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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사랑의 단체가 맞는가?

[ 2018-08-29 15:07:40]

 
 기독교는 사랑의 터 위에 세워졌다. 물론 신학적으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반석과 같은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였다.

한 율법사가 예수께 묻기를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것이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였다.
이는 수직적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수평적으로는 이웃을 사랑할 것을 교훈하신 것이다. 그래서 온전한 십자가는 수직적으로 하나님과 관계가 정상화 되어야 하고 수평적으로 인간관계가 정상화 되어야 온전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하였다. 이는 온전한 십자가는 어느 것 하나라도 빠지면 아니 된다는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단어 사용을 남발하면서 실질적인 사랑은 보이지 않고 있으니 실망이 크다는 것이다. 현재 교회가 멀리서 보면 번쩍번쩍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얼음집과 다르지 않아 냉랭한 기운이 감돌아 으스스한 기운을 느끼는 형편이다. 거기다 교회 이름은 다양하다. 좋은교회, 아름다운교회, 사랑의교회, 세상에 좋은 명사는 모두 모아서 교회 간판을 붙였지만, 들어가 보면 교회 이름과는 전혀 반대인 교회가 너무나도 많아 차라리 아름다운 명사를 붙이지 않는 것이 더욱 좋겠다.
어느 교회에서는 내부 실내장식을 하면서 장식업자에게 원가를 너무 적게 줄려고 하니 실내장식업자가 울면서 하는 말이 '다시는 교회 일은 하지 않겠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교회가 더욱 인색하여 사회인보다 더 욕먹고 업주가 상처받았다는 뜻이다. 이러고도 전도가 되기를 바라는가? 전도는커녕 교회 욕을 듣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뿐 아니다. 어느 건축업자는 너무 손해를 많이 보고 가슴 아파하니 그의 아버지가 하는 말이 '다시는 교회 일은 하지 말라.'고 하였단다. 교회라고 다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소수의 교회라도 그와 같은 일이 발생하면 교회 전체적인 이미지가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당하고만 있으라는 말은 아니다. 어느 사회나 상식이라는, 선이 있는데 상식 이하의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동냥은 주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아야 한다. 전도를 위해서는 약간의 손해를 보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하면서 실질적인 면에서 사랑을 베풀지 않고 사회에 사람에게 손해를 입힌다면 이는 사랑의 종교라는 말은 절대로 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기독교인은 때로는 알고도 속아주는 면이 있어야 하고 모르고도 속아주는 면이 있을 수 있고 큰일은 작게 만들고 작은 일은 거론하지 않고 때로는 바보 아닌 바보 취급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기 때문이고 약간의 손해는 주께서 어떤 면으로든지 갚아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주는 종교라는 것이다. 주님은 '주라. 그리하면 주께서 흔들어 부어 넘치도록 주시리라.'고 하셨다. 기독교의 진리는 역설적인 진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죽으면 사는 진리요 살려고 하면 죽는 진리이기 때문이고 낮아지면 높아지는 진리이고 높아지려고 하면 낮아지는 진리이며 섬기면 섬김을 받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면 후하게 이웃을 대할 때 전도의 문이 열리고 존경과 대접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받기만 하려고 하고, 사람을 무시하며 교만하면 반드시 냉대와 멸시를 받고 말 것이다.
베푸는 것이 힘들면 주지는 못해도 이웃에게 해는 끼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웃에게 손해를 끼치면서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외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오래 참고 견디고 주는 것임을 실천하지 않고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로만 해서는 설득력이 없다.
나무는 열매를 보아서 안다. 열매가 없으면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 말과 인격과 행동과 삶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어 이웃에게 나타냄으로써 진정한 사랑의 사람, 사랑의 공동체임을 인증받아야 할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마지막날 주께서도 나와 내가 속한 교회를 아신다고 인증하실 것이다.
이윤근 목사(본보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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