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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총회장 원두우(元杜尤)목사 (1)

[ 2010-08-20 11:15:14]

 

제1대 총회장 원두우(元杜尤)목사

(H. G. Underwood,1859-1916)

 

제1대 총회장 원두우(언더우드) 목사

 

 

만연한 세속주의와 유행처럼 번져가는 혼합주의로 인해

개혁주의 신앙 전통이 더없이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이 시기에 교단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왜곡된 신앙을 바로잡는 일은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시대적 사명이요 요청이라 하겠다.

이런 취지에서 개혁주의 보수신앙의 근간인 우리 총회의 역사와

그 중심에 있었던 역대 총회장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알려지지 않은 역대 총회장들의 역사 자료를 비롯한 사진 자료는

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 관장 장영학목사(책향기교회 담임목사)께서

제공해주셨음을 밝힌다.(편집자 주)

 

 

한국장로교회사의 시작은 바로 장로교회 선교사가 내한하여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선교사의 활동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조선인 전도인을 세워서 곳곳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설립하도록 지도하고 방방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1888년 언더우드선교사는 매서인 3인을 선정하여 1인은 송천에, 1인은 평양에, 1인은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하게 하였다. 이때인 1900년부터 한국교회는 한국인 장로를 세우기 시작하였으며 1901년 한국인이 참여하는 장로교선교사공의회가 조직되었으며 마포삼열선교사에 의해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를 평양에 세워졌다. 1907년 7인의 한국인 목사가 장립하였으며 드디어 1907년 대한예수교장로회 독노회가 설립된 것은 한국장로교회의 새로운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일에 최초의 공헌 자는 바로 언더우드선교사(元杜尤)이다.

 

 

원두우는 언더우드의 한국 이름이며 한국 장로교회를 설립을 위해 내한한 최초의 목사 선교사이다. 원목사는 1859년 영국 런던에서 사업가인 아버지 존 언더우드와 어머니 엘리자벳의 6남매 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모친이 소천하고 계모 밑에서 자랐으며 부친과 함께 철저한 신앙의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1872년 미국으로 이민을 오게 되었다.

 

미국에서 초등교육을 받고 17세인 1877년 뉴욕대학에 입학하여 어학과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한 후 1881년 문학사를 받고 졸업하였으며 그해 가을 화란개혁신학교에 입학하여 3년간 공부하면서 선교사로 떠날 결심을 한 것이다. 이는 어릴 때 꿈이었다. 그래서 신학을 졸업하고 의학 공부도 하여 오지에서 사역할 준비도 하였다. 1884년 11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처음에는 인도 선교사로 가려고 준비하는 중에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고 한국이 최초로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여 선교 사업을 하기에 중요한 나라로 판단하면서 한국 선교사로 파송할 사람을 대학생 자원 운동체 에서 찾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마땅한 사람이 지원하지 않자 자신이 한국선교사로 가기로 마음에 결정하고 자신이 속한 화란개혁 교단에 한국 선교에 뜻이 전하자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북장로교 선교 위원회에 한국 선교사를 파송 요청을 하였다. 그러나 기금이 없어서 기다리는 중 한 장로의 선교기금이 들어와서 파송을 받게 된 것이다. 1884년 12월 16일 미국을 떠나 1885년 1월 25일 일본에 도착하였으며 일본에 사역하는 미국 선교사인 햅번의 집에 머물면서 한국어를 배우고 갑신정변의 실패로 일본에 피신 온 개화파 사람들이 박영효 김옥균 등을 만났으며 먼저 한국 선교사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아펜젤러선교사 부부를 만나서 같이 준비하였다. 특히 1883년 개화파와 함께 일본에 와서 쯔다센의 전도로 믿음을 가진 이수정을 만나서 그가 루미스선교사와 함께 번역한 마가복음을 가지고 우리나라로 향했다. 3월26일 일본을 출발하여 4월 2일 부산에 도착하였으며 3일 후인 4월 5일 부활주일 오후 3시에 제물포 항에 도착하였으며 곧바로 그 날 저녁 서울로 입성하여 알렌과 함께 한국 선교를 시작하였다.

