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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신을 망하게 한 교수를 생각한다

[ 2020-09-01 08:36:32]

 

4K는 자기를 위한 학장과 총장을 했다

 

총신대학교의 원 명칭은 '조선예수교 평양신학교'였다가 '장로회신학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 '대한예수교장로회신학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 '총신대학',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원' 등으로 전전하다가 1995년에 이르러 '총신대학교'로 확정되었다.

총신대학교의 정확한 역사는 처음 시작한 1901515일로 하면, 무려 119년의 역사를 쌓아온 전통이 있다.

119년 동안 총신대학교에는 수많은 학자와 성자가 학교를 위해 공을 드렸고, 고생도 하였으나 총신대학교 119년 역사에서 2020년 오늘날처럼 위기에 처한 적이 어디 있었는가? 실로 총신대학교가 이처럼 패망에 가깝게 되었으니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

그 사유 중에는, 쉽게 평하여 총신대학교에 K씨 성을 가진 이들이 너무 많았고 또한 K씨 성들 중에는 남다른 재주가 있고, 다른 이보다 뛰어난 그 재주 때문에 총신을 망하게 하는 길까지 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총신을 넘어지게 한 K 교수가 4명이 있었다.

그중에 첫 번째는 HB 자를 쓰는 교수를 꼽을 수 있다.

HB 교수는 대단한 학자로서 총신을 거쳐간 다른 어떤 이보다 구약학의 대가이며 동시에 성경 고등비평에 선구자적 학식을 지닌 분이었다.

그래서 그분이 총신대학의 학장으로 재직시에는 성경고등비평에 대한 공박도 많았고, 심지어 신신학자라고 논평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분은 성품이 온화하고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아량이 풍부하여 원수 같은 이들도 자기 사람으로 포섭하게 되니, 어떤 문제에서는 큰 문제시 되지 않고 그냥 통과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분 HB 교수가 학장일 때 김MK 목사가 총신운영이사였다.

당시 HB 교수가 학장일 때 총신대학 학장 사택(사당동 소재)이 학장 HB 교수 명의로 되어 있었고, HB 학장의 딸이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자 총신대학의 교수직에 임명되었으며, HB 학장의 부인은 학교 소유의 자동차를 운전하는 운전기사가 되어, 학장 집에서 총신에서 공식적으로 급료를 받는 이가 3명에 이르렀다.

이에 MK 이사가 이 문제에 발벗고 나서 잘못되었으니 시정을 구하였다.

그러자 당시 총신대학에서 실권을 가지고 있던 장로 네 분(김인득, 배태준, 우성기, 문원채)이 들고일어나 HB 학장을 건드리지 말라고 엄호하였다.

이유는 HB 학장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성경학자라는 것이다.

그 당시 총신대 재단이사장 백남조 장로가 MK 이사를 법인이사회 결의로 총신대학 법인과장으로 임명하였는데, 법인과장으로는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결국 HB 학장의 문제를 검찰에 고발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궁지에 몰리자 처음엔 변호인을 통해 협박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 다음엔 배태준, 우성기 장로 등이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하여 종로에 있는 고급식당에 함께 간 일이 있었다.

그러나 MK 이사는 HB 학장의 3대 부정을 원상복구 하기 전에는 절대 고발을 철회하지 못한다고 통고한 후 세 번 더 검찰에 출입한 후 결국 딸 교수직을 파면하고 부인 운전사직을 포기하고 사당동에 있는 학장 관사는 원 학교재산으로 귀속케 함으로써 고발 취소와 함께 당시 차장검사(KDK)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형사처벌을 면하게 한 일이 있었다.

HB 학장의 재정부정으로 당시 학교 재정이 어려운 중에도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으니, 총신대학이 날마다 반정부 데모로 유명한 학교가 되어, 정부측에서 총신대학을 폐교하려는 시점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위기에 놓였을 때에 서울남부지검과 중앙정보부에 간청하여 HB 학장이 자필로 반정부 데모를 절대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서 제출하게 함으로써 총신을 구할 수 있었던 역사를 기억한다.

만일 당시 계엄군이 학교에 주둔하였다면 학교는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당시 군부는 2개월 동안 학교를 점령한다는 계획이 있었다.

참으로 다행한 것은 HB 학장이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호소하여 함께 데모를 반정부 데모를 철회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총신은 재정적 손실을 회복할 수 있었고, 학교의 진로에도 크게 손상을 입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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