 부모님 모시고 용기 있게 살아가오…'
남편의 간곡한 이별의 말을 들은 아내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릴 뿐이다. 이것이 여자의 길인가? 지아비가 하는 일이니 아녀자가 무엇이라 할까?
'여보, 제발 살아만 돌아오세요…' 아내의 가슴에는 눈물로 표현되는 억만 마디의 웅변이 폭포같이 쏟아졌다.
이제 민족의 제단 앞에 바쳐져야 할 시간이 가까웠다. 고향에서의 만세 시위는 그의 삶을 새롭게 하는 변화이기도 하였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해야만 했고, 역사의 섭리 앞에 복종하여야만 했다.

 
43일의 봄날은 저물어가기 시작했다. 산양동, 송곡동, 금호동 등 여러 마을의 주민들이 해평면 소재지의 장터로 몰려오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손에는 동지들이 나누어준 태극기가 들려 있었고,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모여들었다.
각 마을을 책임진 동지들이 마을 사람들의 앞장을 서서 인도하여 오고 있었다. 앞장 선 젊은이들은 머리에 수건을 동이고 활기에 찬 모습으로 주민들을 질서 있게 인도하고 있었다.
해평 장터에는 원근 각 마을에서 모인 사람들로 가득하였다. 이것은 차라리 백의의 물결이었고, 순박한 나라 사랑의 정신들이 모인 뜨거운 용광로였다.

 
이들의 지휘자인 최재화는 박진오 동지와 함께 해평 주재소에 가서 주재소 주임을 찾았다. 일본 경찰들에게 지금부터 해평 장터에서 평화적 시위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피차 충돌하여 피흘림을 원치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였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자주 독립을 선언하며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발표하려 합니다. 그대들은 우리의 정당한 의사를 상부에 보고하기 바라오. 우리는 무력이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을 터이니 한 사람의 면민에게라도 희생이 있으면 우리들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음을 경고하는 바이오.'
주재소를 찾아와 당당하게 민족의 독립을 선언하는 두 청년 앞에 일본 경찰들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비록 무장을 하고 있을지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온 이들을 어찌할 수 없었고, 밖에 있는 수많은 군중들 때문에 일본 경찰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재화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주재소 주임에게 준엄하게 타일렀다.
'당신이 이곳에 머물면서 선량한 백성들의 원한을 사지 말고 고향으로 돌아가 속죄하는 태도로 평화롭게 사시오. 이것은 이천만 백의 동포가 당신에게 주는 마지막 충고요.'
또 옆에서 어쩔 줄 모르는 한국인 순사에게는 책망과 동정의 태도로 타일렀다.
'살기 위하여 마음에 없는 순사 노릇을 하는 줄 아오. 저기 들리는 민족의 소리를 경청하시오. 저 소리는 하늘의 소리요. 저것을 거역하면 당신에게 화가 있을 것이오.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시오.'
주재소 문 밖에 사람들이 달려들기 시작하였다. 날씨가 어두워지자 여기저기서 횃불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어둠을 뚫고 광명한 불빛이 세상을 밝히기 시작하였다.
주재소 앞에 모인 해평면 사람들은 만세를 외치기 시작하였다. 최재화와 박진오가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도 따라서 목이 터지라 만세를 불렀다.
주민들의 만세 소리에 놀란 주재소 주임과 순경들은 뒷문으로 도망가고 말았다. 그들의 힘으로는 물밀 듯 몰려오는 민족의 정기를 막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때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주재소 유리를 깨뜨렸다. 흥분한 어느 주민이 던진 돌이었다. 이것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주재소를 부수자.'
'주재소를 불태우자.'
'왜놈을 죽이자.'
'민족의 원수를 갚자.'

여기저기서 노한 주민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두다가는 큰 일이 날 것 같았다. 최재화는 주민들 앞에 서서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제가 하는 말씀을 들어주십시오. 흥분하지 마시고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우리가 만세를 외치는 것은 민족의 독립을 만방에 선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폭력을 사용하면 왜놈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민족 대표들과 독립선언서에는 비폭력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자제하여 주십시오.'
'왜놈들에게는 죽이는 것밖에 다른 방도가 없소.'

어디서인가 이런 소리가 들리자 옆에서 '옳소'하는 소리가 들렸다. 최재화는 다시 소리 높여 외쳤다.

'여러분, 우리는 일본 사람들에게 원수를 은혜로 갚아야 합니다. 우리 조선 사람이 그들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13도 조선 강토 어느 곳에서나 폭력을 사용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해평 사람들이 욕을 먹어서는 안 되고, 조선 사람들이 욕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최재화의 간곡한 호소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최재화의 인도에 따르기로 하였다. 최재화와 박진오는 큰 태극기를 흔들며 시위 군중들의 앞장을 섰다. 여기저기서 타오르는 횃불은 대낮같이 주변을 밝게 하여 주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시집 온지 얼마되지 않은 새색시도 만세를 불렀고, 허리가 꼬부라진 할머니도 만세를 불렀다. 목이 터져라 부르는 만세소리였다.
밤이 깊어 갔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집에 돌아가려는 기색이 없었다. 온 밤을 세우며 만세를 부르려 하였다. 어느 누구의 지시에 의해서라기보다 가슴과 가슴으로 번져지는 민족의 혈관이 지시하는 것이었다.

 
이때였다. 1130분경이었다. 만세 소리의 외침 속에서 금속성 소리가 들렸다.

'탕, , '
총소리가 들렸다. 도망갔던 주재소 주임과 순사들이 돌아와 시위군중을 향해 발포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총소리에 군중들은 당황하였다. 순박한 농민들은 총소리에 겁을 먹은 듯하였다. 최재화는 군중들 앞에 다시 섰다.

'
여러분, 왜놈들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총칼 앞에 두려워할 우리들이 아닙니다. 왜놈들이 우리에게 겁을 주려는 것입니다. 우리 다시 한 바퀴 더 돌고 밤이 늦었으니 내일 다시 모이기로 합시다.'

최재화의 인도로 군중들은 해평 장터를 한 바퀴 돌며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횃불을 밝히고 부르는 이들의 만세 소리는 세계 구석구석까지 들리는 듯 하였다. 최재화의 지시대로 주민들도 흥분과 감격에 차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과 그 다음날 즉 44일 아침이었다. 해평 주재소의 급보를 받은 선산 경찰서에서는 순사부장 이하 순사 6명이 완전무장을 한 채 해평으로 왔다. 대구에서는 헌병 오장 이하 3명의 헌병이, 상주에서는 수비병 11명이 응원차 해평에 왔다.
선산 경찰서 순사부장의 지휘로 만세 주동자들을 체포하기 시작하였다. 산양동, 송곡동, 금호동 등지를 중심으로 체포된 사람의 수가 55명이나 되었다.
이들을 해평 주재소에 임시로 구류하고 주모자인 최재화와 박진오를 잡으려고 혈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 최재화는 대구에 잠입하고 있었다. 최재와와 박진오를 제외한 다른 동지들은 모두 체포되어 일본 경찰의 심한 고문을 받게 되었다. <>

김남식 박사
(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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