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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아의 생명을 죽일 권리는 없다

[ 2019-07-05 14:42:36]

 
진리(眞理)가 무엇인가? 변할 것이 변치 아니하는 것은 영원한 진리가 아니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한다는 것도 영원한 진리가 아니다.

성경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사람 생명의 가치는 천하보다 더 귀하다고 하여 사람이 무엇을 주고 생명과 바꾸겠느냐고 하였다. 이 말은 영원한 진리이다.

사람 생명의 가치는 세상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에 언제 어디에서도 고금(古今) 역사를 막론하고 보호를 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아야 한다. 만약에 생명을 경시하는 시대와 지역은 사람이 살만한 가치가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태아(胎兒)의 생명이건 유아(乳兒)의 생명이건 남녀노소(男女老少) 빈부귀천(貧富貴賤) 차별 없이 어떤 형편에 처해있던지 그들의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 그 이유는 생명의 주인은 창조주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 자체는 매우 귀하기 때문에 어떤 이유나 상황에서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왜 생명은 단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히 태아의 생명은 이런저런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자연적인 유산(流産)이 아닌 어머니 선택(選擇)과 낙태시킬 수 있는 법적인 권한에 의하여 태아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아니 될 악법이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도 불가항력에 의하여 태어났으니 살아야 할 의무는 있지만, 죽을 권리조차 없는 상태에서 자살까지도 법적으로 허용한 나라가 없는데 태아의 생명을 어머니의 선택권에 의하여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은 천인공노(天人共怒)할 일이다.

참새 한 마리의 생명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이는 생사권(生死權)은 창조주께서만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하물며 인간의 생명의 생사권인들 그분이 가지고 계시지 않겠는가? 인간의 생명은 참새의 생명보다 귀하다고 하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타의(他意)에 의하여 생명을 빼앗길 경우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라고 하였다. 이는 불가항력에 힘으로 생명을 빼앗길 경우에는 어쩔 수 없지만, 삶의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생을 포기하고 자살을 택하는 권한도 인간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아무리 어려워도 살아야 할 의무(義務)는 있지만 자살(自殺)할 권리(權理)는 없다는 것인데 하물며 태아의 생명을 죽일 권리는 더욱더 없는 것이다. 이는 살인죄를 짓는 범죄 행위다.

태아가 되었든 유아가 되었든 간에 부모는 자녀를 자신들이 마음대로 해도 되는 하나의 자기소유물(所有物)로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생명은 창조주가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맡아 양육할 의무(義務)는 있어도 죽일 권리(權理)는 없다.

어느 여인이 자기 딸을 매우 사랑하였는데 그 아이가 갑자기 죽었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보다 남편이 그 딸을 더욱 사랑했기에 그 딸의 죽음을 어떻게 남편에게 알리고 어떻게 설득하여 슬픔을 덜어줄까 고민하다가 생각이 나서 기다렸다가 남편이 집에 와서 앉았을 때 이야기를 꺼냈다. '여보 나 오늘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오. 그 이유는 어느 분이 최고가의 반지를 맡기면서 내가 돌아올 때까지 부인이 좀 끼고 있어 달라는 부탁이었는데 나는 너무 좋아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한 시간도 못 되어 그분이 와서 반지를 돌려달라 해서 주었는데 속이 상해서 죽을 지경이라'고 말하였다.
이때 남편이 하는 말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본래 그 반지는 남의 것을 잠깐 맡아 있을 뿐이지 당신의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였다. 이때 아내는 남편이 너무너무 귀하게 여기는 딸의 죽음을 알렸다. 하나님께서 우리 부부에게 귀여운 딸을 잠시 맡겼다가 오늘 다시 찾아가셨다고 하니, 남편이 아내에게 한 말이 있기에 '당연하지요' 하면서 '하늘에 가서 만나보자'고 그 슬픈 상황을 쉽게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부모는 자녀를 잠깐이라도 맡아 있을 뿐이지 내 소유는 아니기에 부부의 마음대로 죽이거나 살리거나 할 권리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부모들이 예외로 적다는 말이다. 자기의 소유인 것처럼 학대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잔인함을 보이는 실정이다.

그래서 법에서는 아동학대 죄를 적용하여 처벌하는데 낙태법을 합법화하여 임산부가 죄의식 없이 낙태하게 하는 법을 만든 자는 생명의 주인인 창조주만이 그런 악법을 만든 자들을 처벌할 권한이 그에게만 있기에 그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임산부(姙産婦)들이 낙태할 선택의 권리를 법으로 보장해달라고 하는 것은 살생(殺生)권을 달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타인의 것을 내가 맡아 있다면 주인 허락 없이 내 마음대로 버릴 수 없듯이 태아의 생명은 내 것이 아니고 창조주의 것이니 부모 마음대로 귀한 생명을 처분할 수 없다는 논리이다.

법은 생명을 보존할 책임과 의무는 있지만, 태아의 생명을 낙태시켜도 된다고 합법화하여 낙태를 허용할 수 있겠는가? 물론 상황에 따라서 할 수 있다는 그 법은 이미 모자보건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가?

누가 무엇이라고 해도 사람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법이 어떤 경우에도 낙태를 허용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아니 된다. 물론 그 책임은 자신들이 살아서 받지 아니하면 죽어서라도 받아야 할 것이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몇몇 나라는 낙태법을 합법화한 국가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은 전혀 없기 때문에 외국의 예를 드는 것은 구차한 변명과 정당화하려는 수단과 방법에 불과하다.

성경은 말하기를 '생명을 사랑하고 악을 버려야 좋은 날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는 법으로 막아야 하고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도록 법이 정해져야 행복한 인간의 삶이 보장될 것이다. 그러므로 낙태법(落胎法) 헌법불합치(憲法不合致) 결정을 온당하다고 한다는 것은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하여 절대로 온당하고는 합리화할 수 없고, 폐지되어야 마땅한 악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윤근 목사(본보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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