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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放送)은 권력자(權力者)의 말만 대변(代辯)하지 말라

[ 2019-08-09 16:10:49]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에 필립 워크맨이라는 사형수가 있었다. 그는 감옥에 오기 전 배가 고파서 즉석음식점에 뛰어 들어가 권총을 겨누고 따뜻한 피자를 먹으려다가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관을 살해하였다.

그는 마약중독과 경관 살해 혐의로 구속되어 사형을 언도(言渡)받고 200759일에 사형당했다.

그는 마지막 식사가 나왔는데 자신은 먹지 않고 대신 노숙자들에게 나눠주라고 유언을 했지만 당국으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그 이유는 '세금은 재소자를 위하여 쓰게 돼 있기에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은 납세자들이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규정 때문이었다. 사형수에게 지급된 마지막 식사비는 20달러다.

그가 이 세상에서 먹는 마지막 식사는 야채(野菜) 피자였는데 그것을 먹지 않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노숙자들에게 주라고 유언했지만 규정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거절당했다.

이 소식을 들은 내슈빌 시민들은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그러나 지역 라디오 방송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시민들은 필립을 대신하여 내슈빌 지역 노숙자들에게 피자를 보냈다. 내슈빌 보호시설 곳곳에 피자 수십 판이 배달되었고 지역의 최대 노숙자 구호단체인 '내슈빌 구조연맹'170판의 피자가 배달되었다. 그 지역 노숙자들은 필립의 유언 덕분에 따뜻한 한 끼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필립의 사형 때 논란이 된 사형제도와 독극물 주사 제도도 폐지되었다.

필립 워크맨은 한때 마약 중독자로 살았지만,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다른 사람과의 나눔을 선택하여 사람들에게 사형제도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속언에 '순간의 선택이 십 년을 좌우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필립은 마약중독자의 삶을 선택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나눔을 선택하여 많은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사형제도까지 바꾸게 하는 업적을 남겼다.

여기에는 방송의 역할을 컸다. 필립의 선택도 중요하지만 방송이 없었으면 그의 선택은 아침 안개와 같이 허공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방송의 역할은 그 위력이 대단하다. 이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다 안다. 어느 기업에 문제가 생겨서 조용히 시정하면 사업에는 지장이 없을 것도 방송 매체를 타면 그 사업은 문을 닫아야 한다. 아무리 작은 구멍가게라도 방송을 타면 유명한 가계로 성공하게 된다.

그러므로 방송이 권력의 시녀가 되어 권력 편만 들지 말고 사형수가 유언한 유언이라도 필요하다면 방송이 국민을 설득해 효과를 극대화해 권력자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기를 펴고 살아갈 수 있게 방송이 제기능을 다 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국가와 사회가 제대로 발전할 것이다.

물어보자. 현재 방송이 권력자들 앞에서 자유로운가? 아니면 눈치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알게 모르게 간섭을 받는가? 방송인들은 절대로 권력의 눈치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방송하고 있다고 떳떳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 아니면 우물쭈물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할 것인가? 헌법 제211항에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물론 국익을 해치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지만, 서민의 대변인이 되는 것은 누가 말리겠는가? 사형수의 유언을 대변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 사형제도까지 바꾼 언론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언론의 힘은 막강하여 국민을 불안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고 안심하게 할 수도 있다. 언론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지 권력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같은 맥락에서 언론이 권력에 빌붙어 존재한다면 이게 무슨 언론인가? 언론이 정부의 부정과 부패 그리고 국민을 우롱하는 부분이 있는지 없는지 감시하고 만약에 문제가 있다면 국민에게 소상하게 알려서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언론의 기본 사명이기 때문이다. 사이비 언론이 되어 기업의 부정이나 알리겠다고 위협하는 언론은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

언론은 국민의 눈과 귀를 대신하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을 위한 언론으로 편 가르는 일은 있어서도 아니되고 있을 수도 없다. 언론은 중립에서 진실만을 국민에게 알려야 할 사명과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언론이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치면 언론의 기능을 상실하여 더이상 존재할 가치가 없다.

일제강점기에도 언론은 수난을 당했지만 언론의 사명을 다하지 아니하였는가? 그렇다면 언론의 자유와 출판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 대한민국에서 언론의 본 사명인 진실만을 국민에게 알리고 만에 하나라도 방향을 잘못 잡은 대한민국 호의 선장과 선원들에게 암초가 있다면 언론이 등대의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언론은 권력자의 말만 대변하지도 말고 국민의 불평만 대변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진실만 보도하여 칼보다 강한 펜이 되어야 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약삭빠르게 줄서기에 정신 못 차리는 언론사가 있다면 그 언론과는 영원히 결별해야 옳을 것이다.

이윤근 목사(본보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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