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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기독포럼, 총회를 지도한 인물의 교회탐방
정규만 기념관은 서현교회의 모태였다

[ 2019-11-29 18:51:43]

 

< 대구서현교회 >

'우리 아버지 이름은 정복수였습니다'

대구 서현교회는 당시 석조 건물로는 동양 제일의 교회였다. 1960년대 '서남교회'에서 '서현교회'로 명칭을 변경한 서현교회는 대구 대명동에서 남산동 175번지로 옮겼다.
이때 담임목사는 이광우 목사였다. 이광우 목사의 주도하에 정규만 장로의 전신투자(全身投資)로 이루어진 교회가 현재 대구서현교회였다.
정규만 장로는 이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남산동의 빈민촌들을 한집 두집 매입하였다.
이 일을 시작할 때에 처음 대구 사람들은 '무슨 교회를 저렇게 크게 지어려 하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러나 정 장로의 하나님께 '나의 전신을 바치겠다.'는 의도로 시작한 서현교회는 건축위원장에 김종필 장로(정규만 장로의 처남)를 세우고 당회원 전원을 건축위원장으로 하여 교회 건축을 시작했다.

처음 남산동 175번지의 대지에 정지를 할 때에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은 이곳 대지 거의 전부가 반석으로 이뤄졌기에 지하 터파기 공사부터 난공사가 아닐 수 없었다. 반석을 케는 징소리를 리듬 삼아 건축의 찬송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교회 건축을 제일 좋아한 것은 서현교회 주일학교 학생들이었고, 주일학교 학생들이 제일 많이 모이는 것이 주일오후 2시 예배시간이었다. 이때 오후시간 담당선생은 주일학교 선생인 공군1등 중사 출신인 김만규였다. 김만규는 반하우스의 조직신학 책에 깊이 감동을 받고 탐독하면서 어려운 신학서적을 쉽게 소화한 이후, 그 책의 내용을 쉽게 풀어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아이들은 김선생의 가르침과 동화 동요에 매혹되어 주일오후에 350여 명이 모였고 이들 중에 이영희 목사(미국뉴욕) 정주현 목사가 배출되었다.

이날 영호남포럼에서 정규만 장로의 4남 정주현 목사 유족인사에서 시작부터 끝까지 거듭 3번이나 '오늘 이 자리에 김만규 목사님이 참석하였으니 감사합니다.'고 했는데, 65년 전 서현교회 건축현장의 막일하던 일꾼의 십장으로 교회현장 감독이며 주일과 수요일에는 350여 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을 지도했던 그 선생을 기억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이날 제3회 영호남 기독포럼에는 영남의 장로 300여 명과 호남의 장로 100여 명이 모였다. 1부 예배는 권순웅 목사가 설교를 하고, 2부 포럼 강사로는 한국교회사학회 회장인 김남식 목사가 정규만 장로의 일생을 강의하였다.

김남식 목사는 정규만 장로의 출생과 별세 그리고 대구서현교회 건축 과정을 자세히 강의하였다.
당시 정규만 장로는 한의사로서 대구 동성로 약전골목에서 활신당 한약국을 개설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정규만 장로의 믿음의 바탕을 아시고 그에게 힘껏 약국사업을 밀어주셨다. 한번은 서울 삼각산에서 금식기도하던 정규만 장로에게 비몽사몽간에 '규만아. 지금 네가 남자에게 사용하는 약을 여자들에게 써 봐라. 그리하면 배태하게 되고 득남하게 될 수도 있다.'는 계시를 받아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남자를 보호하는 약을 여자에게 처방하기 시작했다.
정규만 장로는 약국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먹어보이소.' '잘 될 겁니다.'만 권고하였는데 웬걸 그 동안 임신이 되지 않아 고생하던 여인들이 수태하고, 아들 없던 이들이 사내아이를 출산하는 기쁨을 보게 되었다.
이 소식이 전국으로 알려져 대구 정약사의 약국 앞에는 '먹어보이소. 잘 될 겁니다.' 그 약을 처방받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과연 '먹어보이소. 잘 될 겁니다.' 약을 먹은 이들이 그 약의 효험을 직접 체험하는 기적적인 일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필자가 호주에 선교사로 있을 때에 설교 중에 정규만 장로의 '먹어보이소. 잘 될 겁니다.' 약을 소개하였더니 예배 중 싱글벙글 웃던 한 장로님이 예배 후에 아들을 데리고 와서 '야가 먹어보이소. 약을 먹고 얻은 아들'이라고 간증하는 일도 있었다.
아무튼 정 장로는 하루종일 약국이 문전성시를 이루어 돈을 간수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정 장로는 이 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하나님께 드리자고 각오하여 지금의 서현교회를 짓게 되었다.

정규만 장로는 전국의 개척교회를 하는 목사와 교단 안팎의 노회, 총회 지도자들이 찾아와서 도움을 구하면 ', 알겠습니다.'고 답하고는 얼마인지 모르나 큰 주먹으로 덥석 지워주었으니 그 이름이 전국에 알려져 교회 짓다가 교회 경영하다가 물질적으로 어려워진 이들이 또한 인산인해로 찾아들었다.
그러던 중 정 장로에게는 안질과 등창이 갑자기 몸에 생겨 거반 죽게 되었다. 정 장로는 내가 죽기 전에 하나님께 회개하고 깨끗한 몸으로 하나님께 가겠다고 은혜의 산 삼각산를 다시 찾았다. 그곳에서 금식기도하던 중 하나님이 음성으로 '규만아. 네 교만을 아느냐'고 물으셨고 그 소리에 정 장로는 곧바로 꼬꾸라져 떼굴떼굴 구르면서 통곡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정 장로가 전국에서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온 이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 알겠습니다.'고만 하고 큰 손으로 돈을 한 주먹 지워주고는 인사는 뒷꼭지로만 받았다고 한다. 사람이 너무 많아 고개를 앞으로 숙이지 않고 그저 시늉으로 뒤로 끄덕한 것이었다. 그 만큼 교만이 차 올랐던 것이다. 이처럼 겸손이 없고, 건성으로만 인사하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깊이깊이 회개하였는데, 그 즈음에 그의 안질과 등창이 깨끗이 치유함을 받게 되었고, 그 후 6개월 뒤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필요하면 주시지만 교만하면 매를 드신다는 사실을 온 몸으로 체득한 정규만 장로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을 만큼 자신을 새롭게 한 이후 평안하고 깨끗한 몸을 얻어 하나님께로 간 것이다.
지금 서현교회는 거의 전부를 정규만 장로가 모은 돈으로 지어진 것이다.

이날 포럼에서 정규만 장로의 4남 정주현 목사는 인사하는 자리에서 "우리 아버지 이름은 '정규만'이 아니라 '정복수'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거지떼들이 찾아와서 정규만을 찾으면 멀리 하나 정복수를 찾으면 만나주고 환대하였는데, 거지들에게 가난에 대한 복수를 하라고 늘 가르치셨다."고 했다.
서현교회가 정규만 장로를 기념하여 지하 1층 예배실을 정규만기념교회로 명명하였다.
지하 1층 교회는 주님의 일의 뜻을 가진 신학생의 기도실이고 주의 말씀에 은혜를 갈구하는 청소년과 주일학교 학생의 삶의 모태로, 수많은 주의 일꾼들이 이곳 정규만기념관에서 배출되었다.
필자가 아는 서현교회 출신으로 김만규 목사, 김수학 목사, 이영희 목사, 정주현 목사, 김성인 목사 등이 이곳 정규만기념예배당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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