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 image2 image3
로그인회원가입아이디/비밀번호 찾기
2021년 9월 17일
회사신문보기총회교계 기관교육 선교신학 신앙논단 기획 | 오피니언
 
회사소개 한국교회문제 협력상담소 상담게시판 공지사항

목회
교육
선교
목회칼럼
강해와설교
교회탐방
해외선교지탐방
해외신학교선방
Home > 교육선교 > 목회칼럼
양심과 행동

[ 2021-08-31 11:11:35]

 

국어사전에 양심(良心)'도덕적인 가치를 판단하여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선과 악을 깨달아 바르게 행하려는 의식'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른 양심(兩心)이 있는데 이는 두 마음이라는 뜻이다. 양심은 같은 양심인데 비양심(非良心)도 있다는 말이다. 전자의 양심이라면 나무랄 데가 없지만, 후자와 같은 경우에는 비양심이 있어 결과는 행동을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양심에 관하여 에마누엘 스베덴보리는
'양심은 인간 속에 있는 신의 출현이다.'라고 하였고 쇼지 고든 바이런은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의 스피커이다.'라고 하였으며 보브나르그는 '죽어갈 때의 양심은 일생의 거짓을 드러낸다.'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은 '양심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목소리이다.'라고 하였다. '양심은 일천 명의 증인이다.'라고 말한 이도 있다.


나무는 열매를 보아 안다는 성경 말씀과 같이 아무리 자기가
'나는 양심적이다'라고 말해도 객관적으로 볼 때 그의 행동에서 양심적인지 비양심적인지 판단할 수가 있다. 성경에 '좋은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라고 하였다. 이는 그 열매가 수종(樹種)이 좋고 나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양심을 속이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하여 안절부절 못하고 단잠을 이루지 못한다. 성경에 '악인은 쫓아 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와 같이 담대하느니라'라고 하였다. 죄를 지은 사람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경찰서 앞을 지나고 검찰청 앞을 지나며 경찰관을 만나면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전전긍긍하게 된다.


죄를 다스리는 법관들은 양심에 가책 없이 진정으로 판결하는가
? 법원 벽면을 보면 저울을 그려 놓았다. 이는 저울은 공정성이 생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법관들의 양심을 표시하는 것이며 법의 정확성을 표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법관들이 한 점 부끄럼도 없이 저울처럼 공평한 판결을 했는가? 나는 그렇게 했노라고 양심에 부끄러움 없이 말할 수 있는 법관이 얼마나 될까?


이찬영 판사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투쟁하는 독립운동가들에게 갖은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내릴 때의 심정은 말로 다하기가 어려울 만큼 괴롭고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고 하였다
. 결국 그는 판사직을 내던지고 출가하여 효봉 스님이 되어 수도하다 19667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뿐 아니다. 법관의 오판으로 무죄한 사람이 억울한 옥살이를 했는데 후에 진범이 잡혀 법관의 오판이 한 사람의 일생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일도 있다.


현대병 중에 뇌졸중을 비롯한 마비증세가 심각한 질환으로 부각되고 있다
. 심지어 어린이 중풍까지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보다 더욱더 심각한 것은 양심의 마비증세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는
'양심은 신성한 본능이여, 하늘의 소리요 지성과 자유의 안내자, 선악에 대한 심판자, 인간 본능의 우수성과 도덕성의 근본. 그대가 존재하지 않으면 단지 규율 없는 모성과 원리 없는 이성의 도움을 빌려 잘못만을 저지르는 특권을 느낄 뿐이며 그때는 누구나 짐승일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마비된 양심과 화인(火印) 맞은 비양심이 있어 양심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범사에 나는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라고 당당하게 말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직책을 맡아 양심에 거리낌 없이 주의 일을 성실하게 했다는 말이다. 오늘의 종교지도자들이 정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이 양심적으로 떳떳하게 일했다는 자부심으로 만인 앞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을까? 아마 상당수가 보이지 아니한 곳으로 숨어 '어둠아 나를 가리어다오' 하며 숨을 자가 없을지 생각해 본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정말 양심에 가책 없이 당당하게 일했다고 말할 수 있는 국회의원
, 경찰, 검찰, 판사가 얼마나 될까. 만약에 양심을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는 촬영기가 있다면 그의 활동을 찍어 TV 방송국에서 그 동영상을 방영한다면 어떻게 될까?


양심을 속이고 구중궁궐에서 호의호식하며 떵떵거리고 비양심적으로 사는 것보다 차라리 초가
(草家)에서 보리밥과 된장에 풋고추 찍어 먹으면서도 양심에 가책 없이 마음 편히 사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 죄는 언제나 사람을 불안케 하고 쫓기게 하며 숨게 하는 성질이 있다. 가인이 동생을 죽이고 하는 말이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를 죽일 것 같다.'라고 불안한 심정을 드러낸 적이 있다. 이는 양심이 이미 심판을 받고 있다는 증거이다.

같은 맥락에서 오늘의 권좌에 앉은 분들이나 백성을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분들은 양심대로 행동하는지 반대로 양심과는 거리가 멀리 떨어진 행동을 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본인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고 죄를 지었을 때 양심에 가책을 느끼고 숨었다. 이는 양심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런데 현대 사람들은 남이 알지 못하게 은밀하게 죄를 짓고도 부끄러움은커녕 더욱더 큰소리치며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여기는 시대가 되었으니 사회는 점점 삭막해지고 살기는 더욱더 팍팍해지며 사람들은 철면피와 같이 이중인격자가 되어가고 있다. 반대로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사람이 마음을 놓고 살만한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이런 세상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우리 성도의 몫이 아니겠는가?

 

이윤근 목사 (본보 논설주간)

 
ⓒ 기독신보 (http://www.ikidok.org)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최근인기기사
S교회 무엇이 문제였나?..
제103회 총회 둘째 날 ..
이단감별사의 거짓증언은..
교회법과헌법해설
포토뉴스
사진으로 보는 제105회 총회
공지사항
시스템 점검
인터넷 기독신보 드디어 오픈합..
기독신보사 ∥ 등록번호: 서울,아 01362 ∥ 등록(발행)일: 2010.09.29. ∥ 인터넷기독신보 ∥ 발행인 및 편집인: 김만규
청소년 보호정책이메일 무단수집 거부개인정보취급방침 ∥ 개인정보 및 청소년보호책임자: 김만규
서울시 구로구 오리로 1197, 118-406 (오류동, 금강수목원@) ∥ 메일주소: ikidok@naver.com ∥ 전화번호:(02)2684-1736 ∥ 팩스:(02) 2684-1737
Copyright ⓒ 기독신보. All rights reserve. 기독신보의 기사 등 모든 컨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