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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법(落胎法) 헌법불합치(憲法不合致) 결정 온당한가? (중)

[ 2019-05-31 15:05:01]

 
낙태를 전쟁의 논리로 본다면 이는 문제가 있다. 전쟁은 적과 싸우는 것인데 전쟁에서 적을 죽이는 것은 자신의 생명과 연관이 있기에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방어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죽이는 경우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논리적으로 볼 때는 온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적을 죽이지, 아니하면 자신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는 적군이 쳐들어오는데 싸워서 적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방관만 하여 나라를 잃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잃게 하면 이는 군인으로서의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없고 저주받아 마땅하다는 말이다. 어느 종파에서는 입대를 거부한다. 그리하여 국가에서는 대체복무 제도를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에 '살인하지 말라'는 구절을 근거로 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한다. 그러나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이는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지 말고 존중하라는 계명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입고 있는 고급 옷 한 벌을 빼앗으려고 어린이의 귀한 생명을 빼앗고 돈 몇 푼 때문에 아녀자와 노약자의 생명을 해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개혁주의 전쟁관은 집총을 거부하거나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고 전쟁의 성격부터 파악하여 국가가 이웃 나라를 빼앗기 위한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전쟁이면 양심적으로 거부할 수 있다. 반면에 적이 내 조국을 침략해 올 때는 자신의 생명과 가족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조건 방어 전쟁에 참전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
그렇다고 낙태를 전쟁논리로 생각하고 생존경쟁(生存競爭)의 차원을 넘어 생존전쟁(生存戰爭)을 방불케 하는 현실에서 적을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죽는다는 논리로, 어린 태아를 낙태하지 아니하면 내가 살 수가 없다는 이유로 낙태할 권리가 임신녀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있어서도 아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모성애(母性愛)는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짐승 세계에도 있다. 어느 집에 불이 났는데 전체가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집 모퉁이를 가보니 암탉이 불에 타서 죽어 있었다. 죽은 암탉을 치우려고 들어 올리니 어미 닭 날개 아래서 병아리들이 기어 나오는 것을 본 집 주인은 짐승에게도 이렇게 모성애가 강하여 자신은 죽으면서 제 새끼는 살리는구나 하고 깨달은 바가 많아 깊은 생각에 잠겼다는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찡하게 한다.
전쟁터와 같은 생존전쟁(生存戰爭) 같은 사회에서 낙태할 자기 선택권이 필요할지는 모르지만, 이는 짐승보다 더 모성애가 강한 어머니로서는 선택할 사항이 아니다. 만일 낙태를 선택했다면 이는 모성애가 없는 여인이고 온당한 처신이라고 할 수 없다.
낙태는 직업이나 배우자 혹은 어떤 물건이나 친구를 선택하는 것과는 다르다. 생명을 없애는 것을 선택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생명은 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스스로 태어나기 싫다고 태어나지 아니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태어남과 죽는 것도 불가항력에 의하여 생명의 주인인 창조주에 의하여 결정된다.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며 부자 되게도 하고 가난하게도 하며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을 주관한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몇억 마리 정자 중의 하나가 선택되어 모태에서 난자와 정자가 합쳐서 자궁에 착상하여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는 태아를 자기 결정권이라는 미명하에 낙태를 선택할 수 있는가? 이는 사람이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일이다.
외국에서는 태어나서 장성한 아들이 부모를 상대로 법원에 고소하였는데 이유인즉 '왜 내 허락 없이 태어나게 했느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세상에 어느 부모가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에게 물어서 '너 태어날 것이냐? 말 것이냐?'라고 물을 수 있겠는가? 천부당만부당(千不當萬不當)한 궤변 중에 하나다.
같은 맥락에서 사람이 누구나 예외없이 한번은 죽게 되는데 죽어서 재회한 후에 태어나기도 전에 어머니가 자기 선택권에 의해 낙태시킨 아이의 영혼을 만나 '어머니 왜 그때 나를 낙태시켜 세상에 태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게 했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때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자기 선택은 자유지만, 책임은 선택권을 행사한 자신이 져야 마땅하다.
그때 선택권을 행사한 어머니가 대답하기를 '나는 낙태하면 헌법에 처벌받는다고 해서 망설이며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헌법재판소에서 낙태법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부담감 없이 너를 낙태하게 되었으니 당시 이 어미의 고충을 이해해 달라'고 변명하겠는가?
어머니는 모성애가 강하여 높은 데서 떨어져도 태아를 살리려고 배를 보듬어 않고라도 잉태된 생명을 지키려는 것이 상식인데 삶의 고달픔과 생활에 불편함이 있다고 해서 낙태법이 폐지 되었다고 죄책감도 없이 주변 환경을 핑계로 해서 쉽게 낙태를 선택했다면 이는 생명을 죽이는 살인죄에 해당한다. 남편과 이혼하거나 친구와 결별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만약에 형법 269조만, 살아 있었으면 쉽게 낙태를 선택하지 못하고 악조건을 물리치고서라도 아이를 낳았을 것인데 헌법이 낙태법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낙태를 선택했다면 이는 헌법재판소에게 그 책임을 크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낙태법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은 온당하다고 할 수 없다. 절대로.

이윤근 목사(본보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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