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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영 목사, 일황 앞에서 30분간 항의 제기
소록도중앙교회 32년 2개월 담임했다

[ 2020-07-31 10:57:31]

 

<김두영 목사 기념비>

2의 신사참배를 막은 신앙 애국자

소록도중앙교회322개월간 담임한 김두영 목사는 일제 강점기인 1939년 일본의 소화 천황 앞에서 30분 동안이나 제2의 신사참배라 할 수 있는 '가미다나와 다이마'의 부당함에 대해 항의한 일이 있다.

당시 재한 일본총독 미나미가 계획한 '가미다나와 다이마'는 한국 기독교에 대한 탄압의 일환으로서 한국민의 모든 집에 판매하여 집집마다 귀신집을 두게 하는 것으로, 문제의 다이마라는 일본귀신을 두게 함으로써 모든 가정에서 기상과 취침시, 혹은 집에 들어가거나 나올 때에 그 신상 앞에 손뼉을 치고 절을 하게 하는 그야말로 모든 한국인들로 일본귀신에 복종케 하는 사악한 계획이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케 한다는 구실로 총독 미나미가 주동한 일로서 이를 전 한국민에게 배부하려고 할 즈음, 1938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하나의 국가의식으로 간주하여 '신사참배 하는 것이 국가행위다'고 하여 일본 귀신을 좇게했다. 그에 대한 파생 결과로써 1938년 그해에 평양신학교와 숭실전문학교는 폐지하고 총회 안에 기독교 황도선양연맹을 출범케 하였다.

이에 총독 미나미는 신사참배에서 더 적극적으로 교회가 일본신에 복종하는 의미로 모든 기독교가정에 '가미다나와 다이마'를 도입하도록 시도하자 이에 당시엔 목사도 장로도 아니었던 김두영 씨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일본 천황을 만나 현하 한국교회에서 시행되고 있는 종교탄압을 삼가지 않으면 일본국이 망할 수 있다고 항의할 목적으로 일본국을 방문한 것이었다.

당시 김두영 씨는 일본의 와세다대학교의 재학생이었으며, 박형룡 박사와 친근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형룡 박사는 한국의 보수주의 신학자이였고, 전에는 만주국 봉천에 있는 봉천신학교의 교장이었다.

김두영 씨가 도일하여 처음으로 예배당을 찾았으나 도쿄에서는 도무지 교회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수요일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예배당을 찾았으나 예배당은 없고 큰 집에 전기불이 켜져있고 조용하기에 들어가보니 그곳이 바로 일본인들이 모이는 교회였다. 때마침 수요일 저녁에 교인들이 조용히 합심기도하고 있었으며 합심기도 끝에 담임목사가 '누구든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를 인도해 주시기 바란다'고 광고했으나 아무도 기도를 인도하는 이가 없기에 김두영 씨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기도를 드렸다.

이날 김두영 씨는 성령의 감동으로 열심히 그리고 크게 기도했는데, 교회와 목사, 장로, 전도사 그리고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에게까지 주의 영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말세를 이기는 성도가 되게 하여 줄 것을 기도하였다.

기도회가 끝나고 담임목사와 장로들이 크게 은혜를 받았다고 감사인사를 하고 김두영 씨의 일본방문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 목적한 바를 듣고는 그 자리에서 장로 한 분이 이 일은 자기가 도울 수 있다고 했는데, 그분이 그 교회 원로장로인 마즈야마 씨였다.

마즈야마 장로는 일본군의 원로 장군이었고, 또한 군국주의 일본군의 외정부장이고 일본제국의 국회의원이기도 했다.

이에 마즈야마 장로는 현직 일본국 총리대신인 현역 육군대장인 하야시센주로 수상 앞으로 가는 소개장을 김두영에게 주어 총리대신의 관저로 보내었다.

김두영은 1939115일 일본제국의 총리대신 하야시신주로 육군대장을 만나고 이어서 당시 일본제국의 군왕인 소화 천황을 알현하게 된다.

한국장로교회사 회장인 김남식 목사의 편집으로 된 김두영 소록도의 목자에 의하면,

김두영이 30분 동안 일본정부의 대동아전쟁사 중 한국의 미나미 총독의 종교정책은 결국 대일본정부를 망하게 할 문맹정책으로서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다시 가미다나 정책을 강요하는 일의 부당성을 갈파하자 눈을 감고 김두영의 항의를 청취하던 총리대신은 '김군, 김군은 오늘 아주 뜨거운 열성으로 아주 중대한 말을 하였고, 김군의 말이 너무 중대하므로 나 총리대신이 답할 수 없으므로 천황 폐하께 아뢰고, 천황 폐하로부터 답을 얻는게 좋겠소, 김군 이 길로 천황 폐하를 알현하기로 하고 다함께 갑시다.'고 말하고 총리대신의 승용차에 함께 타고 천황이 머물고 있는 신궁으로 향하였다.

천황이 있는 신궁 앞 이중교를 지나서 일본 왕인 소화천황이 있는 궁전에 이르렀다. 궁전에는 이미 일본의 문무대신들이 천황 앞에 대기하였는데, 천황이 자리를 한 어전 중앙은 천황의 우편에 기도다까요시 내무대신이 좌편에 유아사요래 궁내대신이, 천황 뒤에는 시종무장관 세계야데이사부로, 궁내대신 차관과 내각 서기장관이 앉아 있고 좌우에는 근위병 50명씩 시집하여 창검에 칼을 꽃아 도열하고 있었다.