 

언더우드는 알렌과 달리 목사로서의 복음 전파와 교회 설립을 위해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특히 조선의 선교사들은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입국 윤허를 받았기에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제중원내에서 정식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1885년 6월 21일부터 공식주일예배가 시작되었으며 이곳이 남대문교회의 전신이다. 10월11일에는 첫 성찬식이 거행되었으며 1886년 7월18일에는 알렌의 어학선생인 노춘경이 한국인으로 첫 세례를 받은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제중원의 선교사 공동체였지만 점차 한국인 학생들 병원 직원들 그리고 병원과 관계된 사람들이 참여하는 신앙공동체인 교회가 된 것이다. 이처럼 제중원교회에 최초의 한국인 세례를 집례한 사람인 바로 원두우목사이다. 이는 원목사의 선교적인 원래 꿈이 이루어져가는 모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일 년이 지나 정동 언더우드 사택에서 1887년 9월27일 화요일 저녁 14명의 신도와 함께 교회를 세웠으며 장로 2인을 선출하여 최초의 조직 장로교회를 세운 것이다. 14명 중 13명은 이미 로스선교사의 전도인으로 파송되어 소래에서 전도사역을 하는 서상륜에 의해 전도된 자들이다.

 

원두우목사의 복음 전파와 교회를 섬기는 사역은 먼저 제중원의 신앙공동체에서 1886년 한국인에게 세례를 베풀기 시작하여 그 해에 9인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1887년에는 25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장로교회사 전휘집,1918년 곽안련 편집). 9월 27일에는 조선의 최초의 장로교회를 세우고 은밀히 전도인을 양성하여 전국 각지로 파송하되 서울 근교와 고양 김포지역으로 파송하였다. 특히 1893년부터는 교회를 세워서 치리하는 일을 위해 선교사공의회를 조직하였다. 언더우드는 선교의 정책을 세워서 1894년 서울 근교는 서상륜, 김흥경, 박태선, 유흥렬 4명의 매서인을 파송하여 복음 전파와 교회 설립하는 일을 하게 하였고 고양 김포 지역은 신화순, 도정희, 이춘경 등을 파송하여 사역하게 하여 4,5개 처의 교회가 설립되었다.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1928년, 차재명발행) 이 때 세운 교회는 김포읍교회, 서교동교회, 연동교회, 행주교회, 능곡교회 등이다. 그 후 장로를 세워서 선교사와 장로 그리고 조사들을 총대로 참석하여 함께 치리회를 운영하는 조선예수교장회 합동공의회를 1901년부터 1906년까지 운영하면서 장로회 정치에 입각한 치리회 운영의 모든 것을 가르치며 실제 교회에 적용하게 하였다. 1901년 제1회 공의회 참석한 조선인 총대는 장로 3인 조사 6인이었으며 선교사는 25인이었다. 이때 회장은 소안론목사이었다. 참석한 장로는 서경조, 방기창 김종섭 이었으며 조사는 양전백, 송인서, 최명오, 고찬익, 유흥렬, 천광실 등이었다. 그러나 이 공의회에는 원두우목사는 안식년(1901-1902년)으로 미국 시카고에 있었기에 참석하지 못하였으며 1904년에 제4회 공의회때 서울지역 소회 회원목사로 처음 참석하게 된다.

 

그러나 원두우목사는 건강이 좋지 아니하여 다시 1906년 8월 안식년 휴가로 미국으로 갔으며 1907년에는 유럽으로 요양을 떠났다. 그래서 1907년 제1회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에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원두우는 미국에서 한국 선교 캠페인을 전개하며 새로운 사역을 위해 모금 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1909년 8월에 돌아온 원두우는 9월 3일-7일까지 평양신학교에서 열린 제3회 독노회에서 독노회장으로 피선되어 조선 장로회 치리회를 이끌어가게 되었다. 이때 평양신학교 제 2회 졸업생 8인(김필수 윤식명 정기정 김찬성 이원민 장관선 최관흘 최중진) 에게 목사 안수를 거행하였으며 그 중 최관흘목사를 한국 최초 해외선교사로 임명하여 블라디보스톡으로 파송하는 일을 하였다. 그리고 주간지 조선예수교회보를 발간하기로 결의하였으며 학무국을 두어 전국 교회 내에 학교들을 관리하는 일을 하였으며 노회장인 원목사가 학무국장으로 전국교회 내의 학교에 관한 관리를 관장하였다. 그런데 노회장 임무를 끝내는 제4회 독노회가 선천 염수동교회에서 열렸을 때 회무를 시작하여 차기 노회장을 선출하는 회무를 진행하지 못하고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채 10월 1일부터 한 달 동안 열리는 서울지역선교사들의 연합전도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계속>

 

장영학 목사

역대 총회장들의 역사 자료를 비롯한 사진 자료는

한국교회역사자료박물관 관장 장영학목사(책향기교회 담임목사)가

제공한 것임을 밝힌다. (cyh3303@hanmail.net // 031-965-2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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