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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의 사람 정규만 장로 ②

[ 2019-12-27 19:32:08]

 
3. 헌신을 위한 훈련

 
정규만의 삶에서 특이한 것은 그가 신학교육을 받은 점이다. 장로로 또 의사로 교회를 섬기는 그가 신학을 공부한 것은 그의 생애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6.25 한국전쟁의 와중에 대구에 총회신학교가 설립되어 목회자 양성을 하였다. 그러나 종전 후 총회신학교가 서울로 복귀하자 대구에 보수적 신학교의 부재가 크게 느껴졌다. 교세는 늘어났으나 성도들을 바르게 이끌어갈 교역자가 많지 않아 제대로 된 신학을 교수하여 교역자를 양성하는 것이 시급히 요구되었다. 하지만 그리 쉬은 일은 아니었다. 1950년대에 대구에는 다양한 신학사조를 바탕으로 하는 신학교들이 설립되어 학생들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이러한 신학교들 중 먼저 1950년 성결교단에서 분립된 최정원 목사의 임마누엘 연경원을 꼽을 수 있다. 성결교단은 웨스레안주의를 표방하기에 칼빈주의 본산인 대구의 장로교와는 사뭇 달랐다. 또한 기장 측에서 운영하는 한남신학교의 경우 김재준 목사의 신정통주의 신학을 배경으로 하였기에 이 역시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김천에 있는 용문산을 중심으로 한 나운몽의 기드온 신학교였다. 이 학교는 한 개인의 신비적 체험을 바탕으로 시작된 기도원 중심의 학교였는데, 학생들을 모집하여 공격적으로 전도활동을 하였기에 뜻있는 분들의 많은 염려를 사게 되었다. 이러한 교계적 상황에서 보수주의 진영은 평양장로회신학교와 총회신학교와 맥을 같이하는 새로운 신학교의 설립이 시급함에 동의하였다. 그리하여 경북노회를 중심으로 진행된 학교설립 논의를 가칭 대구장로회신학교 설립에 귀결하였다.

임마누엘 연경원은 1950년 성결교단에서 분립되어 설립된 교단이다. 이 분립의 중심인물은 당시 대구 공평동 교회에서 목회하던 최정원 목사였다. 그가 자신의 저서에 밝힌 프로필에 따르면, 최정원 목사는 1912년 경북 선산군 장천면에서 장로교회 3대째 집안에서 태어나 4세 때부터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특별한 영적 은사를 받아 14세 때부터 대구 상동에서 교회를 개척, 강단에 서기 시작하였다는 등 비범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최정원 목사는 일제 강점기에 국내는 물론 만주지역까지 왕래, 부흥집회를 인도하면서 일제의 학정을 피해 흩어진 동포들에게 신앙과 광복의 희망을 심어주기도 하였다. 자신이 받은 성령의 은사에도 불구하고 성경말씀 중심의 신앙생활과 교회활동을 강조했으며, 일제 말기인 1943년에는 신사참배 반대로 대구에서 투옥되었으나 자신을 재판하던 담당관들이 예수를 믿게 되어 출옥하였다. 출옥 후 이듬해인 1944년에는 만주 용정 등지에서 순회 부흥집회를 인도하였다. 해방 후 격변기에는 교계 지도자들의 신사참배 문제로 혼란한 전국교계의 수습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한국전쟁 때는 교계 전국 전시대책위원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그 후 1952년에는 한국기독교 성결교단으로부터 정식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임마누엘 예수교 교단을 설립하였다. 성결교단의 이러한 분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우선 신학적인 차원에서 재림복음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들 수 있다. 전통적으로 성결교회는 전()천년설과 휴거를 믿고 있다. 하지만 최정원 목사는 교단의 신학적 입장과 다른 환란통과설을 주장하여 재림론에 혼선을 빚었던 것이다. 이 일이 분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교단의 분립에는 꼭 신학적 문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우선 최정원 목사 자신이 당시 대구 교계에 알려진 탁월한 성경교사였다는 점이다. 그의 요한계시록 강해는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었고 회개운동을 일으켰다. 교파를 초월한 대구의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성경강해를 들으려 몰려왔다. 심지어 장로교회에 적을 둔 교계의 중진들도 그의 강해에 많은 도전을 받고 있던 실정이었다. 그의 강해는 쉽고 간결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성경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였다. 당시에 이 강해에 참여하였던 우성기 장로는 이렇게 적고 있다.