이어 천황 앞에 김두영이 원고를 들고 섰는데, 총리대신 현역 육군대장 하야시센추로가 정부의 대표이며 천황을 대신하여 원고의 간함을 듣는 피고의 입장이 되어 그 앞에 섰다.

그곳에 모인 사람의 숫자는 총 100여 명이고, 김두영은 총리대신 앞에서 갈파한 30분간의 항의를 요약하면 이랬다. "일본제국의 대조선종교정책에 대한 미나미 총독의 신사참배의 폐단과 이에 부합하여 이제는 조선인들에게 창씨개명을 하여 조선인이 자기가 자기의 이름도 모르게 하였고 유독 기독교학교만 집단적으로 신사참배를 하게 강요함으로써 학업을 전폐하는 문맹정책을 강요하였으며 이제는 신사참배에서 모든 조선인에게 '가미다나'를 판매하고 모든 가정에 가미다나를 신으로 경배케 하고 있는데 이 가미다나는 일본제국도 하지 아니하는 또다른 신을 섬기게 함으로써 장차는 일본제국과 산하 2천만 신민(神民)이 망하게 되었으니 대동아의 주인이신 천황 폐하께서 조선 총독 미나미의 조선족의 종교정책을 폐지하여 주실 것을 간합니다."

이에 소화일본 천황은 시종 진지하게 김두영의 호소를 경청한 바 '김군, 내가 지금 김군의 진지한 호소를 듣는 바 내 치하의 조선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소. 이에 이건에 대해 한주일 내에 여기에 대한 확실한 결과를 알려줄 것이오.'라고 답하였다.

김두영은 총리대신의 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는 일본교회의 마즈야마 장로가 반갑게 맞이하였다.

마즈야마 장로는 '일본 천황 소화는 일주 내에 대조선에 대한 종교정책에 변화가 있을 것이요. 소화는 거짓말 하지 아니합니다.'라고 답하였다.

이처럼, 목사도 아니고 총회장도 아닌 예수의 사람 김두영이 대일본천황을 만났다는 사실은 일제 36년사에 특종 중에 특종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일본총독 미나미의 신사참배 정책에서 가미다나 정책이 폐지된 것이 예수의 사람 김두영의 믿음있는 처신의 결과였다는 것과 지금까지 박관준 장로가 천황에게 신앙의 도를 전한 것만 알던 이 시대에 몇 백배 몇 천배 더 큰 사건이 예수의 사람 김두영의 사역이었음을 알게 된다. 김두영은 그 뒤 목사가 되기 위해 총회신학원에 입학했고 제45회 졸업생이 되었다.

김두영은 목사가 되어 소록도중앙교회에서 322개월간을 목회한 신실한 주의 종이었다.

필자가 기억하는 김두영 목사는 제70회 총회가 청량교회에서 회집될 때에 당시 총신대학에 학장직까지 지낸 차영배 교수의 성령론이 잘못되었다고 총회에서 엄히 규탄하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김남식 목사는 김두영 목사의 자녀들의 요청에 의해 고 김두영 목사의 생애에 대한 전기를 근거로 <소록도중앙교회 32년 목회한 김두영 목사>의 전기를 20208월 중순에 발간한다.

동 전기는 420페이지 분량으로, 그 내용 대부분은 김두영 목사가 친히 기록한 전기이고, 김두영 목사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에 미친 영향력에 대한 재조명을 하게 된다.

다시 한번 김두영 목사를 생각하면 만일 김두영 목사 같은 이가 없었다면 우리 한국교회는 제2의 신사참배인 가미다마로 모든 교인들의 집에 일본귀신들로 침략당하는 영적 침탈을 당하였을 것이다.

또한 1938년 제27회 총회 이후 한국교회가 일본귀신 앞에 무릎꿇고 청종하고 복종하고 맹종했을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김두영 목사는 1939년대에 일본 강점기에 일본국에서 일본교회 장로들과 함께 일본 천황을 통해 2차 세계대전에 집의 재산과 자식들과 가진 모든 것을 빼앗겨 울부짓는 우리 국민을 구제하는 일에 몸과 마음과 시간을 바쳤다.

20208월말 출간될 김두영 소록도의 목자출판기념회는 20208월말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127(201) 충만교회(김두영 목사 아들 시무교회)에서 있을 예정이다.

422페이지로 구성된 김두영 소록도의 목자는 전 5부로 1, 그리운 땅 2, 일본의 심장에 3, 해방의 공간에서 4, 복음의 나팔 5, 소록도의 사역 등으로 되어 있다.

한 가지 권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목회자, 한국의 기독교 언론인, 한국의 교회역사학자 그리고 근세한국사를 알고자 하는 모든 성도들과 역사학자들은 반드시 김두영 소록도의 목자를 필독하기를 권한다.

일제 강점기 한국기독교의 이면사를 알려면 김두영 목사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숨겨진 기독교역사는 김두영 소록도의 목자에서 찾고 만나야 할 것이다.

김두영 목사는 1939년도에는 일본 와세다대학생이었고, 1943년도에는 대구에서 시작한 한국장로회신학교 1년생이었으나, 대구 영락교회에서 한경직목사와 동사목사로 목회하였고 특히 6.25전쟁기에는 기독의용군 3,000명을 모집하여 UN군에 편입한 것도 김두영 목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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