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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비(圖書費)인가?

[ 2020-09-11 14:47:55]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이율배반(二律背反)이라고 해서 잘못되었다 할 수는 없다. 이 말의 뜻은 서로 모순되는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어느 사람이 소를 도둑질하고 법정에서 왜 소를 훔쳤느냐고 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나는 소를 훔친 적이 없고 길에서 새끼줄을 주워서 끌고 갔더니 끝에 소가 딸려 왔다.”라고 하였단다. 스님이 술을 마시는 것이, 불자로서 양심에 걸렸는지 나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고 곡차(穀茶)를 마신다고 했단다.

 

이와 같은 예들은 궤변(詭辯)이라 할 수 있다.

어느 분이 교단 장로부총회장에 출마를 했는데 장로가 시무하는 교회 목사가 어느 선교회 모임에 참석한 목사 11명에게 20만 원, 내지 30만 원 든 봉투를 나눠주었다고 신문에 보도가 되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그 교회 목사는 그 돈은 출마한 장로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하면서 오랜 동역자들에게 개인적으로 도서비를 드렸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 목사는 출마한 그 장로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순수한 도서비(圖書費)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드리기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 이유는 그의 말에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다. 그 목사는 돈을 받은 자들 앞에서 자기가 시무하는 교회 장로가 교단 장로부총회장에 출마했으니 잘 부탁드린다.”라고 하였기 때문에 도서비라는 말은 순수하지 않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서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무런 대가성이 없는 순수한 도서비라면 잘 부탁드린다.”라는 묘한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않는가? 순수한 도서비의 성격보다는 뇌물(賂物)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도록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아무리 도서비라고 우겨도 듣는 편에서는 순수하게 받아드리기가 쉽지 않도록 오비이락(烏飛梨落) 격으로 얽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뇌물(賂物)을 도서비(圖書費)로 둔갑시켜 돈이 들어 있는 봉투를 돌렸다면 이는 양심의 문제이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야곱은 눈먼 아버지를 교묘하게 속여 큰아들로 둔갑했고 거기다가 형처럼 보이기 위하여 손에 털을 붙여서 눈먼 아버지가 큰아들인지 작은 아들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하여 교묘하게 신앙 양심을 속이는 불행한 일을 하였다. 야곱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묘한 행동을 하였다.

 

이와 같은 사건이 이번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교단과 총대들은 환골탈태(換骨奪胎)해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만 부각시켜서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이번 일이 처음인 것같이 호들갑을 떨어서는 절대로 아니 될 것이다. 어느 상비부원이 하는 말이 우리 부서는 부채 도사나 같다. 이쪽으로 넘어갔다가 저쪽으로 넘어가는 기막힌 일도 있다.”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이는 신앙 양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아니 될 일이다.

 

뇌물이 통하는 사회는 부패한 사회이고 타락한 사회이다. 세상은 뇌물이 통할지 모르지만, 교회만은 뇌물이라는 단어까지도 거론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어디 뇌물뿐인가? 사도 바울의 경고대로, 교회나 교단이 돈을 사랑하면 믿음에서 떠나 자기가 자기를 찌르게 된다. 성경은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려고 할 때 주께서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그를 돌로 치라고 하셨다. 이때 돌을 들고 있던 자들이 양심에 가책을 받고 돌을 놓고 슬금슬금 자취를 감추었다. 이는 오늘의 교회와 교단을 두고 하신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과거에 같은 일들이 일어나 어느 목사는 돈 봉투를 총회 앞에 들고 나가 내가 이것을 받았노라고 목에 피가 솟구치도록 외쳐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 제비뽑기였는데 또다시 직선제가 되어 과거의 망령(亡靈)이 되살아날까 두렵다. 성도는 곱게 살고 곱게 늙고 곱게 죽어야 하는 것이 가장 우선적인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성도라는 이름을 달고 불신자와 다르지 않게 부끄러운 일을 해서 신문 지상에 보도되는 경우가 종종 이다. 이럴 때 사회가 무슨 욕을 해도 반박할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당장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우리는 현대의학으로 암 환자도 고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은 암보다 더 무서운 사망에 이르고야 마는 죄병(罪病)을 고치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의 진리가 의학만 못하지는 아니할 터인데 구약(舊約)과 신약(新約)을 치료제로 삼아 바울의 말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과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사도 요한의 말대로 아멘 주 예수시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하면서 준비하여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깨끗한 성도들이 되자.

 

이번 일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과거 현재의 죄악은 용서해달라고 회개부터 하고 미래까지도 걱정하면서 지은 죄는 사하시고 오는 죄는 막아달라고 기도하자. 구원은 가족 단위도 아니고 교회 단위도 아니며 교파 단위도 아니고 개인 단위임을 알고 다른 사람은 상관하지 말고 개개인이 신자 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며 주님의 도우심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자. 또 교단은 이런 일들에 대하여 산하 교회들이 본받도록 모범이 되어 지도하는 데 부끄럽지 않게 당당하게 처신하자.

만에 하나 도서비(圖書費)라는 명목으로 뇌물(賂物)을 포장하는 일이 있어서는 절대로 아니 될 것이다.

이윤근 목사(본보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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