"좀 쉽게 성경을 가르쳐 주는 곳이 없을까? 나는 평소 친분이 있던 정규만 장로를 찾아가 상담을 하였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정규만 장로께서, '공평동 교회에서 최정원 목사가 성경을 강해하는데 쉽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내용에 깊이가 있으니 한 번 와 보게'라고 하셨다. 공평동 교회라면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새벽에 나가 성경을 배우고 저녁에도 나가 성경을 배웠다. 이 학교의 이름이 임마누엘 연경원이었다.
성결교단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최정원 목사는 1950419일 공평동 성결교회 김추호 장로의 전답 헌납과 서현교회의 정규만 장로 등의 협조에 의해 '임마누엘 연경원유지재단'을 설립하고, 공평동 교회 안에 야간 성경학교를 세워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 학교가 1950105일에 설립된 '임마누엘 대구신학교'이다."
 
1952
38일에는 문교부로부터 본과 50명 정원으로 임마누엘 대구신학교 설립인가를 받고 초대교장에 최정원 목사가 취임하였다. 성결교 총회본부는 임마누엘 대구신학교 출신들의 분파를 우려하여 최정원 목사를 성결교단 서울신학교 교수로 초빙하였으나 그는 임마누엘대구신학교를 그대로 이끌고 나갔다.
그러던 중 1952412일 대구 봉산동 성결교회에서 열린 제7회 총회 시 기독교 대한 성결회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10여 교회 대표들 최정원, 박재식, 김치영, 정규식, 조성대 씨 등이 1952520일 공평동 교회당에서 교단을 조직하고 교단명을 '임마누엘 예수교'로 명명하였다. 이듬해 부산 수정동 성결교회에서 열린 제8회 총회에서 수습전권위원을 선정하여 교단을 통합하려 하였으나 결국 이들 10여 교회는 성결교단과 분립하였다. 임마누엘 예수교단은 활발하게 신학교육과 선교활동을 펼친 결과 15년 동안 40여 교회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19677'임마누엘 예수교 총회'에서 대부분의 교회가 장로교 통합교단과 합동하기로 하고 다시 분리해 나갔으며 김치영 목사와 김덕신 목사가 그 중심이 되었다. 이에 동조하지 않고 잔류한 교회는 대구 칠성동교회, 함창제일교회, 목포제일교회, 장성남부교회였다. 이때의 상황을 이상근 목사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에 따라 교단 하나를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므로, 그들은 우리 경북노회 통합 측에 가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우선 몇 교회 되지 않으니 일하는 범위가 좁아 교역자들의 이동에 큰 곤란이 있었을 것 아닙니까? 그때 노회 측에서는 여러 의견들이 있었고, 또 총회의 의견도 그 교단은 우리 총회가 인정하지 않으므로 개인 자격으로 가입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그러나 임마누엘 측에서는 개인 자격으로는 들어오지 않고, 교단이 단체로 가입하겠다고 고집하였습니다. 그때 저와 대봉교회의 박맹술 목사님이 합력하여 노회원들을 설득했고 그들의 가입을 성사시켰습니다. 물론 엄격히 말해 그 일은 헌법적으로 따지면 문제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소신은 우리 한국교회에 교파들이 너무 난립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교파라는 것은 교리적, 또는 예배의식적 차이에서만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한 교파를 다른 교파와 통폐합하고 흡수하는 것이 크게는 한국교회의 난립상을 약간이라도 정리하는 것이 되고, 작게는 임마누엘 교단의 형제들을 돕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후 최정원 목사는 모든 교회활동에서 손을 떼고 미국과 국내를 오가며 부흥집회만 인도하며 각지에 22개 교회를 개척하였다. 이때 임마누엘 대구신학교 역시 통합 측에 넘어가면서 통합측은 교단분열 이후 소유하고 있던 대구장로회신학교 인가에 더해 두 개의 인가학교를 가지게 되었다. 인가된 임마누엘 연경원 유지재단은 '동산성서학원'으로 재단명을 변경하였지만 두 개의 인가된 학교를 유지하기에는 무리가 따랐다. 그리하여 통합 측의 이상근, 박맹술 목사 등은 형제교단인 합동 측 교단이 신학교의 인가를 받지 못해 고생하니, 대승적 차원에서 인가를 넘겨줄 것을 설득하여 노회의 승인을 받았다. 이렇게 전달받은 동산성서학원의 인가가 오늘날 대신대학교의 기본적인 법인 인가가 되었다. <계속>
 
김남식 박사(한국장로교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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