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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목회에 성공했는가? (48)

[ 2018-03-28 15:04:38]

 
목회 참회록
최기채 목사
(광주동명교회 원로목사, 78회 총회장)

양심의 자유
 
그 다음 해인 19558월에 징집영장이 다시 날아왔다. 이 소식을 또다시 전해 들은 형님은 아무 염려하지 말고 돈 3만 원만 준비해서 오면 된다고 하셨다. 필자는 고참병 형님을 둔 배경만 믿고 곧 돌아올 것이므로 가족들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집을 떠났다.
이전과 같이 모든 신체검사를 다 마치고 최종 심판을 하는 군의관 앞에 서게 되었다. 그때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던 군의관이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묻기에 ', 없습니다.' '폐결핵은 다 나았느냐?' ', 다 나았습니다' 하고 통과하고 나왔다. 그 후 약 30분쯤 지난 다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형님이 나타나더니 흥분해서 말했다.
'이 바보 같은 놈아, 아무 데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며?' ', 그랬어요.' '산통이 다 깨져버렸다. 이 멍청아.' 그래서 ', 군대에 입대해서 죽을지라도 대한민국의 사내답게 떳떳이 살기로 했으니 나를 그냥 놔두어요' 하고 대답해버렸다. 난감해 하던 형님은 부모님께 뭐라고 말해야 될지 걱정이라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훈련을 마친 다음에는 육군본부로 발령 나도록 손을 써 볼 테니 몸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생애 최악의 불행

훈련소 생활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웠다. 육군훈련소는 마치 사회의 감옥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군기를 잡는다는 명분 아래 이유도 알 수 없는 기합과 구타 그리고 배고픔과 고된 학과 출장, 교육과 훈련에다 목욕 한 번 할 기회도 없었다. 그러기에 온몸에는 이가 득실거렸지만 이를 잡고 있을 시간도 없고 퇴치할 약도 없기에, 그 짧은 화장실 용무 시간에 옷깃이나 바지 속을 뒤집어서 이를 털면 이가 쏟아지곤 했다.
그리고 기관 사병들이 총기나 검 등을 훔쳐다 팔아먹고, 그 총기를 잃어버린 훈련병에 죄를 물어 구타하거나 집으로 돈을 요청하여 이중으로 팔아먹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뿐 아니라 상관이 기합을 주거나 심한 구타로 인해 훈련병이 죽어 나가도 아무에게도 항의하거나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다.
너무나 배가 고프다 보니 음식물 쓰레기장에 가서 장교들이 먹다 버린 것을 주워다 먹거나 식당 구정물 통에서 무 이파리 등을 주웠다가 들키는 날에는 거반 죽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군대란 불복하거나 무슨 이유를 대거나 잘난 척하거나 아는 척하거나 자존심 같은 것을 내세우다가는 맞아서 죽는 곳이었다. 잠도 부족하고 자유도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고, 그야말로 사회와는 완전히 단절된 별천지였다.
그러기에 지난해에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고 내가 대신 귀가 조처된 일에 대하여 양심에 가책을 받고 후회했던 그 생각 자체가 어리석게 느껴졌다. 돈을 써서라도 군에 입대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무슨 충신이라고, 공산군을 쳐부수고 나라를 지키는 국방군이라는 자부심이나 꿈도 다 사라지고 자해를 해서라도 부상병으로 후송하여 제대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나님을 만나게 한 고난의 때

훈련소에서 전후반기를 마치고 대기했으나 형님이 주선한 육군본부로의 발령에 대한 꿈을 접고 제1군 사령부의 직할부대인 155밀리미터 포병부대 인사과로 배속되었다.
때는 자유당 말기였고 휴전 상태에 있는 군부대마다 군기가 문란했다. 고급 장교들은 후생사업이라는 명목으로 사병들을 산에 보내어 거목들을 베어다 땔감으로 팔거나 숯을 구워서 팔아먹기도 했다. 그리고 병력은 휴가를 많이 보내서 남은 식량과 부식들은 서울로 빼돌리되 앰뷸런스에 싣고 윙윙거리며 헌병초소들을 무사통과하여 팔아넘겼다. 그렇게 되니 저녁이면 2, 3교대로 보초를 세워야 하는데 병력이 부족하여 겨우 1교대로 밤을 새우게 되어 모두가 다 지쳐서 졸거나 기백이 없었다.
필자는 행정요원으로서 외출증이나 공용증을 마음대로 발부하여 민간사회에 자유롭게 나들이 할 수 있었다. 그때에 필자는 친구의 강권함으로 회자리장로교회에 등록하고 그 교회에서 학습과 세례를 받고,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찬양대, 그리고 청년회에서 섬겼다. 그리고 195810월에 만기 제대하여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결국은 목사가 되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회고해 보면, 그때에 군에 입대하지 않고 사회생활을 했더라면 도박과 음주와 끽연 등 안 좋은 풍습으로 인생을 망치고 말았을 것인데, 군대에 입대하였기에 영과 육이 넘치는 복을 받았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나 병역 비리자를 질타했던 필자는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2:22-23) 하는 말씀이 늘 나를 찌르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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